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화 하여간에 칠성 병원도 (2)
이현종은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아마 이 모습을 오성흠이 봤다고 머리를 풀고, 옷을 찢고 광야에 뛰어나가 고함을 질렀을 터였다.
그만큼 건방져 보였다.
아니, 건방졌다.
“그래, 어떤 환자가 있는고.”
“네……. 센터장님. 그…….”
전화를 하게 된 이는 안국태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아직 전임은 못 받은 임상 조교수였다.
‘아니, 내가 왜 태화 교수님한테까지 이렇게…….’
가슴으로는 아직 납득이 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임을 받고 싶은 임상 조교수가 누구에게든 굽신거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말 잘해라.”
하지만 지금은 어찌 되었건 굽신거려야만 했다.
옆에 안국태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서 있었기에 그랬다.
어쩌겠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게…… 저희 감염내과에 발열로 온 환자입니다.”
“감염내과……. 안국태 교수가 보는 거 아닌가? 왜 직접 안 하고.”
“네? 아니, 그게.”
“아무튼, 말해 봐.”
이현종은 후후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옆에 있던 수혁이나 신현태가 보기에도 좀 지나친 태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셋만 있는 게 아니라 박국진도 있어서 그랬다.
-네? 칠성에 엿을 먹이고 있다구요?
그럼 참을 수 없죠, 라고 하더니 한달음에 달려왔더랬다.
수혁이나 이현종에게는 그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심어져 있지만, 사실 박국진이라고 하면 내과계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지 않나.
신현태는 그런 박국진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하하. 더 하십시오.”
그런 사람이 옆에서 더 부추기고 있으니, 신현태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네. 환자는 특수 부대 상사입니다. 정확한 소속은 밝히진 않으셨습니다만…… 하여간에 이런저런 훈련이나 작전을 많이 나가시는 거 같아요.”
“군인이다 이거지. 그래, 군인. 또?”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옆에 있던 이들 또한 환자의 직업을 마음속에 새겼다.
당연하게도 수혁도 그랬다.
‘군인이라…….’
[신체 활동이 많은 직업이죠. 특히 야외 활동이 많았을 겁니다.]
‘응. 그리고 특수 부대라면…… 더 많겠지. 체력 자체는 남들보다 월등할 거고.’
[네. 근골격계는 더 건강할 겁니다만…… 나이가 44세라면 사실 망가진 곳도 많을 겁니다. 데이터상 그렇군요.]
훈련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아픈 데도 없고 더 건강해야 정상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군대처럼 안 되면 악으로 깡으로라도 되게 하라는 정신을 지닌 집단에서 훈련을 받는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닳고 닳은 상사쯤 되면 체격이나 근력이야 당연히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이런저런 관절 계통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환자 병력이 좀 특이합니다. 어릴 때부터 2, 3일간 지속되는 발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병원에 가면 딱히 이유를 모르거나 목이 부었다고 하고 약을 주었다고 하고요. 어릴 때 생각으로도 목이 부은 거 같지 않은데 약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다만 약을 먹으면 거의 2, 3일 내에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불명열인가? 정식으로 입원해서 검사를 진행한 적이 있나?”
이제 이현종은 상대 놀리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아예 까먹어 버렸다.
케이스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것으로 보이는 불명열이라니.
이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아뇨.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시겠지만…… 대개의 경우 40대 초반 남성분들은 건강을 자신하는 편이어서요. 이분은 더욱이 군인이셔서 더 그렇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하여간…… 이상한데? 군인이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진료 접근성이 더 좋을 수도 있는데? 군 병원은 공짜잖아.”
“네. 군의관 진료는 자주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진단은 없이 그냥 약만 줬다고 합니다.”
“칠성 출신이 봤나?”
“네?”
“아니, 아닐세. 하여간…… 그래서 지금은?”
이현종의 눈이 가늘어졌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지 않나.
과거력은 지금 이 환자의 상태를 유추하기 위한 단서가 될 뿐.
결국, 환자를 진단하고 또 치료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환자의 상태였다.
“그것이…… 검사를 진행했는데, 아직까지는 모두 정상입니다.”
“정상? 열은 나는데?”
“네. 열은 납니다.”
“검사를 뭐 했다는 거야. 노티를 왜 이렇게 해.”
“아, 네. 혈액 검사 시행했습니다. 기본적인 혈구 검사 및 혈중 페리틴 농도까지 포함했습니다만, 정상이었습니다.”
“음. 근데 열은 난다?”
“네.”
“허어.”
검사 소견과 증상이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이때가 임상에 나서는 의사가 제일 난감한 상황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제일 흥미로운 상황이기도 했다.
사람 성향에 따라 전자가 압도하기도 하는데, 이현종이나 수혁은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편이었다.
“정말 다 정상인가요?”
결국, 수혁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상대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조금 당황했지만, 어차피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던 것은 매한가지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답을 해냈다.
“아…… 아뇨. 완전히 다 정상은 아닙니다. 적혈구 침강 속도는 살짝 떴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따라 정상 소견으로 잡힐 수도 있는 수치입니다. C-단백이나 CK도 떴습니다만, 마찬가지입니다. 이메일로 보내 드린 자료 보시면 확인 가능하실 겁니다.”
“어……. 그렇네요. 애매한 수준이네요.”
“네.”
“환자는 발열 말고 다른 증상은 없나요?”
“네. 없습니다. 늘 이랬다고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원인을 확실히 알고 싶어서 큰 병원으로 왔다고 하는데…….”
“못 잡고 있는 상황이로군요.”
환자도 의사도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도로 따지자면 당연히 환자 쪽이 훨씬 답답하긴 할 터였다.
평생 좀 이상한 건가 싶었던 문제가 진짜로 이상한 문제인 것은 알게 되었을 텐데,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니까.
‘역시 우리가 봐야겠어. 유선상으로는 무리야.’
[네. 그렇습니다. 칠성에 맡기고 있을 수는 없겠습니다.]
‘좋아. 그럼.’
수혁은 결정을 내렸다.
이 건은 전화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전원을 받기로.
“그럼 보내.”
척하면 척인 이현종은 수혁의 표정을 읽어 내자마자 말을 꺼냈다.
“아, 네. 그럼 바로 조치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 케이스는?”
“네?”
“다음 케이스. 매달 열 케이스 이상 보내기로 했는데.”
“아……. 그건 제가 또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이 케이스밖에 없습니다.”
“정말이야?”
“네?”
상대 입장에서는 잘된 셈이었다.
뭐가 되었건 이 껄끄러운 전화를 끊을 수 있게 되었으니.
게다가 지난 며칠간 골머리를 앓게 했던 환자도 보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처음 봤던 환자를 끝까지 보지 못한다는 게, 심지어 능력 부족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잘되었다 여기고 있었다.
근데 환자 없다는 게 정말이냐니.
드디어 끊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전화는 좀처럼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내가 전에 가서 보니까……. 병동 뒤져 보면 오진 내린 케이스도 꽤 있을 거 같던데?”
“형, 형.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뭘 형이 가서 봐.”
“왜. 아냐?”
“아니,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되지. 이거 녹음되고 있으면 어쩌려고.”
“아, 그런가. 녹음 안 했지?”
“네? 아, 네.”
“그래, 그럼 됐어. 환자 보내고. 케이스 잘 찾아봐. 내 상상인데, 칠성에 오진 케이스 엄청 많으니까 빨리 찾을 수 있을 거야.”
다행인 것은 옆에 그래도 제정신인 사람이 하나쯤은 있었단 점이었다.
신현태 덕에 전화를 끊은 임상 조교수는 안국태를 보며 말했다.
“교수님, 이게 대체 뭔 일입니까…….”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만한 말이었다.
상대가 안국태라서 그랬다.
의문을 표하면 화를 내는 사람, 그게 안국태였으니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안국태도 잘 모르겠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랬다.
‘원장님……. 그때는 화를 내서 내가 말을 못 꺼내긴 했는데……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
게다가 임상 조교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오성흠을 의심하고 있었다.
정치력이 대단한 사람인만큼 눈앞에서는 자꾸 얼렁뚱땅 넘어가는데, 뒤돌아서서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했다.
물론 통합진료센터가 현재 대한민국 의료계의 돌풍이 되고 있음은 확연한 사실이긴 했다.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도 맞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협력을 한다고?
그 흔한 MOU 하나 맺지 않고?
혹시 위랑 얘기가 되었나 하고 알아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까라는 대로 까기는 하는데…… 오성흠 원장님…… 썩은 동아줄일 수도 있겠어.’
원래 각자도생하는 게 인생의 진리 아닌가.
과장 자리 자체도 박국진을 내몰고 차지한 참이었다.
뒤통수 한 번 더 세게 날리고 기조실장을 할 수 있다면?
안국태는 얼마든지 오성흠의 뒷덜미를 물 수 있는 인간이었다.
“자, 환자분. 그럼 전원 가실게요.”
“가면 정말 진단받을 수 있는 겁니까?”
“그…… 네. 통합진료센터…… 요새 아주 유명해요.”
“저도 검색해 보니까 후기가 좋기는 하던데…… 칠성이나 태화나 비슷한 거 아니었어요?”
명색이 교수라는 놈이 자기 환자 내버려 두고 딴생각에 열중하는 사이, 임상 조교수는 본분을 잊지 않고 환자 앞에 있었다.
아직도 열이 나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에서는 여전히 별거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비슷했죠……. 비슷했는데.’
그러다 환자에게 팩트 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확실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화, 칠성, 아선은 빅 3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병원이었다.
도매급으로 묶어 불러도 셋 중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하기가 좀 그럴 만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적어도 내과는…… 완전히 밀리고 있지.’
아직 칠성 애들이 태화 내과를 가겠다고 지원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예년 같았으면 그래도 지방대 1등들이 내과에 지원했을 텐데, 이번에는 전혀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죄 태화로 몰리고 있었다.
“그, 뭐. 비슷하죠. 근데 이쪽으로는 좀 더 태화가 특화된 거 같아요.”
“거…… 뭐. 저는 선생님도 좋았는데. 그쪽이 뭐야 그. 원인 모를 발열? 그쪽으로는 더 잘한다 이거죠?”
“네, 그렇습니다. 꼭 진단받고 완치 받으시기를 바랄게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도저히 입 밖에도 그런 말을 낼 수는 없었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처신의 문제이기도 했다.
어디 가서 ‘칠성 임상 조교수가 그랬는데 태화가 한 수 위라더라’ 하는 말이 퍼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끔찍했다.
“어떤 환자지?”
“아직까지는…… 다만 어려운 환자임은 확실해요.”
2등 아니면 3등인 칠성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1등은 그저 환자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현종, 수혁, 그리고 신현태 등은 환자가 올 때까지 난상 토론을 벌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