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45화 (745/1,303)

745화 나도 끼워 줘 (3)

‘오, 우리 수혁이. 드디어!’

‘자자, 뭐라고 할 거냐?’

수혁이 눈을 감자, 내심 불안해하고 있던 신현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수혁이랑 함께 남의 병원을 돌 수 있다는, 다분히 흥분되는 상황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신현태는 이현종이 아니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점차 정신이 차려졌더랬다.

그러고 보니 여긴 새삼스레 칠성이었고 안과 진료실이었다.

“히끅.”

오성흠 원장이라는 놈은 영상도 있고 이 와중에 딸꾹질이나 하고 있으니 무시해도 좋을 테지만.

하여간 여기서 개짓거리를 했다간 오히려 칠성 측에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역시 수혁이다.’

해서 조금 불안해지려고 했는데 수혁이 눈을 감지 않았나.

이러면 만사 오케이였다.

뭔가 나올 터였다.

뭐가 나올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눈꺼풀의 종괴에는 두 개의 흉터가 있고, 주변으로 섬유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그건 전에 했던 절개 배농 때문이겠지. 아, 그게 그거였구나. 되게 작네?’

[네. 아무래도 눈이라…… 칼로 시원하게 쨀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매뉴얼대로 했겠죠.]

‘하긴 그렇겠네. 그다음은?’

[섬유 조직화 된 부분은 사실상 분석이 불가합니다만…… 주변 조직과의 경계는 확인 가능합니다. 보시면 경계가 아주 명확하죠.]

경계.

종괴 질환에 있어서 경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이것만 봐도 대개 악성과 양성은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다래끼에 한해서는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원래 그렇지 않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주변 조직을 전혀 뭉개고 있지 않아요. 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염증하고는 또 다르죠.]

‘아……. 그럼 이거.’

[양성 종양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종양이라.’

수혁은 이제 눈을 떴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기껏해야 초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종양이 생긴다?

그것도 눈에?

‘차라리 악성이면…… 그건 흔하지.’

[더 어려야죠.]

물론 종양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악성 종양은 아주 어릴 때 호발하기도 하지 않나.

그러나 이 나이는 좀 애매했다.

애매한 나이에 생긴 양성 종양.

그중에서도 그 행태가 다래끼와 아주 흡사한 녀석.

‘막상 의심하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러게요. 오히려 너무 자주 보는 질환이 있다 보니 거기에 갇힌 모양입니다.]

수혁과 바루다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한 질환명을 떠올렸다.

“저기…… 죄송한데 남의 진료실 앞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그때 그 질환명을 떠올리지 못한, 그러나 사람은 좋은 안과 교수가 앞으로 나와 물었다.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했다.

가뜩이나 진료 잘 안 풀리는 날인데 앞에서 소란스럽게 굴고 있지 않나.

단순한 소란이라면 아픈 사람 가득한 곳이니만큼 참아 보겠는데, 이 인간들은 자기 환자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해 대고 있었다.

딱 보니까 안과 의사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랬다.

실제로 수혁과 이현종이 입고 있는 가운에는 떡하니 내과라고만 쓰여 있었다.

나이를 봐서는 교수겠지만, 저건 레지던트들이 입는 가운이었다.

“아, 하하.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이 환자 진료하고 있었네.”

신현태는 사리에 맞게 행동했지만, 이현종은 손을 가로저었다.

‘뭐지.’

안과 교수는 화가 나는 대신 어이가 없었다.

진짜 뭐지 싶었다.

해서 뒤에 있던 오성흠에게 해명을 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히끅.”

오성흠은 그 얼굴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말했다.

단지 소리가 이상하게 났을 뿐.

‘뭐야.’

안과 교수 고개가 모로 돌아갈 때쯤, 수혁이 입을 열었다.

“아이의 진단명은…… 피지샘 상피종(Sebaceous Epithelioma)으로 생각되는군요.”

“하.”

이번에는 진짜 어이가 없었다.

피지샘 상피종이라니?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진단명이었다.

적어도 안과 의사로 살아오면서는 그랬다.

다시 말하면 20년 가까이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피지샘 상피종이 뭡니까?”

“피지샘에서 기원하는 상피종이죠. 물론 눈꺼풀에서 발원하는 경우는 아마 극히 드물 겁니다. 케이스 리포트에나 나올까?”

“아니, 리포트에도 나오지 않는데요? 내과 의사 아니세요? 근데 안과를 뭘 안다고…….”

“들어 보시죠.”

수혁은 순간 마이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난 척할 수 있을 텐데.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지만…….’

[모르는 게 있는 의사는 나쁜 사람입니다.]

‘아니, 너무 극단적으로 가지 말고.’

[이게 극단적인가요?]

중간에 바루다만 끼어들지 않았다면 진짜로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뗐을 터였다.

하지만 극단적인 의견을 들은 덕에 살짝 수정을 거칠 수 있었다.

“아이는 3주 전에 다래끼에 대해 시술을 받았습니다. 절개 배농이죠.”

“네, 다래끼에 대해서는 스탠더드 치료죠. 특히 이렇게 알이 찼으면 째야 합니다.”

“그렇죠. 그 점이 중요합니다.”

“네?”

이게 제대로 된 치료다 이 내과 놈아 라는 얼굴을 하고 있던 안과 교수의 얼굴에 의문이 떴다.

“히끅.”

오성흠은 그 순간 안과 교수가 말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슨 의학적인 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패턴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케이스…… 이 인간들이 그 학회에서 발표했던 케이스를 보면 딱 이런 식이라고!’

이건 발리는 패턴이었다.

무조건 안과가.

“히끅!”

“원장님?”

“히끅!”

“이엔티 불러요?”

“히끅.”

“알겠어요.”

해서 필사적으로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안과 의사는 눈치가 없었다.

“자, 째고 안약을 처방했습니다. 항생제가 포함된 안약이죠.”

“네. 그게 스탠더드라니까요?”

“그런데 재발했죠.”

“눈을 비볐거나 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아팠다고 하는데 눈을 비볐을까요?”

“어린애니까요.”

안과 교수의 말에 아이가 인상을 썼다.

원래 어린애한테 어린애라고 하면 기분이 나쁜 법이라 그랬다.

게다가 이 친구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지 않았나.

딱 부러지는 아이란 말이었다.

“그래요? 아이에게 물어보긴 하셨나요?”

“안 비볐다고 하긴 했죠. 근데 다 그래요.”

“환자의 말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하여간…… 그 후로 또 재발했죠. 또 쨌습니다.”

“원래 그래요. 그게 스탠더드입니다.”

“네, 제대로 된 치료를 하셨어요. 이번에는 먹는 항생제까지 투약했죠.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재발…….”

처음엔 이 인간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

말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치료를 유지했는데 너무 짧은 기간 내에 재발했다는 말이 되지 않았나.

심지어 이 흐름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진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부터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

“아이의 눈을 보세요. 경계가 아주 분명한 종괴가 지금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네, 다래끼 모양.”

“헌데 열감이 있나요?”

“열감이…….”

열감은 보지 않았다.

생긴 게 딱 다래끼라서.

의뢰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았나.

게다가 원래 항생제 먹다 보면 열감이 없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크기가 좀 줄어든다거나 하는 반응이 있기 마련이지만.

“없죠. 심지어 압통도 없습니다. 다래끼 자체가 염증 질환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보다 이상한 소견도 없을 겁니다.”

“음.”

“그렇다면 양성 종양의 가능성을 떠올려 봤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이 아이의 눈 소견에 맞는 질환을요.”

“으음.”

안과 교수는 저도 모르게 그런 질환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에 잠겼다.

안 떠올리려고 했는데 자꾸 아까 수혁이 말했던 피지샘 상피종이 떠올랐다.

실제로 이 피지샘 상피종이 눈꺼풀에 발생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눈꺼풀에서 피지샘이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확실히…… 아래 눈꺼풀…… 저 위치.’

거기 종양이 생기면 어찌 될까.

생각해 봤더니 딱 이 아이처럼 될 것 같았다.

“이거…….”

“네. 피지샘 상피종. 이게 뭐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드문 병도 아니죠. 단지 눈꺼풀에 발생한 경우가 없어서 놓쳤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보고하지 않았을 뿐이겠죠.”

“그…….”

“일단 수술해야 합니다. 만약 다래끼였다고 해도, 마취를 하고 진행하는 게 더 나을 테니 손해는 없을 겁니다. 세 번째 절개 배농을 하고도 재발의 여지를 남기고 싶은 의사는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피지샘 상피종이라면 수술이 원칙이죠.”

“아……. 그.”

반박의 여지는 없었다.

다만 의문은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 사람 누구야?’

아마 내과 계열 쪽 교수였다면 수혁을 모르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안과는 병원 전체에서 봤을 때 일종의 변방이지 않나.

아직 타 병원 마이너 서저리 과에서 수혁을 바로 알아볼 수는 없었다.

“히끅!”

답답해진 오성흠이 한마디 했으나 소용은 없었다.

그저 황급히 달려온 이엔티 레지던트에게 붙들려 혀를 눌려야 할 뿐이었다.

“우웁.”

그렇게 구역감에 시달리는 사이, 아이와 아이 어머니는 안과 교수에게 다시 인계되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 감사합니다. 저 그. 아뇨. 네.”

안과 교수가 하여간에 수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덕분이었다.

얘기를 모두 들은 아이와 아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피할 수 없는 과업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환자 하나를 또 해결한 수혁 일당은 당장 떠나는 대신 외래에 남았다.

“생각 같아서는 다 돌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아빠. 우리 환자들 오후 회진도 돌긴 해야죠.”

“어, 나 회의도 있어. 형도 가야 된다니까? 다 돌긴 뭘 다 돌아.”

“그럼 어쩐다.”

“어쩌긴 어쩝니까! 이제 고만 가셔요!”

겨우 살아난 오성흠이 끼어들었지만 역시나 별 소용은 없었다.

히끅거릴 때와 비슷하게 철저히 무시되었다.

“감염 병동 돌까?”

“와, 속 보인다 너. 가서 한 건 해서 수혁이한테 인정받으려고.”

“아니, 나 정도면 인정받았지. 이미.”

“확신해?”

“어? 아니야?”

지들끼리 계속 떠들었다.

심지어 수혁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이거 들고 다녀, 아들?”

이현종마저도 좀 놀랐다.

돌려돌려 돌림판의 축소 버전이 가방에서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네. 대훈이가 만들어 줬어요. 티 나지 않게 돌릴 수 있다고.”

“좋긴 좋다. 엄청 잘 도네?”

“어디 맡겨서 제작했나……? 손으로 만든 게 아닌 거 같은데.”

“네. 아는 철물점에 의뢰했대요.”

“그 자식은 내가 책임지고 교수로 만든다.”

“이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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