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화 압도 (3)
신체 검진.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진료 과정에서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교과서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 가르치고 있었다.
심지어 오스키 시험(OSCE, 객관 구조화 진료 시험)에서도 신체 검진은 필수 항목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청진…… 말고는 딱히…….’
그나마 이런 생각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청진기를 두고 다니는 내과 의사도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어찌 보면 합리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엑스레이라는, 명백히 우월한 검사가 있으니까.
검사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니고.
특히 대학 병원이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에 있다면 정말 바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신체 검진 소견은 어떻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물었다.
전체적으로 체구가 큰 사람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좌중은 압도되고 있었다.
다들 신체 검진을 무시하고 있어서 그랬을 터였다.
또 소문에 의하면 이수혁은 신체 검진을 진단하는 데 있어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고도 했고.
“그…… 그게. 음.”
“지금 이 자리에서 기록을 보셔도 됩니다. 좌장님?”
“어어. 네?”
한편 장강명은 팔짱까지 낀 채 구경하고 있었다.
이수혁이나 이현종이나 적으로 두면 진짜 최악이 되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방관하고 있을 때만큼은 최고의 구경거리를 선사해 주는 이들 아닌가.
이미 좌장으로서의 책무는 다 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수혁이 갑자기 자기 이름을 불러서 장강명은 적잖이 당황했다.
설마 이제부터 나는 너를 조질 참입니다, 뭐 이런 뜻인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시간 얼마나 있죠?”
“아.”
다행히 아니었다.
장강명은 타임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남은 시간은 이제 5분.
‘우리 신중섭 선생…… 살았네?’
너도 다행이다 인마 라고 하려는데, 학회 대행업체 직원이 조르르 달려와 귓속말을 전했다.
“다음 발표자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지금 경상대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
정말로 ‘?’만 떴다.
갑자기?
내과 의사가?
배가 아프다고?
‘이 미친놈이 이거 보다가 도망갔구나!’
암만 내과 학회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지만.
나 때는 그래도 발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했는데.
어?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장강명이 이제 막 라떼는을 시전하려는 순간, 또 다른 직원이 조르르 달려왔다.
“저, 교수님.”
“응, 왜요.”
“다다음 발표자는 갑자기 산통이 온다고…….”
“?”
애가 나온다고?
설마 방금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저 친구 말하는 건가?
머리가 짧은 거 같은데?
세 번째 발표자 이름도 김준호인데?
‘아니, 아니지. 이건 편견이지.’
여자라고 꼭 이름이 이뻐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머리가 짧을 필요도 없고.
하지만 산통이 있을 정도의 임산부라면 응당 배가 나와야 했다.
거동도 불편해야만 했고.
저렇게 날렵하게 뛰어나갈 수는 없었다.
이건 편견이 아니라, 의학적인 상식에 기반한 추론이었다.
“좌장님?”
장강명이 벙 쪄서 눈만 끔뻑이고 있자, 수혁이 재차 불렀다.
그럼에도 장강명은 당장 답을 해 주지 못했다.
신중섭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 세션의 예수님이구나.’
죄가 없는 건 아니긴 했다.
의사에게 있어 모르는 건 죄니까.
그러나 홀로 다른 이들의 죄까지 뒤집어써야 한다는 건, 분명 예수님과 닮아 있었다.
“그…… 시간 많습니다. 대략 35분?”
“네?”
신중섭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나한테 한번 죽어 볼래.
뭐 이런 얼굴을 하고서였다.
감히 레지던트가 좌장을 맡을 정도로 명망 있는 교수에게 이럴 수가 있나 싶겠지만.
장강명은 눈을 피했다.
“다음, 다다음 발표자가 모두 아파서 발표가 불가하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그러곤 빠르게 말을 전했다.
‘와. 이 개새끼들이.’
신중섭은 그 순간 몇몇 얼굴을 떠올렸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떨리네요.’
‘저도…… 발표가 처음이라.’
‘하하. 잘하실 겁니다, 파이팅.’
학회 발표 데뷔를 보통 내과 학회에서 치르는 데다가, 발표자는 전원 레지던트였다.
분위기가 어찌나 훈훈했던지.
파이팅까지 오고 갔었는데.
이렇게 홀랑 도망가?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잘됐네요.”
잘되긴.
일이 이보다 안 될 수가 있을까 싶은데.
“신중섭 선생님.”
수혁도 신중섭의 심리 상태 정도는 다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들어 보이네.’
[원래 배움의 길은 힘들죠.]
하지만 이유를 달리 분석했다.
그냥 공부가 힘든 것으로.
수혁은 그랬으니까.
“네…….”
“신체 검진 소견…… 없습니까? 기록을 보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잠시만요.”
“네.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하죠.”
원래 세션 발표자들이 없어지면, 그 세션은 분위기가 개판이 되기 마련이었다.
장강명도 몇 번 그런 일을 본 적이 있었다.
발표자가 사라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몇 번이나 있을 수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해외 학회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특히 해외여행이 아주 자유롭지 못한 국가들, 즉 이전의 중국 같은 나라에서 온 발표자들은 발표를 가라로 걸어 놓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소식이 전해지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발표장으로 향하기 바쁜 게 정상이었다.
‘와……. 다들 입 꾹 다물고 앉은 거 봐라…….’
하지만 지금 이 강의장의 분위기는 그저 팽팽할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 싶은 분위기였다.
수혁의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기에 그랬다.
“그, 기록은 없는데. 사진은 있습니다.”
“띄워 보시죠.”
“잠시만.”
“네. 시간 많으니까.”
“아.”
신중섭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의무 기록에 떠 있던 환자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고, PPT에 띄웠다.
손이 벌벌 떨리긴 했지만.
대학 병원 레지던트이니만큼 압박감 속에 일하는 거 하나는 제대로 수련받아서 어찌어찌해 낼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네?”
“얼굴 소견이 어떻습니까?”
“그…….”
그렇게 뜬 사진을 보며 질문이 시작되었다.
신중섭은 답하지 못했다.
딱히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해서 수혁이 대신 입을 열었다.
모두가 숨소리마저 죽인 채 집중했다.
“부종이 있습니다. 체액 저류가 있다는 뜻이죠. 공막은 깨끗합니다. 황달 등의 간 질환이 없다는 거죠. 또 창백해 보이지는 않네요. 빈혈 및 빈혈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여기서 배제됩니다.”
“아…….”
“가슴으로 가 볼까요. 여기는 별반 특이점이 없습니다. 물론 타진이나 청진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기록이 없어 확인 불가. 그럼 복부. 네, 넘겨요.”
“네.”
“복부는 전반적으로 팽만 되어 있습니다. 헌데 얼굴, 경부, 흉부 모두 림파선 비대는 없군요. 환자의 병력도 그랬지만, 급성 감염 질환일 가능성은 적겠습니다. 그럼 복부 팽만이 가리키는 소견이 뭘까요?”
“어…….”
그걸 알 수가 있나?
신중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지던트 전원 그리고 나머지 의료진들도 대개 그랬다.
‘미친……. 이걸 이렇게 엮어?’
다만 좌장을 맡은 장강명은 달랐다.
아무리 검진으로 빠져서 대개의 경험을 내시경실에서 쌓고 있다고는 하지만.
놀라운 향상심, 그 저변에 깔린 마음이 비록 출세에 있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팔뚝 아니,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느끼며 수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안면 부종이 있었죠. 즉 체액의 저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부 팽만의 원인은 아마도 복수일 겁니다. 부종과 복수를 둘 다 일으키려면 대개 저알부민혈증이 있어야 하겠죠. 그러니 여기서는 이뇨제 따위를 처방할 일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부터 시행했어야 합니다.”
“아.”
신중섭은 조금 뒤늦게, 그러니까 수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왜 수혁이 발표를 듣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이 왜 도망갔는지도.
“그러나 이뇨제를 처방했죠. 환자의 경과는 어땠습니까?”
“별 호전이 없었습니다.”
“네, 그렇죠. 오히려 컨디션은 더 나빠졌을 겁니다. 원인에 맞지 않는 처방이었으니까요. 특히 젊은 여자에서 이뇨제는 주의해서 써야 하는 것, 알고 계시죠?”
“아, 네. 그…… 네. 죄송합니다.”
Do No Harm.
해를 끼치지 마라.
의학을 배울 때, 늘 첫 줄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의학의 역사에서, 무지에서 소산한 불상사가 얼마나 많았나.
지금 와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짓들을 선의로 포장한 채 저지른 선배 의사들이 얼마나 많았나.
이를 주의하고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동시에 환자를 가지고 너무 도전 정신을 불태우지 말라는 의미 또한 담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이렇지 않을까?’
이 생각이 환자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다.
“알고 있으니 넘어가죠. 자, 다음은 입원. 입원 당시 환자의 증상은 어땠죠?”
“호전이 없었습니다. 안면 부종과 설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검사를 했죠?”
“루틴…….”
“검사를 긁었다는 뜻인가요? 검사를 하기 전에 어떤 질환을 의심했죠?”
“그.”
루틴 검사는 당연한 말이지만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어지간한 질환은 다 여기서 잡을 수 있게끔, 그러면서도 환자가 너무 힘들지 않은 검사로, 동시에 가격도 저렴한 것으로 묶어 둔 검사였다.
안전장치라 이건데, 이것이 의료진의 방만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놈아. 검사가 능사가 아닌데.’
[그러니까요. 저래서야…… 루틴 검사에 걸리는 질환 말고는 진단을 못 할 거 아닙니까.]
신중섭은 수혁의 안타깝다는 눈빛을 받으며 머리를 굴렸다.
잘 돌아가지는 않았다.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아까 말했듯 환자는 안면 부종과 복수가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신질환이죠. 단백뇨가 있으면 저리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환자의 나이를 고려할 때,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신기능 이상이 제일 빈도가 높을 겁니다.”
“아, 네. 그러면 역시……!”
“헌데 환자는 증상이 하나 더 있죠. 바로 설사.”
“아.”
“신장 질환에서 소화기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간 질환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러기엔 아까 검진에서 황달이 보이지 않았죠.”
“아.”
신중섭이 할 수 있는 말은 점점 줄어서, 종래에는 감탄사만 남았다.
보통 이러면 좌장이 나서서 교수라도 찾거나 해야 하는데, 장강명은 그저 홀린 듯이 수혁만 보고 있었다.
탓할 일은 아니었다.
다들 그러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의료에는 문외한인 이들도 그랬다.
뭔가 재밌었다.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확인은 해야죠. 하지만 담당 의사는 더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이 환자의 질환은 그래서 무엇인가. 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중섭만 빼고 그랬다.
‘아……. 제발…… 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