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7화 (777/1,303)

777화 점심시간 (3)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오성흠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원장 자격으로 자리에 온 데다가, 사실 그리 좋은 자리도 아니지 않나.

그 정도가 아니라, 숫제 이현종 때문에 반쯤 어거지로 끌려와 만든 자리였다.

‘망할 놈아……. 그만 두드리라고.’

칠성의 인재를 단 몇이라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주 멀리 보면 칠성에 도움이 되기는 할 터였다.

이제 인정할 것은 인정할 때가 되었다.

이현종도 천재인데, 이수혁은 그보다 더한 천재라는 걸.

더 무서운 것은 이수혁은 아직 젊은 수준이 아니라 어리다는 점이었다.

이제 고작해야 30살.

석좌 교수가 되겠지만, 못한다 해도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무려 35년.

그 시간 동안 과연 통합진료센터는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이 새꺄…… 두드리지 말라고!’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그 시기 동안 태화는 일인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것이고, 어쩌면 정말로 한국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보내긴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첫 번째를 자기가 끊기는 싫었다.

‘오성흠이가 태화에 굴복했다더라.’

‘오성흠이 그 새끼 그거 정치질만 하더니 역시 실무적인 능력은 없더라.’

‘원장이 돼 가지고 프락치 짓을 해?’

이런 뒷얘기들이 줄줄 붙어 다닐 게 뻔해서 그랬다.

아니, 이미 어느 정도는 붙어 다니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한 짓을 엄청 해 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여기서 또?

“풉.”

“뭐야, 인마. 케이스 문제 내는데 웃어?”

“아니, 아닙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웃음이 나왔다.

안대훈 때문이었다.

웃음만 나온 게 아니라, 그냥 머리가 새하얘졌다.

뭐라 방해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바로 앞에서 대갈통을 자기 손으로 웃으면서 두드리는 대머리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훕.”

“뭐야.”

“아니, 아닙니다. 잠시만.”

오성흠은 무장 해제된 채 잠시 밖으로 나갔다.

안대훈은 그런 오성흠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저런 불신자는 빨리 내보는 게 상책이지.’

이게 다 계략이었을 줄은 모르지 않겠나.

일부러 쌓아 온 또라이라는 이미지를 이렇게 쓰다니.

안대훈은 혹 전생에 자신이 제갈량이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오늘 진짜 수고했어, 대훈아.”

“아아…….”

뿌듯함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 최고조를 찍었다.

수혁이 안대훈의 등을 두드려 주며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칭찬까지 해 주어서 그랬다.

“울지는 말고……. 너 아까 머리 두드려서 안 그래도 빨간데 울기까지 하면…….”

“흐어어어어.”

“울지 말랬더니 통곡을 해?”

수혁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신현태, 조태진, 이현종도 함께 멈추고는 안대훈을 남들의 시야에서 가렸다.

이 녀석의 활약으로 점심시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꽤 효율적으로 각 대학 병원 모임을 돌 수는 있었지만.

이런 걸 들켰다가는 말짱 꽝이 될 것 같아서 그랬다.

학회장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우는 건 어떻게 봐도 이상한 일이지 않나.

“뭐 그래도 오늘 잘하긴 했어.”

“그러니까.”

그래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오늘의 일등 공신이라고 하면 일단 자리를 만든 이현종이고 그다음 케이스를 즉석에서 만들어 낸 수혁이겠지만.

조연 중에서는 안대훈이 결정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신현태나 조태진은 진짜 병풍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더랬다.

그 때문에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둘 중 신현태가 물었다.

“근데……. 그거 너 밖에 나갈 때 대체 뭐 했길래 같이 나간 애들이 얼굴이 죄다 그렇게 돼서 왔어?”

남들도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말마따나 안대훈과 함께 나갔던 애들 모두 얼굴이 이상해서 그랬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상기됐다고 해야 할까?

“아…….”

“그 콧물은 좀 닦고 일어날래? 여기.”

“아아…….”

“손수건 줬다고 울지 말고……. 어우……. 축농증이 있나. 왜 이렇게…….”

그 말에 안대훈은 분연한 얼굴로 일어섰다.

딱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특히 수혁이 보기에 그랬다.

해서 손수건을 줬더니 또 울었다.

뭐라고 했더니 그제야 코를 팽 하고 풀었는데 누런 코가 뒤섞여 나왔다.

안대훈은 이제 코까지 뻘게진 채로 수혁을 향해 말했다.

“제가 드라이클리닝 맡겨서 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냥 너 가져…….”

“아아…….”

“여기서 또 운다고?”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지…… 지랄 말고. 아까 물었던 거나 답해 줄래?”

안대훈은 수혁이 말을 하든지 말든지 일단 손수건을 곱게 접어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혹 누가 가져갈세라 서둘렀다.

저걸 누가 가져가나 싶겠지만.

실제로 조태진은 본인도 울면 저런 거 주나 생각하고 있었기에, 딱히 안대훈이 오버하는 건 아니었다.

‘이걸……. 이걸 보여 드려도 되나?’

하여간 안대훈은 잠시 고민했다.

수혁이 싫어할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겨야 하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페이지가 두 개이지 않나.

‘종교란은 빼고 보여 드리면 되지.’

결심이 선 안대훈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핸드폰을 들어 올리면서였다.

“어, 너 핸드폰 바꿨네.”

“교수님이 바꾸셨길래, 뜻에 따랐습니다.”

“아니, 나는……. 내가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데. 그냥 화면이 넓어서.”

“네, 넓어서 좋더라고요.”

갤럭시 폴드였다.

안대훈은 홍해가 갈라지는 느낌으로 핸드폰을 쫙 펴서 화면을 띄웠다.

그러자 수혁의 얼굴이 그 큰 화면 가득 떴다.

수혁은 모르는 사진이었다.

“이거……. 이거 뭐니…….”

“저희 홈마가 찍은 겁니다.”

“홈마? 그게 뭔데.”

“정말로 알고 싶으세요?”

“아니, 그냥 넘어…… 넘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클로즈업 샷을 찍을 수 있는 놈이면 범상한 놈은 아니지 않겠나.

수혁은 안대훈 버금가는 또라이를 하나 더 알고 싶지는 않았다.

“네, 일단 여기 들어가면. 이거 보이세요?”

“나무위키……. 나무위키에 내 문서가 있네?”

“있으실 만하죠.”

“아니……. 이게 왜.”

“보시면 제가 케이스를 쫙 정리해 두었습니다.”

“왜 문서 이름이 ‘이적’인데?”

“사소한 것은 넘어가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네.”

사소한 것……?

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진짜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이나 상세하게 만들어진 페이지였다.

특히 개요, 생애에 이어 만들어져 있는 이적란은 실로 대단했다.

“이걸……. 날짜별로 다 정리했다고?”

“네.”

“아니……. 이거 사진은 대체 누가 찍은 건데?”

“누차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저희 홈마가…….”

“홈마가 뭔데, 인마.”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이걸 보여 주니까 다들 얼굴이 상기되더군요.”

“당황……. 당황한 거 아냐?”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자기 교수 페이지를 만들어서 운영하냐고.

그것도 이렇게까지 인생을 갈아서.

수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거만 띡- 보여 주면 자동으로 잘난 척이 되지 않나.

내가 이런 사람이요.

명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뇨. 케이스를 보여 주니까 다들 환호하던데요?”

“음…….”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매일 케이스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렇게 상세하게…….”

“아, 링크가 있네.”

“네. 유튜브로 연동되는 링크입니다.”

“유튜브? 이 미친놈이 내 채널이 있어?”

“네. 벌써 구독자 3천 명 넘었습니다.”

“아니. 이게 대체.”

링크를 눌렀더니 정말로 유튜브 채널로 이동했다.

‘의술의 신 이수혁’이라는 채널명이었다.

광오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이었다.

“이 미친놈이. 누구 욕 먹이려고 작정을 했나!”

“욕이라뇨. 댓글 보십쇼.”

“수멘……. 야, 이게.”

욕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3천 명이라는 거대 종교 세력을 이끌게 된 수혁은 어이가 없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 의사는 아닙니다.”

“의사가 아닌데, 나를 믿어?”

“환자들이요. 교수님께 치유 받은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어 있습니다.”

“아, 환자.”

환자들이 따르는 의사라.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나쁘지 않을지도?

[정신 차리십시오. 종교적으로 따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아, 그렇지. 그래.’

[근데 수혁의 진짜 재능은 사실 교주에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뭐, 인마? 왜.’

[사기 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않으십니까.]

‘부정…… 부정하기는 어렵네.’

하여간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영상도 퀄이 대단했다.

홈마인지 나발인지가 찍은 모양인데 음성이 살짝 잡음이 들어가 있는 걸 제외하면 아주 훌륭한 케이스 스터디였다.

게다가 편집도 아주 잘 해 놔서 환자 개인 정보는 쫙 빠져 있었다.

이 채널만 홍보해도 저절로 통합진료센터에 대한 홍보도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와……. 이런 미친. 우리 병원 유튜브보다도 잘 만들었네.”

신현태는 아예 감동까지 먹었다.

일단 수혁의 얼굴에 살짝 보정을 먹여 놔서, 더 볼 만한 얼굴이 된 게 흡족했다.

게다가 이 케이스라니.

이건 보물이었다.

일반인 타깃이라기엔 너무 딥하긴 했지만.

의사들에게는 충분히, 그중에서도 젊은 의사들이라면 이를 바이블로 삼아도 될 터였다.

“와……. 전에 학회에서 이제 슬슬 교과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해서 영상으로 옮겨야 된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조태진도 감동한 얼굴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학회 움직임이 정확히 이쪽을 향하고 있어서 그랬다.

그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던 바이긴 했다.

조태진도 책 보던 시간이 줄고, 영상 보는 시간이 늘었으니까.

그나마도, 기껏해야 네이버 시리즈에서 인기 웹소설을 보는 게 책 읽는 시간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

그 때문에 어떻게 교육 자료를 만들어야 할지 참 막막했는데.

여기 그 등대가 있었다.

“안대훈.”

반면에 이현종은 냉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이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어지간해서는 능글맞음을 잊지 않던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현종쯤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으면 그렇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입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이현종 곁을 지켜 온 신현태였다.

“왜, 왜 그래. 애 잘했는데.”

“그런 얘기가 아니야.”

“그럼 뭐. 아, 나 무섭게. 애가 떨잖아, 형.”

해서 뭐라고 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이현종은 신현태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안대훈의 어깨를 꽉 잡아 쥐었다.

“읏.”

안대훈은 긴장한 나머지 신음을 흘렸다.

이현종은 그런 안대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더없이 진중한 얼굴이었다.

“너 아버지 계셔?”

“네?”

패드립이라도 치려고 그러나.

신현태는 사색이 돼서 이현종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원체 또라이다 보니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안 계시면 내가 너 아빠 하자.”

“네?”

“왜, 난 너 아빠 하면 안 되냐?”

“아니, 이 미친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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