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화 구원 (5)
‘뭐야, 이 사람.’
경찰 운운하는 의사는 태어나서 처음 본 마당이었다.
정말이지 기인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 이 사람…….’
기인한 기운 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앞의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태화가 낳은 불세출의 기인 이현종이었다.
‘아니……. 왜 전임 원장님이랑 이수혁 교수님이 여기 계셔?’
눈알에 의문이 깃들자, 이현종이 대번에 알아보았다.
“지금 번호 뭐 누르고 있어요?”
“어? 네? 아뇨, 아닙니다. 저 그냥. 어, 네. 안과요.”
“어디 봐요.”
“네? 아, 여기.”
“음. 생긴 게 원내 번호 맞네. 그래요. 하하. 그럼 빨리 해요.”
평생을 의문 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잘 알아보게 된 덕이었다.
덕분에 레지던트는 뜨끔한 채로 안과에 전화를 걸었다.
“네, 신경과 2년 차 안지환입니다. 여자 47세 환자 윌슨병 의심되어서 검사 의뢰드리려고 합니다.”
노티하는 것도, 이현종이 다 들을 수 있게끔 일부러 바로 앞에서 했다.
“음.”
그러고 나서야 이현종은 안심한 얼굴이 되어 수혁을 돌아보았다.
그 시간 동안 수혁은 사실 별생각 없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레지던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다른 병동에는 또 어떤 환자가 있을까?’
[이 추세면 장난 아닐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여기가 노다지였네.’
[실력이 좀 달리나.]
칠성 병원에 이렇게까지 깊숙이 침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아선 병원이야 우하윤이라는 희대의 프락치를 통해 몇 번인가 가 본 적이 있지만.
칠성은 박국진 구출 작전 외에는 올 일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이만한 병원이면 집담회도 많이 열리고 할 텐데.
아마 신현태나 이현종 등이 칠성을 너무 미워해서 그럴 터였다.
어지간해서는 칠성에서 열리는 학회는 등록도 하지 않았다.
‘아까는 무시하지 말라더니?’
[노다지니까요. 이런 게 계속 나오는데?]
‘하긴……. 실력에 비해 병원 명성이 좀 너무 대단한 거 같기도 하고?’
그 둘에게 잔뜩 물든 수혁은 아니, 그 전에 이미 바루다에게도 물든 수혁은 근거 없는 음해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제발 근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오라고 합니다. 지금 가시죠.”
수혁이 꿈에 부풀어 가고 있는 동안 전화 통화를 마친 레지던트가 말했다.
“어디로? 안과가 어딨지?”
이제 이현종은 칠성 사람으로 행세하는 것도 포기했는지 대놓고 물었다.
애초에 이상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있던 레지던트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답했다.
“1층이요. 외래동으로 가야 합니다.”
“아……. 먼가?”
“네? 아, 네. 조금?”
“음.”
하지만 그런 이현종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사람을 마주치는 것은 좀 그랬다.
특히 1층은 그랬다.
거긴 교수들이 좀 왔다 갔다 하고 있을 테니까.
회진 돌기엔 애매한 시간이라고 해도, 외래 진료실이 있는 1층에는 어지간히 있지 않겠나.
“마스크 낄까요?”
“아.”
수혁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 또한 나름 유명인이 된 지라 교수들 중에서는 알아볼 만한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
그래 봐야 눈앞의 레지던트가 알아봤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한 사람이었지만.
하여간 조심은 하기로 했다.
해서 레지던트는 진료 중인 것도 아닌데, 이동하면서까지 마스크를 끼고 있는 다른 병원 교수 둘을 대동한 채 외래동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무도 안 보는 거 같지?’
‘네. 적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다행인 것은 이곳이 병원이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적기는 해도 있기는 했다.
대부분은 턱스크를 하고 있긴 했지만.
개중에는 수술실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마스크 한 것을 까먹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해서 시선이 집중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셋은 일단 환자를 침대에 눕혀서 끌고 가는 와중이었다.
“으……. 너 누구야! 이 새끼!”
어그로는 그 환자가 다 끌어 주고 있었다.
억지력이 아예 상실되었기에 그랬다.
하시모토 뇌병증이란 진단 하에 스테로이드를 때려 붓고 있었지만, 호전은커녕 오히려 증세는 심해져만 가고 있었다.
“원래 이 정도였어요?”
“네? 아, 아뇨. 좀 공격적이긴 했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어요.”
“그렇군요. 흐음…….”
수혁은 그런 환자를 눈에 담았다.
윌슨병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신경병증을 보이는 윌슨병도 이전에 봤더랬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병원 오는 게 좀 늦은 거 같지?’
[네. 어지간하면 가족들이 좀 이상하다고 인지했다는…… 1년 전에 오죠. 기록을 보니까 당시 동네 병원에는 한번 데려간 듯합니다.]
보통 행동이 이상해지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의심하지 않나.
이 환자의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동네 정신과에 데리고 갔더랬다.
이렇다 할 검사 도구가 없는 동네 병원에서는 기질적 질환을 의심하지 못하고 그저 경험적인 약만 주었단 기록이 있었다.
그 후로는 병원 내원한 기록이 아예 없는 것을 보면 딱히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게 뻔했다.
‘정신과는 별 소용 없을 거란 편견이 이 사태까지 오게 만든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지금 와서는 이런 추론이 다 무용합니다.]
‘그것도 그렇긴 하지.’
수혁과 바루다는 환자를 옮기면서 내내 환자에 관해 생각했다.
바루다의 말대로 이 환자에 관해서는 무용한 생각이고 또 토의였다.
하지만 언제 또 이 비슷한 환자를 마주하게 될지 모르지 않나.
아니, 수혁처럼 어려운 환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더 이런 케이스를 만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수혁이 몸담고 있는 통합진료센터는 이현종의 광기와 김다현의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날이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아마 머지않아 온 세상에 있는 어려운 환자는 죄 수혁에게 오게 되지 않을까?
[아직은 먼 생각 같습니다만?]
‘상상은 자유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안과 외래였다.
대학 병원답게 환자는 꽤 많았다.
‘어디…….’
수혁은 습관처럼 안 좋은 환자 없나 하고 훑었다.
“아, 오셨네. 이쪽으로요.”
그러고 있으려니 안과 레지던트가 앞으로 나와 일행을 안쪽으로 끌었다.
“거기…… 교수님? 안쪽으로요.”
“어, 수혁아. 여기서는 그러면 안 돼.”
환자 살피느라 말을 못 들은 수혁을 이현종이 팔뚝을 잡아끌었다.
하여간 그렇게 환자까지 넷이 안과 외래에 들어가 자리했다.
“으……!”
“아, 이러면 협조가 안 되는데…… 수면 가능해요? 눈이라…… 예민해서요.”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을 마주했다.
생각해 보니 눈이라는 조직은 지극히 예민한 곳이지 않나.
가장 많은 감각 신경이 몰려 있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거니와, 반응 속도가 제일 빠른 곳도 다름 아닌 눈꺼풀이었다.
제대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눈 검사를 마냥 쉽다고만은 할 수 없을 텐데, 지금 이 환자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어…….”
신경과 레지던트는 환자에게 수면제를 써도 되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명색이 주치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주치의는 그저 하시모토 뇌병증에 대해 스테로이드만 때리고 있었으니까.
윌슨병이라니.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간에 부담 없는 약이라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다행히 이 자리에는 수혁이 있었다.
잘난 척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결코 저버리지 않는 사람.
그리고 환자 보는 것을 몸살 나게 즐기는 사람.
“아……. 네. 그럼 약을 좀.”
“네. 이걸로 주시죠.”
덕분에 안과 레지던트는 어렵지 않게 약을 추천받아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시간은 붕 뜬 상황이었다.
약을 처방해도 들고 와야 하지 않겠나.
해서 수혁은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안과 외래는 여느 대학 병원 외래가 다 그러하듯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다른 과들보다 훨씬 정신이 없었다.
“너 이거 째야 된다니까!”
대개 술기가 있는 과들이 그런 편이었다.
“아, 엄마! 나 이거 전에 했잖아! 그리고 돈가스 먹으러 간다면서 여길 왜 왔어!”
“여기 지하에 돈가스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중에서도 소아를 보는 과는 더더욱 그랬다.
의외로 소아과는 외래에서 하는 술기가 없어서, 오히려 지금처럼 안과나 이비인후과 또는 소아외과 등이 소란스럽기 마련이었다.
‘흐음…….’
[다래끼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어찌나 소리를 절박하게 지르는지 환자를 찾던 수혁의 시선조차 사로잡는 아이가 있었다.
“병원 지하에 맛집이 있다고? 엄마도 말하면서 이상하지 않아?”
“아니, 얘가 대체 왜 이래. 일단 그거 째야 할 거 아냐!”
“그럼 째러 온다고 하면 됐지, 왜 거짓말을 하냐고!”
“곧이곧대로 하면 네가 오니!”
“그걸 설득해야 하는 게 엄마 아냐?”
말도 꽤 잘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논리로 엄마를 이겨 먹고 있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눈알이 불편해서 짜증 난 환자들도 이만한 소란에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벌써 적어도 한 번은 짼 모양인데.’
[원래 다래끼가 째도 재발할 수 있죠.]
‘드물지. 특히 저만한 아이에게서는 드물어.’
[네? 소아에서 다래끼는 재발이 흔한데요?]
소아에서 재발이 빈번한 질환들이 당연히 있지 않겠나.
다래끼는 그중 하나였다.
행태와 관련이 있어서였다.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눈을 비비는데, 손을 씻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다래끼 재발이 흔했다.
이외에도 관리되지 않는 비염의 빈도가 더 잦아서 눈이 가려운 경우도 더 많고 하여간.
‘너…… 쟤가 눈 또 비비면 째야 된다고 했는데 또 비빌 거 같냐?’
[아…….]
물론 예외는 있기 마련이었다.
저 아이는 똑 부러지는 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래 봐야 아주 단편적인 인상을 받았을 뿐이긴 했지만.
수혁은 어쩐지 저기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약 왔습니다. 재울게요.”
“아, 네.”
하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쪽 환자가 우선이니까.
“약 들어갑니다.”
안과 측은 일단 환자를 재우고, 환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윌슨 병이 맞다면 전안부 촬영에서 카이저-플라이셔 고리(Kayser-Fleischer ring, K-F 고리)가 보여야만 했다.
구리 대사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황금색 반지 같은 모양이 눈에 새겨지는 것을 뜻했다.
“어…….”
“왜요.”
“진짜 있습니다. 이 환자 나이가…… 나이가 많은데.”
“후기 발생하는 경우가 있죠. 아무튼, 신경과 분?”
수혁은 사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자신의 추론을 점검했고, 그 결과 허점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그랬다.
덕분에 덤덤한 얼굴로 레지던트를 부를 수 있었다.
“네, 네.”
“교수님께 노티하시고 치료 방침 바꾸도록 하세요. 계속 스테로이드 때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