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53화 (753/1,303)

753화 불명열 (3)

‘하 씨.’

1시간 후.

신현태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검색을 해 봐도 낮은 귀 위치와 작은 입으로는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어서 그랬다.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저러한 특징을 보이는 질환 또한 너무 많으니까.

게다가 어지간한 질환이라면 발열 정도는 또 대개 탑재하고 있지 않나.

생김새가 바뀔 정도의 질환, 그러니까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질환의 경우엔 대개 면역학적 이상도 동반하기에 그러했다.

‘안 나오네.’

신현태는 머리를 더 긁적이다가 수혁 쪽을 바라보았다.

벅벅.

저쪽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단서는 작았다.

특히 수혁은 아직 신현태처럼 선천성 질환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환자가 학령기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고 진술한 탓이었다.

사춘기 즈음부터 면역기의 발달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계속 그쪽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알레르기…… 반응으로도 열이 날 수 있지.’

[네. 반복 노출될 수 있는 항원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다면 가능한 증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알레르기의 가장 흔한 증상은 사실 호흡기 증상이지.’

[그것이 걸립니다. 아직 알레르기 검사를 해 보진 않았지만…….]

비단 알레르기 비염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비염이야 코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니 당연히 호흡기 질환이 나타날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음식물에 의한 알레르기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땅콩 알레르기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여전히 종종 있지 않던가.

‘하지만…… 속의 불편감이나 열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확인은 해 보는 것이 좋아.’

[수혁.]

‘응?’

[신현태가 왔습니다.]

‘아.’

수혁은 감았던 눈을 떴다.

바루다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모두 분석해 놓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덕분에 수혁은 리신이라도 된 것처럼 병원 내 사람들의 접근을 눈감고도 알 수 있었다.

“아, 삼촌.”

“어.”

신현태는 그런 수혁이 볼 때마다 신기했지만, 굳이 티는 내지 않았다.

그는 안대훈이나 조태진과 같은 광신도들과 달리 수혁을 온전히 사람으로서 좋아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랬다.

이런 모습을 보여 줄 때마다 결심이 사정없이 흔들리긴 했지만.

신현태는 굳건한 인간이었다.

“저 환자 말이야. 김시환 환자.”

“네. 아……. 어렵네요. 확실히…… 칠성에서 왜 그렇게 고민했는지 알 것 같아요.”

별다른 이상 없이 열만 반복적으로 나는 환자라니.

수혁이 비록 오래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간에 이런 환자는 처음 봤다.

수심이 가득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와……. 나 진짜 진단 못 하는 거 아니냐…….’

치료를 못 해 준 환자는 꽤 있었다.

현대 의학의 한계는 여전히 명확하니까.

무슨 병인지 알아도, 그럼에도 죽어 가야 할 환자는 당장 이 병원에만 해도 수백이 넘어가지 않던가.

특히 암은 인류에게 아직 정복을 허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단 자체를 해내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위업이었지만,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에게는 일종의 부담감이 있었다.

‘너까지 있는데…….’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아니, 다리가 다친 대신에 보상으로 찾아온 선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진료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자신과 다른 이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원래 머리 차이도 있을 거라 믿고는 있었지만, 무엇보다 극명한 차이는 아무래도 바루다의 유무 아니겠나.

애초에 좋은 사람 축에 속하는 수혁은 이제 막연한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우리 수혁이.’

때문에 점점 더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껏 하늘이 도와 바루다까지 손에 얻었는데 환자에게 도움이 못 된단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신현태는 그런 수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환자 말이야. 내 생각에는…….”

“오, 삼촌.”

수혁의 반응은 격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신현태가 누군가.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내과 의사였다.

이 인간의 말은 무게가 있다 못 해 어마어마하다고 봐야 했다.

괜히 입을 열지 않는 사나이, 그것이 신현태니까.

“뭐 같은데요?”

“선천성 질환.”

“선천성이요? 발현 기간이…….”

“선천성 질환 정도가 미약하다면…… 그 영향이 중첩되어 실제 증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

“아.”

수혁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확실히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신현태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것 같았으나, 수혁은 그 말 속에 담긴 힌트를 알아차렸다.

‘영향이 중첩되려면…….’

[무언가가 쌓여야 하죠. 그렇다면 대사 질환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렇지. 선천성 대사 질환이 있다면…… 그럴 수 있어.’

[네, 그렇습니다.]

대사 과정 중 결핍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원래 같으면 분해되어야 하거나 합성되어야 할 물질이 몸 안에 쌓이지 않겠나.

그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면, 그러니까 주요한 결핍이 발생했다면 그 문제는 굉장히 심각할 터였다.

손 쓸 도리도 없이 죽는 경우도 많았다.

여전히 선천 질환은 현대 의학에 있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으니.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면…….’

[학령기가 아니라 그 이후에라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죠.]

‘그럴 수 있는 질환들은 충분히 존재해.’

[네. 대사 질환은 워낙 많은 효소가 관여하고 있으니까요. 우회할 수 있거나 대체 가능한 효소의 결핍이 있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이럴 수 있습니다.]

수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낙담했던 얼굴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후후.’

신현태는 그런 수혁을 보며 웃었다.

잠시 조태진과 이현종을 돌아보면서였다.

‘니들은 못 하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니, 다른 생각을 했어도 별 상관은 없었을 터였다.

이미 이현종과 조태진은 신현태의 얼굴을 제멋대로 분석하고 있었으니까.

‘와……. 이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특히 같이 병실까지 갔던 조태진의 얼굴은 볼 만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굳이 따라갔는데 자신은 아무런 힌트도 얻어 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아무런 언질도 안 해 주었던 신현태에 대한 원망감이 한데 섞여 분노라는 형태의 감정을 이루고 있었다.

‘신현태 이놈이…… 소도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는다더니.’

이현종이라고 해서 딱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다.

둘의 공통된 감정을 묶어 말하자면 ‘질투’가 될 터였다.

“일단 랩 결과도 나왔으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봐야겠어요.”

물론 수혁은 주변 반응 따위에는 별 상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미지의 질환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어어, 그래. 같이 보자.”

솔직히 신현태는 검사 결과를 보고도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칠성 병원에서부터 들고 온 결과가 이상하지 않지 않았나.

근데 뭔 결과를 또 본다는 걸까.

괜찮다는 것의 재확인밖에는 되지 않을 텐데.

오래도록 의사로 살아온 탓에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따위는 애써 고이 접어 두었다.

‘우리 수혁이.’

그저 수혁이 옆에 앉아서 검사 결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음…….”

“음.”

그래 봐야 뭐가 보이진 않았다.

전에도 정상 수치였던 것들이 이번에도 정상 수치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신현태가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수혁은 달랐다.

‘추이를 보자. 그래프화시켜 줘.’

[네.]

그에게는 바루다가 있지 않나.

녀석은 주요 혈액 검사 결과를 칠성 병원에서 시행했던 것과 이번에 시행했던 것을 이어 그래프로 만들어 냈다.

그러자 그저 숫자만 볼 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어떤 경향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적혈구 침강속도, C-단백이 감소했어. 그뿐만 아니라 CK, Transaminase(간세포 효소)도 감소했어. 얘들은 애초부터 완전히 정상 범위 안에 들어와 있던 애들이긴 하지만…… 하여간 경향성은 같이 움직이네.’

[그 외에…… 혈색소 수치는 올라갔습니다. 혈소판도 증가했고요.]

‘이 두 개의 검사 결과가 정반대로 움직이면서 열이 난다라…….’

[분석할까요?]

‘어, 부탁해.’

[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경향성이었다.

애초부터 정상 수치 내에서 움직이는 경향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임상 의사는 없을 테니까.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만이 아니, 그 와중에도 변태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수혁만이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라고 보면 되었다.

“오…….”

신현태는 변태 수혁이 눈을 감고 잠시 정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 또한 한두 번 보는 장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이상했다.

‘이러지 마라, 수혁아. 이러니까 조태진하고 안대훈이 우정이 아니라 신앙을 품잖니.’

지금도 그러나 하고 뒤를 돌아본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깜짝이야!”

조태진이 귀신처럼 바로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영험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확실히 오컬트 동아리를 홀로 지켜 낸 사나이다웠다.

이미 영적 체험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얼굴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요? 사람 얼굴 보고.”

“아니, 아니. 거울 봐 봐. 안 놀라게 생겼나.”

“연습하는데 티 나요?”

“연습? 아니, 이런 걸 연습을 왜 해!”

“불가사의한 존재가 나타났을 때 잘 보이려고요.”

“아니…….”

신현태는 이런 놈이 어떻게 교수 심의를 통과에서 이 자리까지 왔나 싶었다.

이럴 거면 면접 때 얘기를 하지 그랬나.

그랬으면 바로 잘랐을 텐데.

아니, 이제라도 늦지 않은 거 같았다.

‘오컬트 동아리 출신은…… 이제 거른다.’

신현태가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쯤, 수혁이 다시 눈을 떴다.

이채가 서려 있었다.

신심이 없는 신현태가 보기에도 뭔가 좀 있어 보이는 눈빛이었다.

“아.”

조태진에게는 당연히 신과 관련한 무엇이 있어 보일 터였다.

‘수혁아……. 앞을 봐. 어중간한 데 보지 말고.’

그래서 신현태도 이름 모를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 수혁이가 저러지 않도록.

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수혁은 바루다가 내놓은 자료를 보고 있었으니까.

본 적은 있는 거 같은데 솔직히 자세한 기억은 단 하나도 나질 않았다.

‘MK는…… Mevalonate(메발론산)를 인산화시켜서 5-Phosphomevalonate를 생성한다……. 시발 뭔 소리여.’

[이해도 못 하고 읽었으니 기억이 안 나죠.]

‘생리학 레벨도 아니고 거의 생화학 레벨 아니냐, 이건? 임상의가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

[어……. 지금 얼굴 이거…….]

‘어, 맞아.’

[야, 이 사기꾼아.]

그럼에도 괜찮았다.

다른 사람은 바루다의 존재를 모르니까.

수혁은 이제부터 원래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썰을 풀 작정이었다.

아니, 잘난 척을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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