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43화 (743/1,303)

743화 나도 끼워 줘 (1)

“엇, 잠시만.”

칠성 원장단 중 하나인 교육수련부장 박정남 교수는 양해를 구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태화 의료원이라고 하는 주요 병원의 원장단과의 회의 중임을 감안하면 이상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병원은 원래 이런 곳이었다.

전화가 오면 받아야 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해서 칠성 병원장 오성흠은 정말이지 유쾌하지 못한 회의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박정남 교수가 전화 받는 것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어……. 뭐라고? 윌슨……?”

듣다 보니까 좀 이상했다.

환자 상태가 변해서 노티가 왔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레지던트가 진단명을 바꾸고 있었다.

이런 일이 흔하냐고 하면 일단 정신 차리라는 말부터 해야 할 터였다.

레지던트가 감히 교수의 결정에 도전해? 뭐 이따위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오성흠은 권위주의적인 사람이라 그런 생각도 얼마간 하고는 있었지만, 실력 차이가 주된 이유였다.

레지던트끼리도 연차가 다르면 확 차이가 나는 법인데 교수와 레지던트는 어떻겠나.

“아……. MRI 상에 보였던…… 조영 증강. 음. 그리고 간 수치가 확실히 미세하게 올라 있었지…….”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질 거 같았다.

윌슨 운운하는 것부터가 이미 보통 질환은 아닌 거 같지 않나.

그 말은 곧 어려운 환자라는 얘긴데 여기서 감히 레지던트가?

“그래……. 1년 전에 있던 이상. 음…….”

한데 지켜보고 있자니 박정남 교수 반응이 좀 이상했다.

교육수련부장이라는 직함만 듣고 보면 되게 교육에 친화적인 사람일 것 같지만, 사실 그저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한 보직이라고만 생각하는 놈 아닌가.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나왔으면 응당 소리를 질러야 하거늘.

“아, 그래? 안과에서도…… 카이저-플라이셔 고리 소견 확인해 줬어? 그럼 확실한데…….”

어째 쭈구리가 되어만 가고 있었다.

‘설마.’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그 학회에 비록 첩자로 참가하기는 했지만, 학회 내용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뭐가 되었건 간에 오성흠도 한 사람의 의학자라서 그랬다.

이수혁, 이현종이 어떤 식으로 환자를 보았는지 듣는 과정은, 인정하기 싫지만 대단했고 또 배울 만했다.

‘너……?’

하여간 오성흠은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저쪽도 교수 입장이니 이런 전화 내용을 듣고 있으면 당황해야 맞았다.

실제로 안국태니 뭐니 하는 놈들 지금 다 입을 벌리고 있지 않나?

‘역시 우리 수혁이가 한 건 했구만……. 아니, 현종이 형이 했으려나?’

하나 신현태는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전화가 길어지는데…… 잠시 쉬었다 할까요? 어차피 대강 이야기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태는 이제 없도록 하고…… 대신 지금까지 있었던, 인정에 기대 어쩔 수 없이 지원자를 받았던 사례도 일단은 덮고요. 하하.”

오성흠은 급한 마음에, 그러나 얼굴만은 여유를 지키면서 입을 열었다.

마침 칠성 측에서도 전화가 진짜로 좀 길어진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던 참이라 별말 없이 회의는 중단될 수 있었다.

태화야 뭐 어차피 이 회의 자체를 다 가라로 해서 별생각이 없었고.

‘우리 수혁이…….’

신현태는 심지어 아예 딴생각만 하고 있었다.

수혁이가 대체 어떻게 저런 환자를 진단했을까.

정확히 어떤 환자일까.

지금 같이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혹시 병동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헹가래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등등.

“저, 신 원장님?”

“응? 아, 네. 오 원장님.”

그렇게 꿈속을 거닐고 있는데 오성흠이 말을 걸었다.

언짢았다.

감히 수혁이 생각을 방해하다니.

하지만 신현태가 누군가.

불세출의 기인 이현종마저 견딜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잠시 얘기 좀.”

“아, 그러시죠.”

오성흠의 방해 정도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기분도 꽤 좋은 상황이었다.

처음 이현종에게 계획을 들었을 땐 이 형이 진짜 미쳤구나 싶었지만.

막상 와 보니 재밌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칠성 원장을 놀려 먹겠나.

“그…… 혹시 지금 그 두 분이 진료 보고 돌아다니고 있습니까?”

“오.”

해서 기분 좋게 얘기를 들었는데 의외로 오성흠이 꽤 날카로웠다.

아니, 오성흠 정도 되는 사람이면 이쯤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회의가 가짜라는 걸 이 인간도 알고 있지 않나.

실은 케이스 달라고 조르려고, 그러니까 압박을 하려고 왔다고 알고 있었다.

한데 사실은 조르는 게 아니라 그냥 케이스를 훔쳐 가려고 왔다는 걸, 이제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오? 아니, 신 원장님…… ‘오’라뇨? 남의 병원 와서 함부로 진료 보고…….”

“함부로라뇨? 엄연히 초청받아서 온 사람들인데요?”

“네?”

“원장님이 오라고 하셨잖아요. 통합진료센터 두 분도 같이. 원장단 회의에…… 불렀다고는 생각 못 했을 거 같은데요?”

신현태는 이현종과 계획한 대로 씨불이고 있었다.

오성흠으로서는 정말이지 기가 탁 막히는 말이었다.

“뭐라고요? 아니, 지금 뭐라고…….”

“오라고 해서 환자 보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습니다만?”

“아니, 이 사람이 이거. 이거. 이거!”

풍인가?

그래서 어지러운가?

뭔가 뒷덜미를 거꾸로 타고 쑥 올라간 것 같은데?

‘아, 이래서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화가 나면 뒷덜미를 잡는구나!’

의사로서 진짜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60이 넘고 나서야 알고 보니 제대로 된 고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오성흠은 실제로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거니와 마침 구석진 자리다 보니 사방에 벽이라 자연스레 기댄 것처럼 보여서 신현태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거 뭐요.”

“아니. 이거…….”

“얘기 들어 보니까 애초에 원장님이 잘못하셨던데요?”

아마 넘어졌어도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였을 터였다.

신현태도 지금 수혁이 생각에 정신이 나가 버린 상황이라 그랬다.

“네?”

“약속하신 거 안 지키고 있잖아요. 케이스 보내기로 하셨다던데.”

“그…… 눈을 좀 그렇게 뜨지는 마시고.”

“화가 안 나게 생겼습니까? 우리 수혁이가 얼마나 착한 앤데 이렇게까지 하겠어요. 말이 통했으면 이러지 않았겠지!”

“아니, 그. 너무 소리치면 다른 사람들이 듣습니다…….”

오성흠 정도 위치에 가면 사실 다른 사람이 소리 지르는 걸 보기도 어려웠다.

다들 점잔 빼는 자리에만 가는데 언제 그런 걸 보겠나.

‘내가 살다 살다 태화 원장이 나한테 소리치는 꼴을 다 보는구나.’

그러다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사방을 둘러보며, 오성흠은 최선을 다해 신현태를 말렸다.

“그…… 아니, 이러실 거면 미리 말씀을 주셨으면 좋지 않습니까. 이거 이러다 들키면 어쩌시려고요.”

“부른 사람이 수습하겠죠.”

“네?”

“오성흠이 수습하겠죠, 뭐.”

별로 소용은 없었다.

신현태는 인격자지만 수혁의 삼촌은 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아니…… 그. 제가 뭘 어떻게.”

“회의 이거 어차피 다 구라로 하는 건데 대충 끝내고…… 같이 다녀요.”

이제는 은근슬쩍 사심도 집어넣고 있었다.

실은 자기가 같이 다니고 싶은 거면서 핑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물론 오성흠으로서는 그런 속내를 전혀, 정말이지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너무 이상한 논리 흐름이라 그랬다.

‘같이 다닌다라……. 그럼 어떻게 되나.’

해서 오성흠은 이게 다 정치적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태화 의료원 원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괜히 억지를 부릴 이유가 있겠나.

다 자기네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것일 터였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아니, 당연했다.

‘대외적으로…… 칠성과 태화는 거의 최악의 관계지.’

병원뿐 아니라 모기업도 난리였다.

누가 누굴 베꼈네 어쨌네 하면서 소송전도 불사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 나서서 니들 그만해! 라고 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의학자야. 음……. 학자로서의 양심……. 이거 들이밀면 대개는 깔아뭉개진 못하지. 그럼…… 음. 그래. 뭔가…… 될 것도 같아.’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번에야말로 자칫하면 풍 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굴렸다.

“그래요. 그럼 제가 같이 가죠.”

그 결과 해가 될 건 없겠단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요?”

“네.”

“그럼 빨리 가죠. 전화해 볼게요.”

신현태야 너무 좋았다.

수혁이랑 놀러 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냥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있었다.

‘역시…… 이 양반도 의학자로서 야망이 있구만.’

그 모습을 보면서 오성흠은 제멋대로 곡해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인 수사요 은유라고 믿고 살아온 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언가.

그래, 사랑이 있다는 걸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어, 형 어디야.”

“응? 지금 안과.”

“안과……? 안과까지 봐?”

“사실 너무 마이너 과라 윌슨병인 것만 확인하고 가려고 했는데…… 수혁이가 아까 뭐 다래끼 환자가 좀 눈에 밟힌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지.”

“아…….”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둘이 안과에 있다는 것 정도였다.

“가시죠.”

“아, 네.”

그렇게 두 원장의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뭔 핑계를 댔는지 몰라도 칠성 병원 원장단은 군말 없이 해산했다.

태화야 뭐 딱히 말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할 일 없이 편들어 주러 온 것이지 않았나.

이제 병원 가서 볼일 보라는 말은 환영할 일이지, 의문 품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원장님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시군요.”

오성흠이 볼 땐 그런 일사불란함이 너무 부러웠다.

자기는 애초에 정치력 하나로 올라온 사람이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비밀 아는 놈한테는 또 쩔쩔매야 하지 않나.

심지어 저번 사건이 있던 후로는 안국태가 윗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자꾸 이상한 부탁을 해야 해서 그랬다.

“아, 네. 뭐. 하하. 제 인망이 하하.”

그에 비해 신현태는 제멋대로인 데도 말만 잘 들었다.

‘그게 아니라…… 김다현 회장이 뒷배로 든든히 있으니까 그렇지……. 이미 연임도 거의 확정이라는데…….’

오성흠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과에 도달했다.

“아, 저기 있네.”

“진짜로 그냥 기다리고 계시네요? 아니, 들어가서 환자 보겠다고 하시지.”

“남의 병원에서 그게 됩니까. 자기 병원이라도 다른 과 환자를 함부로 보겠다고 하면 화낼 텐데.”

“그걸…….”

오성흠은 그걸 아는 사람이 여기까지 왔냐는 말을 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신현태야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현종은 아니니까.

이번 일로 확실해지지 않았나.

‘또라이…….’

하나 모르고 있는 사실은, 지금 그를 둘러싼 세 명 모두 또라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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