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화 불명열 (2)
‘딱히 면역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다…….’
[흐음.]
‘그런데 이렇게 빈번하게 발열이 있다.’
[흐음.]
‘흐음만 하지 말고. 네가 사람이야? 왜 한숨을 쉬어.’
[수혁이 제가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있길래, 역할극이라도 하자는 줄 알았습니다. 평소 수혁이 맨날 흐음흐음 하거든요. 역지사지가 되었습니까?]
‘와.’
수혁은 침대 옆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환자 케이스는 확실히 쉽지 않았다.
하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칠성 병원이 최근 태화에는 물론이거니와 아선에도 밀리고 있지만 그래도 빅 3이지 않나.
얼토당토않은 케이스를 놓칠 리는 없었다.
“일단 검사 결과도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오히려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열의가 오르는 사람, 그것이 이수혁이었다.
“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네.”
수혁은 일단 환자를 배당된 병실에 안내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미 칠성에서 보내온 자료와 방금 대화를 종합해서 추론해 보기 위함이었다.
“진드기…… 리케치아(리케차, 리케차과에 속하는 세균류를 통칭)일 수도 있고 쯔쯔가무시일 수도 있는데. 둘 다 만만한 병은 아니야. 근데 딱히 중환자실은 간 거 같지 않았어. 그 말은 환자에게 면역 체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작다는 거지.”
신현태는 그런 수혁의 옆에 앉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감염내과 교수다 보니 열 나는 환자 하나는 엄청나게 보지 않았겠나.
게다가 상대가 수혁이었다.
지금껏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움받은 적이 더 많은데, 이번 기회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영 어려울 것 같았다.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 거 같진 않지만…….’
신현태는 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현종과 조태진을 돌아보았다.
살짝 우월감에 젖은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뿔싸.’
‘아……. 생각해라, 생각해.’
상식적으로 이게 먹히면 안 되는데 먹혔다.
이현종, 조태진은 초조함에 다리까지 떨었다.
여기서 어쩐지 수혁의 셋에 대한 평가가 뒤바뀔 것 같아서였다.
“아, 네. 그럴 수 있죠. 흐음.”
물론 수혁은 딱히 셋을 우열의 대상으로 두고 보지 않았다.
아니, 이현종은 좀 예외이긴 했다.
이 사람은 괴물이니까.
바루다가 없이도 세계 최고를, 그러니까 의사의 정점을 찍어 버린 위인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셋에 대한 애정도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지금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사람 말하는데 그렇게 대충 답해요?]
‘그렇게 안 보였을 거야. 게다가 우리가 이미 겪은 과정이잖아.’
[그건 그렇긴 합니다. 으음.]
‘잘 조합해 보자고. 단서가 거의 없다시피 해, 지금.’
머리가 너무 바빠서 그랬다.
대화를 통해 얻은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지 않나.
그 외에 검사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어째야 할까.
이 작은 단서를 모으고 모아서 큰 단서로 만들어야만 했다.
‘적혈구 침강 속도 증가…… C-단백 증가. 그 외에 빈혈이나 백혈구 증가 또는 혈소판 감소 소견은 없어.’
[네. 그마저도…… 사실상 정상 범주라고 간주해야 할 정도로밖에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음……. 그리고 환자는 열이 나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건강해. 하지만…….’
[반복되는 열은 확실히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면역 체계는 정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그럼 대체…… 대체 뭘까.’
그 과정이 쉬울 리는 없었다.
단서가 너무 작아서 모으기도 어려워서 그랬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티끌이 태산만큼 많을 때의 이야기였다.
“일단…… 우리 병원에서도 기본적인 검사는 나가야겠는데요.”
“어……. 그건 내가 처방 냈어.”
그렇다면 뭐라도 더 뒤적거려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쉽게도 현대 의학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까지는 지리한 검사들뿐이었다.
다행히 센터장인 이현종은 환자를 워낙 많이 보아 온 사람이었기에, 척 하면 척이었다.
“아, 역시.”
“후후. 말만 하는 놈하고는 다르지.”
게다가 지금의 이현종은 신현태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지 않나.
원래도 우수한 인간이 최선을 다하게 되면 진짜 우수해지는 법이었다.
‘하……. 진짜 이러긴가.’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에게 또 자극을 받았다.
해서 분연한 기세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병실로 향했다.
“어……. 원장님 어디 가요.”
지금까지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한 조태진도 따라 일어났다.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신현태를 따랐다.
“어, 어디 가?”
이현종도 그랬다.
신현태가 뭐라도 한 건 할 것 같아서 그랬다.
“병실요.”
“아까 수혁이가 봤는데? 환자가 싫어해.”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신현태가 듣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코웃음을 쳤다.
“입원해서 의사 찾아오는데 싫어할 환자가 있다고요?”
“싫어할 수도 있지. 게다가 넌 여기 과도 아닌데.”
“원장이잖아요. 내기할래요? 원장이 왔는데 싫어하나 안 싫어하나.”
“그건.”
막무가내인 이현종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이나 단단한 논리였다.
생각해 보라.
그냥 아무 연줄도 없이 입원했는데 원장이 왔다.
그것도 그냥 온 게 아니라 와서 이것저것 묻고 고민해 줬다.
만약 젊은 환자면 바로 SNS에라도 올려 줄 만한 사건이지 않겠나.
“그건…….”
“갑자기 풍이 오셨나. 수혁아 아빠 모시고 응급실 좀 가 봐라. 후하하.”
신현태는 석상처럼 굳어 버린 이현종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병실로 향했다.
조태진도 괜히 이현종의 어깨를 치고 병실로 향했다.
정작 수혁은 고민하느라 그러한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환자분. 태화 의료원 원장 신현태입니다.”
“네?”
그렇게 신현태는 환자 앞에 섰다.
환자는 당연하게도 놀랐다.
“하하……. 통합진료센터 그랜드 라운딩 왔다가 들렀습니다. 열이 나는데 원인을 모르고 있으시다고요?”
“아, 네. 그렇습니다. 그…….”
“제가 감염 내과 교수거든요. 같이 고민을 좀 해 보도록 하죠.”
“아, 네. 그.”
아까부터 같이 다니던 사람 아닌가.
근데 무슨 그랜드 라운딩 운운하고 있단 말인가.
김시환 환자는 신현태가 당연히 통합진료센터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과연 명찰에 원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얼굴도 원장상이었다.
이런 얼굴로 낮은 직급에 있으면 오히려 좀 배신감을 느낄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얘기를 해 보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좀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네?”
어린 시절이라니?
옆에 있던 조태진도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얼굴로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이현종하고 하도 달라붙어 다니더니 드디어 미쳤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신현태는 진지했다.
“혹시 태어날 때 병원 측에서 뭐라도 얘기 들은 게 없으신가요?”
명색이 감염내과 교수 아닌가.
그중에서도 꽤 명망 있는 교수였다.
당연히 불명열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통달했다고 봐도 될 만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아까는 일부러 말을 안 했지……. 근데 이런 종류의 환자에서 드물지 않게…… 선천성 이상이 있다고.’
성인에서도 불명열은 문제가 되기 마련이었지만 소아에서는 아무래도 그 빈도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관심도가 아예 달랐다.
자체 컨퍼런스도 있었고, 감염 내과와 함께 열리는 컨퍼런스도 있었다.
‘내가 그 컨퍼런스만 벌써 20년째 하고 있다고.’
모든 병원에 다 있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태화에는 있다는 점이었다.
신현태와 이기자가 짝짜꿍이 맞아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음……. 그게 딱히…….”
“딱 태어났을 때 별문제가 없으셨나요?”
“그…… 네. 얘기 들은 건 없었습니다.”
물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 건 아니었다.
이번이 그랬다.
별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이가 경험이 충분하고 또 여전히 그런 눈으로 상대를 보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덩치에 비해 입이 좀 작으시네요.”
“아……. 네.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어릴 때는 많이 혼났어요. 덩치도 큰 놈이 깨작거리면서 먹는다고.”
“그리고…….”
신현태는 환자의 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태진의 귀도 보았다.
‘좀 낮은데…….’
귀의 위치가 살짝 낮은 것처럼 보였다.
선천성 이상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게 어떤 이상에서 초래되는 변형인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또 과연 진짜로 정상 범위보다 귀의 위치가 낮은 건지도 불명확했다.
하필이면 입이 작아서 그런가. 더 헷갈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했다.
‘선천성 이상이 있는 경우…… 그것이 애매할지라도 겉모습에서 티가 나는 경우가 많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는 의학적인 편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상이 없는 사람의 생김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김새를, 경험이 쌓이다 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선천성 이상에 방점을 두어야 할 거 같은데.’
신현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워낙에 온화한 진료로 유명한 사람답게 훈훈한 마무리였다.
“그럼 저도 틈틈이 조언하고 또 조언 구하면서 진료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원장님. 원장님이 직접 이렇게…….”
“하하. 환자가 있으면 보는 게 당연한 일이죠.”
“네……. 감사합니다.”
김시환에게는 특히 더했다.
병원의 원장이라는 존재가 어쩐지 군에서의 사단장급으로 인지되어서 그랬다.
그런 사람이 상사 입원했다고 와서 들여다보는 경우가 어디 흔하다던가.
특히 별 상관도 없는 높은 사람이 별 이유도 없이 오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원장님. 뭔가…… 뭔가 알고 물으신 거죠?”
물론 신현태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수혁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아무튼, 조태진은 그런 신현태의 질문에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
비록 전혀 감이 잡히진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조태진도 거물급 의사가 되어 가고 있지 않나.
느낌이 딱 왔다.
“응? 아니. 전혀.”
“그런 사람이…… 갑자기 태어날 때를 물어요?”
“내가 그랬나?”
“아니, 이 사람이…….”
“이 사람?”
“아니, 이 원장이…….”
“자네는 호칭을 좀.”
신현태는 황당했지만,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조태진이 당황한 만큼이나 어찌 되었건 소득이 있었기에 그랬다.
비록 태어날 때 어땠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얼굴 생김새를 자세히 뜯어보니 확실히 느낌이 왔다.
‘검색해 봐야지. 확실히 정상 범주를 살짝 넘어가 있어.’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바로 수혁에게 달려갈 생각이었다.
이기자 교수랑 20년 동안 컨퍼런스 하면서 솔직히 지금처럼 도움 된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기자 교수가 이 말을 듣는다면 칼 물고 뛰쳐나올 만한 생각이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나.
진짜로 그렇게 생각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