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40화 (740/1,303)

740화 구원 (3)

가족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해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증상.

사실 이게 꼭 증상이라고까지 말해야 하는 사안인가 싶기도 했다.

수혁이야 엄마가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긴 했으나, 친구들을 보면 꼭 엄마 중에 이런 엄마들이 있기는 해서 그랬다.

‘원래 안 그랬던 사람이 이러니까…… 병원까지 왔겠지?’

[그렇습니다. 칠성이 암만 태화나 아선에 비해 밀리고 있다고 해도 진료 보기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죠.]

‘그러니까.’

모든 의사들은 환자의 주소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긴 했다.

하지만 동네 병원보다는 대학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실제로 대학 병원은 일부러라도 문턱을 높여 놓지 않았나.

진짜 필요한 환자들만 올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었다.

만약 감기 환자들도 제한 없이 대학 병원에 와서 볼 수 있다면, 그중에서도 수혁이나 이현종을 만날 수 있다면 정작 위급한 환자들은 그 시간에 죽어 나갈 테니까.

그 말은 곧 대학 병원까지 온 환자라면 무언가 심각한 구석이 있을 거란 얘기였다.

‘더 읽어 보지.’

[네. 그게 좋겠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와 합심하여 환자 기록을 쭈욱 읽어 내려갔다.

‘아……. 엄마가 아니로군.’

[네. 미혼입니다].

‘이것도 편견이네. 아, 문제야 이런 게.’

[그러니까요. 수혁은 대체 왜 그럽니까?]

‘너도 그랬잖아?’

[저는 통계에 기반한 추론이고요. 결론이 같아도 과정은 다릅니다.]

‘와……. 이 새끼. 입만 살아 가지고.’

읽다 보니 환자는 미혼이었다.

45세 여성이었지만 미혼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결혼이 필수라 여겨지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니까.

아니, 만혼도 있지 않나.

눈앞에 있는 이현종이 산증인이었다.

[그리고 또 수혁도.]

‘나? 나 뭐.’

[아닙니다.]

수혁도 이렇게 가다간 결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였다.

아니, 연애라도 할 수 있을까?

바루다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정작 장본인인 수혁은 전혀 생각이 없는 듯했지만.

‘하여간……. 이러면 안 좋은데. 너무 오래 혼자 있어서 과거력 확인이 어려워.’

[네. 동거인이 없으면 병력 청취가 어렵죠. 지금처럼 본인 정신이 좀 흐려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나마 가족들하고 간혹 연락을 하긴 한 모양이야. 진술이 있긴 있어.’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제일 서러울 때가 바로 아플 때라고 하지 않나.

이건 비단 환자 입장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도 그랬다.

특히 지금처럼 의식이 흐려져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려울 때는 더더욱 그랬다.

어디가 아팠는지, 약은 먹고 있는지 등등 알 수 있는 게 너무 적었다.

‘일단 술은 안 먹는다고 하고……. 1년 전부터 집 주변을 배회……? 아니, 왜 병원에 안 온 거야.’

[일상생활에는 별문제가 없었다고 하는군요.]

‘그놈의 일상생활……. 이것도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해. 그냥 먹고, 자고, 싸는 것만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사회생활을 하는 건지.’

[화내지 말고요. 그건 나중에 학회 차원에서 만드세요.]

‘그래, 그래야지.’

수혁은 간신히 화를 삭이며 기록을 읽어 나갔다.

일상생활 가능이라는 말의 모호함 때문에 몇 번인가 진단이 늦어지거나 헷갈린 적이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수혁은 이제 진료를 눈앞에 두고 딴생각에 잠길 만한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지라 읽어 내려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공격적이라……. 내원 당일에는 공격적이었다고 하네.’

[그러니까 멀리 사는 가족들이 일부러 데려왔겠죠.]

‘응급실에서는 어땠지.’

응급실은 애초에 불친절한 곳이지 않나.

급한 환자를 보는 곳이기에 의료진은 정보를 빨리 얻어 내고, 처치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지, 환자의 만족도는 고려 대상에 두지도 않기에 그랬다.

따라서 공격 성향이 있었다면 문제가 생겼을 터였다.

‘어……. 때렸네?’

[네. 뭐 강하게 맞은 거 같지는 않은데…… 의료진을 발로 차려고 시도했다는 문구가 있군요.]

‘시도했다라……. 아, 행동이 느리다. 느려……. 상하지의 떨림도 있고. 뇌의 문제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인격 변화까지 수반했다면 역시 뇌의 변화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경색이나 출혈은 아닌 거 같은데. 아, CT 찍었구나, 역시. 칠성이 아무리 그래도 완전 개판은 아냐.’

[아니, 여기 큰 병원이라니까요.]

경색이나 출혈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단언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여전히 뇌는 미지의 영역이니까.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뇌간이…… 좀 위축되어 있어. 그거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네. 제가 보기에도 그 외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MRI는 안 찍었나?’

[찍었네요.]

‘아. EMR이 우리랑 달라 가지고……. 어디 보자. 응?’

수혁은 영상을 보려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뭐 재미난 케이스야?”

아버지가 와 있었다.

“네. 이거 주소가 일단 특이하죠. 신경과 환자고.”

“오……. 그렇네. 으흠. 뭐지?”

이현종은 슥슥 기록을 읽어 내려가면서 동시에 수혁의 요약을 들었다.

덕분에 둘은 금세 같이 추론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물론 수혁이 더 빠르긴 했다.

아무래도 머리 쪽에 대한 지식은 수혁이 더 위였으니까.

“일단 MRI는…… 정상. 응? 아닌데. 이거 뭐야.”

“왜. 어디가 이상한 거지?”

특히 영상 판독에 있어서는 더 위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수혁의 판독 실력은 어지간한 영상의학과 전문의보다 우위에 있기에 그랬다.

원래도 타과 전문의들과 영상의학과 전문의 간의 판독 실력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데, MRI는 그 수준이 더해서 이현종은 아예 까막눈이 되어 있었다.

“T2 강조 영상 보시면요.”

“그게 뭔데. 아 이거. 어. 보고 있어. 그래도 모르겠는데.”

“여기 굴리다 보면…… 그래, 여기. 중간뇌 뒤판(Tegmentum) 부위에 고신호강도가 있어요. 일반적인 사안은 아니죠.”

“그래? 그럼 뭘 의심할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하여간 문제 목록에 집어넣을 수는 있죠.”

“그렇군. 여기서는 그냥 넘어간 거 같은데.”

“아직 온 지 만 하루도 안 돼서…… 정식 판독을 못 받은 거 같아요. 당직 레지던트는 출혈, 경색 여부만 판단해 준 거 같고.”

“대충대충 하네. 칠성 이거.”

말은 대충이라고 하지만 사실 당직의로서는 저게 최선이었을 터였다.

전공의가 서는데 급한 거 감별해 줬으면 된 거 아니겠나.

태화도 이럴 것이 뻔했다.

하지만 수혁도 칠성에 대해서만큼은 그리 감정이 좋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혈액 검사는 안 했나?”

“했겠죠. 안 했으면…… 아, 여깄네요.”

“아예 풀랩을 긁었네.”

“네. 일단 간 수치…… 살짝 증가해 있는데 이거야 뭐 지방간만 있어도 가능한 수준이고.”

“프로트롬빈 시간은 14.6초(혈액이 응고되는 데 걸리는 시간, 평균 11~13.5초). 이것도 살짝 증가했네.”

둘 다 간과 관계되어 있는 수치였다.

그러나 살짝 증가한 수준인 데다가 환자 나이가 있다 보니 그리 중요할 거 같진 않았다.

오히려 특이한 것은 다음 검사 항목이었다.

“갑상선 호르몬도 긁었네. 그냥 루틴인가?”

“뭐……. 이건 태화도 그렇긴 해. 워낙 요새 많으니까.”

“아, 그렇구나. 하여간 항갑상샘과산화효소 항체는 1,854.0U/mL. 이건 꽤 상승했네요?”

“근데 또 갑상샘자극호르몬, 유리 T4, 항갑상샘글로불린 항체는 31.6U/mL로 정상이야.”

“흠.”

수혁과 이현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혈액 검사를 슥 읊는 것만으로 너무 많은 정보가 스며들어와서 그랬다.

정리를 해야 추론도 가능하고 다른 정보를 종합할 수도 있었다.

둘 중 먼저 작업을 끝낸 것은 역시나 수혁이었다.

두뇌의 능력 자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겠지만.

이쪽에는 분석의 대가 바루다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항갑상샘과산화효소 항체가 증가해 있고…… 갑작스러운 증상 변화를 생각해 보면 하시모토 뇌병증을 떠올려 볼 수 있겠어요.”

“아……. 음. 합리적이야. 근데 이걸 갑작스럽다고 볼 수 있을까?”

논리가 아주 단단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건 바루다의 분석은 늘 검사 결과에 기대고 있기에 그랬다.

여기서는 항갑상샘과산화효소 항체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얼마 전 이현종에게 검사만 신뢰해서는 안 된단 말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현종은 환자 증상에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1년 전부터 일시적으로 집 주위를 배회했다. 이거 나는 좀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데.”

“아……. 음. 일단 여기서는 하시모토 뇌병증을 의심하는 거 같아요. 약이 스테로이드가 들어가고 있는 걸 보면.”

“그래, 나도 그런 거 같아. 지금 판단하는 건 무리긴 하지. 이제 겨우 만 하루 되었으니. 하지만…… 증상이 완전히 들어맞지 않아. 그렇다는 건.”

“다른 질환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 게다가 너 아까 뭐라고 했지?”

이현종은 수혁을 바라보았다.

평소 아들 바보로 분류되는 그의 눈빛은 간 곳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저 날카로운, 천재 의학자의 눈만 거기 있었다.

“아까 뭐요?”

“MRI.”

“아……. 중간뇌 뒤판(Tegmentum) 부위에 고신호강도…… 이것도 하시모토 뇌병증하고는 안 맞죠.”

“그럼 지금 하시모토 뇌병증을 의심하는 근거는 꼴랑 감상선 호르몬의 변화인데. 알잖아? 저거 얼마나 다른 기관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지.”

“그건 맞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반드시 다른 질환을. 음.”

“음?”

그만큼 날카로운 고찰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무언가 팍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정작 질문을 던진 이현종은 아직 이게 아니고 다른 RJT 같다는 생각만 들던 시점이었다.

‘우리 아들……. 또 이러네.’

눈 감은 이수혁.

일종의 트레이드마크 아닌가.

이현종은 이제 추론을 멈추고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심장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머리라면, 이만하면 큰 도움을 준 셈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아니지. 언제 눈 뜰 거야.’

이현종은 그렇게 팔짱을 낀 채 아들을 바라보았다.

온통 바쁘게 흘러가는 대학 병원에서 딱 이 둘만 여유로웠다.

그 광경은 꽤 상서롭게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일상의 바쁨에서 잠시 벗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레지던트 중 하나가 둘을 알아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 감은 수혁을 알아보았다.

‘어……. 저거 이수혁 교수님 아닌가?’

언젠가 저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랬다.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봤다.

혀기후니라는 아이디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었다.

무슨 명탐정 코난도 아니고, 눈 감았다가 떴더니 뚝딱 케이스가 해결되었더랬다.

처음엔 태화 홍보 영상인가 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영상 퀄이 너무 떨어져서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뭐야. 왜 여기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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