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56화 (756/1,303)

756화 불명열 (6)

‘아니, 이게…….’

김성진은 태어나서 제일 당황한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면 의사 인생이 힘들기는 해도 당황할 만한 순간이 그리 많을 수는 없지 않겠나.

환자가 안 좋아지면 당황스럽지 않냐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일일이 당황하다 보면 절대로 의사 노릇은 할 수 없는 법이었다.

강의실을 벗어나 병원으로 와 진짜 의사가 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침착이었다.

적어도 침착을 가장하는 법이라도 배워야만 했다.

본능을 꺾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의사들이었으니.

‘이게 시발 대체 무슨 일이야.’

김성진은 본인이 내과 의사에 참 잘 맞는다 여기고 있었더랬다.

여간해서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환자를 돌보아 오지 않았나.

해서 김성진은 나는 참 무던한 성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끼익.

하지만 남의 병원에서 붙잡히고 나니까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큐리티에게 잡힌 것도 아니고 의사에게 잡힌 상황이었다.

그것도 웬 대머리가 주동하는 의사 무리.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이 의사인지 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구겨진 의사 가운과 후줄근한 크룩스, 그리고 떡진 머리 등등을 보면 의사 그 자체이기는 했지만.

‘뭔 놈의 의사들이 사람을 붙잡아 두냐고.’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딨어.”

그리고 그 끝판왕이 나타났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서.

‘어……. 이현종 원장님…….’

제아무리 다른 병원 사람이라고 해도 모르기는 쉽지 않은 얼굴이었다.

의학계에서만큼은 슈퍼 스타이지 않나.

나이가 좀 있으니 BTS랑 비교하는 건 좀 그렇겠지만 조용필이나 나훈아급은 된다고 보면 되었다.

대한민국 의료계 최초의 월드 스타, 그것이 이현종이었으니.

“이놈이야?”

심지어 최근엔 위인전도 나왔더랬다.

물론 태화에서 힘을 많이 쓰기는 했겠지만.

하여간 <심근경색 환자들의 희망이 된 의사>라는 제목으로 위인전 시리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위인은 김성진을 내려다보며 눈알을 부라렸다.

“너 뭐야, 인마. 칠성 놈이 여긴 왜 왔어. 알아보니까 오늘 딱히 학회도 없고 집담회도 없던데.”

험한 말을 하면서였다.

동시에 치밀하기까지 했다.

여기 붙잡혀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원내 행사를 다 알아봤단 말인가.

“말이 없네. 혀라도 뽑았나?”

이현종은 덜덜 떨고 있는 김성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이놈이라면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만약 김성진이라는 놈이 수혁이에게 위해라도 가하려 했다면 진짜로 혀를 뽑았을 놈이었다.

“네? 아뇨. 그냥 여기 갖다 두기만 했습니다.”

물론 안대훈은 좀 황당했다.

‘제가 미친놈인가요?’

세상 누구보다 멀쩡히 잘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지 않나.

무엇보다도 수혁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몸가짐을 최대한 정결히 하기 위해 머리까지 빤딱빤딱하게 광도 내고 하지 않나.

“그래? 진짜야? 뭐 때리거나 하진 않았고?”

“하하. 저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현종은 어쩐지 뒷말이 생략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미타불이라든지 아니면 행자님이라든지.

하여간, 불법은 안 저지른 모양이었다.

믿기진 않지만 적어도 안대훈이 자기 앞에서 거짓을 고할 놈은 아니라는 걸, 이현종은 굳게 믿고 있었다.

‘약간 나를 신성한 무언가로 보잖아.’

수혁의 양아버지 또는 수혁이 인정한 또 다른 신의 사도로 생각한다는 말을 조태진에게 전해 들은 바 있었다.

‘미친놈이.’

조태진은 진짜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안대훈도 그렇고.

물론 이현종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듣고도 같이 일할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을 테니.

“하여간…… 우리 칠성 병원 감염내과 임상 조교수 김성진 씨는 여기 왜 왔을까?”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확히 말하면 무릎을 꿇고 있는 김성진 앞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김성진은 그걸 보면서 신세계를 떠올렸다.

‘와……. 드럼통은 없지?’

생각해 보니까 태화 의료원은 한강과 그리 멀지도 않지 않나.

매년 거기서 발견되는 변사체가 꽤 된다던데.

나도 그렇게 되려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왔냐고.”

안 그렇게 되려면 일단 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잘못한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도 몰아붙이니까 진짜 프락치질이라도 하러 왔었나 하는 착란이 생겨서 떨고 있었다.

“아, 저. 환자 보러요.”

“환자를 봐? 이 새끼들이. 우리한테 환자 보내고 나니까 억울하다 이건가?”

해서 솔직하게 말했더니, 오해를 샀다.

“네? 아니, 억울한 게 아니라요.”

“그럼 우리 환자를 왜 봐.”

“아니, 제가 보낸…… 보낸 환자를 보러 온 겁니다.”

“니가 누굴 보냈는데.”

“김시환 환자분이요.”

“아.”

해명을 열심히 했다.

다행히 이현종은 환자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이라 김시환을 바로 떠올렸다.

“그 환자를 보내고 보러 왔다고? 왜?”

“그…… 제가 진단을 못 해서……. 좀 걱정이 돼서요.”

“네가 진단 못 하는 건 상수잖아.”

“네?”

김성진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상수?

많이 쓰던 단어 같은데 갑자기 들으니까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안대훈이 나섰다.

예의 그 엄숙한, 다분히 종교적인 얼굴을 하고서였다.

“칠성 놈들이 진단 못 하는 게 그렇게 걱정할 일인가, 뭐 이런 말씀이시다.”

“아니, 그건 너무 모욕적인…….”

“그래서 네가 진단했어?”

“아……아뇨.”

제자도 스승도 쌍으로 무례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팩트로 무장한 무례는 종종 사람을 꺾는 힘을 지니는 법이었다.

심지어 김성진은 이미 환자 발치에 쓰여 있던 진단명, HIDS에 마음이 꺾여 가던 참이었다.

세상에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난생처음 보는 진단명이 떡하니 박혀 있을 줄이야.

환자를 보낸 지 한참 지났으면 또 모르겠는데 보낸 지 이제 겨우 만 하루도 안 지난 참이었다.

‘나는…… 나는 모자라구나.’

어쩐지 혼나고 있기도 하고 해서 김성진은 고개를 떨구었다.

이현종은 그걸 보면서 칠성 놈치고는 그래도 자기를 잘 아는 놈이구나 싶었다.

해서 아까보다는 다분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여간 진단을 못 해서 걱정이 됐다? 이건 무슨 뜻이지?”

물론 이현종 입장에서 부드러워진 것일 뿐, 객관적으로는 여전히 날 선 목소리였다.

원래도 칠성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수혁이 사건에 이어 박국진 사건까지 겪었다 보니, 칠성이라고 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그래도 저랑 연이 생긴 환자이지 않습니까. 끝까지 옆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좀 걱정이 돼서요.”

“태화로 보냈으면 어련히 잘하겠거니 해야지?”

“그게 마음처럼 되나요. 전 의사인데요. 지정의는 아니었지만 거의 뭐 제가 지정의처럼 본 환자기도 하고요.”

“흠.”

이현종은 마음이 좀 푸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놈이 자기 환자가 걱정이 돼서 여기까지 왔다 이거지?’

의사가 환자 걱정하는 거야 노상 있는 일이긴 했다.

실제로 외래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어서 따로 전화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하지만 전원 보낸 환자를 찾아와?

이건 실로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칠성 놈답지 않구나.”

“네?”

“풀어 줘. 프락치는 아닌 거 같으니까?”

“네? 안국태 제자입니다!”

“그 새끼 머리 나빠서 프락치는 못 써. 생각해 보니까……. 오성흠이 직접 키운 놈이라면 모를까 안국태는, 그놈은 소인배야. 머리 싸움할 깜냥도 못 돼.”

이현종의 말에 안대훈이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우악스럽게 김성진을 붙들어 매고 있던 레지던트들이 뒤로 물러났다.

김성진으로서는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뜨악스럽기도 한 상황이었다.

‘와……. 내가 그래도 제잔데……. 앞에서 교수님 욕을 이렇게 하시네.’

거의 무슨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느낌이지 않나.

물론 안국태가 좀 개새끼긴 했다.

외부에서도 싫어하지만 안에서는 그 열 배는 되었다.

대개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지 않던가.

안국태가 칠성 안에서 행한 악행을 열거하자면 거의 끝도 없을 지경이었다.

“근데 넌 칠성 놈답지 않아.”

“네?”

“애가 좀 괜찮은 거 같단 말이지.”

이현종은 김성진의 생각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다만 김성진의 됨됨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환자가 걱정이 돼서 왔다……. 진짜 같아. 이건…… 나쁜 놈은 이런 거짓말도 못 해.’

이현종이야말로 환자를 보기 위해 일생을 바쳐 왔다고 해도 무방한 인간이지 않나.

이기자랑 잘되기 전까지는 의학과 결혼했다고 공공연히 떠들 정도였다.

심지어 그 말에 다른 이들이 토를 달지도 못했다.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이현종이라면 자격이 있다고 여겼기에 그랬다.

영국에 엘리자베스가 있다면 태화에는 이현종이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칠성에서 나쁜 물 들기 전에 우리가 빼 와야겠어.’

하여간 이현종은 김성진을 데려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이현종은 원래 고민 같은 걸 안 하는 사람이지 않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쪽이었다.

“네?”

듣는 사람도 되는대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한다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이현종은 본인이 어찌 행동하건 간에 무게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가 세운 업적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현재 지위도 원장을 제외하면 더 위에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한 지위였다.

심지어 원장도 사실상 꼬붕이지 않나.

‘어……. 갑자기 스카우트 제의를 해?’

김성진은 혼란스러웠다.

주마등처럼 로비에서 붙들려 와서 무릎 꿇게 된 일이 휙휙 지나갔다.

오히려 드럼통 엔딩이 더 어울리는 전개가 아니었을까?

“어때. 안국태 밑에서 솔직히 너 뭐 배우냐?”

“어…….”

그때 몸쪽으로 꽉 찬 직구가 쏟아져 들어왔다.

뭘 배웠나.

없었다.

안국태가 의사로서의 역량이 살짝 후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교수급은 되었으니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제자 양성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그는 오로지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여기 오면 나랑 수혁이한테 배울 수 있어. 여기 안대훈 선생도 군 펠로우 할 거야. 이렇게 보여도 머리 좋은 친구야.”

“교수님, 이렇게 보인다는 게…… 무슨……?”

“가서 거울 봐.”

“어…….”

그 와중에 안대훈이 좀 맞기는 했는데, 하여간 김성진의 마음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곳, 태화의 통합진료센터는 배움을 원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에덴동산이니까.

다만 확인이 필요했다.

소문이 사실인지.

해서 김성진은 아까부터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대체…… HIDS가 뭡니까? 그리고 그 진단명이 어떻게 나온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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