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67화 (767/1,303)

767화 압도 (2)

“그 외…… 특이 사항이 보이지 않아 우선 알부민 보충하면서 입원 3일째까지 경과 관찰하였……습니다.”

3일간 경과 관찰이라.

수혁은 저도 모르게 지팡이로 바닥을 쿵 하고 찍었다.

깡.

일반적인 바닥이었다면 둔중한 소리만 나고 말았을 텐데.

하필 남강 뷰를 자랑하는 3성급 호텔은 금번 내과 학회를 시작으로 해서 전국적인 학회 명소로 자리 잡고자 결심이라도 한 건지 뭔지, 바닥을 대리석으로 바꾼 마당이었다.

‘어……. 저러면.’

호텔 거의 전체를 대관해서 진행하는 학회 아닌가.

워낙에 큰 손님들이다 보니 학회 대행 직원뿐 아니라 호텔 직원도 나와 있었다.

사장님이 애지중지하던 대리석 바닥을 지팡이가 푹 하고 찌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아려 왔다.

‘아…….’

하지만 단연컨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지던트 신중섭만큼 아리진 않았을 터였다.

분명히 찔린 건 바닥인데, 심장이 찔린 것 같았다.

‘X됐구나.’

하도 긴장해서 앞도 못 보고 있었는데.

그냥 고개를 숙이고 할 걸 그랬나.

괜히 한 번은 앞을 봐야 할 거 같아서 쳐들었다가, 수혁을 보고 말았다.

“신중섭 선생?”

장강명도 신중섭이 왜 말을 하다 멈추었는지 다 알았다.

그 또한 수혁을 보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아니잖아?’

아니, 이게 아니라 좌장인 이상 그에게는 이 세션을 제때 잘 끝나도록 끌고 나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 네. 그…… 네. 3일째 아침 시행한 요 검사에서도 요 단백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저단백혈증, 저알부민혈증, 저감마글로빈혈증, 저림프구혈증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재차 복부 초음파를 시행하였습니다.”

장강명의 말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신중섭은 지난 며칠간 그야말로 달달 외운 내용을 읊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번 추계 학회는 진주에 소재한 경상대학교 병원이, 즉 그가 있는 병원이 주최하는 행사였으니까.

‘교수님…… 어디…… 어디 가요.’

한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잘 보고 있던 그의 지정의, 그러니까 이 환자를 같이 봤던 교수가 몸을 일으키더니 부리나케 밖으로 향했던 것.

전화기를 부여잡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급한 전화가 왔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신중섭은 알 수 있었다.

‘교수님 전화…… 전화 오면 불이 옆으로 돌잖아요?’

교수들 중에는 소소하게 특이한 사람이 꽤 많았다.

그중 제일 많은 부류가 얼리 어답터 쪽인데 저 교수도 그랬다.

뭐 이상한 거 나오면 일단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폰에 기이한 장치를 달고 있었다.

‘도망…… 도망간 거예요?’

그러니 저건 도망이었다.

‘하……. 진짜 발표 답답하네. 내가 여기 있었으면 진짜.’

[그러니까요. 싹 엎어 버리고 싶네요.]

공교롭게도 수혁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에 더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수혁의 표정은 심히 좋지 못했다.

“신중섭 선생?”

그 와중에 장강명은 집요하고도 얄미운 얼굴로 신중섭을 불렀다.

신중섭은 도망가는 우리 교수나 붙잡아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 또한 전문의 따고 군의관이 끝나면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펠로우를 해 보고 싶어서 그랬다.

게다가 장강명은 하필 소화기내과 교수이지 않나.

이미 그른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노력은 해야만 했다.

“아, 네. 그…… 네. 일단 복부 초음파상 약간의 복수가 있는 것 외에는 간, 신장 등에 이상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정산 신기능과 아까 말씀드린…… 그 뭐야. 아, 저단백혈증, 저알부민혈증, 저감마글로빈혈증, 저림프구혈증을 종합하여 볼 때, 장에서의 단백질 소실이 있을 거라 의심했습니다.”

그 순간 수혁의 잔뜩 굳어 있던 얼굴이 그나마 조금 풀렸다.

3일이면 너무 오래 걸린 것이긴 했다.

초기 추론 과정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막무가내식 진료를 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답을 찾아가고는 있었다.

하여간에 현대 의학이 지금껏 쌓아 온 지식의 총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검사 막 돌려서 얻어 낸 답이라, 칭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맞지. 추론 과정이 너무 빈약해. 아니, 하지도 않았어.’

[설마 저런 식의 수련 과정이 보통인 것은 아니겠죠.]

‘에이……. 설마. 선배들도 저렇게 배우지 않았던 거 같은데.’

[수혁. 태화에는 이현종이 있습니다.]

‘아선도 좀 달라.’

[거긴 우창윤이 있죠. 이현종에 비하면 솔직히 같은 내과 의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실력이 후달리기는 하나……. 그래도 뭐. 그 정도면 우수한 사람입니다.]

‘흠.’

수혁과 바루다가 상대를 평가 절하하고 있는 사이, 신중섭은 어렵게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이에 추가적으로 흉부, 복부 CT 시행하였습니다. 흉부 CT상 중등도의 늑막 삼출 소견을 보였고 복부 CT상에서 소장의 미만성, 결절성 확장과 장간막의 혈관을 에워싸는 Water-Density(물 밀도)의 다발성 결절성 병변들이 관찰되었습니다. 이외에는 특이 소견이 없었습니다.”

수혁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아니 저건…… 지금 CT 찍어 놓고 제대로 소견도 못 읽네.’

[판독은 받았겠죠?]

‘판독을 받았다 해도…… 내과 측에서 제대로 임상 정보를 안 주면 저렇게 말할 수 있지. 지금 의심해야 하는 질환이 있잖아. 그럼 저렇게 판독을 안 줬을 거야.’

[하긴……. 영상의학과면 영상이 전문인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좀 더 들어 보면 다른 내용이 나오겠지 했으나, 아쉽게도 신중섭은 그대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도망갔던 교수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가에 서성이고 있었다.

열린 틈새로 수혁을 살피면서였다.

절대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수혁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입원 5일째 내시경을 시행했습니다. 시행한 내시경 소견입니다. 보시다시피……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이에 장 림프관 확장증을 의심하였고, 현재 퇴원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 겠습니다.”

신중섭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서둘러 발표를 마쳤다.

애절한 눈으로 장강명을 돌아보면서였다.

부디 시간이 없으니 질문은 생략하라고, 그렇게 말했다.

장강명은 텔레파시 따위의 초능력이 없음에도 신중섭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근데 어쩌지. 발표가 짧네.’

별로 상관은 없었다.

좌장은 뭐가 되었건 시간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따로 코멘트를 주거나, 질문이 없을 때 질문을 개인적으로 던지는 것도 좌장의 일이긴 한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네, 태화 의료원 이수혁 교수님.”

수혁이 손을 들었다.

비장한 얼굴로.

장강명이 그의 이름을 호명하자, 대기 중이던 대행업체 직원이 무선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네, 발표 잘 들었습니다. 태화 의료원 이수혁입니다.”

수혁은 마이크를 쥔 채, 반대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레 하는 말인 발표 잘 들었다는 말을 정말이지 성의 없게 하면서였다.

‘안타깝다……. 나라도 알려 줘야지.’

물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수혁이 레지던트 괴롭혀서 뭐가 좋겠나.

그저 가르치면서 잘난 척도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당연히 이 자리에 교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결국은 저기서 떨고 있는 레지던트는 가만히 있고, 교수와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

“질문드릴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해서 여러 개를 물어볼 아니, 추궁할 작정이었다.

“어……. 네. 교수님.”

듣는 입장에서는 괴롭기만 했다.

질문 하나도 뒤질 것 같은데, 여러 개?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가운데, 수혁이 말을 이었다.

“우선 환자가 8개월 전부터 설사하기 시작했고, 얼굴이 붓는 등의 증상이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맞죠?”

“네.”

“이 상황에서 어떤 질환을 의심해야 합니까?”

“네?”

“다시 묻겠습니다.”

수혁은 이제 신중섭 말고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니들도 아는 게 있으면 답하고, 만약 모른다면 배워라, 뭐 이런 생각에서였다.

‘광역 도발인가? 역시…….’

‘킹갓수혁…….’

태화 측 신도는 그저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들의 교수가 다른 병원을 싸잡아 뭉개는 장면을 목도하는 듯했다.

우습지만, 레지던트 시절에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재미로 느껴지기에 그랬다.

“8개월 전부터 시작된 설사, 그리고 동반된 안면 부종 등의 부종. 이 두 가지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무엇이 있습니까.”

태화는 재밌었다.

나머지는 아니었다.

특히 신중섭은 머리가 아팠다.

‘어……. 그것만으로 의심을 한다고?’

이걸 본 교수는 어떻게 했더라.

그래, 일단 부었으니까 이뇨제를 줬다.

그리고 경과 관찰을 했다.

이뇨제를 왜 줬지?

‘신장…… 신장을 의심한 거지! 맞네, 시발!’

당황한 탓에 방금 자기가 어떤 질환에 대해 발표했는지는 잊었다.

그저 교수가 왜 그랬는지, 그것에 대한 변명만 급급했다.

“신장 질환입니다! 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 것은 수혁이 그 말을 듣고 지은 표정 때문이었다.

“신장이요?”

“어…….”

“신장 질환에서 설사가 동반될 수는 있습니다. 신부전증이 발생했을 경우, 배출되지 못한 대사 결과물 때문에 네. 그럴 수 있죠. 근데 이 환자의 초기 증상에서 신부전을 의심하는 것이 온당합니까? 만약 그랬다면 입원시켜야 하지 않았을까요? 투석이든 뭐든 해야 했을 거 아닐까요?”

“그……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 정도가 아닌 신질환에서 설사가 흔한 증상입니까?”

“어…….”

이것이 수혁이 잡아낸 첫 번째 오류였다.

지금 이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었다.

앞뒤가 맞질 않았다.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8개월 전 시작된 설사와 부종. 이 두 가지를 일으키는 질환은 무엇이 있습니까.”

두 가지 증상을 모두 일으킬 수 있는 질환 중 신질환이 있는 것은 맞았다.

하나 만약 신질환으로 생각했다면, 저 날 입원시켰어야 맞았다.

아주 위급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급성 신부전은 실제로 어어 하는 순간에 환자를 잃을 수도 있는 질환이니까.

“그…… 염증성 장 질환…….”

신중섭은 이번 문답에서 그걸 깨달았다.

케이스를 준비할 때는 보이지 않던 답이었다.

이미 진단을 내렸고, 따라서 이 과정이 정답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그랬다.

과정이 개판일 때도 답은 정답일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그랬다.

“아까보다는 나은 답인데. 하여간, 어려울 수 있는 질문이었죠. 애초에 정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왜인지 아세요?”

“그…….”

검사를 안 해서 아닙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검사 만능주의에 매몰되어서 그랬다.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요새 대부분의 의사가 그랬으니.

“신체 검진에 대해서 언급이 없습니다. 소견이 어땠습니까. 그걸 더하면 훨씬 추론이 쉬워질 텐데.”

“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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