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화 인재도 빼 가요? (2)
태화 의료원의 응급실은 언제나 그렇듯 아비규환이었다.
외래 진료 시간이 끝나면 환자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들기에 그랬다.
원래 같았으면 다른 병원으로 갔어야 할 환자들까지 태화를 원해서 더더욱 혼잡스러워지고만 있었다.
질환이 가벼운 것 같아도 일단 큰 병원에 가고픈 사람의 심리 때문이었다.
태화에서도 119에서도 가급적 그러한 상황을 막으려 하고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 병원 부담은 갈수록 더 심해져만 가고 있었다.
“아, 여기 언제 봐 주냐고!”
물론 병원 시스템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다.
응급실이라는 곳이 별거 아닌 질환을 빨리 봐 주는 곳이 아니지 않나.
말 그대로 응급한 질환을 응급하게 봐 주는 곳일 따름이었다.
별거 아닌 질환인데 떼써서 온 사람은 자연히 계속 뒤로, 기약 없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세요.”
“아까부터 기다리라며!”
“그럼 어떡해요. 더 아픈 사람들이 계속 오는데.”
“나도 아파!”
“네네.”
심지어 응급실 특성상 일하는 사람들이 그리 친절하지도 않았다.
화가 왈칵 샘솟았지만, 환자들 중에 실제로 화를 내면서 의료진에게 달려드는 이는 거의 없었다.
“환자분,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아……. 네.”
일단 위압적인 인상의 시큐리티들이 응급실에 상주하고 있었다.
사실 태화나 칠성, 아선 등과 같이 기업을 끼고 있는 병원들은 모그룹이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어느 정도 정치권에 로비를 하고 있었더랬다.
로비라고 하면 무언가 음습한 것부터 떠오르기 십상이겠지만, 적어도 병원 측의 요구는 꽤 정당한 것이었다.
의료진 폭행에 대한 가중 처벌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밍기적대고만 있었다.
심지어 환자 단체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아픈 사람이라면 의료진을 때릴 수도 있다!’
이게 진짜로 한 말이었는데,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한쪽이 강경하게 나오고, 또 그쪽이 표가 더 많은 쪽이라면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해서 대형 병원들은 일종의 자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의 시작이 시큐리티 배치였다.
- 의료진에게 폭언 또는 폭행을 행사하실 경우 앞으로 진료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진료 제한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팰 때는, 이제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집단과는 영원히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한데 웃긴 게 응급실에서는 불만이 많아서 사람까지 때린 사람들이 진료는 계속 보길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태화, 칠성, 아선은 모두 이러한 문구를 앞에다 적어 놓았다.
물론 이런다고 진짜 안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당한 이유 없는 진료 거부는 불법이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폭행은 정당한 이유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니까.
‘아이고……. 여기도 똑같구나. 그래도 난동 부리는 사람은 없네.’
하여간 문구와 시큐리티가 상당한 억제력을 발휘해 준 덕에 응급실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은 없었다.
김성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쩐지 들뜬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이현종, 이수혁 그리고 안대훈의 뒤를 따랐다.
‘근데 난 왜…….’
왜 따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같이 가자니까 왔다.
이날 이때껏 어른이 하자는데 감히 눈앞에서 안 한다고 한 적이 없어서 그랬다.
‘뭐……. 대단하긴 해. 그런 병이 있었다니. 아니,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의심할 수 있다니…… 대체 머리가 얼마나 맑은 거야?’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이들에 대한 흥미도 있기는 있었다.
하여간 어려운 진단을 해내지 않았나.
게다가 소문도 무성했다.
아무래도 칠성에 있다 보니 그 소문이 계속해서 와전되고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센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특히 레지던트 레벨에서는 태화를 향한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어디야?”
“아, 저기입니다.”
“아.”
그사이 이현종은 복잡한 응급실 가운데 서서 서성이고 있었다.
안대훈의 치밀한 안내가 있고 나서야 환자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환자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산소 포화도에 나타난 수치는 100%.
‘공황인가?’
‘놀라서?’
실제로 숨이 차다면, 아무리 몰아쉬고 있더라도 포화도가 저렇게까지 올라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심지어 이 환자는 산소도 안 주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교수님. 어……. 이렇게 많이.”
노티했던 레지던트가 당황한 얼굴로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안대훈 및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도 끼어 있긴 한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불렀더니 다 내려온 게 신기하고도 부담스러웠다.
“뭐, 어떤 환자지?”
특히 맨 앞에 선 이현종이 그랬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얼굴이지 않나.
환자 보러 온 주제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까 잡수실 거 같은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어려운 환자일수록 좋아한다!’
레지던트는 언젠가 들었던 중대한 인계 사항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워낙 거물 앞이라서 그런가 달달 떨려 왔지만, 고작 떨리는 것 정도로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서툰 수련을 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태화는, 그중에서도 태화 내과 의국은 만만치 않은 곳이었으니까.
“환자 22세 남자로 특별한 기저 병력은 없습니다. 금일 오후 8시경 알바 끝나고 수영하다가 실신하여 119를 통해 본원 응급실로 내원하였습니다. 우선 머리 쪽 의심하여 CT 및 MRI 시행하였으나 이상 없었고, 신경과 협진도 보았으나 내과적 원인 또는 정신과적 원인 감별하라는 의견을 받아…… 협진 의뢰드렸습니다.”
사실 레지던트가 바랐던 것은 그저 전화 통화였다.
통합진료센터의 레지던트가 내려오고 이런저런 검진을 해 본 후에 수혁이나 이현종에게 의견을 묻는 것.
그것만으로도 현장에서는 어마어마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그랬다.
그런데 직접 내려올 줄이야?
‘내가 엄청 어렵다고 했나? 아닌데?’
예상을 벗어난 움직임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은 원래 마음대로 사는 인간이고, 수혁도 즉흥적인 편이었으니.
게다가 지금은 누군가를 꼬시려고 안달이 난 참이었기 때문에 딱히 전화가 없어도 억지로 끌고 와 응급실 순회공연이라도 하려 했던 참이었다.
“그래? 실신? 신경과적인 원인은 아니라, 이거지?”
“네, 그렇습니다.”
이현종은 자기 노티를 되짚어 보고 있는 레지던트를 향해 물었다.
실신에 대해 곱씹어 보면서였다.
“그러니까…… 뭐 경련이나 이런 건 없었다는 거야?”
“아, 네.”
“뇌파 검사로 감별이 됐어? 이 시간에 해 보기 어려웠을 텐데?”
“아……. 그건 그냥 문진으로 확인했습니다. 119로 같이 수영하던 사람이 와서요.”
“완전히 감별된 것은 아니로군.”
“아……. 네.”
“하여간…… 이러한 실신에서 머리 말고 또 흔한 원인이 뭐가 있지?”
“네?”
“원인. 뭐가 있냐고.”
이현종은 환자를 슥 하고 내려다보았다.
젊디젊은 환자였다.
수영장에서 바로 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젖었는데, 그럼에도 풍성해 보일 정도로 젊었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려면 반드시 몇 가지 선행 조건이 있어야만 했다.
“아……. 그. 심장입니다!”
“그래, 심장. 심전도 찍었겠지.”
“네, 네. 여기 있습니다. 빈맥입니다.”
“빈맥이라.”
이현종은 환자의 손목을, 그중에서도 엄지 쪽으로 흐르는 노동맥을 짚으며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레지던트는 환자가 오자마자 찍었던 심전도를 보이며 떨고 있었다.
‘하필 심장이네. 그러고 보니까.’
심장에 있어서만큼은 이현종이 월드 스타이지 않나.
교과서에 나온다 어쩐다 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여전히 심혈관 질환에 있어서 이현종의 말은 법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계속해서 기술을 선도해 나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심혈관이 아닌 다른 방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심장이라고 하면 세계 최고라는 말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이현종이었다.
“빈맥이 계속 유지가 될까?”
“네?”
“이 환자. 지금도 빈맥일 거 같냐고.”
“어, 그건.”
심전도는 기본 검사였다.
어떤 환자가 와도 시행하는.
그만큼 중요한 검사라는 얘긴데,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래서 무시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실제로 뻔히 심전도 찍어 놓고 거기 떠 있는 심장 이상을 놓쳐서 환자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표되지 않았나.
물론 응급의학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증가하면서 이런 일이 줄고는 있었지만.
하여간 레지던트도 한번 찍고, 빈맥인 것을 확인하고부터는 잊고 있었더랬다.
“다시 찍어 봐.”
“아, 네.”
하지만 심전도는 그때 당시의 심장 움직임을 보는 것이지 않나.
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괜히 부정맥이 의심될 때 24시간 홀터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또 지금과 같은 응급 상황에서는 더더욱 자주 봐주는 것이 좋았다.
특히 심장으로 인한 실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더더욱 그랬다.
‘뭐지. 뭘까.’
반강제적으로 끌려 왔던 김성진은 이제 케이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앞에서 사람이 혼나고, 부리나케 뛰어다니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직함이야 임상 조교수를 달고 있다지만, 여전히 을의 입장으로 살고 있다 보니 레지던트에 대한 이입이 더 잘돼서 그런 것도 있었다.
드르륵.
하여간 레지던트가 찍은 심전도가 곧 출력되어 나왔다.
“어때. 빈맥이야?”
“아.”
아직 반도 채 다 안 나온 참이었지만.
빈맥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화가 확연했다.
하지만 그게 또 다가 아니었다.
“어때, 소견은.”
“어…….”
레지던트.
그러니까 응급실에서 노티했던 2년 차는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레지던트는 달랐다.
‘새끼, 안달 났군.’
이현종은 정수리 쪽이 뻘게져 가고 있는 안대훈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하여간 공부 열심히 하는 놈이었다.
그리 어려운 소견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대충 봐서 알 수 있을 만한 것도 아닌데.
아무튼, 레지던트가 이런 걸 바로 알아맞히는 걸 보여 준다면 김성진에게도 자극이 될 터였다.
이현종은 그렇게 생각했다.
“안 선생. 넌 뭐가 보여.”
“아, 네. 1도 방실 차단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부정맥이 있어. 그래서 서맥이 발생하는 거야. 분당 50회가량밖에 안 되잖아. 일반적이지 않지.”
“네. 헌데 환자는 기저질환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증상이 없었다는 얘긴데…… 워크업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지. 그래. 그럼 뭘 더 할 수 있지?”
“하고 싶은 검사야 많지만……. 응급실이라는 걸 고려할 때 역시 심초음파가 좋겠습니다.”
“좋아!”
이현종의 마음에도 쏙 들 정도로 유려한 대답이었다.
곁눈질로 보니 수혁 또한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 우리 레지던트가 이 정도다!’
이현종은 ‘너도 오면 더 잘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얼굴로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김성진은 의외로 별생각이 없었다.
아까 뭐라고 들었던 건 죄다 까먹은 지 오래였다.
갑자기 병원에서 잡혀서 무릎 꿇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안대훈에 대한 정보는 지금 안대훈이 보여 주는 모습뿐이었다.
‘역시 교수구만.’
해서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