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60화 (760/1,303)

760화 인재도 빼 가요? (4)

‘아니……. 나는 왜…….’

시계를 돌아보니 11시.

김성진은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어 나머지를 바라보았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서였다.

‘가야죠, 네? 이제. 가야지…….’

내일을 생각하면 이제 슬슬 쉬러 가야 할 시간이지 않나.

칠성 병원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빡세지 않던가.

최근 태화의 기세를 생각해 보면 도저히 칠성보다 편할 것 같지 않았다.

매일매일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뜻.

한데 이 인간들은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굴고 있었다.

2차 끝나고 3차를 향해 달리는 사람처럼 벌써 환자 둘을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을 헤매고 있었다.

“저기.”

이대로는 안 될 일이었다.

다행히 김성진은 희대의 막장 안국태를 오랜 기간 모셔 온 바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없이 착한 와중에도 강단이 생겼다.

“뭐야.”

이현종은 김성진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환자 찾으려는데 잘 안 보여서 짜증이 난 참이었다.

부탁받은 응급의학과 펠로우도 마찬가지였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평소에는 그렇게 몰려와서 머리 터지게 만들던 환자들이 왜 하필 만렙 용사들이 오니까 죄다 숨어 버렸단 말인가.

질병의 악신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 이제 집에 가셔야죠?”

하여간에 김성진은 용기를 냈다.

어차피 일도 안 하는 주제에 술만 처먹는 안국태에게 조언하던 그 용기였다.

안국태야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의 발언은 늘 다른 이들에게 지지를 받아 왔더랬다.

솔직히 말해서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무리 근무가 끝났다 해도 술이 떡이 되도록 먹는 게 옳은 일이란 말인가.

뭐가 되었건 지정의나 주치의는 자기 앞으로 입원한 환자가 있고, 따라서 당직의가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 하다못해 전화로 조언은 해 줘야 하지 않나.

게다가 다음 날도 환자를 봐야 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또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집?”

“집이라고?”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야?”

한데 지금 반응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그야말로 모두가 김성진을 쏘아보고 있었다.

‘어……. 이현종 교수님 혼자 이러는 게 아니었어? 당신들 진짜로 원하는 건 집에 가는 거 아니었냐고……. 특히, 너. 대머리. 너 이렇게 고생해서 머리 빠진 거란 생각 안 드냐…….’

당연히 이현종 혼자 꼰대 짓 하는 건 줄로만 알았더랬다.

약간이나마 오해할 수도 있던 것이, 공교롭게도 첫 번째, 두 번째 환자 모두 심장 환자여서 이현종 혼자 봐 버렸다.

해서 김성진은 이 미친 외로운 교수가 집에 가고 싶은 불쌍한 젊은 애들 잡아다 끌고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집이라니!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현종이 일단 역정을 냈다.

“그러니까요! 어려운 환자가 있을 거라고! 우리가 집에 가면 며칠 걸릴 환자가 있다고!”

이수혁도 화를 냈다.

사실은 그저 환자가 잘 안 보여서 화가 나 있던 참이라 소리를 지른 것뿐이었지만.

“불경하도다……. 의사가 환자를 앞에 두고 집 얘기를 꺼내다니…….”

안대훈은 득도한 사람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원래 같으면 여기서 끝이 났어야 할 텐데, 이번에는 펠로우도 끼어들었다.

“이 사람이! 통합진료센터가 응급실에 올 때마다 기적이 벌어지는데! 벌써 집 운운하고 말이야! 당신 누구야?”

그냥 끼어든 것도 아니고, 막 화를 냈다.

불경과 기적이라.

김성진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뭐야……. 뭐냐고.’

여기서 사과를 해야 하나.

집에 안 가고 있는 이 인간들에게?

심지어 안대훈은 레지던트라 전공의법에 저촉될 텐데?

그걸로 협박이라도 해야 할까?

하도 힘들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했다.

‘아니……. 이 사람들 다 진심이야?’

일단 윗사람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할 만한 위인이 못 되었다.

또 너무 진심으로 보였다.

특히 안대훈.

제일 힘들어해야 할 놈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하도 번쩍여서 눈치 못 채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제일 열정적인 얼굴이었다.

“그……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거참. 사람 좋게 봤는데.”

“어, 아빠.”

“왜. 혼낼 땐 혼내야 해. 내년이면 한 식구 될 텐데.”

해서 사과를 했다.

이현종은 그 사과에 아주 자연스럽게 비난을 얹었다.

김성진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라 당황했는데, 다행인지 뭔지 이수혁이 끼어들었다.

‘뭐야. 또 다른 방법으로 혼내려고?’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주 잠깐 겪은 것일 뿐이었지만, 이수혁은 확실히 이현종의 아들이어서 그랬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냥 또라이다 이 말이었다.

“저기.”

한데 수혁은 김성진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한 20분 전쯤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키면서였다.

그러자 계시라도 들은 것처럼 안대훈이 내달렸다.

“제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저건 일반적인 레지던트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찐이다……. 찐이야.’

사실 대부분의 레지던트가 자기 교수를 일정 부분 존경하기는 했다.

뭐가 되었건 자신이 선택한 학과의 정점에 선 이들이지 않나.

게다가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물론 교수라는 직위에 걸맞은 만큼의 가르침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있긴 하겠지만.

하여간 그런 정도의 존경은 했다.

하지만 안대훈은 달랐다.

‘저건…… 존경 수준이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

숭배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가죠.”

“네?”

“가시라고. 누군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댁이 가야 진료 보실 거 같으니까.”

“아……. 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뒤에서 누군가 거칠게 등을 밀었다.

응급의학과 펠로우였다.

사실 직급으로만 따져 보면 임상 조교수인 자신이 더 위일 텐데.

누가 응급의학과 아니랄까 봐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있어서 절로 존대가 나갔다.

“환자분.”

“어……. 선생님?”

“이곳은 이제 우리가 접수한다.”

“네?”

그사이 안대훈은 초진 보고 있던 인턴을 몰아냈다.

접수한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지만, 환자는 뭐가 되었건 일단 만족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얼쩡거리고 인턴보다는 방금 온 안대훈이 훨씬 더 연륜 있어 보여서 그랬다.

“환자분.”

“아, 네.”

“이제부터 이수혁 교수님께서 봐주실 겁니다.”

“네?”

“아, 이수혁 교수님 모르시는구나.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 통합진료학회의 창립이사, 두바이 알 막툼 왕자의 은인, 싱가포르 이씨 일가의 은인. 마지막으로……. 저 백강혁이 두려워하는 자, 이현종의 아들 태화의 이수혁입니다.”

장황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알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데?’

의사 맞나 싶어서 그랬다.

확실히 가운이나 머리는 의사 맞는 것 같은데.

눈에 깃들어 있는 기이한 기운이 수상했다.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아……. 네.”

그때 수혁이 도착해 입을 열었다.

딸각거리는 지팡이 소리와 함께.

이게 그냥 인사했으면 모르겠는데, 소개를 듣고 나니 뭔가…….

‘뭔가 대단해 보이는데?’

이상한 소개가 효과가 있던 걸까.

환자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수혁은 바루다의 분석 덕에 환자 주변에 은은하게 떠오르는 변 분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죽도록 싸다가 도저히 못 참고 왔을 터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만큼 심한 설사병은 드물지 않나.

대개는 집단 감염과 연관되기 마련이었다.

그 말은 개별 케이스가 설령 어렵지 않더라도, 보람이 차고 넘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 설사 때문에…….”

수혁은 예상했던 대답을 들으며 환자를 관찰했다.

‘미세한 떨림…… 전해질 불균형 때문은 아니야.’

[팔뚝에 보면 수액 맞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이번이 첫 의료 기관 방문이 아니란 뜻이죠.]

‘그래, 이건 오한이지.’

[네. 체온이 39도를 넘어갑니다. 만약 약을 먹었거나 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 설사는 아니었다.

이미 다른 의료 기관에 수액을 맞는 듯의 처치를 받았음에도 설사를 주된 호소 증상으로 짚었을 만큼, 설사가 호전이 안 된 것도 문제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고열과 오한이었다.

아예 조절이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열에 대해서는 혹시 약을 드셨나요?”

“네? 아, 네. 열감이…… 있어 가지고. 약 먹었습니다.”

“혹시 종류와 용량 기억하시나요?”

해열제라고 해서 다 같은 해열제는 아니지 않나.

게다가 용량을 헷갈리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타이레놀로 대표되는 아세트아미노펜은 누가 봐도 한 알만 먹으면 되게 생겨 가지고 두 알이 적정 용량이지 않던가.

해서 물은 건데, 환자가 내민 것은 처방약이었다.

“아.”

이렇게 되면 일단 나가리였다.

용량을 잘못 먹을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 이 말이었다.

다시 봐도 그랬다.

환자는 속 보호제와 함께 진통소염제를 먹었더랬다.

‘그렇다면…… 약을 먹고 있음에도 열이 나고 있다는 건데. 아니, 이건 항생제잖아?’

[네. 항생제도 먹었군요. 종류는…… 오구멘틴입니다.]

‘음.’

[음.]

오구멘틴.

이것 또한 큼지막한 약이었다.

둘이 음 한 것은 단순히 커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거 흔한 부작용 중 하나가 설사인데.’

[그러니까요. 뭐…… 실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잘 들었던 환자라면, 뭐.]

‘그래, 그렇긴 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기는 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오구멘틴의 항생 효과는 알아줘야 하는 것이니까.

특히 1차 약제로 쓸 수 있는 경구 항생제 중에서는 발군이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는 굳이 쓸 필요 없다는 것이 수혁과 바루다의 판단이었다.

해서 둘은 항생제 변경을 결정하면서 입을 열었다.

“열은 언제부터 나셨어요?”

“아……. 한 3일?”

“점점 심해지시나요?”

“아, 네. 약을 먹어도…… 별로. 그래서 동네 병원에서도 응급실로 가 보라고 했습니다.”

여자 43세.

1주일 전부터 시작된 설사와 3일 전부터 발생한 고열 그리고 오한.

수혁은 일단 환자의 문제 목록을 정리했다.

“그렇군요. 좀 더 자세히 볼까요.”

“아, 네.”

그러면서 동시에 환자에 대한 신체 검진에 돌입했다.

방금 전까지 이 자리에 있던, 좀 이상한 애는 이제 없었다.

완연한 의사의 눈이 환자의 몸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어…….’

이제 피곤해서 죽을 것 같던 김성진도 눈치챌 만큼, 노골적인 변화였다.

안 그래도 이 환자는 열나는 환자다 보니 감염내과일 것 같아서 눈여겨보고 있던 참이라 더더욱 그랬다.

‘뭔 눈이…….’

11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는데, 저리 생기 넘치는 눈이라니.

이 사람도 진짜 환자 보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단지 좋아하는 것뿐만은 아니었다.

‘황달은 없는데.’

[간이 좀 비대해져 있습니다.]

‘눌러 볼까.’

[네.]

남들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상세한 정보를 흡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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