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구원 (2)
폐흡충.
말 그대로 폐에 사는 기생충이지만 이소 폐흡충이라고 해서 영 다른 곳에 위치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나마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네. 어떻게 벌써 오셨어요?”
이현종은 10분 정도 만에 싹 모인 가족을 보며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수혁도 신기해하던 참이었다.
회사에 있다던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벌써 왔을까.
그 말에 아버지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고 했죠. 그렇지 않아도 주말에 뭣 좀……. 하하. 병원에서 따로 사식 챙겨 먹으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안 되죠. 더군다나 환자분은 지금 결핵 병실에 있는데요.”
이현종의 시선은 아버지가 들고 온 반찬 통에 머물러 있었다.
나무라고는 있지만, 식도락가인 이현종인지라 뭘 갖고 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병동 복도에는 이미 사제 음식 냄새가 잔뜩 번지고 있었다.
혼합 병동인지라 당뇨 환자 등 식이 제한이 걸린 환자들도 있었는데,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나와서 구경 중이었다.
“이거 보세요. 지금 먹고 싶은 거 참고 사는 분들이 저렇게 많습니다.”
이현종은 그중 제일 절박해 보이는 환자를 가리켰다.
젊은 남자 환자였는데,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환자 본인뿐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라도 사제 음식은 반입이 불가한 거라고요.”
“네네. 그 죄송합니다. 아유, 저는 그저 그냥 몸보신이라도 시키려고…….”
보신 문화.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죄다 퍼져 있는 문화라고 보면 되었다.
아닌 것 같으면 할머니 한번 불러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미국 할머니들도 손주 오면 진짜 먹다 뒤질 정도로 맥이니까.
“거 뭐 가지고 오셨는데요.”
“네?”
이제 아버지는 체념한 채 도시락통을 주섬주섬 넣고 있었다.
그걸 제지한 것은 놀랍게도 이현종이었다.
‘아버지……. 냄새 맡으셨구나.’
[간장 냄새……. 몸보신……. 거의 100%죠.]
‘그러니까. 아니, 근데 지금 철인가?’
[그런 걸 물으셔도 제가 알 방도가 없죠. 수혁은 자연과는 담쌓고 사는 사람 아닙니까.]
‘어, 그건 그렇지.’
참게가 민물 게인지 아닌지도 교과서에 쓰여 있으니까 알지, 그렇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터였다.
하여간 이현종의 말에 아버지는 여전히 몰려들어 있는, 이쪽을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는 환자들 눈치를 보다가 이내 반찬 통을 열었다.
그러자 간장에 절여진 작은 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으로 보는 꽃게 장과는 달랐다.
“이거 민물 게죠?”
물론 이현종이라고 해서 이게 민물 게인지 딱 보고 알지는 못했다.
어지간하면 민물고기나 게는 먹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다.
특히 뱀이라고 하면 딱 질색이었다.
단지 생긴 것 때문이 아니라, 그거 먹고 잘못되는 환자를 본 기억 때문이었다.
이런 건 조사 안 하겠지만 아마 의사들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민물고기를 적게 먹을 터였다.
“아, 네! 민물 게 아시는구나!”
아버지는 잔뜩 오해한 채 신나서 소리쳤다.
원래 마이너한 취미일수록 끈끈한 법이지 않나.
보통 사람 같으면, 이렇게 사람이 좋아하면 반대되는 얘기를 할 때 좀 주저할 텐데.
이현종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그냥 말했다.
“이거 때문에 애가 입원한 겁니다.”
“네? 이거 보신 음식인데요?”
“누가 그래요?”
“아니, 누가 그럴 것도 없이……. 그 자연에서 제가 채취해서…… 진짜 건강하게.”
“자연이 건강하다고 누가 그럽니까. 수렵 채집할 때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특히 민물에는 기생충이 너무 많아요. 아이 폐에 있는 건 폐흡충입니다. 민물 게에서 특히 많이 나오죠.”
“어…….”
환자 보호자에게도 단호해야 할 때는 단호한 사람, 그것이 이현종이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습관이나 풍습은 어지간해서는 잘 고쳐지지 않으니까.
아마 조태진이 이거 봤으면 더 난리법석을 피웠을 터였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생개구리 같은 거 먹고 돌아가시는 암 환자들을 보기 때문이었다.
“간장에 절인다고 해서 안전할 거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거의 보름은 살아요, 기생충이. 아, 바다에서 잡히는 거 얘기는 아니고요. 그건 괜찮습니다. 하여간 이제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오신 김에 다들 검사받으시고.”
“네? 아……. 검사. 그…….”
“다 같이 드셨을 거 아니에요. 다 검사받으셔야지. 아버지가 좋은 뜻으로 하신 일이라는 건 압니다. 아마 우리 학생도 아버지 좋아하는 거 같은데……. 꼭 좋은 뜻으로 했다고 좋은 결과가 벌어지는 건 아니죠. 그리고…… 아니다, 이건 뭐. 일단 검사받으세요.”
이현종이 하려다 만 얘기가 무엇인지 수혁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기생충……. 지금은 많이 잊혀져 가고 있는 학문이지.’
[네, 절대적으로 양이 줄고 있으니까요. 기생충이 언젠가는 완전히 사멸할 거라는 예측도 있지 않습니까?]
이게 그냥 바루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기생충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일수록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기생충은 바이러스나 세균과는 달리 만들어진 약에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그랬다.
두 가지 기전의 기생충 약이 있는데, 이것만으로 현존하는 기생충 거의 대부분을 죽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빠르게 기생충은 사멸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근데 문제는…… 기생충보다 빠르게 의사들의 기생충에 대한 지식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지. 당장 대학 병원 의사 붙잡고 아는 기생충 말해 보라고 하면 열 개도 못 댈걸.’
[설마요.]
‘진짜 그래. 우리도…… 기생충 쪽은 좀 약하잖아. 필요성이 적어서라고 하기엔 여전히 감염 환자는 있지.’
[음.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이 환자도 사실…… 오히려 80년대였으면 바로 진단했을 테죠.]
‘그렇지.’
의학은 점점 더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 않나.
새롭게 문제가 되는 질환이 있고 또 앞으로 더 생겨날 질환군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기생충은 확실히 소외된 분야였다.
앞으로 사멸할 것이 자명한 분야에 평생을 바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 때문에 오히려 예전보다 기생충 감염에 대해서는 놓치는 경우가 더 늘고 있었다.
의사들의 기생충에 대한 경험과 관심 및 지식 부족 탓이었다.
“일단 레지던트한테 인계했어. 내가 누군지 고민하던 눈치던데…….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이현종은 그새 환자들을 인계한 후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이거 나 아니었으면 또 몇 개월 끌었겠네.”
잘난 척도 잊지 않았다.
물론 맞는 말이긴 했다.
최근 들어 보고되는 기생충 감염 관련한 케이스를 보면 진짜 그랬으니까.
그러다 골든 타임을 놓쳐 머리로 이소 폐흡충이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합병증을 겪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맞죠. 진짜 아빠 덕이다, 이건.”
“그러니까. 무턱대고 폐결핵 약 썼어 봐. 물론 어리니까 뭐 약 부작용이야 적었겠지만…….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쓰기엔 좀 부담스러운 약인 게 사실이지.”
“일단 길잖아요.”
“그렇지.”
둘은 그렇게 서로를 치켜세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 병동에서는 한 건 했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 맞다.”
그러다 이현종이 잠깐 발걸음을 돌려 병동 컴퓨터에 명함 하나를 꽂았다.
친필 사인이 가미된 통합진료센터 명함이었다.
‘괴도 루팡…….’
어디서 감명받아서 저런 짓을 하는지는 명확했다.
수혁은 그런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아빠지만 진짜 특이하다니까.’
[근데 수혁도 동의한 거 아닙니까?]
‘어, 좋다고 하는 말이야.’
[아.]
오늘 여기 모든 병동에 저 명함을 꽂아 놓으면 얼마나 신날까.
일단 뒷수습하느라 칠성 병원장 오성흠은 뒤지게 고생할 것이 뻔했다.
일반 교수들이야 무단으로 환자 치료하고 사라진 놈들 잡아야 된다고 할 텐데, 그랬다가는 영상이 번질 거 아닌가.
아니, 그 전에 일단 원장이 이거 해도 된다고 묵인한 마당이었다.
오성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이 둘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띵.
하여간 이제 하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둘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주 자연스럽게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둘 다 여전히 전형적인 의사 얼굴 그리고 교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레지던트들 중에는 수혁이나 이현종 둘 중 하나는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학 병원이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지 않나.
자기 할 일 하는 것만 해도 죽을 정도로 바빴다.
“어디…… 볼까.”
해서 둘은 별 방해 없이 자리에 앉아 병동 환자를 살필 수 있었다.
[근데 어차피 차트는 아무 데서나 다 까 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근데 이렇게 현장에서 까는 게 더 현장감이 있지.’
[인간들은 진짜 무용한 부분에 심력을 소모하는군요.]
‘그렇게 따지면 이미 이 병원에 온 시점부터가 무용한 거야. 여기서 우리가 환자 고친다고 누가 알아줘.’
[아, 그런가.]
바루다가 잠시 이 비효율적인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따지고 보니 이미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이 둘은 이미 이 진료에 있어 진심이었다.
“음…….”
“흐음…….”
누가 보면 자기 환자가 안 좋아지고 있는 줄 알 정도로 진지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특히 수혁이 그랬다.
이현종은 감만으로 움직여 한 건 올리지 않았나.
설마하니 소나기 오마주한 듯한 이야기에서 폐흡충이 얻어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더랬다.
‘너도 최선을 다하라고.’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합니다.]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이미지가 누워 있잖아.’
[저는 앉아서도 누워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묘하게 열 받네, 이거.’
노는 것 같은데 문구는 꼭 성심성의껏 하는 사람 같아서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급했으니까.
저 감도 좋고 머리도 좋고 심지어 경험까지 많은 아빠가 이번에도 선수를 치면 어쩐단 말인가.
[이거.]
‘응?’
그때 바루다가 말했다.
손가락질해 봐야 인지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해서 되물었더니 바루다가 아까 보았던 환자 등록번호를 띄워 주었다.
‘신경과 환자네.’
[네. 주소가 특이해서요.]
‘특이하다라…….’
주된 호소 증상이 특이하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할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별 의미 없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신경과 환자라면 또 얘기가 달랐다.
태화야 통합진료센터가 생겨서 그런 일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보통 잘 모르겠는 질환을 신경과로 쏘는 건 현대 의학에 있어 유구한 전통이어서 그랬다.
진짜 기상천외한 주소일 가능성이 있었다.
‘오…….’
[그렇죠? 이상하죠?]
해서 봤더니 진짜 그랬다.
‘1일 전부터 가족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해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증상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