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61화 (761/1,303)

761화 인재도 빼 가요? (5)

“아야.”

수혁은 바루다랑 대화하느라 미처 환자에게 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무방비 상태의 환자 배를 푹 찔렀단 얘기였다.

‘어.’

김성진은 이러면 안 되지 않냐는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보통 환자에게는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안 그럼 놀라니까.

‘왜 아무도 말을 안 해.’

하나 적어도 이 병원에서는 상식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현종도 안대훈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심지어 응급실 펠로우도 그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저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환자 당사자도 아야 하다가 이내 멀뚱멀뚱한 얼굴로 돌아왔다.

딱히 기저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환자치곤 젊다 못해 어린 사람이다 보니 병원이 익숙지 않아서 그랬다.

“이쪽이 아파요?”

해서 진료는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었다.

“아, 네. 엄청.”

“엄청.”

“네.”

“다시 눌러 볼게요.”

“어……. 네.”

“옷 좀 들춰도 되죠?”

“아……. 네.”

환자는 사방에 남자들이긴 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환자의 웃옷을 살짝 들춘 후, 우선 방금 본인이 찔렀던 곳을 유심히 살폈다.

‘살짝 빨간데. 내가 눌러서 그런가?’

[아뇨. 저건 단순 발적이 아닙니다. 약간 부어 있어요.]

‘그 말은…… 역시 안에 압통을 유발할 만한 염증 질환이 있다는 얘기겠지.’

[네. 방금 환자가 보여 준 반응은 진짜였습니다.]

예민한 환자도 있고 아닌 환자도 있는 법이긴 했다.

보통 대한민국 사람들은 통증을 꽤 잘 참긴 하지만, 개중에는 엄살쟁이로 분류되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그저 환자가 아픈가, 아닌가.

그것이 중요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환자는 지금 실재하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자, 지금 누릅니다.”

“네.”

“힘은 빼시고요.”

“힘이 들어가는데…….”

“뭐, 그건 자연스러운 거죠.”

“으. 으아.”

수혁은 다시금 환자의 배를, 그러니까 간이 있는 곳을 눌렀다.

아까보다 훨씬 세게 눌렀다.

환자가 힘을 주고 있어서이기도 했고, 이제는 아까와 달리 확실히 환자가 이쪽이 아플 거라는 걸 알아서 그렇기도 했다.

“음. 간에 압통이라?”

“이건 일반적인 감염성 장 질환하고는 다른데.”

“그렇죠. 다릅니다.”

그걸 보면서 이현종, 안대훈이 말을 한마디씩 보탰다.

수혁은 그 말에 동조하다가 이내 김성진을 돌아보았다.

“네?”

“어떻게 생각해요. 뭐 같아요.”

“어…….”

그냥 돌아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무려 질문을 던졌다.

다른 병원 임상 조교수에게.

김성진으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국태 교수님도 질문 안 한 지 꽤 오래됐는데…….’

안국태는 티칭 마인드라고는 전혀 없는 놈 아닌가.

그가 던지는 질문이라고 해 봐야 병원에 어떤 소문이 없는지, 혹시 불만 있는 놈은 없는지, 전에 도망간 새끼는 어떻게 됐는지(인생 망했는지, 그랬으면 좋겠다) 등등뿐이었다.

“어……. 그. 일단 말씀하신 대로 감염성 장 질환에서는 드문 경우입니다.”

“그거 진짜 방금 말한 거잖아요.”

“아, 네. 그건 그렇습니다.”

“그거 말고 본인 생각은?”

“거기…… 거기에 동의…….”

“아.”

그렇다 보니 대답이 좀 어정쩡하게 나갔다.

수혁은 그런 김성진을 보며 후 하고 고개를 내저었고, 김성진은 그런 수혁을 보며 아차 싶었다.

좀 더 생각했다면 잘할 수 있었는데 싶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김성진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수혁의 마수에 걸려들고 있었다.

혼남과 고통 속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스톡홀름 증후군의 초입부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제정신 차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줄 텐데.

애석하게도 다들 미친 사람들뿐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선봉장만 있었다.

“사실 지금 보이는 소견이 이것만은 아닌데…… 혹시 안 보이세요?”

물론 안대훈이 괜히 미친 사람의 선봉에 서게 된 게 아니었다.

수혁에게는 그야말로 사람 미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 있었다.

“네?”

방금 대답 잘못해서 순식간에 병신으로 인식된 김성진 아닌가.

더 정확히 말하면 병신으로 인식된 거 같다는 생각을 한 것뿐이지만, 수혁의 평소 인성을 생각해 보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였다.

‘뭐지. 뭐가 보여야 하지!’

김성진은 방금 전까지 피곤해하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열정적인 얼굴이 되어 환자를 바라보았다.

‘뭐야. 뭐냐고!’

보이는 것은 없었다.

환자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었고, 열이 나고 있었고, 배를 까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적어도 김성진에게는 그랬다.

수혁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꾸 본인이 다 알고 말하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고요.]

‘네가 나야.’

[멜로드라마 같은 소리 하지 말고요.]

‘사실이잖아.’

[으으.]

수혁조차도 바루다가 말해 줘서 알게 된 사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수혁은 바루다와의 토론을 벽치기 수준으로 끝내 버린 후, 입을 열었다.

“환자분.”

이젠 김성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을 한 채였다.

그럴수록 김성진은 어쩐지 초조해졌다.

‘나를 봐! 나도 할 수 있어!’

수렁에 빠진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김성진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에 발을 디디고 있을 때쯤 환자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아, 네.”

“숨 쉴 때, 아프지 않아요?”

“네? 어…….”

그러곤 수혁의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숨 쉴 때?

그랬나?

자각하지 못했던 증상이었다.

하지만 수혁의 말을 딱 듣자마자 숨 쉬는 데 어색함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

아픈 건 아니었다.

아니, 아프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불편함인가?

하여간 숨을 들이쉴 때 가슴께가 살짝 따끔한 느낌이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가슴 아래쪽이.

“아프시죠.”

“아……. 네. 이게. 이걸 어떻게.”

환자도 홀린 눈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니, 세상에 자기도 모르던 증상을 이 사람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수혁은 이제 익숙해져 버린, 환자의 놀란 반응을 보며 후후 웃었다.

“종합해 보면 환자분은 설사가 있고, 조절되지 않는 발열이 그 후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간과 흉막에 농양 또는 염증이 동반되고 있고요.”

환자를 보면서 웃은 건 아니었다.

그런 게 공포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해서 나머지 의료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군. 이렇게 되면 확실히 일반적인 장염은 아냐.”

“하지만 단순 불명열이라고 하기엔 단서가 좀 있는 편입니다. 근데 이 단서를 좀처럼 종합하기가…….”

이현종과 안대훈은 수혁의 눈빛을 받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성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금 이 순간만은 어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머리야 돌아라!’

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안대훈의 말처럼 단순 불명열로 치부하기엔 이제 단서가 꽤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단시간 내에 어떤 질환을 특정하기에 충분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단 이 환자는 아직 검사 결과조차도 제대로 나온 게 없으니까.

‘돌아!’

아무리 머리를 돌려 봐도, 진짜 돌 것 같은 심정만 들 뿐이었다.

“처음부터 보죠.”

심지어 수혁은 충분히 기다려 주지도 않았다.

1분 남짓한 시간이 흘러갔을 뿐인데,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이제 니들 헛짓거리 그만하고 내가 준비한 쇼를 들어라, 뭐 이런 뜻이었다.

이현종은 애초에 감염병이라 포기하고 있었고, 안대훈은 아까 남아 있던 머리마저 다 빠질 만큼 기운을 소모한 참이라 멍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안 돼! 교수님! 저는 아직!’

김성진만이 발악을 해 보았지만, 언제나처럼 소용은 없었다.

수혁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환자는 일주일 전부터 설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사가 증상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뭐가 되었건 간에 소화기 계통의 감염이었을 거라는 걸 시사합니다.”

“그렇지.”

이현종은 후후 웃으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김성진은 낚인 고기 같아서 그랬다.

“톡신(독성 물질)일 가능성도 있으나, 1주일간 지속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또 발열이 동반된 것을 보면 감염성 장 질환을 떠올릴 수 있겠죠.”

수혁의 설명은 언제나처럼 유려하기 짝이 없었다.

또한 이야기에 무리함이 없었다.

논리가 단단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오구멘틴을 썼고, 현재 3일째입니다. 48시간이 지났으니 항생제 효과를 평가하기에 적합한 시간이죠. 어떻습니까.”

“안 들었지.”

“네. 하나도 안 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발열도 그대로일 뿐만 아니라, 간 농양과 흉막 염증 또한 진행 중이니까…… 억제가 하나도 안 된 겁니다.”

“그렇군. 근데 간이…… 이게 흔한가.”

설사와 고열을 동반할 수 있는 질환은 사실 엄청 많았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면서 설사병이 줄어드는 중이라곤 하지만, 발생 빈도가 줄었을 뿐 객관적인 숫자 자체는 꽤 되었다.

이질, 로타, 콜레라 등등.

심지어 에이형 간염 또한 설사와 고열 모두 가능했다.

“아! A형 간염 아닐까요?”

김성진이 끼어들었다.

가능성 있는 질환 중 하나를 들먹이면서였다.

‘아니지…….’

[얘 데리고 와도 될까요?]

‘뭐…… 일단 이 시간까지 남은 것만 해도…… 합격이긴 하지.’

[의사가 환자 보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의사도 사람이거든.’

[?]

‘넌 깡통이라 이해를 못 할걸.’

수혁은 일부러 한숨을 쉬었다.

넌 틀렸다고 온몸으로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으읏. 아니란 말이야?’

김성진 같은 사람은 이럴 때 희열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무언가 느끼는 법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예상했던 것처럼 김성진의 얼굴이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리는 걸 보면서, 수혁은 말을 이었다.

“A형 간염은 말 그대로 간염이죠. 물론 fecal to mouth…… 그러니까 분변이 입으로 들어갈 때 감염이 일어나고, 따라서 설사가 생길 수 있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간염이에요. 이만큼 진행했다면 반드시 황달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환자의 눈을 보세요.”

“아.”

“깨끗하죠. 간은 명백히 뒤따라 온 증상이라는 겁니다. 장염이 먼저, 간과 가슴은 그다음이라는 얘기예요.”

“아……!”

저변에 깔린 이유가 뭐가 되었건 간에 대학 병원에 남기로 결심한 인간들은 일정 부분 학자 기질이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안국태와 같은 인간말종도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김성진은 그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깨달음의 순간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심해야 합니까.”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수혁 때문이었다.

줬다 뺏는 것도 아니고.

희열을 줬다가, 질문으로 앗아 갔다.

“어…….”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요?”

수혁은 김성진을 똑바로 보면서 다시 질문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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