소설리스트

A.I. 닥터-736화 (736/1,303)

736화 깽판? (1)

“자……. 그럼 태화 의료원 분들…… 이쪽으로 드시죠.”

원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나.

예시가 부적절했을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지금 이 순간 제일 후달리는 사람인 오성흠 원장은 세상에서 제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 밖에 나와 있었다.

여기서 밖이라 함은 원장실 밖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병원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원장님. 환대 감사드립니다.”

신현태는 그런 오성흠을 보며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어, 이 양반아. 그것도 하필이면 현종이 형한테 걸려 가지고…….’

불쌍하기는 했다.

하지만 신현태도 박국진을 비롯해 꽤나 여러 사람들에게 칠성의 비리를 전달받은 참 아니던가.

게다가 수혁이의 다리를 다치게 만든 발단이 칠성일 수 있다는 아주 중대한 첩보도 입수한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이 돌연 독해졌다.

‘찍고 있나?’

힐끔 뒤를 돌아보니 전혀 다른 일행처럼 차리고 나타난 홍보팀 직원이 보였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오성흠과 신현태의 악수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일부러 좀 흔들리게 찍었다.

그래야 지나가는 사람이 우연히 찍은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러나 사람 얼굴은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찍었을 터였다.

-칠성 병원에서 마중 나오는 사람이 있겠죠? 아무래도 숙이고 들어오는 느낌이 날 겁니다. 그런 사진은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들고 있는 게 좋습니다.

김다현 회장의 조언 때문에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대체 왜 사진을 찍나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럴싸한 의견이었다.

확실히 이런 사진은 들고 있으면 나중에라도 쓸 일이 있을 것 같았다.

그 왜 있지 않나.

사람 얼굴 멀쩡히 실린 사진을 올려놓곤 ‘이 사진은 본문 내용과는 무관합니다’라며 아주 작은 문구로 써 놓는 기사들.

대개는 진짜 상관없는 사진들이 쓰일 테지만 간혹 이렇게 기업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실리는 사진들도 있었다.

“이현종 원…… 아니, 센터장님도 오셨군요.”

“와야지. 내가 메인인데.”

“네네. 이쪽으로 드시죠. 날이 슬슬 찹니다.”

“그래. 어유……. 칠성 병원 로비는 언제 봐도 이게 참 잘해 놨네.”

“아……. 네. 그렇죠. 하하.”

오성흠은 의사치고는 꽤 정치적인 감각이 있는 인간이었다.

아마 이렇게 저자세로 나가는 것이 나중에라도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챘을 터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평소라면’이라는 가정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저 이현종 얼굴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칠성 병원의 자랑인 드높은 천장을 가진 로비를 거닐고 있는 이현종 얼굴이 꼭 시한폭탄 같아 보였다.

‘이 양반은 또 왜 이래…….’

원장 모시느라 같이 나온 안국태가 보기에도 그랬으니, 오성흠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돈을 꼭 이렇게 쓸데없이 써야 되나. 인재에 쓰고 그래야지. 제대로 된 인재!”

“아, 네. 그, 참.”

“사과 안 하나?”

“네? 제가 지은 건 아닌…….”

“원장은 뭐든지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어야지.”

“아, 네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네네. 죄송합니다.”

원래도 이상한 인간이 오늘은 진짜 작성하고 뻗대고 있었다.

‘아빠 잘한다. 처음부터 이러면 중간에 나가도 그냥 나갈 사람이 나갔다, 이런 느낌이지.’

[수혁은 그럼 수습하러 따라 나가는 느낌입니까?]

‘그렇지.’

[환상의 콤비군요.]

바루다는 잠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루다야 기계고 또 환자 보는 게 존재 이유인 프로그램이다 보니 환자 보는 데 진심이라고 하지만.

이 둘은 뭔데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심지어 수혁은 어제 거의 잠을 못 자는 바람에 피곤한 상황이었다.

누구보다 바루다가 제일 잘 알았다.

[심장 박동도 평소보다 빠르고…… 혈압도 높습니다. 수면 부족의 전형적인 부작용입니다. 괜찮아요?]

‘어? 어. 괜찮아. 커피 마시면 되지.’

해서 좀 쉬라고 하려고 말이나 꺼내 봤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이미 칠성 병원의 거대한 위용, 그러니까 수많은 병상과 그 병상에 누워 있을 환자들에 정신이 팔린 지 오래라 그랬다.

태화도 규모만 따지면 엇비슷한 수준이었으나 거기는 수혁을 비롯해 이현종 심지어 요새는 안대훈과 그 일당들이 바닥부터 뒤져서 어려운 케이스를 해결해 오지 않았나.

요즘 들어선 응급실 말고는 거의 새로운 케이스를 만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여기는 어떤 케이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바루다는 거의 새로운 지방에 다다른 포켓몬 트레이너 지우의 눈을 한 수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쯤 되면 설득은 어차피 불가했다.

“어? 병원이 이게 뭐냐고. 이러니까 개판이지. 어?”

“아이고, 원장님 죄송합니다.”

그사이에도 이현종은 툴툴거리고 있었다.

칠성 사람들뿐만 아니라, 태화 측 사람들도 슬슬 걱정이 들 지경이었다.

‘형……. 이건 진상이 아니라 그냥 미친놈인데.’

신현태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홍보팀 직원은 아예 휴대폰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따위 사진은 찍어 봐야 내부 고발밖에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랬다.

‘다행이네. 똑똑한 사람이라.’

신현태가 이제 막 안도의 한숨을 쉴 때쯤 오성흠도 비슷한 표정으로 어떤 문을 열었다.

작게 마련된 회의실이었다.

원장단 회의가 열릴 만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회의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적절했다.

특히 태화 사람들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깽판 치고 가서 환자 보라고 온 것이지 않나.

나머지 시간은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가 이현종이 쌈짓돈으로 쏠 저녁이나 먹으러 가면 될 일이었다.

“자, 그럼 회의를…….”

“회의? 이게 회의씩이나 필요한 일인가?”

오성흠은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입을 다물지는 못했다.

바로 이현종이 끼어들어서 그랬다.

“그 뭐야. 그래, 로열. 나 때도 그런 거 심했거든. 알지? 능력 있는 애들 밀려서 개원하거나 지방으로 가고 어디 말도 안 되는 놈들 한 자리씩 하고. 그런 일 때문에 속상한 적 없는 놈 있어? 다 로열이야?”

아까까지는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의 분노는 찐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부조리에 맞서 싸워 온 양반이 바로 이현종 아닌가.

아마 세계적으로 통할 만한 위업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터였다.

이현종 윗사람치고 이현종을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물어서 그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현종이라고 하면 이를 가는 사람도 있었다.

기껏 심장내과를 전공한 사위 얻어서 교수로 만들려 했는데, 이현종이 제아무리 로열이라고 해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한 논문을 내는 바람에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갔기에 그랬다.

“아니,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게…… 아시잖습니까. 이현종 교수님이야 연배도 위고 또 업적도 있으시지만, 일반 교수는 학회장급에서 부탁이 들어오면 이게…….”

“어떤 새끼가 그랬는데. 어디 학회장인데. 설마 정용기야? 오라 그래!”

“아니……. 아뇨. 내과 본 학회는 힘도 없는데 뭐……. 그리고 이번에 문제 된 건 정형외과입니다. 따로 터진 거야 내과도 있긴 한데.”

“정형외과 어떤 놈이 그랬어. 이 자리에 있나?”

“지금 징계 중이라…….”

“징계?”

징계라는 말에 이현종 눈이 돌아갔다.

병원에서 징계란 말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잘 알아서 그랬다.

특히 교수에 대한 징계는 솜방망이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해는 갔다.

병원이니까.

교수가 정직이라도 당하면 그 인간이 보던 환자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암 환자라도 있으면, 수술이 밀려서 죽게 생긴 사람에게 ‘그 인간이 잘못해서요’라고 말할 수 있나?

잘못을 저지른 인간이라 해도, 그 잘못이 어지간한 것이라면 일단 진료는 끊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기껏해야 감봉일 텐데! 여기 왜 안 왔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찐텐이었던 것이 억텐으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이현종은 수혁에게 눈길을 보내고는 으아아 소리를 지르면서 방을 뛰쳐나갔다.

“내가 그 새끼 잡는다!”

“어어. 아빠!”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잡으러 가는 척하면서 달렸다.

지팡이를 짚고 있어서 쫓아갈 수 있을까 싶기는 했지만 태화 사람들은 느긋했다.

어차피 다 계획이었으니까.

다만 칠성은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어…….”

“이게 대체.”

“말,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갈까요?”

그래서 우왕좌왕하다가 급기야 제일 직급이 낮은, 그러니까 나이가 어린 교수가 몸을 일으켰다.

신현태가 입을 연 것은 딱 그때쯤이었다.

사실 태화의 원장이라면 벌써 대화를 주도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야말로 신현태의 시간이라서 그랬다.

-억지로 열린 회의이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평소 이현종 교수님의 이미지 덕분에 주도권이 왔죠. 지금 당장 협상할 거야 없긴 한데……. 이참에 파워 게임이라도 한번 해 보시죠.

김다현 회장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현종 교수님이 저래 보여도…… 이수혁 교수하고 있으면 별 얘기 안 할 분이라서요. 다만 로열 밀어주기 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워낙 싫어하는 일이다 보니, 삭일 시간이 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 그럼…….”

“저와 얘기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원장단 회의고, 이현종 교수님은 원장단의 일원일 뿐이니까요. 결정권은 제가 쥐고 있습니다.”

제일 약한 고리를 노리란 말도 들었더랬다.

평소라면 칠성에 그런 게 있나 싶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신현태는 부드러운 얼굴로, 그러나 단호한 눈으로 오성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오성흠은 신현태가 원장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뭐가 되었건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빠! 이제 그만 뛰어도 돼요. 아무도 안 따라와요.”

“오, 그래. 좋아.”

“일단 이거 걸쳐요.”

“오……. 이건 어디서 났어?”

회의실이 나름 열띤 토론을 시작하게 되었을 무렵, 이수혁, 이현종 부자는 복도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수혁이 품 안에 담아 온 가운을 걸치면서였다.

놀랍게도 칠성 병원 가운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대훈이가 줬어요. 아선 것도 있어요.”

“대훈이? 아니, 그놈은 대체 어떻게.”

“나름 조직이 있다고 하는데, 대체 그게 무슨 조직인지 모르겠어요.”

정확히 말하면 알고 싶지 않다는 말이 더 맞을 터였다.

이현종은 오히려 더 확실하게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을 꺼내진 않았다.

‘우리 수혁이……. 교주 노릇은 싫어하지?’

이미 교주가 됐는데 왜 싫어하나 싶기는 했다.

이현종은 환자만 잘 볼 수 있다면 그 외의 일에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목적만 좋으면 그게 수혁교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다 좋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하지만 또 같은 이유로 본인이 싫다고 하면 그 의사도 존중해 주는 위인이었다.

“그럼…… 어디부터 갈까.”

“역시 병실 투어가 재밌죠.”

“좋아.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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