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화 불명열 (4)
[야, 이 새끼야. 너 또 이래?]
‘아, 그래서 안 알려 줄 거냐고.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 안 만들 거냐고.’
[와, 안 만들고 싶은데.]
‘그럼 맛있는 거 못 먹는데.’
[시발놈이.]
‘와, 욕을 해? 아무튼, 띄워 봐.’
수혁은 잠시 바루다와 티격태격을 하긴 했으나 어찌 되었건 이겼다.
깡통이 어찌 인간을 이길 수 있겠나.
게다가 수혁은 바루다라고 하면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인간이지 않나.
그건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음험함에 대해서라면 기계는 아직 인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환자는 학령기 전후로 해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죠?”
“그렇지.”
이현종이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궁금하기로만 따지면 그 또한 수혁 못지않지 않겠나.
하지만 불명열에 한해서는 신현태보다도 밀리는 것이 이현종의 현실이었다.
아무래도 많이 본 사람이 깡패일 수밖에 없는 게 의학계니까.
하여간 안달이 나 있었다.
“그전에는 없던 증상이 그 이후로는 주기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들어 빈도수가 더 많아졌고요.”
“그렇지.”
“중첩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즉 학령기 전까지는 증상을 나타낼 수 있을 만큼의 질환 수준, 그러니까 임계점에 다다르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한 번 임계점에 다다르고 난 후로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 겁니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쉽겠죠.”
“아……. 중첩이라.”
신현태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첩을 되뇌고 있는 이현종과 조태진을 바라보았다.
‘내가 했다, 이놈들아’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하여간 본격적인 설명 시간이 도래했으므로, 교수들뿐 아니라 원래 센터에 배정되어 돌고 있던 레지던트들도 모여들었다.
신앙이 있건 없건 간에 그랬다.
누가 뭐래도 수혁의 설명하는 솜씨는 최고였으니.
여기서 조금이라도 듣는 게 나중에 논문 뒤적거리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터였다.
“중첩 효과를 내는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사 질환이죠.”
“아, 그렇지.”
대사 질환은 비단 선천 질환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질환의 합병증은 유병 기간과 비례한다는 것 정도는 이제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것이 선천 질환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선천 질환의 특성상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되었는지 알기 어려워서 그렇지.
“즉, 이 환자의 병은 선천성 대사 질환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군. 음.”
평소라면 이쯤에서 이현종만은 몇 개의 질환명을 떠올릴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선천성 대사 질환은 얘기가 좀 달랐다.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조차 선천성 대사 질환을 모두 꿰고 있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지 않나.
게다가 이 케이스는 그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했다.
증상이 모호했으니.
얄궂게도 신드롬과 같은 형식의 질환들은 증상이 심할수록 진단은 쉽지 않나.
대신 치료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선천성 대사 질환을 염두에 두고 이 케이스를 봐야 합니다. 제일 먼저 대사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변화…… 즉 혈액 검사의 변화를 보도록 하죠.”
“으음. 이게 딱히…….”
“네. 딱히 없죠. 혈당도 정상이고 이상 지질혈증도 없습니다. 또한 다른 혈액 검사도 특이점을 보이고 있진 않습니다. 심지어 경향성에서도 혈당과 지질혈증은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오히려 동 나이대에서 아주 좋은 편에 속할 정도였다.
군인이라는 이유로 퉁 치기는 어려웠다.
군인이라고 다 운동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니까.
그저 환자가 몸 관리를 진짜 잘했다고 봐야 할 터였다.
“그러나 적혈구 침강속도 및 C-단백, CK, Transaminase(간세포 효소)는 열이 내리면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고, 혈색소와 혈소판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향성을 보이는 질환 중 비교적 가벼운 형태의 질환임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아……. 음, 확실히.”
이현종은 논리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조태진이나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레지던트들 중에는 이제 둥둥 떠다니는 애들이 몇 있었다.
이 사람이 뭔 소리 하나 싶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좀 어렵습니다.”
수혁이 생각하기에는 벌써 그러면 안 될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임상적인 추론이었을 뿐이었으니까.
다시 말하면 내과 의사라면 다 따라와야 할 정도의 얘기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어려웠다.
[어려워? 너 인마 너도 모르잖아!]
바루다는 그런 수혁의 뻔뻔스러움에 소리쳤으나 아쉽게도 전혀 소용없었다.
수혁의 연기력은 나날이 늘어서 이제 누가 코앞에서 소리치는 것 정도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앞서 말한 검사 수치의 경향성과 반복되는 고열 그러나 양호한 전신 상태를 보이려면…… 이뮤노글로불린 중에서도 IgD(혈액에 존재하는 면역글로불린)가 높으면 가능합니다. 아직 검사는 해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것 외에는 가능성이 없어요.”
수혁은 검사를 오더창에 넣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걸 거의 그대로 읊어 주었던 바루다는 복장 터지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남들은 그런 바루다를 볼 수 없었다.
그저 일상적인 얼굴로 평소와 같은 말투를 구사하고 있는 수혁만 보일 뿐이었다.
‘IgD?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저 평온한 얼굴이라니.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자각 못 하고 있었지만 조태진과 거의 흡사한 얼굴이었다.
“IgD가 올라갈 수 있는 질환은 꽤 있습니다만…… 앞서 말한 특성과 겹치는 것은 HIDS뿐입니다.”
“HIDS……?”
이번에는 이현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지간한 질환명은 다 알고 있는 그이지 않나.
세세한 특성까지는 몰라도 질환명 정도는 꿰고 있었다.
그야말로 평생을 의학에 미쳐서 살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진단명은 생경하기만 했다.
난생처음 들었다.
“풀어 말하면 Hyper-IgD and Periodic Fever Syndrome(고IgD와 주기열 증후군)이 되겠습니다. 말 그대로 IgD가 높으면서 주기적인 발열이 있는 증후군입니다.”
“어…….”
풀어서 말해도 소용없었다.
레지던트들은 이제 태반이 표류하고 있었다.
대체 이 질환이 무언가부터 해서 나는 왜 이걸 모르나, 쓰레긴가 하는 생각까지.
아주 다양한 반응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었다.
“증후군의 원인은 MK, 즉 Mevalonate Kinase(효소의 일종)의 결핍입니다. 콜레스테롤의 대사와 연관이 있지만, 딱히 콜레스테롤 수치와는 관계가 없죠. 두 가지 임상 형태를 보일 수 있는데 그중 심한 경우에는 발달 지연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예후가 아주 나쁘죠. 하지만 후자…… 그러니까 Hyper-IgD and Periodic Fever Syndrome의 형태에서는 단지 열만 납니다.”
“아……. 진짜 처음 듣는데.”
“그럴 겁니다. 전 세계에서 아직 단 20건만 보고된 극히 드문 병이니까요.”
“아…….”
그러니까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뭐 이런 말이 신현태의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조태진은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새꺄…….’
자신도 그 비슷한 표정이었다는 건 자각하지 못했다.
“환자의 생김새를 떠올려 보면 힌트가 더 있습니다. 작은 턱과 낮은 귀 위치. 물론 이 환자의 경우에는 경미한 증세만 보이고 있으므로 그렇게까지 뚜렷하지는 않죠. 하지만 의심하고 보면 확실히 그러한 경향은 보입니다.”
“그래, 그렇긴 했어.”
“더 복잡하게 들어가면 생화학적인 기전까지 얘기해 드릴 수는 있는데…… 이거야 뭐 임상 의사 수준에서는 알 필요가 없죠.”
“우리 수혁이는 알고?”
“저는 알죠.”
“와.”
[와.]
모두가 감탄의 의미로 입을 벌렸다.
아니, 바루다만 빼고 그랬다.
바루다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라도 마주한 심정이었다.
여기서 ‘저는 알죠’라니?
하나도 모르겠단 얼굴로, 당당하게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던 주제에.
“하여간 양호한 경과를 보이는 질환입니다. 물론 소변에서 메발론산(Mevalonic acid)이 검출되는지도 봐야 하고, 할 수 있다면 유전자 검사도 해 봐야겠지만…… 하여간 저는 이 질환일 거라고 100% 확신합니다.”
“수멘. 아니, 아니. 하하 수혁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입을 다물고 있던 조태진은 입을 열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해 댔다.
다행한 것은 신현태가 너무 무섭게 쏘아보는 바람에 조태진이 말을 정정했다는 점이었다.
불행한 것은 이 자리에 있던 레지던트들이 이미 그 말을 다 들었단 점이었다.
‘교세가 진짜 무섭네…….’
‘교수님들도 들어간다더니…….’
‘안대훈 형제님이 진짜 대단하구나.’
교에 들어가 있지 않은 애들은 그런 애들인 채로, 들어가 있는 애들은 또 그런 채로 다들 감탄하고 있었다.
“그럼 검사해 보고 결과 나오면 환자에게 설명하도록 하죠.”
“어, 그래. 그러자고. 칠성 놈들은 이런 것도 진단을 못 하나 그래.”
이현종은 껄껄 웃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예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었단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뻔뻔스러운 발언을 하면서였다.
[진짜 아들인가.]
바루다는 그런 이현종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름 돋도록 닮은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칠성 측 임상 조교수는 김시환을 떠올리고 있었다.
보내라니까 보내긴 했는데 본인이 원해서 보낸 것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어느 정도 각이 보이는 상태에서 보낸 것도 아니었다.
검사란 검사는 오만가지 다 해 놓고 전혀 감을 잡지도 못한 상태에서 보내 버렸다.
이건 똥 싸다 만 기분도 아니고 마렵다가 사라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에 찝찝함의 극치를 달렸다.
‘전화해 볼까? 아니, 아니지. 오늘 보냈는데…… 뭘 알겠어. 우리가 파악한 만큼 따라오는 것만도 꼬박 하루는 걸릴 텐데.’
그 환자를 그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진짜 어려운 환자 아닌가.
어차피 잘 모를 만한 환자라면 조금이라도 환자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 보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게다가 그 센터라는 곳이 요새 환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아무래도 환자가 많으면 환자에 대한 의사 개개인의 관심이나 성의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따가 면회나 가 보자.’
좋은 의사인 임상 조교수는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다.
위에서 까라는데 안 깔 수 없는 입장이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냈지만, 진심으로 그 환자가 낫기를 바라고 있었다.
해서 가 보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교수님 안녕히 가십시오.”
“어, 그래. 오늘은 너도 좀 쉬어라.”
“네, 감사합니다.”
조교수는 안국태를 보내고, 곧장 태화로 향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을 김시환을 찾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