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6화 압도 (1)
“이수혁이다.”
“어디? 아……. 와……. 간지 보소.”
수군대는 소리가 있었다.
‘새끼들.’
[경배하라.]
이런 얘기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수혁은 이제 저런 분위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어딜 가도 저런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대박……. 오늘 완전 칼 갈고 나오셨다던데.”
“태화 애들은 싹 공항 리무진 타고 왔다더라.”
“그거 다 이수혁 교수님이 쏘는 거라며.”
“그렇지, 뭐. 왜 우리 병원에는 천재가 없는 걸까.”
하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좀 심한 느낌이었다.
잘난 척과 더불어 이런 종류의 뒷얘기, 즉 숭배를 즐기는 수혁이 듣기에도 살짝 선을 넘는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강의 듣고 싶어서 기다리기 힘든 건 처음이네.”
“나도 그래. 진짜 멋지다…….”
수혁은 강의 파일을 옮기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수군거림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뭐야, 이게.’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죠.]
어림잡아 수십 명이 넘는 애들 아니, 레지던트들이 모여 있었다.
뭔가 딴짓을 하기 위해 모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싹 다 이쪽만 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수혁을 보고 있었다.
“어, 쳐다보신다.”
“와……. 진짜 멋지다.”
“잘생겼다.
“에이, 그건 좀.”
“너보단 낫거든.”
“그건 인정.”
게다가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에 싹 반응하고 있었다.
‘이거…….’
아마 반응이 이것보다 조금만 덜했더라면, 수혁은 취했을 터였다.
이 분위기에.
저들의 반응에.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지 않나.
[안대훈의 작품 아닐까요?]
‘어……. 이건 빼박이네.’
그렇다 보니 머릿속에 한 사람의 대머리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
오늘도 눈 돌아간 채로 어디론가 향하지 않았나.
그놈이 뭔가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이 분명했다.
“저기, 저기 있는 사람들 의사 맞아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첫 번째 의심은 ‘저들이 의사가 맞나’였다.
연기자 같았다.
“의사 맞냐고요. 정식으로 등록한 거예요?”
“아……. 네. 저희 호텔 지금 내과 학회 관련자만 투숙객으로 받고 있습니다. 아예 정문에서 확인하고 들여보내고 있어요.”
“어…….”
이러면 나가리인데.
쟤들이 진짜 의사라고?
나한테 멋지다고 수군대는 애들이?
정말?
[수혁. 정신 차리고요. 죄다 신도들일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
[네?]
‘우리 병원 애들 아니잖아. 처음 보는 애들이 태반인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괜찮아. 여자애들도 있어. 나 장가간다.’
[아니……. 이 양반이 아예 포기한 줄 알았더니.
‘잘 안 되더라. 그게 포기가 안 돼. 우리 아빠도 결혼한다는데, 나는 왜 못 해.’
[그…… 안대훈 같은 사람일 텐데요?]
‘아.’
여자 안대훈과 결혼을 한다, 이 말이란 말인가.
수혁은 잠시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절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래요. 정신 차리십시오.]
바루다는 그저 수혁이 그게 말이 안 된다 여겨서 이러고 있는 건 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여자 안대훈이면 나쁠 것도 없지 않나 생각한 자신이 나쁘단 생각이 들어서 이러고 있었다.
“교수님. 자료 다 옮기신 거 같은데요?”
“아, 네네.”
“대기실로 이동하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강의장에 계시다가…… 세션 열릴 때쯤 오셔도 됩니다.”
다행인 것은 수혁이 혼자 멍하니 있을 만한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우선 바로 옆에 붙은 학회 대행업체 직원이 꽤 싹싹한 편이었다.
똑 부러지는 편이기도 했고.
덕분에 수혁은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강의.’
[그래요, 강의 들어야죠.]
‘기분 갑자기 나빠졌는데…… 질문이나 하러 갈까.’
[와…….]
‘왜.’
[아닙니다. 그게 수혁이 사는 방식이라면, 저도 존중하겠습니다.]
제정신이라지만, 남들이 볼 때도 제정신인 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 크리스탈룸 첫 번째 세션은 소화기 질환 증례 토의입니다. 태화 의료원 소화기내과의 장강명 교수님 좌장을 맡아 주셨습니다.”
짚이는 대로 안에 들어갔다.
첫날 두 번째 세션이 발표였다 보니, 애초에 첫 번째 세션은 들어도 듣는 게 아닐 거라 생각한 탓에 뭐 하는지도 몰라서 그랬다.
‘아니…… 이수혁이 왜.’
반면 이제 막 소개를 받고, 만면에 사회적 미소를 띤 채 마이크를 집어 들려던 장강명은 일순 당황했다.
일단 이수혁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호재는 아니었다.
유명하지 않나.
이현종, 이수혁.
학회의 도살자 같은 놈들.
‘표정은 또 왜…….’
제아무리 이수혁의 명성이 아직까지는 이현종만 못하다곤 하지만.
저렇게 굳은 얼굴로 들어서는 이수혁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장 교수님?”
그렇게 장강명이 가만히 있으려니, 옆에 있던 사회자가 그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는 얼굴이었다.
‘넌 의사가 아니니…… 모르겠지. 이 두려움을.’
그날 장강명은 떠올렸다.
이현종에게 짓밟힌 채 도망가던 심장내과 사람들의 두려움을.
‘아니, 아니지. 아, 애니 끊어야지.’
장강명은 고개를 털어 내고는 애써 마이크를 잡았다.
“아, 네. 좌장을 맡은 장강명입니다. 어려운 케이스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토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침착을 가장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좌장이지, 발표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벌벌 떨고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이현종, 신현태 등에게 이수혁에 관한 얘기를 진절머리나게 들어서 더했다.
오늘만큼은 조용히 오려고 자리도 바꿨는데, 이렇게 학회장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그럼 첫 번째 발표…… 네, 경상대학교 병원 2년 차 신중섭 선생님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장강명은 확실히 대단한 위인이었다.
당황한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발표자 소개를 마칠 수 있었다.
‘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뚝딱거리면서 걷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른 걸까요? 팔과 다리가 같은 쪽이 나갑니다.]
‘뭐야……. 나처럼 몸이 불편한가.’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에 반해 신중섭이라 소개된 레지던트는 단상을 거의 히말라야산맥이라도 되는 것처럼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그냥 겉으로 봐서는 몸이 불편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방향이 이상할 뿐,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왜 이수혁 교수님이…… 두 번째 세션에 자기 발표 있는 거 아니었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그저 긴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 들었던 딸깍거리는 소리.
최근 레지던트 단톡방을 떠도는 몇몇 영상에서 들었던 소리였다.
설마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만, 니들 다 죽었단 얼굴을 하고 있는 이수혁이 서 있었다.
‘왜 그렇게…… 왜 그렇게 노려보십니까……. 교수님……. 존나 무섭게…….’
그리고 지금은 삐딱하게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이었다.
더 열 받는 건, 주변에 있는 동기 놈들은 기대에 가득 차 있다는 점이었다.
‘와. 어떻게 죽이시려나.’
‘병원에서의 이수혁이 환자들의 구원자라면…….’
‘학회에서의 이수혁은 의사들의 저승사자지.’
다 들렸다.
놈들의 생각이.
“신중섭 선생?”
장강명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넌 이제 죽었다.
조의를 표한다 등등.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단 건가.
‘나만 아니면 되지롱. 어이구, 준비해 온 케이스 봐라. 답도 없는 걸 들고 왔네.’
죽는 건 내가 아닌데.
좌장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세션이 제때 시작해서 제때 끝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적어도 오늘은 그랬다.
장강명은 아예 코멘트도 아낄 생각이었다.
괜히 입 털다가 꼬리 잡히면 죽을 거 같았으니.
“아, 네. 그…… 발표를 맡게 된 경상대…… 학교 병원 2년 차 신중섭입니다.”
“목소리 조금만 크게요.”
“네.”
해서 그냥 이런 소리만 하기로 했다.
당사자가 듣기에는 얄미운 소리.
하지만 이수혁이 딱히 책잡을 수 없는 소리들만.
“다시 하겠습니다! 경상대학교 병원 2년 차 신중섭입니다. 오늘 제가 발표 드릴 내용은…… 장 림프관 확장증 케이스입니다.”
“오.”
수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장 림프관 확장증이라니?
그야말로 자갈길에 핀 꽃 같은 케이스 아닌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희귀질환이 툭 하고 튀어나온 셈이었다.
[웃지 마세요.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어어. 그렇지.’
[이미 늦은 거 같긴 합니다.]
실제로 그랬다.
그 누구보다 장강명이 제일 먼저 수혁을 확인했다.
‘어우, 소름.’
저 웃음.
저게 무엇을 뜻하겠나.
‘이따 조의금이라도 줘야 하나.’
장강명은 무의식적으로 품속을 더듬어 현금이 있나 없나를 뒤졌다.
“환자는 30세, 여환입니다. 8개월 전부터 시작된 간헐적인 설사, 안면 부종을 주소로 본원 외래 내원하였습니다.”
다행한 일이라면 발표자는 너무 긴장한 탓에 수혁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저 벌벌 떨면서, 외웠던 대사를 줄줄 읊고 있었다.
연습은 꽤 많이 한 모양이었다.
멀리서도 발발 떨리는 게 다 보이는데도 대사는 매끄러웠다.
‘전형적인 증상이네.’
[네.]
덕분에 수혁은 여전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심지어 콧노래까지 부르게 되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어서 바루다조차 캐치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만 뜨악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 이런 걸 잡아 줘야 하는 장강명도 비슷한 심정이어서, 제지도 없었다.
“이뇨제 처방 후 경과 관찰하였으나, 환자 증상이 더 심해져서 입원하여 검사 진행하였습니다.”
이뇨제 얘기에서 수혁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인상을 썼다, 이 말이었다.
‘어우.’
장강명은 왜 이뇨제를 썼는지에 대해 잘 답을 해야 될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생각만 했지, 말을 해 주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자신한테 질문이 돌아오면 안 되니까.
대충 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완벽하게 답할 자신은 없었다.
“검사 결과, 혈중 알부민 농도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간 수치는 정상이었으나, 간 질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초음파 시행하였습니다. 다음은 초음파 소견입니다.”
수혁의 미간에 자리한 주름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진짜 억지로 때려 맞췄네……. 애초에 추론 과정을 거치긴 한 건가……. 그걸 모르겠을 정도야.’
케이스는 좋았다.
저 질환 자체는 흥미로웠다.
근데 그 질환을 진단해 나가는 과정은 개판이었다.
“초음파상 소견은 정상이었습니다. 단백뇨 의심하에 소변 검사 재차 시행하였으나, 요 단백은 음성이었습니다.”
[아니, 간 초음파 할 때 신장도 봤을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다…….’
아니, 개판도 저거보단 나을 거 같았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끊고, 대신 끙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팡이로 땅바닥을 딱딱 찍어 대면서였다.
‘존나 무섭다…….’
장강명은 이제 차마 이 발표를 더 듣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