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49화 (749/1,303)

749화 하여간에 칠성 병원도 (1)

“살펴 가십쇼.”

“그래. 오늘 보면서 느낀 게 있을 거 아냐. 이제 너도 인마. 제대로 된 의사로 살아 보라고.”

“네네. 회장님.”

톡소플라스마 환자를 마지막으로 태화 일행은 칠성을 빠져나갔다.

오성흠은 진땀을 흘리며 뒤로 돌아서서는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위기다…… 위기.’

이현종과 엮이고 나서는 정말이지 매일같이 위기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이현종처럼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업과 동시에 카리스마까지 갖춘 리더였다면 괜찮았을 터였다.

하지만 오성흠은 야금야금 꼼수 쳐서 올라간 사람이다 보니 충성층이라 해도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 어디세요? 이상한 소문이 도는데.”

방금 전화한 안국태도 그랬다.

사람 됨됨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강약약강…….’

전형적인 소인배 아닌가.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꼬리를 내리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목덜미를 물어 버릴 수 있는 인간.

오성흠이라 해서 사람 보는 눈이 모자라겠나.

어쩔 수 없으니 곁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저 특성이 안국태를 칼로써 쥐고 있을 땐 도움이 되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저 칼끝이 자신을 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 안 교수. 뭔 소문 말하는 거지?”

“그…… 원장님이 다른 과 회진 돌면서 전혀 다른 진단 내려 줬다고…… 근데 그게 원래 칠성 방침이라고 하셨다면서요.”

이거야 원.

하여간에 병원이라는 곳은 소문이 빨라도 너무 빠른 곳이었다.

딱히 소문내는 것 말고는 재밌을 만한 일이 없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게다가 이곳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대개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사람들이지 않나.

일반적인 직장보다는 아무래도 말 퍼지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 그거. 아까 회의하면서 즉흥적으로 든 생각이야.”

“근데 같이 있던 사람이…… 이현종, 이수혁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 둘이 따로 다니는 걸 본 거 같다는 제보도 있고요. 원장님, 혹시 이거 묵인해 주신 겁니까? 그날 혹시…….”

확실히 안국태는 은혜를 모르는 녀석이었다.

다른 놈들도 그날, 그러니까 오성흠이 변장하고 들어갔던 날 뭔 일이 있었을 거란 생각 정도는 하고 있을 터였다.

당연하지 않나?

변장하고 들어갔다가 갑자기 멀쩡한 얼굴로 회식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적당히 둘러대지 않았다면, 학회에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었을 터였다.

‘새끼. 넌 진짜…….’

이렇게 나오면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이번 위기만 어떻게 넘기고 나면 안국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은 커다란 솥일 터였다.

사냥이 끝난 후 개는 살려 둘 이유가 없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왜 그런 걸 묵인해?”

“그때…… 그 학회에서 약점 같은 거…….”

“하하. 이 사람 이거 웹소설 즐겨 본다더니 상상력이 풍부하네? 볼 거면 한산이가 작가 거를 보라고. 그 작가 거는 현실적이니까. 하여간……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이현종, 이수혁도 의사고 교수고 학자야.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할 거 같은가?”

“좀 이상하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둘이 내 약점 잡고 남의 병원 와서 공짜로 사람 치료해 준다고? 아니지. 공짜인 것을 떠나서 의료법 위반이라는 걸 뻔히 알 텐데? 그리고 그 둘이 마음대로 다녔다면 대체 어떻게 다닌 건데? 우리 병원 면회자도 다 확인하고 들여보내는 거 알아, 몰라? 자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이런 놈에 대처하는 법은 아주 간단했다.

약한 모습을 안 보이면 될 일이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채, 책임이라뇨……. 저는 어디까지나 그런 소문이 있다고 확인시켜 드린 것일 뿐입니다.”

과연 안국태는 바로 꼬랑지를 내렸다.

사실 당황한 주제에 한바탕 화난 척을 한 오성흠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것 봐. 자네 아직 과장이지? 위로 가려면 갈 길이 멀다고. 그럼 처신을 똑바로 해야지……. 내가 자네 내과 단도리 잘 하라는 말만 한다고 진짜 그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원장단 회의에 꼬박꼬박 부르고 있잖아. 그럼 시야를 좀 넓히라고.”

“네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부족합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거기에 더해 승진 얘기를 은근슬쩍 꺼내자, 안국태는 내렸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오성흠의 마음은 짜게 식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간적으로 훌륭했던 박국진은 그 인성 때문에 잘라 버리지 않았나.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었다.

“하여간 아까 태화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뭐 그런 걸 물을 취지에서 혈종에 같이 갔어. 이현종, 이수혁 그리고 신 원장하고.”

“아, 네네.”

신현태를 일부러 같이 언급했다.

뭐가 되었건 외부에서 신현태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것이었기에 그랬다.

이현종 하면 또라이가 수식어로 거의 반드시 따라붙는 것처럼, 신현태에게는 신중함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거기는 어떻게 하는지 봤는데……. 이게 그냥 이렇게 봐서는 될 게 아니더라고?”

“아……. 네.”

안국태는 학회를 떠올렸다.

통합진료학회.

사실 의료계에서 이런저런 학회가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일 년에도 얼마나 많은 학회가 새로 생기는가.

딱히 의학적인 필요가 아니라 그냥 원래 있던 학회 구성원끼리 싸움이 나서 분리되는 경우도 많았다.

학회 하나 생긴다고 해서 딱히 관심 둘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건 다르긴 하지…….’

하지만 통합진료학회는 달랐다.

우선 창립 멤버들부터가 미친 수준이었고, 태화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지 않나.

물론 이것뿐이었다고 하면 그래도 무시해도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 학회는 지금 대한민국 의료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태화는 몇 번이나 역전을 허용했던 아선이나 칠성과 같은 경쟁자들을 이제는 아득히 따돌리고 앞서 달리고 있었다.

환자들 그리고 지방 병원의 의사들 모두 어려운 환자가 있으면 태화로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까닭이었다.

“그래서 든 생각인데…… 일단 우리 케이스도 정식으로 보내 보면 어떨까 싶은데.”

“네? 그룹 지침이…… 태화와는…….”

“그 지침 이전에 최고의 병원을 만들라는 지침이 있지. 이대로 가면 우리 병원은 저 두 천재에 완전히 밟히는 거야. 인정하지? 우리 역량으로는 저 둘…… 아니, 둘 중 하나도 못 이겨.”

“그…….”

안국태는 인정하기 싫었다.

이현종은 몰라도 이수혁은 더더욱.

레지던트 주제에 건방지게 발표에서 자신을 완전히 밟아 버린 바 있지 않던가?

아직도 자다가 그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문제는 아선이 이미 줄을 섰어. 병원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차기 원장은 그래.”

“차기…… 원장이요?”

차기 운운할 시점은 아니지 않나?

저쪽은 오성흠보다도 임기가 더 남아 있으니까.

의학적인 지식보다는 이런 잿밥에 훨씬 관심이 많은 안국태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래. 우창윤 말이야. 기조실장.”

“아……. 근데 그 사람은 너무 어리…… 아니, 젊지 않나요?”

이제 겨우 50 좀 넘은 놈이 무슨 원장은 원장이란 말인가.

기조실장도 사실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승진이었다.

적어도 안국태 생각에는 그랬다.

“나이가 무슨 소용이야. 이번에 칠성에 30대 임원 나온 거 몰라? 능력 있으면 치고 올라가는 거야. 아무튼, 그 양반이…… 그 나이에 거기 올라가려면 좋은 짓만 했겠어?”

“나쁜 짓도 많이 했겠죠.”

오성흠과 안국태는 둘 다 실력보다는 편법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지 않나.

삶의 궤적을 돌이켜 보면 굽이굽이 돌아온 수준이 아니라 거의 무슨 악의 고백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당장 박국진만 해도 그렇지 않나.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묻으려 했던 적이 그게 처음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우창윤도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철저한 놈이…… 통합진료학회 이사직은 왜 하고 있겠어? 다분히 원내에서도 공격이 있었을 텐데.”

“아……. 이거 설마.”

“그래. 이제 아선은 그쪽으로 환자만 보내는 게 아니라 펠로우들 보낼 거야. 그래서 교육받겠지.”

“근데 그게 교육받는다고 되는 걸까요? 천재가 괜히 천재가 아닌데.”

“아까 보니까 신현태 원장도…… 만만치 않더라고. 내가 그 사람 잘 아는데 원래 그렇게까지 재기발랄한 사람이 아니거든? 근데 거기 있다 보면 훈련을 받나 봐. 아무튼,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선이 나서잖아.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만약 통합진료센터의 교육법이 생각과 달리 형편없다면, 거기서 펠로우를 밟은 친구들의 미래는 어두컴컴해질 터였다.

하지만 오성흠과 안국태는 그런 것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쓸모없어진 아랫사람은 신경 쓸 이유가 없으니까.

죄책감 따위도 들지 않았다.

원래 교수 사회는 이런 게 거의 관습처럼 남아 있어서 그랬다.

아랫사람이 정말 죽도록 헌신해 봐야 들을 수 있는 말은 ‘인마 나 때는 더했어’ 정도였다.

“우리도 질 수는 없죠. 아선…… 아선이 하고 있다면 칠성도 해야죠.”

“그래. 환자 보내면서 내가 정식으로 협의 볼 테니까…… 자네는 일단 의국 내에서 펠로우 할 애들 좀 찾아봐.”

“근데 벌써 가을인데…… 이게 될까요?”

“군에 있거나 한 애들 있잖아. 아마 어레인지된 과가 마음에 안 드는 애들도 있을 거야. 그런 애들 위주로 해 봐.”

내과는 분과가 많지 않나.

당연히 그중에서도 인기가 있는 분과와 그렇지 못한 분과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전반적으로 수요가 많은 소화기내과, 그중에서도 내시경을 할 수 있는 할로우 파트가 인기가 많았다.

그다음은 심장이고, 그 외에는 혈종, 신장 등이 인기가 있었다.

모두가 그런 과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개중에는 원치 않는 과에 남는 경우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잘 꼬셔 보겠습니다. 원장님.”

“그래. 거기에 의료의 미래가 있다. 칠성도 센터 신설할 거고 그렇게 되면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교수 될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꼬시라고.”

“네. 근데 정말로……?”

“장사 하루 이틀 해? 봐서 영 싹수없어 보이면 다 없던 일로 하는 거지. 어차피 걔들 펠로우 끝날 때쯤이면 나 원장도 아니야.”

“아, 네네. 알겠습니다.”

누군가 이 대화를 들으면 사이코패스들의 대화로 오인할 것이 뻔했다.

아니, 적어도 소시오패스들의 대화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아마 이현종과 이수혁이 들었다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구석이 하나쯤은 있었을 터였다.

이제 칠성도 정식으로 케이스를 보내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펠로우도 보낸다지 않나.

둘 다 티칭 마인드가 좋은 사람들이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듣다 보면 이게 과연 티칭 마인드인지 아니면 그저 잘난 척인지 헷갈리긴 할 테지만.

“어……. 교수님. 칠성입니다.”

효과는 다음 날 당장 나타났다.

레지던트가 전화를 받고는 이현종에게 달려왔다.

“오성흠이 이 새끼. 하여간 잘한다니까.”

“네?”

“아냐, 아냐. 무슨 환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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