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0화 (770/1,303)

770화 압도 (5)

함정까지 파?

이거 뭐 혹시 신중섭이랑 합 맞춰서 진행 중인 몰카 같은 건가?

레지던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몰카인 게 더 개연성이 있었으니.

“CT…… 띄웠습니다.”

하여간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익어 버린 신중섭은 CT를 화면에 띄웠다.

소견서와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였다.

별 소용은 없었다.

사실 내과 레지던트의 CT 판독 능력이라고 하면 다 거기서 거기여서 그랬다.

물론 안대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좀 달랐을 수는 있었다.

녀석은 머리털과 지식을 맞바꿔 가면 공부하는 놈이니까.

심지어 수혁이 레지던트 시절부터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제자니까.

“나머지 분들도 잘 보세요.”

수혁은 잘 보라고 한 후, 신중섭과 다른 레지던트들의 얼굴을 일부러 슥 훑었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네요.]

‘아쉬운데……. 인재는 어디 있나.’

이현종의 부탁을 잊지 않아서 그랬다.

아니, 수혁도 우수한 애들을 한데 모으고픈 욕망이 있었다.

통합진료센터에서 철과 철이 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수련을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수혁은, 바루다도 아직 둘이 최선의 효율을 못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현종을 볼 때마다 자극을 받지 않나.

안대훈도 또 다른 의미의 자극을 주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 하나라도 더 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최고의 내과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뭐든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 이 안에서 또…… 재능이 있는 애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없어 보이긴 합니다만.]

‘하여간.’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장 림프관 확장증을 의심하게 되었다면, CT에서 장간막 이상이나 장관 벽의 Thickening(조직이나 기관이 과형성되어 크고 두꺼워진 상태)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케이스를 보면 미만성 결절성 확장 소견 및 현저하게 확장된 림프관에 의해 장관 벽 내 저음영의 선조 소견이 보입니다. 레이저 포인터…… 네. 여기. 제가 표시해 드린 부분. 확실하게 아시겠습니까?”

학회 대행업체 직원에게 레이저 포인트까지 받아다가 화면에 동그라미를 쳐 주었다.

사실 이렇게 해도 모르는 사람은 영영 모를 터였다.

CT 소견은 따로 공부를 해야만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3분지 1 정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냥 생각 없이 남들 끄덕이니까 끄덕이는 인간들도 있네요.]

‘어……. 뭐, 사회적 끄덕임이라고 부르지.’

물론 그중에서도 진짜는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레지던트는 사실 학생이나 진배없어서, 모르는 것이 큰 잘못이 아님에도 한국 문화상 학생도 아는 척을 해야 했기에 그랬다.

저래 놓고 막상 나중에 대놓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하는 애들을 너무 많이 봤다.

“게다가 이 케이스에서는…… 여기 보이시나요?”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의 답변은 아니, 강의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교수들조차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솔직히 영상학적인 얘기는 그들도 어디 가서 나 잘 본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좀 그런 부분이라 그랬다.

일단 영상의학 쪽은 지금 이 시간에도 발달하고 있지 않나.

특히 복부 쪽은 뭐가 너무 많아서 더 그랬다.

“여기 보시면 ‘halo sign(달무리 징후)’이 있습니다. 이는 사실 염증성 장 질환…… 그러니까 아까 신중섭 선생님이 말했던 크론이나 궤양성 대장염에서 보이는 소견인데. 여기서도 보일 수 있어요. 장관 lumen이 다른 음영의 두 개의 윤으로 둘러싸이는 것으로, 안쪽 윤은 저음영으로 바깥쪽 윤은 좀 더 높은 고음영으로 나타나는, 네. 바로 여기. 이 지점이요.”

여기저기서 아 소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레지던트들이 아니라 교수들 쪽에서 그랬다.

그중엔 장강명도 끼어 있었다.

‘저런.’

[내시경만 하니까요, 요새.]

수혁은 그런 장강명을 안타깝다는 얼굴로 슬쩍 바라보았다가, 말을 이었다.

뭐 교수라고 해서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특히 장강명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의 내시경적 스킬은 세계적이니까.

원래 하나가 독보적으로 뛰어나게 되면 다른 부분은 얼마간 희생해야 하는 법이었다.

이현종과 같이 괴물 같은 존재도 있기는 한데, 자꾸 그런 사람과 비교하려고 들면 인생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걸 수혁은 잘 알았다.

“하지만 보이시는 대로 어느 특성 이건 간에 아주 특이적이진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케이스에서의 진단은 미완이에요. 이것만으로 확진을 내리진 않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레지던트들은 좀 헷갈려하고 있던 마당이었다.

이런 소견이 다른 질환에도 있었나 싶기는 해도 하여간 ‘와 다음에도 이거 보면 진단 내릴 수 있겠는데?’ 뭐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아서 그랬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죠. 이 자리에 똑같은 케이스를 봤을 때 이 추론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봅니까?]

‘아니.’

[또 그렇게 칼같이 말할 줄은 몰랐네요.]

‘나니까 여기까지 이렇게 쉽게 온 거야.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어려워. 인정하는 부분?’

[음……. 이……인정하는 부분.]

수혁이야 딴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연기의 달인인 수혁은 그저 레지던트를 염려하는 교수의 얼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장 림프관 확장증의 병리 기전을 생각해 보세요. 알부민이 장내에서 소실되지 않습니까? 핵의학적 검사를 이용하면 아주 손쉽게 진단 내릴 수 있겠죠. 가령 51Cr, 131I, 99mTc와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부착한 알부민을 혈관 내로 투여 후 연속적인 복부 사진을 얻는 알부민 스캔을 해 보는 겁니다.”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아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좀 큰 거 같아서, 장강명은 잠시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와……. 사람 늘었네.’

이 귀신같은 놈들.

왔다 갔다 하다가 들을 만하니까 아예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심지어 자리가 없어 벽에 기댄 채 강의를 듣는 애들도 많았다.

‘하긴……. 나라도…….’

그 말은 다른 강의실은 텅 비어 가고 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하여간 추계 학회 첫날 첫 시간은 전체적으로 사람이 적으니까.

해서 일부 대형 병원에서는 레지던트들을 미리 각 강의실에 배정해 두기도 했다.

암만 그래도 학회 발표 하는 건데 텅 빈 강의실에서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러나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주최 측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진짜 유익한 강의가 있어 거기로 사람이 몰리는데 뭐 어쩌란 말인가.

강사를 맡은 교수나 레지던트가 하소연을 해도 할 말은 있었다.

그럼 네가 더 잘하지 그랬냐와 같은 말.

“거기에 더해…… 조직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내시경을 들어갔을 때 이미 고려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염증성 장 질환을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소견이 정반대이지 않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지 않냐.

이 말이 신중섭의 마음을 찌르르 울렸다.

솔직히 케이스 발표 준비할 때 아니, 이 환자를 주치의로 볼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데 수혁과의 짧은 문답을 통하고 나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무언가 울림을 주었다.

“네.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합니까? 이 환자를 주치의로서 보고 있는 여러분 또는 지정의로서 보고 있는 교수라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그…….”

“그냥 이상하네? 이러고 만다면 그 사람은 성의가 없는 겁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해야죠. 그리고 소견을 의심해야 합니다. 정말로 괜찮은 것이 맞나.”

“하지만…… 소견이.”

“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추론 과정을 보다 신뢰하세요.”

수혁은 말하면서 이현종을 떠올렸다.

그가 준 가르침을 떠올렸다.

‘실력 있는 의사라면 보다 자신을 신뢰해야지. 검사 따위…… 이게 정말로 확실할지 누가 알아?’

추론이 완벽하다면, 검사 결과마저도 의심해 볼 수 있어야 했다.

이현종의 말마따나 완벽한 검사는 없으니까.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심지어 혈액 검사 수치마저도 오류를 내지 않나.

시약의 오류일 수도 있고, 때론 검체 자체가 잘못 내려갈 때도 있었다.

너무 검사 결과만 맹신하다 보면, 혹은 지금 신중섭과 그의 교수처럼 검사 결과를 통해서만 진단을 하려다 보면 큰 우를 범할 수 있었다.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소견이 정상이라고요? 아닙니다. 육안으로 볼 때 그럴 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래서 조직 검사군요.”

“네. 현미경 단위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쉽게도 본 케이스에서는 아직 조직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군요. 제가 예언 하나 하겠습니다.”

예언.

보통 강의실에서 듣기 쉽지 않은 단어였다.

사이비스러운 단어이지 않나.

과학자라 자칭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누구도 사이비를 떠올리진 못했다.

그저, 저 예언이 이루어질 거란 믿음만 가졌다.

“조직 검사를 하게 되면, 소장과 장간막 내 확장된 점막 하 림프관 및 장 점막의 둔화된 융모 소견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아…….”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는 이 환자에게 비로소 장 림프관 확장증이라는 진단명을 붙일 수 있습니다. 확진은 조직 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법이죠.”

“아…….”

그중에서도 신중섭은 무언가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마 안대훈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바로 포교했을 터였다.

그 또한 인턴 시절 수혁을 보면서 저렇게 무너졌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혁은 딱히 포교에는 관심이 없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강의가 이어질 뿐이었다.

“그럼 진단을 했습니다. 이걸로 끝입니까? 지금 환자는 뭘 하고 있죠?”

“아……. 그게. 일단 치료법을…….”

“치료법이 있는 병인가요?”

“대증적인…… 치료만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신 지견에서도 그렇습니까?”

“네?”

진단을 했으면 치료를 해야지.

단지 진단만 했다면 그건 반쪽짜리 진료 아니겠나.

수혁은 바로 이 점을 아주 날카롭게 후볐다.

“대증요법이라면 저지방, 고단백, 중쇄 중성 지방이 포함된 식이요법을 말하겠죠?”

“아, 네. 그렇습니다.”

“그 외에 스테로이드 치료가 가능하다는 건 모르셨나요?”

“아…….”

이런 병일수록 치료법이 계속 나오는 법이었다.

지금 있는 치료법이 불완전하니 당연한 일 아닌가.

“옥트레오타이드(Octreotide)에 대한 보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도 모르셨습니까?”

“어…….”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비록 드문 병이지만.

그럼에도 의사는 연구를 하게 되니까.

“주치의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의 예후가 좋아질 수 있어요. 지금도 보십시오. 진단부터 치료까지…… 이 환자의 병력은 달라질 수 있었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아시겠습니까? 신중섭 선생님?”

“아, 네. 그…… 감사합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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