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55화 (755/1,303)

755화 불명열 (5)

“김시환 환자분?”

“네.”

김시환은 병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칠성도 그렇지만 태화 측도 친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모그룹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서일 터였다.

칠성이야 애초부터 환자를 고객으로 응대해야 한다는, 일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나왔을 정도로 강박적인 친절을 깔고 있는 곳이지 않나.

태화도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부랴부랴 칠성을 따라간 기업이다 보니, 어째 결이 좀 비슷했다.

“김성진이라는 분이 면회 요청하셨는데요. 관계를 물으니까 애매하게 답하셔서요. 혹시 어떻게 아시는 분일까요?”

“김성진……?”

“네. 김성진.”

김시환은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 사람이 여긴 왜 왔지.’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있었다.

자신을 보낼 때 꽤나 아쉬워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언젠가 칠성 병원 출신의 탁월했던 군의관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자기 손을 탄 환자라면 어떻게든 이전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듯했다.

“돌아가시라고 할까요?”

간호사는 김시환의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김시환은 딱히 감염 환자도 아닌 데다가, 병실 상황이 북적대는 상황도 아니라 딱히 면회를 제한할 필요는 없겠지만.

환자가 불편해하는 사람은 막는 게 옳았다.

“아니, 아뇨. 오시라고 해 주세요. 그…… 제가 아는 의사 선생님입니다.”

“아…… 네. 그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간호사는 뒤로 돌아서면서 의사였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칠성 병원 의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만 동네 병원 의사라고만 생각했다.

‘뭐…… 자기가 놓쳐서 미안해서 온 건가.’

이런 경우는 무척 드물긴 하지만 있기는 있지 않던가.

동네 의사 중에 정이 많거나 하는 사람이 대학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

해서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기 3호실에 계십니다.”

“네.”

하여간 자동문이 열리고, 김성진은 안으로 들어섰다.

의사다 보니 싫어도 병실을 매의 눈으로 살피게 되었다.

비록 통합진료센터가 새로 지어서 꽤 좋기는 해도, 칠성 병원도 시설은 꿀리지 않다 보니 그런 건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력 관리가…… 어마어마한데?’

인상적인 건 간호사들이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마치 특수 부대를 연상케 했다.

개개인의 능력도 능력이겠지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돌발 상황이 자꾸 발생하면 저렇게 움직일 수는 없을 터였다.

그 말은 이 병동이 루틴을 딱딱 지키고 있다는 얘기였다.

‘말이 안 되는데.’

어디 마이너과 병동이라면 가능한 일이긴 했다.

거긴 수술 전날 입원해서 수술하고 다음 날 또는 다다음 날 퇴원하는 환자들이 태반이니.

하지만 이곳은 내과 병동이었다.

그중에서도 어려운 환자들만 골라 받는다는 통합진료센터였다.

근데 이렇게 평온하다니?

심지어 처치실도 비어 있었고, 오가는 레지던트들의 얼굴 또한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일을 안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일을 너무 잘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흠. 환자분?”

하여간 김성진은 3호실에 도착해서는 문을 두드렸다.

“아, 선생님. 아이고……. 여기까지 이게…….”

애초에 증상이 없던 김시환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 앞까지 다가왔다.

상대는 다른 병원에서 여기까지 온 참 아닌가.

이 정도 마중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아뇨. 걱정돼서요. 아무래도 저희가 치료는커녕 진단도 못 하고 보내 드려서.”

“제 병이 워낙 이상해서 그렇죠, 뭐. 하하.”

김성진은 예나 지금이나 진중한 사람이었다.

김시환은 특수 부대, 즉 일종의 전문가이니만큼 이런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지 오래였다.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병실 내에 침대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김성진은 그 자리에 앉으면서 병실 내부를 살폈다.

정확히 말하면 김시환의 침대 밑을 바라보았다.

보통 거기에 환자 정보와 질환명 등이 쓰여 있으니까.

영어로, 그것도 약어로 써 놔서 환자는 알아볼 수 없지만 의료진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종의 신호였다.

특히 협진 온 의사들에게는 이런 게 도움이 되었다.

간혹 전혀 엉뚱한 환자 보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랬다.

‘HIDS……?’

당연히 진단명은 공란으로 남아 있거나 또는 불명열을 뜻하는 ‘FUO’가 쓰여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처음 보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뭐여, 저게?’

HIDS.

뭘까?

뭐지?

“선생님?”

“아, 네.”

머릿속이 복잡해지다 못해 어지러웠다.

감염내과에 투신한 지도 벌써 어언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지 않나.

그 전에 내과 수련도 4년 꽉 채워서 받은 몸이었고, 군의관도 3년 했으니 대충 내과 의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 지가 10년이었다.

근데 저건 처음 봤다.

‘에이즈(AIDS)랑 비슷한 건가? 아닌데……? 이 환자…… 아닌데?’

그 와중에 환자가 불러서 돌아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신은 딴 데 있었다.

김시환도 김성진의 상태를 바로 꿰뚫어 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뇨. 그. 환자분 진단이 여기서도 오래 걸릴 거 같아서요.”

“아……. 아아.”

김시환은 그런 김성진을 보며 조금 미안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 회진 돌 때, 이수혁 교수라는 사람이 말한 게 있지 않나.

솔직히 무슨 말을 한 건지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더랬다.

선천적으로 뭘 분해를 못 한다고 했던가?

하여간 그래서 뭐가 쌓여서 열이 나는 거라고 했다.

‘와……. 나 진짜 멍청하네.’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쌓였다는 것밖에 없다니.

진짜 뭐 같았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는 일이긴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레지던트들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그…… 뭐라고 하고 가시긴 했습니다.”

“아, 그래요? 뭐라고……?”

“정말 뭐라고 한 거라고밖에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렵던데요. 하여간 제가 뭐가 부족해서 뭐가 쌓이고 뭐…… 그……. 뭐라 그랬는데.”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듣는 김성진 감염내과 임상 조교수 또한 뭐 같단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하시는 거지?’

뭔가 말은 많이 한 것 같은데 기억나는 건 뭐뿐이었다.

“그렇군요. 음. 그…… 하여간 여기서 지내시는 건 불편하시지 않고요?”

“네? 아, 네. 뭐…… 여기는 젤 후진 방이 3인실이더라고요. 그래서 3인실인데, 옆에 환자분들도 다 좋으시고 해서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모쪼록 진단 잘 받고 쾌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고.”

“아뇨, 의사가 되어 가지고 감도 못 잡고 있다가 이렇게 보내 드렸으니 죄송하죠.”

“아닙니다. 아니에요.”

김성진은 간신히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고서 환자와 대화를 마쳤다.

다행히 하고자 했던 말은 다 한 것 같았다.

하여간 얼마간 남아 있던 부담감은 좀 가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져 있지는 않았다.

부담감이 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HIDS라는 질환명이 자리했기에 그랬다.

‘뭐야, 시벌.’

김성진은 병실에서 빠져나와 황망한 발걸음으로 병동까지 빠져나왔다.

눈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HIDS를 검색하고 있어서였다.

‘하이디에스 골드? 아니지……. 이런거 아니잖아.’

드문 질환이지 않나.

그런 게 곧장 나올 턱이 없었다.

‘침입 방지 시스템? 아니지……. 이거 컴퓨터네. 설렜네.’

게다가 현재 발전하고 있는 게 현대 의학만이 아니다 보니 별의별 학문과 영역에서 새로운 약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별의별 약어들의 홍수에 혼란스러워하며 병원을 빠져나가는 김성진을 누군가 뒤쫓았다.

‘의사라고……. 내가 아는 얼굴인데.’

안대훈이었다.

마당발을 넘어서 의료계의 슈퍼 인싸로 거듭나고 있는 그는 과장 좀 보태면 모르는 얼굴이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안대훈은 저번 학회에서 칠성 병원 원장 오성흠을 알아본 것으로 큰 공을 세운 바 있지 않나.

일부러라도 외우고 있었다.

‘그래, 분명히…… 칠성 병원 김성진이야. 안국태 밑에 있는.’

게다가 안대훈에게는 김성진이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적으로 인식되는 안국태의 제자이기에 그랬다.

“형님. 무슨 일로?”

안대훈은 황급히 뒤쫓아가면서 문자를 돌렸다.

그러자 심복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애초에 레지던트들이다 보니 죄 병원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복도에 오가다가 바로 합류한 놈들도 있었다.

안대훈은 대답 대신 턱으로 김성진을 가리켰다.

“조져요?”

“대화나 좀 하자고 해 봐.”

“네.”

김성진은 여전히 폰만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HIDS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서, 아예 걸음도 멈추고 있었다.

좀만 더 걸었으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잡히지 않았을 텐데.

‘Hyper-IgD and Periodic Fever Syndrom……?’

아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질환명이 나왔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다.

“어어. 뭐야.”

그렇게 있는데 누군가 팔짱을 꼈다.

그것도 양쪽에서.

김성진이야 살면서 이런 꼴 겪는 건 처음이겠지만 레지던트들은 누군가를 연행하는 게 처음이 아니지 않나.

오성흠에 이어 성기훈 환자까지.

이제는 숙달된 움직임마저 보여 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니들 이거 뭐야!”

도와주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필 팔짱 낀 놈들이 죄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어서 그랬다.

다른 곳에서라면야 당연히 말리겠지만, 여긴 병원이지 않나.

의사 가운이 깡패보다 더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난동 부리나 보다…….”

“나 이런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빨리 잡아가세요. 병원에서 뭐 하는 짓이야. 얼굴은 멀쩡하게 생겨서.”

“아니, 나는…… 나는!”

김성진은 속절없이 붙들려서 병원 지하 강의실로 향해야만 했다.

“당신…… 당신은 누구야.”

그리고 안대훈을 대면했다.

“김성진.”

“아니……. 그걸 어떻게.”

안대훈은 미드에서 봤던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CIA 요원이 나쁜 놈들 잡아다가 심문하는 장면.

하지만 김성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김상호뿐이었다.

“칠성의 감염내과 임상 조교수께서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오셨죠?”

물론 잠시뿐이었다.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안다.

그것도 너무도 정확하게.

심지어 생긴 것도 무섭게 생겼다.

“어……. 아니, 그게.”

“프락치 뭐 그런 건가?”

안대훈은 그런 바짝 언 김성진을 보며 전화기를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혁에게 걸었지만, 실제로 부른 건 이현종이었다.

- 너 재능 있어. 수혁이가 이런 쪽으로는 젬병이니까 우리가 잘 보호해 주자고.

이런 말을 들은 바 있어서 그랬다.

“프락치?”

“네.”

“어디야!”

게다가 이현종은 특히나 프락치라고 하면 눈깔이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