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2화 인재도 빼 가요? (6)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진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던가?
만약 그랬다면 세상에 시험 문제 틀리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다만 김성진은 기적을 바랐다.
‘떠올라! 떠올라라!’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태화에서는 인정 안 할 테지만, 칠성 병원도 굴지의 병원이지 않나.
그곳에서의 수련이 널널했겠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김성진이 수련받았을 당시 내과는 나름 스테디셀러 과로써 인기가 있었고, 당연히 4년제였다.
‘내가 그동안…… 그동안 공부했던 것 중에 있을 거야!’
4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레지던트 4년이라고 하면 그건 긴 게 맞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해 공부까지 해야 하는 세월.
그 시간의 밀도는 평범한 시간의 수배에 달했다.
‘반드시 있다……!’
김성진은 심지어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온 몸이었다.
게다가 그 후로도 최선을 다했다.
군대에 가서도 논문을 붙들었고, 펠로우 2년, 임상 조교수 2년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수혁은 인생을 성실히 살아온 사람의 눈을 지금 이 순간 마주할 수 있었다.
‘모르는 거 같은데…….’
[모르네요. 네. 눈동자가 방황하고 있어요. 거의 뭐…….]
‘어지럽나?’
[살짝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혁이 이제 와 인간성을 회복하고 막 감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정답을 말하는가?
오답이지만, 그럴싸한 근거가 있는가?
‘으오오옷!’
김성진은 그런 수혁의 눈에서 실망의 기색을 엿보았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안 되는데, 그래 봐야 소용이 없었다.
“모르는군요.”
“아니, 그. 저. 시간을 조금만 더.”
“시험 안 봐 보셨어요? 시험 시간에 끝까지 붙들고 있는다고 답이 떠오르던가요?”
수혁은 선고를 내리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김성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수혁의 말이 맞아서 그랬다.
사실 그도 괜히 시험 시간 마지막까지 시험지를 붙들고 있는 타입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이득을 본 적이 있냐고 하면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시간을 온전히 써야 최선을 다한 것 같아 거기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러한 성향이 영 꽝이라는 건 아니었다.
시험 문제가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일이라면 진짜로 뭐가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좋은 태도지만…… 지금은 우리가 시간이 없지.’
[네. 수혁의 머리 회전이 점차 느려지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자야 합니다.]
‘좋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게다가 수혁은 일단 환자가 자신을 만난 이상, 쓸데없이 고통을 유예하고픈 생각도 없었다.
제아무리 잘난 척이 중요하고 또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환자가 지금 당장 느끼고 있을 고통을 줄여 주는 것만 하겠나.
“환자의 증상은 장에서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장염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 질환은 일단 다 떠올려 봐야겠죠. 간단히 말하면 대략 50여 개쯤 있겠네요.”
“그…….”
해서 수혁은 말을 이었다.
김성진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간단히 말해 대략 50여 개쯤의 감별 질환이 있을 거란 말에 신음만 흘리고 말았다.
‘50개?’
50개라고?
이 인간이 뻥까를 치나?
아마 수혁의 위력을 겪기 전이었다면 이런 생각도 들었을 법했으나.
김성진은 이미 수혁의 마수에 걸려들다 못해 수렁으로 깊이 끌려간 후였다.
‘말해 주세요……. 그것도…….’
해서 이런 생각만 들고 있었다.
“그런데 오구멘틴을 써도 낫지 않았죠.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환자의 질환은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오구멘틴이라는 항생제에 들을 만한 질환은 소거해야겠죠. 여기서 절반이 날아갑니다.”
“아.”
“그리고 발열. 환자가 보여 주는 발열 수준은 굉장한 고열입니다. 해열제를 제대로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떨어지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일단 불명열이란 진단명을 붙였을 겁니다. 사실 감염성 장 질환에서 이만한 고열이 동반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여기서 대다수의 질환이 쓸려 나갑니다.”
“아.”
수혁은 그런 김성진과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안대훈은 이미 부흥회에 참석한 광신도처럼 상기된 얼굴이었다.
입으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수멘일 것이었다.
‘우리 아들……. 역시 추론 과정이 완벽하군. 그래, 이런 순서로 가야지.’
이현종은 마냥 흐뭇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쉬워 보이면서도 복잡한 과정이라 그랬다.
추론은 늘 그렇듯, 방향도 방향이지만 순서도 중요했다.
뒤죽박죽이어도 정답을 맞히는 경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음에도 또 맞히려면 역시 순서를 맞춰야 했다.
“또 하나. 아까 김성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간 질환. 즉 A형 간염. 이건 황달이 없음을 통해 감별 가능합니다. 게다가 환자는 현재 흉통을 호소합니다. 숨을 쉴 때 심해지는 흉통이죠. 그 부위를 청진해 보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흉막염.”
“네, 그렇습니다. 흉막염을 동반하고 있어요. 장에서 시작해, 강력한 경구 항생제에 전혀 듣지 않으면서 간 농양 및 흉막염을 동반하고, 고열까지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흔하디흔한 증상이지만 순서에 맞춰, 종합해서 보면 대단히 특징적인 증상이 됩니다.”
“으음.”
그런 거 같았다.
김성진이 보기에도.
아니, 얼결에 따라온 응급의학과 펠로우도 그러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래도 도통 떠오르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시벌…….’
김성진은 저도 모르게 욕을 주워 넘겼다.
‘이만하면 맞혀야 정상인데?’
추론 과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준 마당 아닌가.
이러면 맞혀야 했다.
그게 맞는데.
나는 왜 이럴까.
“장티푸스.”
“아.”
그러고 있으려니 수혁이 질환명을 언급했다.
흔하디흔했던, 그러나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질환.
장티푸스.
한때 인류를 집단 학살하던 이 병은 이제 잊혀져 가는 병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누군가는 괴롭히고 있었다.
지금 이 환자가 그랬다.
“보건의학적인 중요도는 많이 떨어졌죠. 아무래도 그 빈도가 너무 줄었으니까요. 정책상으로는 중요한 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선에 있는 의사도 잊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아…….”
“감염 내과 선생님이니 오히려 더 잘 아실 겁니다. 현대에 이르러 항생제, 비누, 상하수도의 정비 등으로 인해 감염병이 크게 줄고 있죠. 하지만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오래된 병들이 21세기에도 존재하고 또 사람을 죽입니다. 우리는 의심할 수 있어야 해요.”
“그……그렇군요. 아, 이런.”
장티푸스.
김성진이라고 해서 이 병을 왜 모르겠나.
학생 때부터 배우는 병인데.
다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장티푸스가 항생제가 사용되는 환경에서 어떠한 경과를 밟을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검사……. 쭉 긁으면 아마 진단을 하기는 했을 거야.’
이유는 간단했다.
이러한 오래된 병들에 대한 검사는 쉬웠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긁는, 저인망식의 검사에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 질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가성비적인 접근만 한다면 아마도 고개가 저어질 터였다.
“우선 환자에 대한 검사는 진행하되, 치료 방침을 변경하겠습니다.”
하지만 환자 개인만 생각한다면, 수혁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일선에 있는 의사는 이를 의심할 수 있어야만 했다.
‘장티푸스가 요새 불명열의 새로운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지…….’
그러나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장티푸스가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변명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은 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김성진은 지금껏 칠성 병원에 있으면서 장티푸스 환자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장티푸스가 희귀질환처럼 드물어지고 있어서 그랬다.
‘그걸 즉석에서 진단한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야.’
수혁이 그러한 변명을 들어줄 것인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수혁은 허허 웃으며 환자에게 다가가 지금 당신이 어떤 병에 감염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가 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환자가 응급실에 온 지 불과 4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였다.
덕분에 환자도, 함께 온 보호자도 미소 짓고 있었다.
당최 뭔 병인지도 모르고 당하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게 좋은 의사지.’
단순히 검사만 긁고 그 검사에 걸리지 않으면 진단도 치료도 하지 못하는 의사가 의사인가.
‘나는…… 나는 여태 뭐 했지.’
김성진은 그런 생각이 들어 기분이 착잡해졌다.
“김 선생.”
“아, 네.”
이현종은 김성진에게 접근했다.
이현종은 수혁과 같이 바루다를 탑재하지 못했던 만큼, 실패도 많이 겪은 사람 아닌가.
경험이 충분히 쌓였다 자부할 수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놓치는 환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젊은 시절에는 어땠겠나.
그 누구도 비난하지는 않을 터였다.
아니, 비난할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의학의 한계였으니.
‘하지만 언제나 의사는 자신을 탓하게 되지.’
이현종은 어쩐지 지금 김성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네?”
보통 어른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하고 말았을 터였다.
아니면 더 위로를 하거나.
하지만 이현종은 보통 어른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냥 보통이 아니었다.
“칠성 잘못이야. 되다 만 병원 탓이지.”
“네?”
상대가 아무리 실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내는 사람.
그것이 이현종이었다.
“자네는 거기 있기 좀 아까워 보여. 그래 봐야 칠성 놈이지만. 그래도 뭐랄까. 때가 덜 탔다고 해야 할까?”
“네?”
“너무 늦지 않게 건너오라고. 우리 이제 곧 내년 펠로우 모집 공고 낼 테니까.”
“어……. 아니, 제가 그랬다가는.”
“뭐, 안국태? 아직도 그런 쓰레기가 생각이 나? 지금 우리 셋 진료 어떻게 하는지 봤잖아? 가슴이 막 뜨거워지지 않아? 이런 의사가 되고 싶다, 뭐 이런 생각 안 들어? 내가 알기로 안국태…… 그 새끼 거의 뭐 회진만 돌고, 정작 환자 보는 건 자기 밑으로 다 넘긴다고 들었는데?”
어찌 알았냐고 묻고 싶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아…….’
심지어 이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냐는 말에도 김성진은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안대훈처럼 머리를 죄다 뽑고 반딱반딱 닦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까 그가 보여 주었던 진료 실력.
그것만은 닮고 싶었다.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시간 차가 있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상대는 자신을 따라잡지 않았나.
수혁은 시간을 얘기하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자, 여기로 연락 주면 돼.”
이현종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는 김성진의 손에 명함을 건네주었다.
김성진은 저도 모르게 그 명함을 소중히 지갑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