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6화 나도 끼워 줘 (4)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칠성 병원장 오성흠은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이래 최고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 아니냔 말을 한다면 일단 싸대기부터 날리고 볼 일이었다.
한국 전쟁 후 이제야 겨우 사회가 안정화되던 시기, 그러니까 길 가다 갑자기 죽을 일은 줄어들던 시기인 58년에 태어난 게 바로 개띠 오성흠이지 않나.
그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20세기를 보내온 바 있었다.
‘아니, 이게 뭐냐고…….’
심지어 최근에는 남의 학회에 몰래 들어갔다가 걸려서 크나큰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 일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기는 한데, 그럼에도 순간적인 당혹스러움은 지금이 최고였다.
“이거 진짜 티가 안 나네!”
‘나…… 난다고.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태화의 세 의사가 지금 그의 눈앞에서 돌림판을 돌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뽑기라도 하던 때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였다.
“와, 잘 도네. 자, 어디가 나올까? 몇 층이 나오지?”
‘그런 거…… 그런 거 병원에서 궁금해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저게 대체 뭔가 싶었더랬다.
아니, 지금도 사실 뭔가 싶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돌림판 대신 저 인간들이 뭔가 싶다는 것 정도일까?
“이봐 오성흠이.”
때문에 이현종이 대뜸 자신을 불렀을 때, 오성흠은 정말이지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뒤지는 줄 알았다 이 말이었다.
“어? 어어. 네.”
“어? 말을 놓네, 은근슬쩍.”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면서 저렇게 권위주의적일 줄이야.
라이벌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뭐 의국 내 악습을 폐지한 독립투사 같은 이미지로 치장되어 있더구만.
‘진짜 나쁜 새끼라니까?’
오성흠에게 이현종은 독립투사가 아니라 순사 그 자체였다.
“아니, 아닙니다.”
물론 오성흠은 당시 태어났으면 앞장서서 야마모토도 되고 꺼삐딴 오도 되었을 사람인지라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이현종의 말에 답했다.
얼굴만 봐서는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이들과 함께 다니는 느낌마저 들었다.
‘역시 환자 보는 거 싫어하는 의사는 없지.’
다른 사람 같으면 그게 그저 느낌일 뿐이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을 터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 그렇질 못했다.
해서 오성흠의 어깨를 꽉 잡아 주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 자네도 처음엔 환자 고치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을 거 아냐. 지금처럼 권력에 미치려고가 아니라.”
“네?”
오성흠으로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었다.
‘권력이고 나발이고 미친 건 댁이오만…….’
진짜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오성흠은 이현종의 말대로 권력에 미친 사람이다 보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힘의 저울이 어디로 기우는지 다 알았다.
“네네. 저도 환자 고치려고 의사가 됐죠.”
“좋아. 초심 찾기네. 아무튼, 이러려고 부른 게 아니라. 이거 무슨 병동이야?”
하여간 이현종이 가리킨 것은 예의 그 돌림판이었다.
바늘이 15층에 머물러 있었다.
15층.
뭐더라.
‘아……. 내가 이걸 왜 고민하고 있어야 하지.’
오성흠은 끈덕지게 들러붙는 자괴감을 간신히 떨쳐 내고 입을 열었다.
“혈종입니다.”
“오.”
여기서 오는 왜 나오는 걸까?
오성흠은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일단 갈까?”
“네. 가죠.”
“갑시다. 오 원장님도 어서 일어나요. 계속 앉아 있으면 하체 나빠져.”
“아니……. 그, 네. 알겠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돌림판에 열중하고 있던 인간들이 대뜸 몸을 일으켜서 그랬다.
그러더니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안과에서 그 난리를 치더니……. 이제 혈종으로 간다 이거지.’
이걸 안내해도 괜찮은 걸까?
오성흠은 뒷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이현종은 그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몰라서 묻나?
진짜 그런가?
오성흠은 이게 고차원적인 먹이기인지 아니면 그저 이현종이 특이한 것인지 헷갈렸다.
“그…… 혈종 환자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서요.”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아마 후자일 공산이 클 거라 판단했다.
‘내가 왜 이 인간하고 엮일 생각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그때 그 학회는 그냥 두었어야 옳았다.
우창윤 교수도 붙잡힌 마당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그 인간도 전에 한번 개인적인 용무로 본 적이 있는데, 보통내기는 아니지 않았나.
근데도 다 소용없었다.
요새는 내분비내과 학회보다 통합진료학회에 더 열심을 내고 있다지 않나.
설마 진심으로 그럴까.
아닐 터였다.
“그래, 뭐. 우리 오 원장님 소년 같은 면이 있네.”
이현종은 대강 둘러댄 말에 껄껄 웃고는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병동과 바로 마주할 수 있었는데, 유리 자동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먼저 내린 이수혁, 이현종 그리고 신현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아.”
오성흠은 짙은 한숨과 함께 본인 명찰로 문을 열어 주었다.
이윽고 안에 모두가 들어섰을 때, 비로소 혈종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병원이라는 곳이 모두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지만.
혈종은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나.
암.
아직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그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의료진이 활기찰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일 터였다.
[어디 환자 볼까요?]
잠시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는 역시나 바루다뿐이었다.
‘아, 그래.’
그리고 그 덕에 수혁도 감상에서 벗어나 컴퓨터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아들이 그러니까 아빠도 그랬다.
대신 신현태는 둘의 뒤에 가 섰다.
‘나야 뭐…… 봐도 잘 모르니까.’
이 둘이야 천재이지 않나.
사실 신현태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고, 또 실제로도 그랬지만.
이수혁, 이현종과 같은 괴물에게는 무리였다.
“그…… 이렇게 환자를 찾는 겁니까?”
그나마 정상인 같은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 오성흠이 다가왔다.
아까 돌림판 돌릴 때는 좀 이상했어도 하여간 저 둘에 비하면 낫지 않나.
오성흠은 아직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아, 네. 이렇게 쓱 둘러보다가 이상한 환자가 있으면 보는 거죠.”
“이상한 환자라는 게 보통 어떤…….”
“진단명이 틀렸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죠. 그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잖아요. 시간이 걸려도 대개 수정되곤 하지만…… 그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게 바로 이 통합진료센터죠.”
“그렇군요. 음.”
이 말에 대해서는 별로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수많은 케이스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나.
심지어 아까는 안과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직접 목도했다.
‘그래도…… 여기에 케이스를 줄 수는 없어. 말이 안 돼.’
하지만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았다.
신현태도 그러지 않았나.
시간을 두고 보다 보면 대개 수정된다고.
조금 빠르고 느린 것이 크게 중요할까?
‘중요하지. 아니, 안 중요해.’
의사로서의 오성흠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칠성 병원장 오성흠은 애써 부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혁과 이현종은 하나의 광신도와 하나의 불신자를 뒤에 나란히 세워 두고 환자 기록 살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음…….’
그때 어떤 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혁도 이현종도 아닌 신현태의 눈에 그랬다.
‘으음…….’
하지만 차마 입을 쉬이 열지는 못했다.
괜히 얘기 꺼냈다가 창피당하면 어쩐단 말인가.
수혁만 있는 상황이면 뭐 괜찮을 수 있겠지만, 이현종은 다른 차원에 있는 인간이었다.
남에 대한 배려 따위 모른단 얘기였다.
이 나이 되도록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근데 이거…… 왜 이렇게 눈에 밟히지.’
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의사로서 눈에 들어온 환자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신현태는 최근 이 둘 때문에 예전 열정을 되찾은 것도 모자라 전성기의 열정을 넘어선 참이었다.
바로 옆에 환자 보는 데 미쳐 날뛰는 사람 둘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기, 잠깐만.”
“응?”
“아, 삼촌?”
그렇지 않아도 둘은 딱히 눈에 들어오는 환자가 없어서 내심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돌림판을 다시 꺼내서 돌릴까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신현태가 입을 열었으니 당연히 관심이 팍 쏠릴 수밖에 없었다.
[신현태는 신중한 사람이지요.]
‘그렇지. 엄청 신중하지.’
신현태가 누구인가.
번뜩이는 재치는 좀 부족할지 모르겠으나, 기본기는 더없이 탄탄한 사람이지 않나.
그야말로 제대로 수련받고, 그 후로도 스스로를 갈고닦아 어떤 경지에 오른 내과 의사란 얘기였다.
이런 사람은 쉬이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의견을 낼 때는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환자…… 좀 이상하지 않나 해서.”
“이 환자요?”
말은 안 했지만 이현종도 내심 신현태를 그쪽으로 인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해서 별말 없이 방금 신현태가 가리킨 환자를 살폈다.
“유방암 환자네요. 작년에 수술받았고…… 항암 치료받았고요. 6차에 방사선 치료까지.”
“응. 1년간 재발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경부 임파선 종대가 생겨서 내원했어.”
“네.”
여기까지는 사실 별로 특별할 것은 없었다.
유방암은 흔하면서 동시에 재발이 잦은 암이지 않나.
다시 말하면 환자를 그야말로 끊임없이 괴롭히는 암이란 얘기였다.
[원래 임파선 전이로 잘 오지 않습니까?]
‘그렇지……. 게다가 조직 검사도 했어.’
[네, 그렇습니다.]
수혁이 보기엔 그냥 흔하디흔한 재발이었다.
하지만 신현태의 생각은 달랐다.
감염 내과 교수의 오만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도 경험이 있었다.
‘우리 장모님…… 유방암으로 진짜 고생하셨지.’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었다.
그때 알았다.
병에 걸리게 되면, 환자 역시 의사 못지않게 해당 질환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고.
물론 신현태가 원래 의사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하여간 유방암에 대해서는 지식이 남다른 편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재발이 흔하긴 해. 근데 영상을 보면…… 거의 전신에 있는 임파선이 다 커져 있잖아.”
“네. 그중 경부 임파선에서는 암이 확인되었어요. 어디…… 아, 환자는 치료 포기하고 싶어 하는데요?”
“응, 사실 이렇게까지 퍼지면…… 설령 치료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포기하고 싶어지지.”
암은 처음 진단될 때도 물론 좌절스러운 병이지만, 사실 재발했을 때가 더 그랬다.
남은 의지를 꺾어 버리는 수가 종종 있었다.
지금 이 경우가 그랬다.
확실히 영상에 나타난 임파선 종대는 끔찍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폐에도 있지 않나.
“근데…… 이게 다 암일까?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
“네? 아니…… 다 조직 검사를 해 볼 수는…….”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추론을 해 볼 수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