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3화 (773/1,303)

773화 발표 (3)

“어떤 퇴행에서 기인하는 걸까요?”

수혁은 재차 물었다.

여느 때처럼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야말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옳지, 잘한다. 내 새끼.’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보며 껄껄 웃었다.

진짜로 소리를 내서 웃었기 때문에 신현태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찔러야만 했다.

‘시끄럽잖아.’

‘뭐 인마. 다들 웅성웅성대는데.’

‘발표 시간에 대체 누……가…… 아.’

그러나 신현태도 이현종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다들 되게 바빴다.

수혁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함이었다.

제대로 된 답을 내겠다, 뭐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애꿎은 초록집을 뒤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 봐야 나오는 건 없을 텐데.

‘이런 발표는 내 생애 처음인데.’

신현태나 이현종이야 사실 놀라움이 덜했다.

애초에 기대를 이따만큼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둘은 이미 수혁의 발표를 이런저런 경로로 많이 보아 오지 않았나.

하지만 오성흠은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번 학회에서는 학회에 갔다기보다는 작전을 수행했다는 의미가 더 크지 않았나.

‘미쳤네……. 이래서 박국진이 이수혁, 이수혁 했었구만.’

내과 과장이라는 놈이 허구한 날 원장단 회의 와서 이수혁 뽑아야 된다고 하더라니.

확실히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단순히 연구를 잘한다, 임상을 잘한다, 뭐 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최고로 잘하는 것 같은데, 이수혁은 그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갖지 못한 소양이지 않나.

‘이제 와서 끌고 갈 수는 없을 거 같고……. 아니, 아니지. 10억 이상을 부르면 이현종도 오히려 오케이 하지 않을까? 아냐, 아냐. 저건 호랑이 새끼야. 길들일 수가 없어. 오면 오히려 나한테 방해가…….’

탐이 나는 재능이었다.

하지만 밑에 두기는 두려운 재능이기도 했다.

이현종의 말마따나 소인배인 오성흠에게 수혁은 이미 너무 커 버린 존재였다.

아마 같은 병원 출신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밟아 버리지 않았을까?

그냥 그저 그런 의사가 되게끔 손을 쓰지 않았을까?

‘태화에 남은 걸 다행으로 알아라, 애송아…….’

뭐가 되었건 간에 저렇게 단숨에 크도록 두지는 않았을 터였다.

적어도 오성흠이 퇴임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주목도를 가져가도록 두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까…… 이현종이야 지 아들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신현태는 뭐지?’

오성흠으로서는 지금 원장인 신현태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방해는커녕 전폭적으로 지원만 하고 있지 않나.

새파랗게 어린놈인데.

원장이라는 자리가 명성 챙기기 얼마나 좋은 자린데 그걸 계속 양보하는 느낌이랄까?

“근육.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너무나 다양하죠.”

오성흠이 소인배의 머리로는 평생 이해 못 할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이, 수혁이 입을 열었다.

그제야 다들 아 했다.

어려운 얘기라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얘기여서 그랬다.

“노인이 되면서 근력이 떨어지는 것. 한때는 그저 노화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문제는 환자들 그리고 일반인들뿐 아니라, 우리 의료진들까지도 그랬다는 겁니다. 늙고 병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당연한 일은 아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당연하지 않았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인데.

그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게 하자는 말이지 않나.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말을 하면 저 새끼 미쳤나 싶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현대 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 바 있었다.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분야를 꼽으라고 한다면, 노인 의학을 꼽아야 할 터였다.

“그중에서도 근력 저하. 즉 근육 감소는 사실 가장 쉽게 예방할 수 있고, 또 늦출 수 있는 종류의 퇴행입니다. 이로 인한 손해를 생각하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기도 하죠. 자, 그럼 어떤 손해가 있습니까.”

수혁은 강단 위를 거닐며 물었다.

지팡이를 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지금.]

‘오키.’

심지어 지팡이를 짚을 때 나는 소리마저 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수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선 운동 능력이 저하됩니다. 이건 생각보다 아주 심각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거동이 어려워지면 사회 활동이 제한되겠죠.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 간의 소통에서 멀어진다는 겁니다. 사회적 자극이 감소하겠죠. 이는 결국, 치매로 이어집니다.”

사회적 자극.

이 또한 이미 학계에서는 관심 가진 지 오래된 이야기였다.

보청기 쪽에서 연구가 특히 많이 되어 있었다.

난청이 생긴다는 건 결국, 사람들의 말을 못 알아듣게 된다는 것 아닌가.

응?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해 줄래? 이런 말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인 법이었다.

그 일이 반복되면, 사람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 자체가 꺼려지는 일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사회적 고립이 가속화되면, 자극이 없어지고, 치매의 위험도가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체성 감각이 떨어지게 됩니다.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는 겁니다. 정보가 줄어들게 되기에, 이것만으로도 치매의 위험도가 올라갈 텐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근력도 약화된 상태라면 어떤 위험이 있겠습니까. 네, 낙상. 낙상의 위험이 극적으로 올라갑니다.”

젊은 사람은 보통 술 먹지 않는 이상 길 가다 넘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지 않나.

하지만 노인은 달랐다.

감각이 떨어진 후의 길거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넘어지고 나서의 결과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근육이 적다는 건 그만큼 보호 효과도 떨어진다는 얘기 아닌가.

심지어 뼈도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뼈가 부러집니다. 특히 고관절이 부러지게 되는 경우, 3년 내 사망률이 80%에 육박합니다. 이 엄청난 사망률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엔 주목하지 못했죠. 바로 사회적 고립입니다. 그로 인한 치매 위험도의 증가입니다.”

수혁의 말이 더해질수록 강의실은 점점 조용해져만 가고 있었다.

단지 수혁이 질문 던지는 것을 그만두고 말을 쭉 이어 나가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토의할 수도 없을 만큼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 사실은 주의 깊게 뜯어 보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해서 그랬다.

이걸 놓치고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무심해서.

“다음은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국민 건강 보험 데이터에서 기반한 자료고요. 보시면 근감소증으로 진단된 노인에서 치매 유병률이 유의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후향적으로 이루어진 연구이기 때문에 선후 관계가 반드시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이론적으로 보면 타당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어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 열려 있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다.

키보드 뚝딱거리면 5분도 안 돼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안에 함축된 의미는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찾아낼 수 있었다.

“즉, 근감소는 치매로 이어지게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열거했던 여러 가지 근거와 이론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제 강의실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수멘…….’

몇몇이 입을 오물거리고 있긴 했지만, 그들조차 함부로 입을 열진 못했다.

치매가 갖는 무거움 때문이었다.

“근감소를 예방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명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다행히 이미 선행된 연구들이 몇 있습니다.”

PPT 자료가 넘어갔다.

수혁의 말대로 벌써 나온 지 수년은 지난 논문이 떴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식이 행태에 관한 논문입니다. 보시면 전반적으로 식사량이 적죠. 원래 소화기관의 기능도 퇴행하기에 식사량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연도가 지날수록 줄어드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자, 보시면 소식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방송이 나온 후부터…… 보다 극적으로 줄죠.”

매스컴의 한 화면도 떴다.

소식이 건강에 좋다, 소식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 등등.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말이지 않나.

옳은 말이긴 했다.

실제로 많이 먹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다만 어떻게 식사량을 줄일 것인가 대한 고민은 빠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특징인데요. 소식을 할 때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반찬입니다. 그중에서도 고기를 줄입니다. 실제로 단백질은 소화시키기에 그리 쉬운 물질은 아니라, 노인들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죠. 그러나 그 때문에 근감소가 가속화됩니다.”

그 때문에 고기 섭취량이 극단적으로 줄어 버렸다.

막연히 고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때문에 대국민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단백질은 먹어 줘야 합니다. 고기가 되었건 생선이 되었건 간에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 점에 있어 아주 유리한 지점에 있습니다. 두부 때문입니다.”

정 고기가 부담이라면 두부도 좋았다.

아니, 어찌 보면 두부는 거의 최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

“두부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단백질 함량이 굉장히 높습니다. 노인 인구에서 아니, 중장년층 인구에서 두부를 비롯한 단백질 섭취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앞으로 치매 유병률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미 태화에서는 연구에 착수했고요.”

수혁은 잠시 입을 다물고 좌중을 응시했다.

[잘했습니다, 수혁. 모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바루다는 빠르게 수혁의 시야에 들어온 이들의 얼굴을 분석했다.

잠시 어지러워졌을 지경이었으나, 다행히 수혁은 김선웅에게 수술받고 난 후로 근력만은 좋아진 상황이어서 버틸 수 있었다.

‘좋아. 슬슬 끝낼까.’

[네.]

수혁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것으로 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혹 질문 있으신 분 계시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문장조차 유려하기 짝이 없었다.

미리 정해진 대사를 읊고 있는 거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좌장님.”

그 때문에 발표가 끝난 줄도 모르고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이가 있었다.

바로 내과 학회장 정용기였다.

“아.”

그는 대행업체 직원이 귀띔을 해 주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 일단 박수. 박수부터 네?”

아니, 그때도 얼빠진 사람처럼 박수를 쳤다.

다행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안대훈을 비롯한 신도들은 이미 기립박수 중이었다.

남 잘 따라 하는 한국 사람들 아니랄까 봐, 다른 이들도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정신없는 학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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