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화 인재도 빼 가요? (1)
“후후.”
이현종은 절실한 김성진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나도 몰라, 새꺄.’
속으론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까 수혁에게 듣기는 했더랬다.
이해도 했고.
하지만 한번 듣는다고 질환에 대해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괴물이지.
‘역시…… 이현종…….’
그러나 이현종의 얼굴은 뻔뻔하기 그지없어서, 김성진은 이현종이 당연히 잘 알고 있을 거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아니, 이현종이 홀로 진단했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이수혁도 유명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혁과 이현종을 비교하는 건, 적어도 외부 인물에게는 어불성설이었다.
“일단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김성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현종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김성진의 실력은 미지수였다.
하지만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안국태 그 새끼 밑에서 3년 넘게 굴렀으면…… 실력이 있는 거야.’
대학 병원이라는 곳이 남고 싶다고 해서 남을 수 있는 곳은 아니지 않나.
심지어 그저 계약직일 뿐인 임상 조교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끌어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 병원 교수들은 부려 먹을 땐 제자, 필요 없을 땐 남보다 못한 존재로만 여겼다.
안국태는 특히나 개새끼기 때문에 그러한 면이 훨씬 심할 터였다.
‘빼 오자.’
당장 내년이 걱정인 상황이었다.
물론 이현종은 남은 여생 동안 수혁이랑 둘이서만 보라고 해도 괜찮았다.
석좌 교수 끝나는 70세에도 은퇴 안 하고, 자발적으로 임금 깎아서 진짜 머리 돌아갈 때까지는 있을 작정이기도 했고.
하지만 수혁은 어쩐단 말인가.
이미 늙은 자신과는 달리 수혁은 갈 길이 창창한 사람이었다.
쓸 만한 제자들과 인재들을 옆에 붙여 주어야만 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이현종은 방금 입을 연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영험한 인상의 대머리.
현재 확보한 유일한 인재였다.
‘이놈보다야 못하겠지. 아무래도…… 나이도 수혁이보단 위고. 그래도 뭐. 애가 순해 보여.’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지 않나.
제아무리 붙잡혀 온 몸이라 해도 와서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있어?
막말로 쥐어팬 것도 아닌데?
이현종은 허허 웃으며 센터 쪽을 가리켰다.
“센터로 가자고. 거기서 얘기해 봐야지.”
“네? 거기는 저희 기밀이.”
“기밀이 어딨어, 인마.”
“있긴 있습니다만.”
“아, 회원? 괜찮아. 그렇게까지 깊이 말 안 해.”
“네네.”
안대훈은 이현종의 다독거림이 있고 나서야 안심했다는 얼굴이 되어 앞으로 나섰다.
그제야 김성진은 지하 골방 같은 강의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여전히 레지던트들에 의해 포위당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하여간 옆에 이현종이 있다 보니 아까보다는 마음이 나았다.
“저 교수님…….”
“왜.”
“근데 왜 이렇게까지 보안에…… 저는 첩자가 아닌데요.”
“프락치라고 하면 이가 갈려서 그래. 게다가 칠성 놈들은…….”
“아니, 그게. 칠성 입장에서는 참 이게 기분이 말입니다.”
“그럼 가서 안국태한테 물어봐. 좋은 놈인지. 그놈도 차마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은 못 할 거다.”
“그…….”
안국태가 좋은 사람이라고?
김성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수들이 저마다 단점을 쥐고 사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안국태는 어떤 선을 넘어가 버린 인간이었다.
심지어 칠성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개새끼라는 욕이 나오면 대개 안국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까지 쓰이고 있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들어가자고.”
이현종은 김성진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센터 내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같이 느긋한 분위기였다.
실제로 환자들의 질환이 가벼워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진단과 처방 그리고 처치가 완벽해서 그럴 뿐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까지는 모르는 김성진으로서는 여기 되게 편하겠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혁이 있나?”
“네.”
“걔는 왜 집에를 안 가?”
“공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뭐. 그래야 우리 수혁이지. 아무튼, 오라고 해야겠네.”
이현종은 김성진을 안에 앉힌 다음, 수혁을 불렀다.
수혁은 마침 입이 심심해서 뭐라도 먹을 생각으로 책상에서 일어나고 있던 참이었다.
공부할 때 딴짓하는 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지랄하는 것이 바루다이지만, 먹는 행위에 대해서만은 예외여서 꽤 여유로웠다.
“네?”
“어……. 칠성 임상 조교수 선생 하나가 왔어.”
“네?”
해서 지하 편의점으로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아빠였는데, 여느 때처럼 이상한 소리를 했다.
‘무슨 소리지.’
[저도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대체 왜…….]
칠성이랑 지금 거의 전쟁 중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 아닌가.
근데 거기 사람이 왔다면, 프락치일 터였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겠지만.
이현종과의 대화로 인해 머리가 절여진 지 오래인 수혁으로서는 일단 프락치부터 떠올렸다.
‘근데 왜 목소리가 밝으시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가 보죠.]
‘그래. 가 보자.’
배고픔이 싹 달아날 정도로 궁금해졌다.
“아, 이분……이세요?”
얼마나 이상한 놈일까.
진료 시간 후에 남의 병원에 염탐하러 오는 놈은.
수혁은 벌써 몇 번이나 지가 그런 짓을 아니, 그보다 훨씬 더한 짓을 저질러 왔다는 것은 완전히 잊은 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김성진은 생각보다 훨씬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아, 네. 그.”
김성진은 어쩌다 내가 이런 자리에 왔을까,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인사는 받았다.
뭐가 되었건 상대는 교수이지 않나.
임상 조교수가 아니라, 정식으로 임용된.
게다가 부센터장이라는 지위까지 있었다.
“네가 오늘 진단한 병에 대해서 얘기 좀 해 줘라. 어떻게 했는지.”
“오늘 진단한 병이 한두 개가 아닌데.”
“아, 그. 칠성에서 보낸 환자. 김시환.”
“아……. 그 환자요. 엥? 그럼 혹시?”
“어, 그 환자 원래 보던 친구래. 잘되고 있나 걱정돼서 왔대. 감히 태화에 보내 놓고 걱정한다는 게 건방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견하지.”
수혁은 이현종의 말하는 투와 표정을 보며 바로 알아차렸다.
‘아……. 아빠가 이 사람 데려오고 싶어서 욕심내는 거구나.’
이현종이 딱히 성질이 유난히 더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본인이 너무 우수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남보고 대견하네 어쩌네 하는 사람이 아니란 얘기였다.
해서 수혁은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김성진을 대하기로 했다.
설마하니 칠성 사람이 여길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뭐 잘해 줘서 나쁠 건 없겠단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Hyper IgD and Periodic Fever Syndrom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수혁의 깔끔한 설명에도 김성진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병인데요.’
이런 질문이 목구멍 입구에서 왔다 갔다 했다.
아예 처음 들어 보는 진단명이기에 그랬다.
[이 양반 전혀 이해 못 한 얼굴인데요?]
불행하게도 수혁에겐 바루다가 있었다.
그리고 바루다는 그간의 훈련 및 데이터 수집을 통해 상대 얼굴 읽어 내는 데 있어선 완전 천재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게. 할 수 없지.’
수혁은 역시 칠성은 엉망이고 안국태의 제자라면 더 엉망이구만, 하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생화학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 생각하고 있었다.
“아, 네.”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생화학이라니?
그런 단어 들어 본지도 어언 10년이 훌쩍 지난 마당이었다.
노력을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임상이 그리 녹록지 않아서였다.
환자 보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만 공부하기도 빡세 죽겠는데 어느 세월에 생화학까지 건든단 말인가.
“메발로네이트 대사에 연관된 병이에요. 두 가지 폼이 있어요. 보다 심각한 형태, 즉 대사가 아예 안 되는 상황이라면 메발로닉 액시듀리아(Mevalonic Aciduria)로 분류됩니다. 따로 클래식 타입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예후가 지극히 나빠요.”
“아, 네.”
하여간 김성진은 들으면서 더 혼란스러워져 가고 있었다.
상대 태도를 보니 이런 건 알아야 한다는 투 아닌가.
심지어 옆에 있는 이현종이랑 수상한 대머리도 무언가 알고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실제로도 반쯤은 그렇긴 했다.
이현종은 그 우수한 머리 덕에 두 번째 듣고 나니 완전히 이 질환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안대훈은 그냥 이수혁이 옳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여간에 둘 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 김성진으로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시환 환자가 보이는 증상은…… 종합해 보면 훨씬 경미하죠. 대개 발열 에피소드 정도만 컨트롤해 주면 됩니다. 아시겠지만 메발로닉산은 콜레스테롤 대사와 연관이 있잖아요?”
“아……. 네.”
김성진은 ‘나는 바보구나’라고 되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건 칠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온 느낌인데 너무 무식해 보이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랬다.
‘무식한…….’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그다지 침착한 상태도 아닌 김성진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분석 당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가 개뿔도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 죄다 수혁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 보충 등은 딱히 도움이 안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환자에서는 그저 대증적 치료만이 가능한 셈이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상태가 될 텐데…… 그나마 왜 열이 나는지 알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아, 그렇군요. 알고 열이 나는 것과 모르고 열이 나는 건…… 천지 차이죠. 사람 마음이 그렇죠. 네네.”
“그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혁도 김성진의 됨됨이가 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무식한 거야 때려 패서라도 가르치면 되지 않겠나.
수혁이나 이현종이나 하여간 남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큰 문제가 되진 않을 터였다.
부우웅.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으려니 핸드폰이 울렸다.
당직용 폰이었다.
“아, 환자 왔네.”
수혁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전화를 집어 들었다.
‘뭐지. 잘못 본 건가.’
김성진은 그런 수혁을 보며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느꼈다.
안국태에게 이 시간에 전화가 응급실에서 다이렉트로 왔다?
바로 발길질도 다이렉트로 날아갈 터였다.
굳이 그런 막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실 이 시간에 환자 오는 걸 반가워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의사도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밤에는 자고 싶으니까.
“그래요? 갈게요.”
하지만 수혁은 들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현종, 안대훈도 들떠 있었다.
“환자래? 가자.”
“가시죠!”
김성진은 여기가 이세계인가 싶었다.
뭔가 세계관이 다른 느낌이랄까?
‘어…….’
정신을 차려 보니 응급실에 같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