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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738화 (738/1,303)

738화 구원 (1)

모두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학생이 입을 열었다.

긴가민가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어쩐지 민망해하는 듯하기도 했다.

“그, 그게요.”

평소의 이현종이었다면 좀 답답해할 만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아마 의대 실습 학생이었으면 이미 뭐라고 하지 않았을까.

너는 어깨 위에 뭘 달고 다니는 거냐, 뭐 이런 식으로.

하지만 상대는 환자였고.

심지어 이현종의 추억 속에 있는 환자군이었다.

“네, 괜찮으니까 말해 봐요.”

이미 이현종은 옛 친구에 대한 속죄 중이었다.

생각보다 이런 경우는 많았다.

의사는 아니, 사람은 원래 과거를 품고 사는 법이니까.

그중에서도 사람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되는 사람은 더더욱 과거에 있던 아픈 사람을 가슴에 안을 수밖에 없었다.

천성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이건 그저 업의 결과였다.

‘아빠……. 이 사람은 친구 아닌데.’

[그냥 둬 보시죠. 단점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으니.]

‘하긴……. 이 환자…… 좀 이상하지?’

[네, 결핵 가능성이 좀 떨어져 보입니다. 물론 여전히 1번 진단명에 결핵을 두기는 해야겠지만……. 보니까 객담 검사도 못 했네요.]

‘객담 배출이 안 된다……. 뭐 이런 경우가 있기는 하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여자나 청소년 등에서는 객담 배출을 잘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마도 아예 해 본 적이 없어서일 거라 판단하고 있었다.

당장 수혁만 해도 어릴 때 침 멀리 뱉기 놀이 등으로 시간 때운 적이 있지 않나.

지저분한 놀이였지만 돌이켜 보면 객담 검사할 때만큼은 도움이 되는 놀이였다.

[논리가 이상하네요, 수혁.]

‘하여간 확진이 안 된 상황이야. 그럼 의심을 해 볼 여지가 있지.’

수혁은 바루다를 조용히 시킨 후 환자의 얘기에 집중했다.

마침 환자는 이현종의 격려에 힘입어 입을 열려 하고 있었다.

“그게. 전에 여기 왔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네. 2달 전에 오셨었죠? 그때도 진단되지 않아 경과를 관찰하자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근데 지금은…… 여기가 살짝 아파요.”

환자가 가리킨 곳은 가슴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갈비뼈가 있는 부위.

의사가 아니었다면 저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싶기도 했을 터였다.

폐에 하얀 병변이 저리 많으니 폐가 아픈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폐는 감각이 없는 기관이었다.

지금 통증은 좀 다른 곳에서 발원했다는 뜻이었다.

“아픈 건 어떨 때 아파요?”

“음……. 그렇게까지 자세히는.”

“그럼 숨을 참아 보세요.”

“아, 네.”

“한 10초.”

“네.”

감 잡은 이현종이 지시를 내렸다.

병원에서 의사가 내리는 지시는 절대적이지 않나.

좀 석연찮은 면모가 보여도 따라 하게 되는 법이었다.

이 정도 지시야 당연한 일이었다.

“어때요. 지금 아팠어요?”

“네? 아뇨. 근데 애초에 아주 자주 아픈 건 아니라서요.”

“자, 그럼 이번에는 심호흡을 해 보세요. 숨을 크게. 최대한 크게 들이마셔 보세요.”

“네, 어. 아.”

이번에도 이현종의 지시를 따라 숨을 들이쉬던 환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픈 모양이었다.

그럼 위로의 말이 나가야 하는데.

이현종, 이수혁 모두 유레카를 외쳤다.

“늑막염…… 늑막염이 발생한 거 같은데요. 사진으로는 불명확하지만, 증상은 확실히 그런 거 같아요.”

이현종은 속으로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핵으로 늑막염이 발생했다면…… 흉수가 차야 해. 물론 안 찰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극히 드문 확률로 밀어붙여야 해. 이건 다른 질환이라고 보는 게 논리적으로 옳아.’

결핵이 아닐 것 같단 생각이 점차로 강해지고 있어서 그랬다.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늑막염까지 발생한 사진으로는 안 보여.’

[그렇습니다.]

‘근데 그럼 저 병변은 뭐지? 단순 흉터로는 안 보이는데…….’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칠성에서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오, 웬일이야. 칠성 싫어하잖아.’

[싫어한다고 무시할 필요는 없죠. 오히려 제대로 알아야 밟아 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지당하신 말씀을 들으며 동시에 고민에 잠겼다.

대체 이 환자는 뭘까.

결핵이 아닌 건 알겠다.

그런다면 뭘까.

다른 질환이 응당 떠올라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그랬다.

“환자분, 잠시만 자리 비워도 될까요? 상의가 필요할 거 같아서요.”

“아, 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네.”

이현종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환자를 둔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N95 마스크를 벗었다.

“수혁아.”

“네.”

“결핵 아닌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그러곤 수혁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무리 결핵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집착이 있기는 했지만, 뭐가 되었건 이현종의 전공은 심장이지 않나.

거의 죽어서 온 환자를 살려 내는 과에 매료되었기에 그랬다.

하여간 결핵에 대해 어지간한 의사들보다야 잘 안다고 자부하는 몸이긴 했지만 그래도 수혁보다는 아닐 거라 판단한 참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결핵 가능성은 떨어져요. 증상이 일단 좀 맞지가 않고요. 무엇보다 아까 늑막염 소견이 보이는데…… 결핵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흉수가 찼을 거예요.”

“그래, 그렇지. 컨디션이나 뭐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도 좀 이상해.”

“네.”

잠복 결핵인가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잠복 결핵은 말 그대로 결핵균이 잠복해 있다가, 숙주가 약해지면 비로소 감염을 일으키는 형태를 말하지 않나.

저 환자는 어떻게 봐도 약해 보이진 않았다.

아마 지금도 환자복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혀 놓으면 그냥 잘 뛰어다닐 터였다.

‘아, 그건 아닌가. 늑막염이 생겼으니…… 좀 아프겠네. 하여간.’

[저런 병변을 보일 수 있는 질환을 추려 보았습니다.]

‘오.’

[저는 수혁과는 달리 성실하니까요.]

딴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바루다가 의미 있는 리스트를 넘겨주었다.

확인해 보니 자가 면역 질환부터 감염 질환까지 아주 다양하게 있었다.

태반은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검사 소견에 완전히 배치되는데. 이건 증상이 맞지 않고…… 야, 이거면 벌써 진단했지.’

[누가 뭐랍니까. 수혁이 딴짓하는 사이에 쉬고 있던 머리 굴린 거예요. 이 정도면 됐지, 뭐.]

‘아.’

[또 뭔 말을 해서 비꼬려고?]

‘아니. 아냐. 이거. 이거면…….’

[이거……? 아.]

수혁의 말에 바루다도 집중했다.

평소라면 말도 안 된다 치부할 만한 진단명이 눈앞에 있었다.

드문 진단명이었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더더욱.

심지어 환자의 나이와 성별을 고려하면 더 그랬다.

“아빠. 좀 이상하기는 한데.”

“어, 아들 말해 봐. 뭐라도 말해 봐. 지금 떠오르는 게 나도 있기는 한데, 이게 당최 좀.”

“아……. 아빠부터 말해 봐요.”

“네가 먼저 말하려고 한 거 아니니?”

좀 이상해서 당당히 말하기가 그랬다.

그래도 단서가 없으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현종도 뭔가 있다지 않나.

민망해하는 얼굴을 보니 이쪽도 이상하기는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그래 봐야 도리상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수혁은 뻔뻔하게 내질렀다.

“전 아들이니까요.”

“와.”

아들 드립을 쳤다.

이현종은 어이가 없었다.

이 타이밍에 아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원래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데도 당당할 수 있는 게 자식새끼인데.

가슴으로 낳은 자식도 자식임은 매한가지인 데다가, 이현종의 수혁에 대한 애정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했다.

“그…… 알았어. 와. 이놈 이거.”

“네네. 말씀해 보세요.”

“그…… 환자가 여학생…… 그것도 고등학생인 게 좀 걸리긴 하는데……. 우리나라가 민물고기 먹는 문화가 아주 널리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오.”

“왜. 너도 이 생각했어?”

“네. 폐흡충이요. 사실 생긴 거나 증상만 보면 폐흡충에 아주 잘 들어맞아요.”

“그렇긴 해. 나도 폐결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진 다시 보니까 딱 폐흡충이 떠오르긴 했거든. 근데…….”

이현종과 수혁이 망설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폐흡충에 감염되는 경로 때문이었다.

아니, 일단 진단되는 빈도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낮았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학회 및 국가 차원의 캠페인을 지속해 온 결과였다.

그 때문에 개발도상국과 비슷하게 많았던 폐흡충이 이제는 극히 드문 수준으로 내려왔다.

“민물 게……에서는 여전히 10%에서 폐흡충이 발견되긴 하잖아.”

“그렇죠. 그걸로 장을 해 먹거나 하면 걸릴 수 있죠.”

“근데 저 친구가 그랬을까?”

“음.”

시중에서 유통되는 게장이 그렇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었다.

폐흡충이라는 게 기생충이라 만만히 보기 십상인데, 폐에 알알이 틀어박히면 치료하기가 쉽지 않은 병이었다.

심지어 이름은 폐흡충인데 게 중에는 또 이상한 놈들이 있어 머리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뇌전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게 나오면 업체 입장에서는 난리가 난다는 얘기.

때문에 보통 이게 걸리는 건 직접 잡아서 담가 먹을 때의 얘기가 되었다.

“저 친구가 참게 잡아다 장 담가 먹는 게 상상은 안 되긴 하는데…… 뭐, 가족 중에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 가족. 가족이라…….”

“네. 아빠가 해 주면 먹을 거 같은데.”

원래 아빠가 없던 수혁에게 아빠란 존재가 주는 이미지는 이현종이 다였다.

뭐든지 아낌없이 주는 사람.

그리고 수혁은 그 사람이 주는 거라면 뭐든 의심 없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살짝 왜곡된 시선이기는 했지만, 하여간에 확인은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환자분.”

이현종은 문을 뚝뚝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환자를 불렀다.

“아, 네.”

정말 얼마 안 돼서 다시 들어온 참이다 보니 환자는 딱히 기대가 없어 보였다.

대강대강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혹시 민물 게장 드신 적 있어요?”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을 들은 환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충분히 훈련된 전문가와 대화하는 건 일종의 점쟁이와 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나.

그 체험을 처음으로 하게 된 마당이라 그랬다.

“어……. 네. 어떻게.”

“아, 드셨구나. 아버지가 해 주셨어요?”

“네? 아……. 네, 뭐. 정확히는 원래 가족끼리 자주 놀러 가요. 한두 마리만 잡아서 해 먹고 그래요.”

“아하. 다 같이 드셨구나.”

“네.”

“나머지 가족분 지금 다 어딨어요?”

“회사요.”

“오라고 하세요. 다 같이 검사해 봅시다.”

“아……. 네. 근데 어떤 검사를 해요?”

학생의 말에 이현종은 잠시 수혁과 눈을 맞추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종은 후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엑스레이요. 폐흡충이 의심됩니다. 아마 다 걸리셨을 거예요. 다 같이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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