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65화 (765/1,303)

765화 전격 모집 (3)

“왜 이래, 선수끼리.”

이현종은 오성흠에게도 같은 말을 건넸다.

이현종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현태가 계획을 덜 짰잖아. 내 잘못이 아냐. 암튼 아님.’

물론 생각만 그렇게 하고 있을 뿐, 태도는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환자 보내는 것도 지금 눈치 보이는 마당에……. 저희 펠로우까지 어떻게…… 군대 간 애들이 태반이라 벌써 얘기가 다 되어 있을 텐데요. 이걸 어떻게 제가.”

“방법은 나도 몰라.”

“네?”

“그래도 해 봐. 한 명. 한 명이야. 아니, 꼭 펠로우 아니어도 된다니까? 어차피 펠로우는 우리가 벌써 하나 기깔 나는 애로 구해 놨어.”

“저…… 저 친구 말이죠.”

오성흠은 아까부터 눈에 거슬리게시리 옆에 와서 서 있던 애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안대훈을 가리켰다.

‘펠로우……시라고?’

속으로도 섣불리 반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용모의 소유자였다.

범상하지 않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이수혁보다도 훨씬 교수다워 보였다.

‘저 번뜩이는 머리 하며 저 표정. 그리고 저 눈깔.’

산전수전 다 겪지 않는 이상 저런 눈은 나올 수가 없었다.

교수 임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아니, 보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교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뭔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저 친구 올해 서른이야. 내년에 군대 대신 군펠 하는 거야.”

“아……. 정말로요?”

“정말로. 내가 이런 거 거짓말해서 뭐 해.”

“근데 그런 얘기를 앞에서 대놓고 해도 됩니까?”

“내가 뭐?”

“아니.”

이거 완전 너 늙어 보인다고 쐐기를 박은 거 아닌가?

이현종은 덤덤했지만 오성흠이 괜히 눈치가 보였다.

눈치 하나로, 정치력 하나로 원장이 된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고요하네. 와……. 저런 애를 대체 어디서 구했지.’

서른이면 아직 애새끼 아닌가.

적어도 의사 사회에서는 그랬다.

전문의도 못 땄을 나이이지 않나.

레지던트는 솔직히 말해서 피교육자 신분이다 보니,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완전한 사회인이라기엔 무리가 좀 있었다.

요새는 의전이니 뭐니 하면서 나이도 있고 경험 있는 애들도 있어서 살짝 다르긴 한데, 그래도 전반적으로 보면 애였다.

‘이수혁하고는 또 다른 느낌으로 비범해 보이는데…….’

한데 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우뚝 선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오성흠은 안대훈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눈앞의 난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 저만한 사람을 대체 어디서 찾습니까. 있을 수는 있는데, 있어도 내놓겠어요? 어디서든 채 갔지.”

“해 봐.”

“아니…….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해 봐.”

“아니…….”

“해.”

별 소용은 없었다.

이현종은 언제나 그렇듯 막무가내였다.

“형,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우창윤 교수한테도 이상하게 말하더니.”

다행인 것은 신현태가 뛰어들어 왔다는 점이었다.

이상한 것으로만 따지면 피차일반인데, 오성흠은 그걸 모르고 있어서 다행으로만 여겨졌다.

“오 원장님. 요새 힘드시다는 거 압니다.”

신현태는 일단 괴롭게 만든 장본인이라면 응당 해야 할 말부터 꺼냈다.

당연한 말인데, 오성흠은 살짝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현종에게 하도 당해서 그랬다.

“네네.”

“헌데 저희 센터……. 확장 계획이 있거든요. 이게 그냥 계획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사안입니다. 당장 이번 달 말부터 삽 풀 거예요.”

“네? 그거 해결됐습…… 아니, 어디에요?”

“칠성에서 수작질 부린 거, 다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거 아십니까? 돈에 넘어갔던 사람은 더 큰 돈 앞에서 잘 무너진다는 거.”

“저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나오니까 또 열 받네. 그냥 현종이 형한테 맡길까.”

“아니, 아닙니다. 제가 죄송했습니다. 그거 근데 제 선에서 지시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알고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직접 비난하진 않는 겁니다.”

태화라고 해서 왜 외래동이니 뭐니 지어 대는 열풍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겠나.

아무리 바루다가 실패작으로 돌아가면서 위축되었다곤 해도, 남들이 하겠다고 하면 따라가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기업이니 않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부지로 예정된 곳에 알박기가 되어 있어서 그랬다.

딴 데 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동선이 확 꼬여서 차라리 안 짓는 게 나아 보여서 그랬다.

최근 그 알박기가 뒷단에서 뭔가 있었다는 걸 깨달은 덕에 해결을 볼 수 있었다.

‘칠성에서 훼방을 놓은 거였어? 그럼 질 수 없지.’

기업은 늘 금전적인 논리로만 돌아갈 거 같아 보이는 집단이지만.

그 기업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인간인 이상 감정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가능했다고 보면 되었다.

태화는 돈을 아끼지 않고 끌어다 썼고, 결국, 그 돈이 어느 순간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액수가 되어 알박기가 철회되었다.

“하여간 이건 확정된 사안이에요. 건물 올라갑니다. 센터 확장될 거고요. 그런데 설비만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병원이 다…… 그렇긴 하죠.”

“네. 그래서 인력 충원을 해야 하는데……. 아무나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게 첫 단추니까요. 저희 태화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키워 줄 생각입니다. 교수 정도가 아니라 그 위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 위라면?”

“이건 기밀이고요. 아니, 원장님이 눈을 빛내면 어떡합니까…….”

신현태는 오성흠이 진짜 못 말릴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놈이…… 욕심이 많아도 정도가 있지.’

원장씩이나 돼 가지고 더 위라고 하니까 바로 눈을 빛내?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원장 해 보면, 이게 별거 아니라는 걸 바로 알게 되니까.

그룹 회의에 가면 말단에 앉아야 하는 신세 아닌가.

돈 벌어야 하는 기업에서 돈 못 버는 병원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그룹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거기 불려 가지도 못할 터였다.

‘원장이면 됐잖아.’

물론 신현태는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뼛속까지 의사니까.

진료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자신은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이현종에게 밀린다뿐이지, 그는 의학자였다.

하지만 오성흠은 종자가 달랐다.

그는 그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에게 의사란 단지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아, 네네. 아무튼, 말씀하시죠.”

“원장님은 이현종 교수님이 따로 약속한 게 있다고 들었어요. 하여간, 이런 내용을 그냥 풀어만 주십시오. 저희가 다른 병원 사람들에게 가서 이런 얘기 하면 살짝 선 넘는 느낌 아닙니까?”

“어……. 얘기 안 하실 거예요?”

“하기는 할 겁니다. 현종이 형이 안 할 사람이 아니니까 제가 어떻게 말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 수는 없죠.”

“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고요? 알럼나이에서 하라는 말은 아니시죠? 저 그럼 돌 맞아 죽습니다.”

알럼나이.

동문회.

칠성 동문회는 당연히 칠성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러니까 다른 병원 교수가 되고 난 후에도 죽어도 칠성 알럼나이에 오지 않겠나.

거기서 ‘우리 인재 중 제일 뛰어난 애 하나를 태화로 보냅시다!’라고 외치면 어떻게 될까.

내일 아침 남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수도 있었다.

“아니죠.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죠. 현종이 형.”

“어어. 이번에 우리가 내과 학회에 좀 관여를 했거든.”

“네? 여기도 뭐 걸렸습니까? 분장했어요?”

“아니……. 정용기가 그렇게 미친놈은 아니고. 그냥 계약이지.”

이현종은 논문을 들고서 학회장에게 갔던 일을 떠올렸다.

정용기는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그 논문을 다 읽었더랬다.

수혁이가 쓴 거에 자신이 쓴 것까지 해서 거의 서너 편은 되었음에도 그랬다.

‘이거 정말 저희 주시는 겁니까?’

그러곤 눈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꿇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 학회지에 내는 게 말이 안 될 만큼 훌륭한 논문을 가져다줬으니까.

‘어, 주는데. 우리 좀 도와줘.’

‘여기서 더요?’

무릎이 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긴 했지만.

하여간 그런 일이 있었다.

“이따 점심시간에 그 런천 미팅 있잖아.”

“아, 네.”

“그때 원장이나 과장 또는 기조실장하고 레지던트들하고 같이 식사하라는 안내 멘트가 나갈 거야. 뭐……. 내과의 친목을 도모하라는 취지지.”

“저희 과장이 안국태라 지가 하려고 할 텐데요?”

“어. 근데 그 뒤로 병원 과장 미팅을 잡을 거거든. 그럼 안국태가 어디로 갈까?”

“거기 가겠네요.”

안국태는 그야말로 권력에 미친 사람 아닌가.

오성흠이 볼 때는 깜냥도 안 되는 놈이 그저 욕심만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여간에 그런 놈일수록 어떻게 움직일지 딱딱 예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 아선도 과장 빠지면 기조실장이 가겠지.”

“와……. 이거 교수님…… 아니, 회장님이 생각하신 거예요?”

“아니.”

“그럼 누가?”

“저기 저 친구.”

“저……? 안대훈이요?”

“어.”

“와…….”

오성흠은 팔뚝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내려다보았다.

‘칠성이 태화를 이길 수 있을까.’

무대뽀의 이현종.

미친 실력의 이수혁.

그리고…… 군사 안대훈까지?

이건 거의 항우가 장량, 한신을 거느리고 있는 셈 아닌가?

‘이런 걸 시발 어떻게 이겨.’

오성흠이 좌절하고 있는 사이, 안대훈은 감개무량함을 느끼고 있었다.

‘교주님……. 불초 오늘만큼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요.’

이 자리에 없는 수혁을 향해서였다.

수혁이라고 해서 인재 영입에 관심이 없어 자리를 비운 건 아니었다.

“교수님, 발표 자료는 여기에 옮겨 두시면 됩니다.”

첫날 두 번째 세션.

그러니까 모두의 관심이 최고조로 몰리는 시간에 발표를 맡지 않았나.

‘수혁아, 모집이고 나발이고 제일 중요한 건 발표야. 모두를 압도하자. 여기가 학회장인지 연회장인지 모르게 말이야.’

이현종은 애초에 학자이지 않나.

학회를 몸살 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는 수혁에게 다른 일은 일단 신경 쓰지 말고 발표만 신경 써 달라고 당부한 바 있었다.

“아, 네.”

[너무 웃고 있는 거 아닙니까?]

수혁 또한 그러고 있었다.

이현종이 가슴으로 낳은 게 아니라 진짜로 낳은 아들 아니냔 말을 들을 만큼이나 닮은 사람이라 그랬다.

‘이게 내 본질이야. 실력으로 압도해야지. 잊었어? 나 학회 데뷔 때 어땠는지?’

[이런 건 남의 입을 빌려서 해야 멋있는 법입니다.]

‘그럼 네가 말해.’

[어……. 제가요?]

‘어.’

[지리긴 했죠. 안국태 침몰시키고…… 내과 학회장에서는 아예 아들 사건이 일어났으니.]

게다가 수혁은 학회에서 가히 파란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사건들을 일으키고 다닌 몸이지 않나.

진짜 자신 있는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기다리기가 힘들 정도네.’

[그때를 떠올리고 나니, 저도 그렇습니다. 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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