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화 인재도 빼 가요? (3)
번뜩이는 머리.
노회한 웃음.
그리고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저 완벽한 논리까지.
안대훈이야말로 영락없는 교수 아닌가.
오히려 수혁이 훨씬 어려 보여서, 정보 없이 보면 일개 레지던트로 보일 지경이었다.
“흐음. 환자분. 일단 머리 쪽 원인은 배제한 상황입니다. 물론 뇌파 검사 등의 검사를 하지는 않아서 100% 이렇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현재로선 심장에 대한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아……. 네.”
김성진이 터무니없는, 그러나 합당한 의심에 빠진 동안 이현종은 환자에게 초음파를 들이댔다.
무턱대고 들이대진 않았다.
심혈관만 볼 때는 어차피 의식이 없어서, 마치 수술방에서 집도의가 하듯 해 왔었지만.
초음파까지 욕심을 내기 시작한 후로는 나름 환자와 이럴 때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좀 차가워요.”
“네. 으.”
이현종은 프로브에 젤을 쭉 짜낸 후, 환자의 심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
이현종은 딱 보자마자 인상을 썼다.
기저질환 없이 살아왔다고 하기엔 환자의 심장이 영 별로였기에 그랬다.
심전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소견들이 심초음파에서는 훨씬 명확하게 보였다.
‘이런.’
수혁에게도 그랬다.
우선 양쪽의 심실이 늘어져 있었다.
그 말은 곧 심장 기능 부전이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껏 별 증상 없이, 심지어 수영까지 하면서 살 수 있었던 건 그저 젊음 덕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마 여기서 10년, 20년만 지났다면.
아니, 사실 내일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소견이었다.
“안 선생. 어떤 거 같아.”
하여간 이현종은 안대훈에게 물었다.
대훈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일단 양측 심실이 비대해져 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심박출량은 44%로 아주 많이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리고?”
보통의 레지던트라면 여기까지 말한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심장만 전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제 내과는 3년제가 되어 버렸다.
교수들은 애써 부정하고 있으나, 4년제에서 3년제가 되면서 실력들이 내려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인 교수들이야 어차피 펠로우 할 때 부려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레지던트 때의 배움을 중요시하는 이현종에게는 그 차이가 아주 잘 보였다.
‘넌 더 봐야지.’
하지만 이현종은 적어도 안대훈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안대훈이 수혁의 부하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부 열라게 하잖아?’
교과서 수준은 이 녀석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언젠가부터 안대훈이 심장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다고 느끼고 있을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있는 펠로우들 모두 안대훈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만큼 안대훈은 진짜배기 노력가였다.
물론 태화 의료원에 들어올 만큼의 머리도 있는 녀석이었고.
“이게 맞게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레지던트라는 걸 감안하고 들어 주십쇼.”
“네?”
안대훈은 답변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레지던트 언급을 했는데, 그러자 여태껏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김성진이 끼어들었다.
“네?”
아주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안대훈도 황당해서 그런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김성진은 안대훈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뜯어볼 수 있었다.
머리가 없기는 해도 어려 보이기는 개뿔, 역시나 완연한 교수의 얼굴이었다.
‘아니, 근데. 이런 말은 실례잖아.’
솔직하게 말하면 반드시 실례가 되는 상황들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이 그랬다.
“그, 어.”
김성진은 안국태 밑에서도 잘 지내고 있을 만큼 심성이 고운 사람 아닌가.
다른 사람한테 상처 될 만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뜻이었다.
해서 머리를 열라게 굴렸다.
“그. 하하. 여기서 더 뭔가를 봤다는 게 너무 대단해서요. 저는 진짜 모르겠는데요.”
다행히 놀랄 만한 상황이기는 해서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었다.
‘레지던트라고…… 늦깎이겠지?’
여전히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는 있었지만.
하여간 김성진은 위기를 넘겼다.
“아, 네. 그…… 사실 정확한 건 아니에요.”
평소의 또라이 같은 모습이 아닌, 의사 모드로 화한 안대훈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대신 진중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초음파 기기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좌심실의 측벽을 보시면…….”
“그래, 거기.”
“육주(심장 근육이 불규칙하게 융기한 상태)가 좀 과도하게 관찰되는 거 같습니다.”
“육주라고 하면?”
“트라베큘레이션(Trabeculation)…… 심장의 기둥이 좀…… 과도하게 드러나 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현종은 그냥 벽이 좀 얇지 않나요?
이 정도 답만 기대하고 있었다.
수혁도 그랬다.
‘이거…… 진짜 드문…… 드물다고 하기에도 뭐한 소견인데.’
[그러니까요. 솔직히 수혁도 2주 전까지는 모르지 않았습니까?]
‘그랬나? 내가?’
[불리한 거는 꼭 이렇게 기억 안 나는 척하는데, 나중에 정치라도 하려고 그러십니까?]
‘정치? 내가?’
[열 받게 하네…….]
심지어 수혁조차 2주 전에 공부하다가 우연히 본 소견이었다.
그냥 넘어가려다가, 바루다가 그래도 검색되어 나온 논문은 제목이라도 다 보라고 해서 누른 것이 발단이었다.
세상에 이런 병도 다 있을 줄이야.
근데 이 상황은 그 논문에 나온 것보다도 훨씬 드문 상황이었다.
‘성인이잖아. 그거 맞나?’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소견은 비슷한데요. 이건 이현종이 더 잘 알 겁니다. 뭔가 알고 있는 기색 아닙니까?]
‘어, 우리 아빠는 자기가 아주 잘 아는 게 나오면 꼭 저렇게 계속 물어보잖아.’
[잘난 척하려고요.]
‘어……. 그렇지. 지금은 좀 복잡하긴 한데.’
수혁은 김성진을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진짜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 좀 보태면, 아래턱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예 입을 다물질 못하고 있었다.
이현종이 대놓고 안대훈을 자랑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수혁은 생각했다.
‘다시 봐도 교수님 같네.’
안타깝게도 김성진은 그저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 안대훈과 이현종이 나누고 있는 담론의 수준이 너무 높은 곳에 있는 탓이었다.
감염내과인 만큼 심장에 대한 지식은 적을 수밖에 없어서, 이 내용이 심장만 공부한 사람도 모를 공산이 크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김성진으로서는 그냥 나는 심장을 몰라서 이것도 모른다고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대단해. 대단하다, 정말.”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사람 꼬시고 싶을 때의 이현종은 진짜 진심이 되지 않던가.
진짜 대단한 일이긴 했는데, 이현종쯤 되는 사람이 호들갑을 떨 정도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막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박수를 쳐 댔다.
응급실을 오가던 사람들까지 다 이쪽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레지던트의 식견이라 할 수 있어!”
“어…… 아니, 저는 그냥 보이는 대로.”
“그게 보이는 게 대단한 거다. 대훈아, 네가 통합진료센터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 있었겠니!”
“어…… 아.”
안대훈도 이 사람이 갑자기 돌았나 싶었다.
하지만 이현종이 수혁을 힐끔, 정말로 힐끔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이현종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이 인간이 마음에 드셨군요. 심지어…… 교주님께서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감히 칠성 놈 주제에 신의 마음에 들다니.
‘이단 놈이…… 아니지. 아니야. 아직 우리 교세는 태화에 갇혀 있어!’
하지만 안대훈은 그 놀라운 신앙심으로 질투심을 이겨 냈다.
이 미천한 놈을 시작으로 칠성에도 수혁에 대한 신앙이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이 한 몸 바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통합진료센터에서 배운 것이 드디어.”
“그래, 아니, 무슨 레지던트가 어? 스폰지 심근병을 진단하냐고!”
이현종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신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수혁에 대한 애정이라면 지지 않지 않던가.
해서 살짝 상황을 왜곡시켰다.
단지 소견만 본 것에서 아예 진단까지 내린 것으로.
“어……. 이게 그렇게 희귀한 건가요?”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김성진은 뭔가 과정이 건너뛰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안대훈이 한 일이 진짜 대단한 것인갑다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현종은 그런 김성진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이 더 나가게끔 만들었다.
“당연하지!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예는 단 한 건이야! 소아에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냐면, 그거 내가 발표했거든!”
“아……. 아, 그러시구나. 역시.”
이 대목에서는 김성진뿐만 아니라 수혁도 놀랐다.
‘확실히 우리 아빠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기는 해?’
[당연하죠. 이현종은 저를 탑재하고 있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둘의 재능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아들 취급해 주는 것에 대해 매일 감사 기도하십시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최근 수혁의 역량 자체도 올라가기는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현종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뭐, 그건 맞지.’
여기서 내가 해 봤다는 말이 나올 줄 그 누가 알았겠나.
대체 그때는 어떻게 진단을 내렸을까?
나중에 시간이 되면 그 일도 좀 찬찬히 듣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하여간 이거 진짜 대단한 거야. 나는 그때 주니어 스탭이었거든. 근데 여기 안 선생은 레지던트! 이제 고작해야 29살!”
“네?”
“그래, 레지던트가 이걸 진단했다고!”
“어우.”
김성진은 29살이라는 말에 어질어질해졌다.
그 덕에 이현종의 선동이 곧이곧대로 싹 다 들어가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긴 하구나…… 통합진료센터……!’
자기는 안국태 밑에서 37살 먹도록 하염없이 꼬붕 노릇만 하고 있는데.
솔직히 안국태에게 배운 것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겸손하게 뒤돌아봐도 그런데.
이제 29살인 사람이 저 정도의 역량을 보여?
‘나도…… 여기로 올걸.’
부러웠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로 와야겠단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감염내과에 매몰한 시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는 착해서 그랬다.
문제가 있다면 여기서 착한 사람이 그뿐이라는 점이었다.
“어때, 김성진 선생. 자네도 내년에 이리로 오지그래. 임상 조교수 자리, 그대로 줄게.”
이현종은 마각을 드러냈다.
“네? 아니…….”
“나쁜 조건은 아닐 겁니다. 칠성이 연봉이 높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근무 환경은 훨씬 좋아요. 게다가 신생 센터다 보니 교수가 모자라요. 지금도 저랑 여기 이현종 교수님뿐이거든요.”
수혁도 그랬다.
“하하, 이거. 그럼 제가 모셔야 할 분이셨군요. 불초 안대훈, 잘 부탁드립니다.”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대사가 좀 장르를 벗어난 느낌이 들었지만.
하여간 본격적인 꼬심이 시작되었다.
“어……. 갑자기요?”
물론 갑작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집에 보내고, 차근차근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할 만큼.
그러나 이 자리엔 착한 사람도 없었지만, 보통 사람도 없었다.
특히 이현종이 그랬다.
“엄청 재네. 좋아. 또 다른 환자를 보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