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화 나도 끼워 줘 (5)
‘이 양반은 또 왜 이래…….’
오성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너는 우리 과잖아, 저쪽이랑은 다르잖아라고 말하면서였다.
누가 봐도 이수혁, 이현종은 부자지간이었다.
둘이 똑같이 또라이란 얘기였다.
물론 이 시점에서의 또라이라는 단어 내에는 단지 미쳤다는 말뿐 아니라 천재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넌 아니야……. 넌 그냥 성실한 의사라고.’
신현태도 좋은 의사긴 했다.
확실히 칠성에서 쌓은 데이터를 봐도 그랬다.
오진도 적고, 완치율도 높았다.
하지만 평균 내에 있는 의사였다.
근데 두 천재랑 다니다가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갑자기 나서고 있었다.
‘뭐…….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지.’
하지만 오성흠은 괜히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냥 입 꾹 닫고 있으면 될 일 아닌가.
어차피 저 둘 선에서 정리가 될 테니.
이제 슬슬 소리 지르거나 닥치라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수혁이야 이현종의 순한 버전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해도 이현종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더 말해 봐.”
놀랍게도 이현종은 오성흠의 예상을 깨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머리에 대고 돌렸을 거 같지만 그게 아니라 더 말해 보라는 식으로였다.
신현태는 그 반응에도 여전히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환자는 이를테면 전신 재발이 일어난 상태지?”
“그렇지.”
“그게 흔한가?”
“어……?”
역으로 질문도 던졌다.
이현종은 잠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엉뚱한 것이 생각났다.
‘아……. 이 녀석 장모님이 그때…….’
신현태와 이현종은 티격태격하긴 해도 거의 형제 같은 사이 아닌가.
아니, 실제로 둘 다 원래 자기 형제보다 서로와 훨씬 친했다.
나이와 학번을 뛰어넘고 진짜 친구가 된 사이라는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집안 대소사 정도는 다 꿰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신현태의 장모님의 암 발병이었다.
-형……. 어쩌지.
원래 사위와 장모가 정도 이상 가까워지는 건 드문 일이지 않나.
하지만 신현태는 친화력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또 장모도 좋은 사람이었다.
이현종이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도 그랬다.
-일단 태진이랑 얘기하고. 외과 교수도 불러서 내가 얘기할게.
그때 이현종도 유방암 공부를 꽤나 하지 않았나.
공부라면 원래도 좋아하는 데다가 자신도 있고, 또 친구의 장모가 환자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현태만큼은 아니었다.
이 녀석은 그때 정말 미친놈처럼 공부에 매달렸더랬다.
‘그럼…… 꽤나 신빙성이 있단 얘기야.’
자신도 이 환자가 이상하다고 했을 때 왠지 모를 자신감에 휩싸여 있지 않았나.
그 계기가 되어 준 것이 바로 과거 신현태 장모님의 발병이었다.
그렇다면 신현태는 어떨까.
누가 뭐래도 태화의 원장이 될 만큼 우수한 녀석이었다.
물론 위에서 좀 밀어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래에서 실력에 대해서 말이 안 나올 만큼은 된다는 뜻이었다.
“흔하지는 않죠. 음. 확실히…… 이만큼이나 전신적으로 재발이 된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일이긴 해요.”
과거에 잠겨 있던 이현종 대신 입을 연 것은 수혁이었다.
그는 신현태의 장모를 알지 못하기에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말했다.
[의심해 보니까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이전 병원 방문일이 겨우 한 달 반 전이에요.]
‘그러니까……. 그때는 괜찮았잖아. 근데 갑자기? 면역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루다와의 토의도 그랬다.
하여간 신현태는 수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이거 이상해. 특히 폐. 여기 이거 말이야.”
“네.”
“뭐……. 암 전이에 의한 임파선 종대야 어디든 생길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보면 감염에 의한 종대와 너무 비슷하지 않아?”
“폐요? 음.”
“그래, 폐만 따로 뚝 떼어 놓고 봐 봐. 다른 병력은 소거하고.”
“음.”
다른 병력은 소거하고 폐만 본다라.
수혁은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데자뷔라고 해도 좋았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한 적도 있는 거 같았다.
[확실히 신현태가 우리랑 오래도록 같이 지내긴 했네요.]
‘그러니까. 되게 비슷하네……. 추론 과정이.’
그 말은 곧 통합진료센터의 진료 과정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러니까 소위 하늘이 내린 머리는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전파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수혁도 이현종도 이 사실을 눈치채진 못했다.
‘뭐야. 왜 그럴싸해?’
오히려 오성흠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껏 애써 통합진료센터를 무시하고 있던 것은 역설적으로 두 희대의 천재 탓이었다.
이 둘이 아니면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여기고 있었단 얘기.
한데 신현태가 이러면 나가리이지 않나.
얘가 잘하면 안 될 일이었다.
“잘 보면…… 이건 세균성 질환 또는 기생충 질환에서 보이는 패턴이야. 뭐,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나 정도로 많이 보다 보면 경험적으로 대강 알게 되지. 전문가 의견쯤이라고 여겨도 좋아.”
“네, 그래도…… 의미가 있죠.”
“그러니까. 경부에 있는 건 재발일 수 있어. 아니, 재발이 맞겠지. 절개 생검에서 확진됐으니까. 하지만 다른 부위에 있는 임파선도 모두 그럴까? 그건 아닐 수 있어. 그렇다면 환자가 치료를 포기할 이유가 없지.”
“음……. 근데 이건 진짜 그냥 추정이잖아요.”
“이렇게만 말하면 그렇지.”
추정과 추론은 좀 다른 느낌이지 않나.
추정에는 추론 과정에 있어야만 하는 그럴싸한 가정이 빠져 있었다.
그저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가정만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들어 봐. 현재 감염 내과에 가장 많은 협진 의뢰를 하는 과가 어딜까?”
“아……. 혈종이겠네요.”
“그래. 항암제를 쓰면 면역이 떨어지니까. 기상천외한 감염이 많이 생긴다고. 이 환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 감염 위험률이 올라가 있다고 봐야 해.”
“맞습니다.”
그 추정이 추론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신현태가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삼촌……. 말 되게 잘하네.’
[몰랐는데요. 이 정도일 줄은.]
‘하긴, 아빠에 비교돼서 그렇지……. 대가이긴 하잖아.’
[그건 맞습니다.]
신현태는 수혁의 고개 끄덕임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 감염 위험률이 올라간 환자라고 가정하고……. 이 환자의 임파선 종대를 보자. 이렇게 전신적으로 임파선 종대가 갑작스럽게 생기는 것…… 암의 재발과 반응성 임파선 종대, 둘 중 어떤 것이 더 흔하지?”
“후자가 압도적으로 흔하죠. 아.”
확실히 그랬다.
염증에 의해 반응성 임파선 종대가 생기는 것은 흔하다 못해 로컬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상황이지 않나.
실제로 감기 후에 목에 임파선이 드글드글해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 유방암 환자라는 것을 살짝 지워 보면…… 이렇게 된다고. 물론 경부 임파선에서는 재발 소견이 떴지만 다른 곳도 그럴 거라고 확신하면 안 돼.”
“그렇다면…… 감염은 어떤 감염일까요? 관련 증상이 있어야 할 텐데요.”
“기록만 보면 환자가 호소했던 증상은 경부 임파선 종대가 다야.”
“그렇다면…….”
“일단 환자에게로 가야겠지.”
신현태는 미리 확인해 두었던 병실로 향했다.
오성흠의 어깨를 붙잡은 채였기 때문에 오성흠도 하릴없이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담당 간호사는 신현태를 비롯해 처음 보는 얼굴이 많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지만, 오성흠도 알아보았기 때문에 별말 없이 따랐다.
‘내가 프리 패스 입장권이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오성흠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이것만 가지고 쉬었다기에는 너무 깊은 한숨이었다.
‘신현태 이 양반이……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거 만약 맞으면 어쩌지?’
고민이 섞인 탓이었다.
가뜩이나 최근 태화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지 않나.
다행히 쩐으로 그걸 메꾸고는 있는데, 만약 통합진료센터가 진짜로 교육 기관으로써의 역할로 겸하게 된다면…….
‘와 소름.’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되면 진짜 태화는 저 앞으로 날아가게 될 것이 뻔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칠성 측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고 제발 펠로우 좀 받아 달라고 해야 할지도…….
‘우창윤, 이 새끼 설마?’
아선 기조실장이라는 놈이 왜 그렇게 태화에 협조적일까.
회의 안건으로는 부적절했지만, 회의 후에 회식 때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였다.
그때마다 뭔가 약점을 잡혔다거나, 딸이 있는데 이수혁 교수 약혼녀라더라 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나왔다.
오성흠이 아는 우창윤은 음험한 인간 아닌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뒤로는 충분히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기조실장에 올랐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을 밟았단 뜻이지 않나.
그런 놈이 그렇게 순수한 이유로 협력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설마…… 아선에서 펠로우……? 벌써 뭔가 본 건가?’
오성흠은 팔뚝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부비적거리며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신현태의 예의 그 전형적인 교수 얼굴을 한 채 환자에게 다가가 있었다.
“환자분.”
그리고 매력적인 중저음 보이스로 포문을 열었다.
“아, 네 교수님.”
이러면 거의 뭐 100% 반응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성흠이 보기에도 훌륭한 교수 그 자체인데 환자가 볼 때는 어떻겠나.
암 환자다 보니 병원 경험이 있기야 하겠지만 다 소용없었다.
신현태는 한마디로 환자를 무장 해제시킨 후 말을 이었다.
“몇 가지 여쭐 것이 있어서요. 혹시…… 목이 이렇게 부었을 때, 다른 증상은 없으셨나요?”
“네? 음……. 어떤 증상이요?”
“목이 아프다거나, 기침이 난다거나 하는.”
“음.”
환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치료를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고는 있지만, 진짜 생을 포기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라 더 그랬다.
이제 겨우 50.
현대 의학과 위생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에게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은 나이이지 않나.
“아뇨.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옳거니. 틀려라.’
오성흠은 그런 환자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신현태가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증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마터면 환자 앞에서 웃을 뻔했다.
한데 신현태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그럴 줄 알았다……. 뭐 이런 얼굴인데?’
오성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그랬다.
의사들이 포커페이스에 능한 사람들이라곤 해도, 저건 좀 선을 넘은 수준이지 않나.
“혹시 고양이 키우세요?”
다음 질문은 더 이상했다.
갑자기 고양이?
이게 뭔…….
오성흠은 이제 이 양반이 천재 흉내를 내다가 돌았구나 싶었다.
“아, 네. 어떻게…… 그걸.”
환자가 그렇다고 하기 전까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