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3화 전격 모집 (1)
내과 학회.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이 학회는 학회 위상이 어찌 되어 가고 있건 간에 커다란 행사였다.
아무래도 대다수의 교수들이 분과 학회에 매달리고 있다 보니, 춘계 학회는 레지던트들의 발표 데뷔장이 되기 마련이었다.
수혁에게도 그러지 않았나.
“가을. 가을은 이를테면 수확의 계절이지.”
“어……. 형. 말은 알겠는데, 눈이 좀 돌아갔어.”
우리 레지던트가 이만큼 한다!
우리 병원 교육 시스템이 어떤지 봤냐?
자랑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인재를 빼 와야 해.”
“맞는 말이긴 한데…… 눈이 돌아갔다고…….”
가을은, 그러니까 추계는 성격이 좀 달랐다.
추계 학회가 끝나자마자 펠로우 지원이 시작되기에 그랬다.
봄에 자랑한 레지던트들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자리, 그것이 바로 가을이었다.
물론 수혁처럼 너무 미친듯한 위력을 보여 주면 3년 차 가을이 아니라 1년 차 봄에도 스카우트 제의가 오갈 수 있기는 하겠지만.
보통은 안 그랬다.
“인재…… 우리 통합진료센터에 지금 낚은 고기가 안대훈뿐이잖아.”
“저기, 대훈이 이 자리에 있거든?”
“그러니까.”
“아니, 그런 얘기를 본인 있는 데서 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한 건데……. 왜 그렇게 흐뭇해하는 거야.”
심지어 아직 전임을 받지 못한 임상 강사 및 임상 라인에 있는 교수들에 대한 스카우트 제의도 오가는 곳이 바로 추계 학회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작 학회 자체는 뒷전이 되고, 온갖 물밑 작업만이 판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원로들도 있었지만.
학회 차원에서 정식으로 음모 꾸미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이미 가질 거 다 가진 원로들과는 달리, 이제 막 펠로우를 시작해야 하거나 또는 지리한 기다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펠로우, 임상 강사 등에게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때문에 학회에서는 추계 학회에서만큼은 발표 시간에 밖에 나와 서성이는 이들을 어느 정도 용인해 주고 있었다.
“가족이니까, 인마. 쟤는 우리 가족이야.”
“어……?”
“아니, 수혁이 동생이라는 뜻이 아니고. 미친놈이. 내가 아빠 선언 두 번 할 거 같냐.”
“아, 어. 다행이네. 아니, 난 또 쟤도 조카인가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가족 같은 사이다 이거지. 안대훈이가 어찌 살았는지 보라고. 가족이지.”
“그건…… 그건 그래.”
신현태는 속으로 학회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하면서, 뒤에 있던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보면 당사자 앞에 두고 진짜 이상한 소리들이 오가는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웃고 있었다.
‘내가…… 교주님과 가족…….’
망상 때문이었다.
방금까지 이현종의 살짝 돌아간 눈을 마주하고 있던 신현태마저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만큼이나 이상한 웃음이었다.
‘어우, 시벌.’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올 뻔한 욕설을 씹어 삼킨 후, 재차 이현종 그리고 수혁을 돌아보았다.
“아무튼, 그때 모집을 하긴 해야 해요. 김성진 선생님은 제가 가끔 연락했는데, 일단 긍정적입니다.”
“아, 김성진도 있었지. 걔도 낚은 고기라고 할까?”
“그래도 될 거 같아요, 아빠.”
“그래. 그럼 여기에 쓰자.”
“네.”
둘은 죽이 참 잘 맞았다.
실제 부자 사이라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소시오…… 아냐. 아냐. 그럼 나도 이상한 사람이 돼.’
사람 보고 낚은 고기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둘을 보다가 신현태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어찌할 건데.”
뭐가 되었건 원장이지 않나.
아니, 원장이라고 이런 일에 끼어들어야 된다는 건 아니었지만.
김다현 회장에게 전화까지 온 마당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통합진료센터가 한국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어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압박도 아니었다.
김다현은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통계에 얹어 말하지 않았나.
실제로 통합진료센터의 명성이 드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태화 의료원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었다.
칠성과 아선이 외래동을 따로 지었음을 감안하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쪽은 그에 비하면 거의 아무것도 안 한 수준이지 않나.
있던 센터를 돈 좀 들여서 리모델링 한 것이 다였다.
“어찌해? 그냥 오라고 해야지. 우리가 최고인데.”
“네. 삼촌. 우리는 최고잖아요. 와서 배우는 게 좋을걸요?”
“어……. 그래. 그게 둘의 계획이구나.”
김다현은 통합진료센터가 더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애초에 시설로 더 잘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맨파워(Manpower, 특정한 분야에 숙련된 인력)를 증가시키길 원하고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도 틀릴 수 있는 사람이군요.’
김다현의 말에 따르면, 이현종과 이수혁은 워낙에 뛰어난 사람이니 둘에게 어떤 계획이 있을 거라 했더랬다.
자신이나 신현태의 역할은 그걸 서포트하는 것이라고도 했고.
와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자고.”
“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요.”
두 부자가 지껄이고 있는 속 터지는 소리를 듣고도 그런 말을?
“아니……. 형.”
“왜. 왜 또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 네가 이러니까 아직도 NEJM에, 인마.”
“여기서 그 소리가 왜 나와!”
“그냥 하고 싶었어. 근데 왜.”
“하.”
때리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인격자일뿐더러 이미 이 둘에게 단련된 지도 하루 이틀 된 사람이 아니었다.
덕분에 멘탈을 금세 추스르고는 입을 열 수 있었다.
“일단…… 어디서 어떻게 흉금을 터놓을 건데.”
“응? 강의실에서.”
“내과 학회 강의 꽉 차 있는데 어디서?”
“점심시간……?”
“런천 미팅 몰라? 내과 학회가 무슨 돈으로 학회를 여는데…… 거기 제약 회사에서 와서 설명회 하잖아.”
“아, 그렇네.”
하고자 했던 얘기란 다름 아닌, 니들 계획으로는 안 된다 뭐 이런 얘기였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였지만 그걸 모르는 거 같으니 입이 아플 거 같아도 어쩌겠나.
해야지.
“아, 그렇네? 수혁이는 그렇다 쳐도 형은 학회 주관한 적도 있는 사람이…….”
“그렇구만. 흉금만 터놓고 얘기하면 될 거 같은데.”
“아니라고! 흉금 터놓아도 안 된다고!”
“왜?”
“후.”
신현태라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세상에 사람 설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특히 그 사람이 가진 게 좀 있거나 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면 더더욱 어려웠다.
마침 이 둘이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러했다.
모두 모교 병원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또 이미 걷고 있는 길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우리 센터의 계획을 말해 줘야지.”
“계획?”
“몰……몰라?”
“진료한다.”
“아……. 수혁이 너는.”
“더 어려운 환자를 진료한다……?”
“나 잠깐만 나갔다 와도 되지?”
신현태는 이현종과 이수혁, 그러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둘을 보고 있다가 진짜로 밖에 나갔다.
그러곤 무언가 부드러운 물건을 찾았다.
퍽.
간호사들은 저 부드럽기도 소문난 원장이 왜 갑자기 와서 베개를 칠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신현태의 얼굴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미묘해서 그랬다.
“후.”
“담배 피우냐? 의사가 담배 피우면 안 돼.”
“안 피워!”
“그래?”
“아무튼, 그. 센터 계획 있잖아……. 우리 드디어 본사에서…… 모그룹에서 투자 결정했잖아.”
“그래?”
“저번 주 회의에서 얘기했잖아! 왜 처음 듣는 것처럼 반색하는 거야!”
“아, 그래?”
“으.”
신현태는 머리를 싸맸다.
두통.
아, 이것이 두통이구나.
기질적 원인이 있을까?
너무 열 받아서 혈관이 터졌을까?
“삼촌. 심인성 두통 같아요. 이거 드세요.”
이제는 진짜 터졌을 것 같은데?
“아니, 안 터졌으니까. 타이레놀이면 됩니다.”
혈관이 아니라면 복장이라도 터지지 않았을까?
신현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뻔뻔한 얼굴로 서 있는 수혁이 내민 약을 털어 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두통이 스르륵 가라앉았다.
그걸 느끼면서 신현태는 최근 나온 연구 결과를 떠올렸다.
‘타이레놀이 마음의 열도 얼마간 낮춘다더니.’
심인성 두통이나 열감 혹은 화병에도 들을 수 있다지 않던가.
그걸 몸소 체험할 줄은 몰랐는데.
하여간 덕분에 신현태는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하여간 센터 이전할 거야. 워낙 건물이 커서 2년은 걸리겠지만, 하여간 안 듣는 것보다는 낫겠지.”
“오.”
계속 처음 듣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둘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참을 인 자를 새기는 데 달인일뿐더러, 이미 이 둘을 좋아하게 된 지 오래된 사람이지 않나.
“그리고 교원도 특별 충원 예정이야. 일단은 본교 출신을 우선으로 뽑을 거지만.”
“몇 명?”
“앞으로 4년간 매년 2명.”
“오.”
“자꾸 처음 듣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건 형이 주장한 거잖아.”
“아.”
“하여간……. 펠로우까지 다 하면 충원 예정인 인원만 벌써 몇이야. 거의 매년 6명은 돼. 대신 레지던트는 줄일 텐데, 이건 불만 없지?”
“없지. 여력도 안 될 거 같은데.”
레지던트 교육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되지 않겠나.
새롭게 생긴 분과, 그마저도 보건복지부에서는 아직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통합진료전문의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나라에서 자격을 아직 부여하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으로 차별화를 시켜야 할 것인가.
‘실력.’
이현종과 수혁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뭐든지 씹어 먹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둘 아닌가.
그 덕에 여기까지 오기도 했고.
자연히 밑으로 들어오는 이들, 그러니까 더욱 끈끈한 사제지간이 될 이들에게도 그러한 실력을 선사해 주고 싶었다.
그러자면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서는 또 곤란했다.
즉 지금 신현태가 꺼내든 6명씩 충원한다는 얘기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인센도 있을 예정이야. 둘은 별로 관심이 없겠지만.”
신현태는 돈 얘기가 나오자 기가 막힐 정도로 흥미가 식은 둘을 바라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 사람들만 같으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김다현은 머리를 쥐어 뽑았을 터였다.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 하나가 휘릭 사라지는 순간이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걸 신현태는 알았다.
“지금 센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적지는 않거든? 아무래도 검사를 많이 하긴 하니까.”
“어……. 그래?”
“어. 그래. 그리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와. 딱 센터를 지정하던데, 이건 형이 이유를 알 거 같은데.”
“난 모르…… 모르겠는데.”
이현종조차도 본인이 갖는 돈에는 관심이 없지만, 센터나 병원에 들어올 돈에는 관심이 있지 않나.
그 돈이 결국, 사람을 뽑고 병원을 굴리고 더 나아가 시설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하여간…… 그거 안 건드릴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라고. 대신 그중 일부는 인센으로 돌려. 그래야 사람들이 들어오지.”
“오……. 우리 신현태. 원장 같네.”
“원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