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4화 전격 모집 (2)
부우웅.
버스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태화 의료원의 입구는 여느 메이저 병원으로 분류되는, 그중에서도 특히 기업 병원으로 분류되는 병원들이 으레 그러하듯 엄청나게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비좁아 보였다.
“왜 이렇게 버스가 많이 온대?”
이현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학회가 겹치나 싶기도 했다.
‘아닌데?’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학회라는 게 의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인 것은 맞았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의사에게 학회는 자신을 새로이 정비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곳에서 배우고, 또 교류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학회를 중복해서 잡는 건 또 안 될 일이었다.
병원엔 환자들이 있으니.
‘우리 없을 때 다른 과도 없으면 병원 빵꾸 나는데?’
특히 내과는 다른 과랑 메인 학회만큼은 겹치지 않게 잡는 편이었다.
스스로도 대학 병원의 기둥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그래서 그랬다.
말이야 내과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하는 과들이 있으나, 그들조차도 오늘 병원에 내과가 없다고 하면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아……. 그 회의 때 다 말씀드렸는데…….”
이현종이 그렇게 의아하단 얼굴로, 심지어 가만히 있지도 않고 계속 주변을 둘러보면서 ‘왜 저래? 왜 저래?’를 남발하고 있자 김문재 교수가 다가왔다.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이현종은 얘가 왜 왔지 싶었다.
“김 교수?”
“그…… 저 과장입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아아.”
“모르셨구나. 하긴 회의 때…….”
이현종은 본인이 원장일 때조차 회의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 아닌가.
그러다 그 유명한 이수혁 아들 선언을 하고 난 후에는 그나마 회의에 들어오긴 했다.
들어오기는 하는데…….
‘진짜 사람이 딴 생각할 때 어떤 표정을 짓게 되는지……. 내가 이 사람 보면서 배웠지.’
정신은 늘 딴 데 있었다.
아마 아랫사람이었다면.
아니, 그냥 연배 차이가 얼마 안 났다면.
아니, 이현종만 아니었으면 진짜 한 소리 했을 텐데.
하필이면 태도 개판인 놈이 불세출의 기인이자 대한민국 의료계의 월드 스타 이현종이었다.
김문재는 다시금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눌러 앉히며 말했다.
“이번에 김다현 회장님이 후원하셔서요. 저희 다 리무진 버스 타고 갑니다.”
“응? 진짜로? 리무진?”
“네.”
“아……. 그래서 버스가…… 오. 레지던트들도 다 타는 건가?”
“네. 김다현 회장님이 그런 걸로 차별하면 감정 상한다고.”
“그건 맞지.”
이미 전에 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뿐이었지만 이현종은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껄껄 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김문재는 화도 다 잊게 될 지경이었다.
하여간 레지던트들 챙기는 것 하나는 일품인 사람이었다.
‘물론 혼내는 것도 일품이긴 하지.’
오죽하면 이현종 얼굴만 보면 토할 것 같다는 애들이 나오겠나.
저변에 깔린 것이 악의가 아니라 순전히 티칭 마인드라는 걸 몰랐더라면 한마디쯤 해 줬을 정도였다.
“자, 그럼 타자고. 하긴, 이번 학회가 진주인가?”
“네. 4시간 반 걸립니다.”
“진짜 멀구나.”
이현종은 김문재의 어깨를 툭 치고는 아직 새벽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일러 보이는 찬 공기를 헤치고 버스로 향했다.
아무래도 석좌 교수에 센터장이다 보니 맨 앞 버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순리대로라면 수혁은 3번째 또는 4번째 버스에 타야 할 터였다.
내과에 교수가 워낙 많아서 그랬다.
“아빠.”
“어. 타자.”
태화 의료원은 딱히 순리를 따지는 병원이 아니었다.
태화 그룹이 그러하듯 이 병원도 실력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이제까지는 연공서열이 우선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씹어 먹어 버린 사람, 수혁이 등장하고부터는 슬슬 병원 문화도 바뀌고 있었다.
“조태진…… 넌 왜 여깄어.”
아무리 그래도 조태진이 맨 앞 버스에 타는 건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이수혁이야 부센터장이라는 직함이라도 달고 있지만, 조태진은 아무것도 없는 평교수 아닌가.
심지어 이제 겨우 정교수 달까 말까 한 나이이기도 했다.
“아……. 저요. 자리 바꿨어요.”
“누구…… 누구랑?”
“장강명 교수님이랑요.”
해서 물어봤더니 영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장강명? 아니……. 그 인간도 이런 거에 목숨 거는 사람인데?”
차라리 이현종 본인이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을 테니 자연스러웠을 터였다.
한데 장장명이?
권력에 미친놈 아니던가?
그래서 지금도 아부하느라 정신이 없지 않나?
가끔 마주칠 때면 이러다 똥꼬 허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장강명은 위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올라간 자리를 즐기는 편이기도 했고.
“그…….”
조태진은 이현종을 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이 얘기를 해도 되나?’
장강명이 자리 즐기는 것보다 질색하는 게 있다는 것.
그게 다름 아닌 이현종과 신현태가 주접 떠는 것이라는 것.
특히 수혁이 실제로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것.
‘얘기하지 말자.’
마침 신현태도 자리에 올라타고 있었다.
공정함을 외치던 사람 주제에 수혁 자리를 자기 옆자리로 끌어 올린 사람.
그 사람 앞에서 ‘수혁이 얘기하는 거 싫어하는 인간이 있답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괘씸하긴 해. 그래도…….’
당연히 조태진도 장강명이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장강명이 수혁에게 얼마나 잘해 주고 있는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불신자잖아.’
믿음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낱 인간 따위…….
“오늘 발표할 애가 있는데, 아직 준비가 다 안 돼서 같이 가면서 봐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조태진은 속내와는 달리 멀쩡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현종과 신현태를 배려해서는 아니었다.
‘우리 수혁이…… 이런 거 싫어하지.’
아무리 봐도 신적인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본인이 거부하고 있지 않나.
상대가 수혁이 아니라면 조태진이 가지고 있는 컬트적인 지식을 활용해 뭐라도 해 볼 텐데.
하필 수혁이라 문제였다.
그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하여간. 어제 수혁이가 진단한 환자가 있는데 말이야. 기가 막혀 아주. 들어 봐.”
게다가 딱히 자기 얘기를 꺼낼 틈도 없었다.
“해 봐, 해 봐.”
두 노인네가 눈을 번쩍이면서 수혁이 둥가둥가에 열을 올리기 시작해서 그랬다.
예전에는 수혁도 이러면 좀 부담스러워했었는데.
“제가 말할까요?”
“오, 직접? 오히려 좋아.”
요새는 즐기고 있었다.
눈이 빤딱거리는 게 진짜 진심이었다.
‘좋다.’
물론 조태진에게는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이거 들으려고 이 자리에 온 거니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학회 장소, 그러니까 남강 뷰를 자랑하는 호텔 앞에 차가 서 있었다.
‘뭐야? 언제 왔어?’
분명 4시간 반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
조태진은 중간에 자신이 혹 기면 증세라도 보였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현종,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신현태는 거의 뭐 좌절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오면서 인재 영입 계획 좀 더 다듬으려고 했는데…….”
“그럼 하지 그랬어.”
“얘기 좀만 하다 하려고 했지. 4시간 반이나 걸린다고 했으니까.”
“아. 근데 이거 실화냐? 정말 그렇게 걸렸다고?”
“기사님이 한 300으로 달렸나?”
그런 원장단의 대화를 들으면서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 새끼들…….’
그냥 기사도 아니고 김다현 회장이 직접 준비해 준 사람 아닌가.
정속 주행은 기본이었다.
‘중간에 휴게소도 들렀는데…… 그것도 모르는구나.’
심지어 2시간마다 쉬어야 한다는 규칙도 딱딱 지키면서 왔더랬다.
애초에 그래서 4시간 반이 걸린다고 공지했던 것이고.
‘어떻게 환자 얘기를 4시간 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떠들지? 그것도…… 저렇게 웃으면서?’
기사는 차에서 내려 고개를 털다가, 문득 품 안에 있던 담배를 빼서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여간 아프게 되면 태화 의료원으로 가기는 가야겠단 생각을 하면서였다.
환자에 미친 새끼들이 저렇게 있는데 당연한 일 아니겠나.
하지만 제일 좋은 건 저 미친놈들을 다시는 안 보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해 다짐 후 내일로 미루고 있던 금연을 지켜야 할 거 같았다.
그만큼 지긋지긋하면서도 유익했던 4시간 반이었다.
“일단 학회 등록부터 하긴 해야지.”
“네, 가시죠.”
기사가 그렇게 홀로 생각에 빠진 사이, 일행도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진주까지 거리가 어떻게 되건 간에 다들 학회 시작 시각에 맞춰서 왔기 때문에 입구가 무척 붐볐다.
그 말은 이 웅장한 버스의 행렬을 다들 보게 되었단 얘기였다.
특히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당연히 라이벌 병원인 칠성, 그리고 아선이었다.
“뭐야? 저기는 왜 저렇게…… 설마 저거 리무진이야? 리무진을 타고 왔어?”
“전체 다 그런 거 같은데요? 아이고 허리야.”
“미친……. 왜 우리 그룹은 안 해 줘?”
“그건.”
볼멘소리를 해 대고 있는 칠성 병원 오성흠을 보면서, 안국태는 하고 팠던 얘기를 삼켰다.
‘댁이 요새 삽질을 존나 하니까 일반 버스로 온 거 아닙니까…….’
보통 학회 부대 비용을 병원에서 대 주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되었다.
호텔 체류 비용이나 등록 비용이야 대 주기도 하지만, 그건 대개 해외 학회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의 얘기였다.
이런 국내 학회는 의국비, 그러니까 졸국한 동문들의 성금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요새 우리 내과…… 말이 아니던데.’
‘내가 동네 창피해서…… 3등 내과라잖아. 이런데 우리가 돈을 내고 싶겠어?’
과장으로서 그들의 불만을 온몸으로 감내해야만 했던 안국태는 홀로 몸을 떨었다.
“뭐냐, 저거.”
아선 병원에서는 우창윤이 불만 어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과에서 제일 높은 게 기조실장 우창윤이라 그랬다.
“리무진 버스가 왔네요. 와……. 공항버스네, 저거.”
“우리도 우등이라 편하게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리가 아프네?”
“돈지랄이죠. 대절 비용 몇 배는 들었을걸요? 대당 가격도 가격인데 더 빌려야 하니까.”
“어, 그러니까 배도 아파. 왜 쟤들은 돈이…… 아, 안녕하세요. 회장님.”
우창윤은 인상을 쓴 채, 일부러 가까이 다가온 이현종에게 허리를 숙였다.
수틀리면 뭔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인간이지 않나.
‘으……. 배 아파. 바로 화장실 가야지.’
속이 진짜 부글부글 끓었다.
이현종은 그런 우창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적어도 1명.”
“네?”
이상한 말을 하면서였다.
“최고의 인재 한 명 구해 놔. 어떻게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