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화 발표 (2)
‘간다.’
정용기는 속으로 웃었다.
이미 수혁의 발표를 대강 들은 바 있어서 그랬다.
사실 정용기 측에서 하도 지랄을 해 대서 이현종이 마지 못해 대충 휴대폰으로 찍어다 보내 준 것을 본 것이긴 했지만.
‘그 개판으로 찍은 걸 보면서도 나는 소름이 돋았단 말이지…….’
그걸 직관하게 되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두근거려 올 지경이었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나도 그런데, 처음 보는 니들은?
특히 이미 수혁에게 경도되어 그를 경배하고 있는 레지던트 니들은?
“자, 그럼 두 번째 세션. 노인 의학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 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좌장은 저 정용기가 맡겠습니다.”
정용기의 말에 박수가 이어졌다.
아무리 내과학회를 짬 처리하고 있다고 해도, 정용기를 짬 처리할 수는 없어서 그랬다.
뭐가 되었건 간에 내과 학회장을 할 만큼 경력이 있는 사람이지 않나.
‘그래. 이 맛에 회장 하지.’
정용기는 박수갈채에 차오르는 뽕을 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학회의 위상만 좀 더 올라가면 된다.
명예를 잔뜩 챙겨 올 수 있다.
이런 생각도 하면서였다.
“첫 번째 강의를 맡아 주실 분은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의 이수혁 교수님이십니다. 치매 예방의 단초에 대한 주제로 발표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럼,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혁은 박수와 함께 단상 위에 올라섰다.
지팡이를 짚어 가면서였다.
‘긴장이 조금쯤은 될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요. 너무 안정적인데요?]
정말이지 편안해 보였다.
마치 제집 안방에라도 온 듯한 느낌.
눈앞에 있는 게 수많은 청중이 아니라 넷플릭스가 틀어진 TV라도 된 듯한 느낌.
‘역시…… 교주님…….’
뒤늦게 합류하느라, 문가에 서 있던 안대훈은 그 모습만으로도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만의 교주가 아니라 모두의 교주가 되려는 장면 아닌가.
벌써 첫 번째 세션에서 한바탕했다는 말에 어찌나 환호했던지.
‘불초…… 기원합니다.’
수혁은 안대훈의 응원이 아니라 기원을 받아 가면서 입을 열었다.
“치매. 단언컨대 가장 두려운 병일 겁니다. 또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병이기도 하지요.”
여느 때처럼 단단한 목소리.
그리고 여유로운 말투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빨려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이건 바루다의 재능이 아니라, 수혁 본연의 재능이었다.
“기대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치매 유병률도 늘어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2위의 장수 국가인데, 곧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제1위의 장수 국가가 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장수.
오래 사는 것.
인종적인 특성과 사회적 특성 및 의료 접근성 등이 한데 맞물려 이루어 낸 일종의 쾌거라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 사는 나라라는 건 분명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일만 있는 법이 있던가.
반대급부도 있는 법이었다.
“좋은 일이죠. 그러나 의학적으로 볼 때는…… 결국, ‘우리나라의 치매 유병률이 세계 최고가 될 거다’라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수혁은 우선 이 점을 짚었다.
일종의 선언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자리에 의사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반발심이라도 들었을 텐데.
다들 의사고, 또 하필 내과 의사들이다 보니 그보다는 덜컥 두려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렇네.’
‘아……. 암울한데, 이거.’
하필 치매라니.
아직까지 이렇다 할 치료가 나온 것도 없지 않나.
“즉, 우리 의료계는 치매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연구뿐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그렇죠, 지금까지는 그저 조기에 발견하고, 본격적인 발병을 최대한 미루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만. 모든 질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입니다.”
그러니 수혁의 말대로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공염불이었다.
치매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떠올려보면 쉬웠다.
“그러나 노화를 방지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까지 안티에이징(항노화)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예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
듣는 이들의 심정은 이랬다.
노화 방지 그거 어떻게 하냐고!
할 수 있으면 환자한테 갈 것도 없이 당장 나부터 하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화로 인한 결과를 하나하나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노화로 인한 결과라고 하니까 또 뭔가 보이는 듯했다.
일단 노화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가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생각하셨던 것보다는 이미 개선하고 있는 분야가 많이 있습니다. 우선…….”
화면에 안경이 떴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나빠지죠. 눈이 침침해집니다. 이로 인한 시각적 자극이 크게 줄어듭니다. 다만 이로 인해 치매의 유병률이 올라갈 수 있다는 연구는 별로 없죠. 이는 인류가 비교적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치매의 무서움을 느끼기 전부터 이미 안경을 써 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아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인간이 가장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는 결국, 시각이니까.
시각을 통한 정보 습득의 소실이 치매로 이어진다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저 여태 이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또 하나를 예로 들어 봅시다.”
다음 화면에는 보청기가 떴다.
“이건 연구가 많이 되어 있죠. 현재 60대 이상 인구에서 대략 절반가량이 난청 환자입니다. 80대로 넘어가면 극단적으로 올라가죠. 연구를 통해 난청 환자에게서의 치매 유병률이 정상 인구에서의 유병률보다 높다는 것을 입증했죠.”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공부 안 하는 레지던트만 아니라면 다 알 정도로.
그러나 이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터였다.
“동시에 난청 환자에서 보청기를 사용할 경우, 치매 유병률이 정상 인구 수준으로 내려온다는 것 또한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이 무엇일까요?”
즉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레지던트 중에서는 태화 사람들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식의 고민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랬다.
“우선 첫 번째. 현재 대한민국의 난청 유병률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이어폰의 사용 때문입니다. 외국도 사실 마찬가지죠.”
이어폰.
이 혁신적인 기기의 개발은 인류에게 음악 감상에 있어 공간 제약을 없애 주었다.
동시에 난청도 선사했다.
아예 통계를 잡지도 않았던 10대 난청이 이제는 10%에 육박하는 것은 오로지 이 기발한 아이템 때문이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난청 환자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이로 인해 늘어난 치매 환자도 보게 되겠죠.”
또다시 탄식이 들렸다.
암울하고도 또 암울한 미래가 그려져서 그랬다.
물론 수혁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다행한 일은, 보청기로 이것을 보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난청 환자에서 보청기를 이용할 경우 치매 유병률이 정상 인구 수준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입증했죠. 자, 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여기서 어떠한 점을 캐치해야 합니까?”
다행이네 싶게 만드는가 싶더니, 돌연 질문을 던졌다.
이미 발표에 빠져든 지 오래인 레지던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뭔데.
교수들은 그런 레지던트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강의할 때는 그저 쳐 자느라 바쁘더니.
저 개새끼들 뭐 이런 말들이 떠돌았다.
“이것이 바로 제가 아까 했던 말에서 이어지는 점입니다. 노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화로 인한 결과는 개선할 수 있죠. 그리고 그 개선은 결국,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안경과 보청기가 그 증거입니다. 다만 안경은 안과, 보청기는 이비인후과죠. 그렇다면 우리 내과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결국, 내과야말로 치매 환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과인데요.”
수혁은 그런 말들을 배경음 삼아 발표를 이어 나갔다.
흔들림 따위는 없었다.
그러기엔 이미 경험이 너무 많았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바루다까지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우선 노화로 인한 결과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어떤 것이 있죠?”
강의장에서 질문을 던지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청중들이 그 질문에 대해 진짜로 고민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기 기능의 저하?”
“운동 기능도 떨어지지.”
“또…….”
레지던트들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죽인 채 토의를 나눴다.
입을 열지 않는 사람들도 머릿속으로는 치열한 고민을 이어 나갔다.
노화의 결과야말로 내과에서 제일 많이 보는 증상이기에 그랬다.
“지금 떠오르시는 것만 해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중에 치매 예방을 타깃으로 두었다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감각기. 뇌에 자극을 주는 건 결국, 감각기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또 여기저기서 ‘아’가 터져 나왔다.
수가 더 늘어 있었다.
노교수 중에도 저도 모르게 탄식한 이가 있었다.
확실히 수혁의 발표는 허점을 푹푹 찌르는 데가 있어서 그랬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그리고 촉각. 이 감각기만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 내과 의사의 역할이 제한될 겁니다. 이 영역은 이미 그 영역의 스페셜리스트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럼 뭐가 남을까요.”
수혁은 그렇게 진실의 턱, 그러니까 입을 턱 벌리고 있는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였다.
진짜 미소였다.
잘난 척을 이어 나갈 때 나오는 그런 미소.
[지금은 그래도 됩니다.]
바루다의 응원과 함께.
‘교주님…….’
안대훈의 기원과 함께.
“체성 감각. 관절과 근육에서 보내오는 정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각하게 해 주는 자극이 있죠.”
“아…….”
“좌장님?”
“아니, 아닙니다.”
정용기는 사실 두 번째 듣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발표의 빌드업 때문이었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발상이지만.
지금껏 쌓아 올린 서사가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터지게끔 강요했다.
“네, 계속하죠. 이 체성 감각 또한 나이가 들면서 점차 퇴화합니다. 지금까지 이 체성 감각은 그 자체도 저평가되었지만, 노화로 인한 퇴화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 치매 예방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죠.”
수혁의 말대로 여기 앉아 있는 의사들은 대부분 체성 감각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눈에 띄는 감각이 아니지 않나.
딱히 퇴화하는 것이 보이지도 않고.
하지만 이제는 좀 달랐다.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예방할 수 있던 치매를 놓친 기분마저 들었다.
“이 체성 감각의 퇴화는 무엇에서 기인할까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눈에서 백내장 또는 망막의 퇴화가 있는 것처럼. 귀에서 헤어셀(Hair cell, 유모 세포)의 퇴화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수혁은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또다시 물었다.
니들은 모르지? 하는 얼굴을 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