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8화 (778/1,303)

778화 제품 개발 (1)

확실히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이라고.

신현태는 생각했다.

여기서 또 아들 드립을 친다고?

‘아니…… 안대훈이가……. 뭐 훌륭한 놈이긴 하지. 근데…… 수혁이랑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 않나?’

누구를 누군가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교육자로서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게 또 비료이긴 했다.

게다가 안대훈은 아직 조카로 받아들인 놈도 아니지 않나.

그냥 수혁이의 충신 정도였다.

때문에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비료가 그냥 자동으로 되었다.

‘실력은…… 우리 수혁이는 그냥 세계 최고인데…….’

물론 아직 미국이나 유럽 또는 일본과 같은 곳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거긴 수혁이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니까.

물론 논문도 쓰고, 또 연수도 다녀오고, 심지어 거들다라는 꽤 우수한 제품도 만들긴 했지만.

세계란 과연 넓고 사람은 많아서 나이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저 정도의 성취를 낸 사람은 드물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임상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신현태에게는 수혁이보다 뛰어난 사람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외모도…… 이건 좀.’

게다가 얼굴도 그렇지 않나.

수혁은 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더라도, 교수가 되고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점점 귀염상이 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안대훈은.

‘어우.’

오늘은 특히 좀 더 그랬다.

뻘건 머리에 뻘건 코.

“뭐 인마. 안대훈이 정도면 수혁이 동생으로 적합하지.”

물론 이건 다 다분히 상식적인 사람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현종은 이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 번 꽂히면 후진을 몰랐다.

수혁이 때도 그러지 않았나.

설마하니 진짜로 아들 선언을 하고 양자로까지 들일 줄이야.

“아……. 근데 저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제 또 양자가 생기나 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안대훈은 아빠가 있었다.

‘내가 왜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신현태는 자괴감에 젖은 채 안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아버지도 계신대. 무슨 그런 이상한 말을.”

“그럼 대부님이라고 해 봐.”

“조폭도 아니고 무슨 대부야.”

“영화에서나 그렇지. 실제로 대부는 인마, 좋은 뜻이야.”

“아니, 그래도…….”

신현태는 불안했다.

그가 알기로 안대훈도 이현종 못지않은 또라이였으니까.

여기서 대부님이라고 하면 그냥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한데 안대훈은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어……?”

이현종과 신현태는 각기 같은 이유로 놀랐다.

이현종은 ‘너는 나랑 동류 아니니?’ 하는 얼굴이었고.

신현태도 ‘너는 이현종과 동류 아니니?’ 하는 얼굴이었다.

‘난 왠지 이유를 알 거 같다…….’

[뭐죠?]

‘그래서 더 싫어…….’

[뭔데요.]

하여간 안대훈은 둘의 기대를 저버린 채, 입을 열었다.

“제가 어찌 감히…… 이수혁 교수님의 아우를 자청하겠나이까…….”

“아.”

“그런…….”

덕분에 이현종과 신현태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 안대훈은 이런 이유까지도 댈 수 있는 인간이지 싶었다.

‘하.’

[이걸 예측하다니. 수혁, 알고 보면 안대훈에 대한 탐구심이 짙은 거 아닙니까?]

‘꺼져, 인마.’

[안대훈이 여자였다면, 생각 솔직히 있으시죠?]

‘꺼지라고…….’

수혁이 그렇게 바루다의 놀림에 시달리는 사이, 각 병원 레지던트 3년 차들 그리고 군의관, 공보의 3년 차들 중 일부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절대다수는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는 이들이었다.

우수한 이들일수록 영입이 빠르니 당연했다.

“아……. 어쩌지. 나 소화기내과 픽스인데…….”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소화기내과 픽스였다.

개개인의 임상 능력이나 논문 작성 능력 또 추론 능력보다는 아무래도 내시경을 할 수 있냐 없냐로 로컬 의원에서의 월급이 갈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대형 병원에서도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의사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어서, 교수를 꿈꾸고 있는 이에게도 소화기내과가 더 유리했다.

“통합진료센터……… 아직 태화밖에 없지?”

“그렇지.”

아선과 칠성 레지던트 3년 차 1등이 서로 만났다.

병원과 병원은 앙숙이지만.

레지던트들에게 그런 게 뭐가 중하겠나.

아무래도 큰 병원들끼리는 좋으나 싫으나 케이스 교류나 집담회 등이 자주 열리는 만큼, 제일 친하게 지내기 쉬운 사이였다.

무엇보다 둘에게는 각자의 병원이 주적이지, 상대 병원은 별 관심도 없었다.

“갔다 오면…… 자리가 있을까?”

“글쎄. 군펠로 가면…… 최대 2년 있을 수 있고. 군대 가서 3년. 그럼 5년인데. 그 기간이면 생길 거 같기도 하고?”

“하긴 5년……. 아, 나 그 유튜브 채널 괜히 봐 가지고.”

“안대훈이 만든 거? 걔는 거의 종교라며.”

“거의가 아니라 진짜 종교인이래. 수멘수멘 하던데.”

“드립 아니고?”

“아니래. 진짜로 믿는대.”

“음.”

이상한 새끼가 하나 있는 거 같은데.

가면 그 새끼랑 같이 일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이거 괜찮나 싶었다.

‘아니, 아니지. 그놈이 그래도…… 진짜 똑똑하잖아.’

‘전공의 시험에서…… 2년 연속 1등이었지?’

속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안대훈은 압도적인 1등이었기에 그랬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수혁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병원에서도 다 안대훈의 우수성을 인지할 정도였다.

“아, 진짜 고민이네…….”

“너 쓸 거면 말해 줘. 그럼 나도 쓰게.”

“어? 그럼 우리 경쟁이야.”

“안 되면 군대 가면 되지. 갔다 와서 소화기에 남든가 하면 되지.”

“아……. 그런 생각…… 흠.”

거기에 더해 통합진료센터와 소화기내과 사이의 저울질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나는 완전 모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시점 1티어 분과였으니까.

설령 교수가 되지 못한다 해도 소화기내과를 했다는 건 장점으로 작용하니까.

그에 반해 통합진료센터에서의 2년 수련은 로컬로 가는 순간 말짱 꽝이었다.

허공에 내다 버린 2년이 될 터였다.

“아씨. 어쩌지.”

아무래도 고민은 군의관 또는 공보의 3년 차들 사이에서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떨어지고 갈 군대가 없지 않나.

게다가 나이도 3년 더 먹은 참이었다.

그사이 결혼한 사람도 있었고, 애가 나온 사람도 있었다.

마냥 꿈만 좇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소화기가…… 아무래도 안전빵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

“게다가 교수님들하고 벌써 몇 번을 얘기했는데…… 오늘 그거 봤다고.”

“멋있긴 하더라. 나도 그런 의사가 꿈이긴 했지. 로망이긴 한데…….”

“로망 따라가다가 인생 조진다.”

“그건 그래.”

아무래도 이쪽은 소극적이었다.

“그렇다는데요?”

“그래? 이걸 어떻게 전달한다?”

그러한 비밀 회동은 곧바로 내과학회장 정용기의 귀에 들어갔다.

이현종이 학회 대행업체 직원들을 프락치로 쓰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학회장이 누군가의 지시를, 그것도 프락치 쓰라는 지시를 들어야 하는 위치는 아니긴 한데.

뭐 어쩌겠나.

이현종은 논문 기계인데.

“어? 그래? 그래, 뭐. 할 수 없지.”

만족스러운 얘기는 아니어서 되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선선했다.

“어……. 화 안 내요?”

“자기 진로 자기가 정한다는데 내가 왜 화를 내? 미친놈이야?”

“아니, 그.”

미친놈 아니셨어요?

라는 말을 학회장은 하마터면 면전에 대놓고 할 뻔했다.

간신히 참고 있으려니 이현종은 놀랍게도 아주 상식적인 말을 이어 갔다.

“이런 데가 있다, 아주 좋다. 미래가 있다. 이 정도 알았으면 됐어. 다음은 그 사람 몫이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현종이야말로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진짜로 제자를 생각하는 사람 아닌가.

그저 펠로우로 당장 부릴 사람 찾는 데 혈안이 된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그 사람의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게 이현종이었다.

“어어……. 네.”

정용기로서는 좀 당황스러웠다.

아직 이현종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랬다.

“그럼…… 그냥 이렇게 마무리해도 될까요?”

“어? 어. 그래, 그러자고. 수고했어.”

“그럼 논문은…….”

“속고만 살았나. 낸다니까. 벌써 쓰고 있어. 수혁이도 후속 논문 준비 중이고.”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 임기 동안 내과학회 위상을 팍팍 올려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연임 얘기까지 나올걸?”

“와……. 그러면 진짜로…….”

연임이라니.

학회장 연임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법적으로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으레 안 되는 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학회장이라고 해 봐야 다 거기서 거기이기도 하고, 돌아가면서 해야 모양새가 좋아서 그랬다.

보수적인 집단이다 보니 보여지는 것이 너무 중요했다.

‘근데 내가…… 연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우면 될 일 아닌가.

‘게다가…… 나 회장 아니면 이현종, 이수혁 교수님이 논문 안 낸다고 한마디만 해 주면…….’

망상이 윙윙 돌아갔다.

벌써 병원 앞에 흉상 하나 세워지고.

매스컴 타서 제가 이렇게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던 이유는요, 인터뷰 한번 하고.

“제가 진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야말로 야욕이 불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현종이 오성흠 같은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아마 더 빼먹었을 터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이놈이 지금 마음이 급하다는 걸 알았을 테니.

하지만 이현종은 타고나기를 학자로 난 사람이었다.

심지어 주변인들도 다 그랬다.

벌써 통합진료센터 일은 잠시 잊은 지 오래였다.

건성건성 답했던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거 제품화를 하면 어떨까 해서요. 식물성 단백질 위주로, 콩 단백질로 해서…… 노인물들 타깃으로 적당한 함량 및 점성으로 디자인해서요.”

“다시 말해 봐. 아, 이 새끼가 전화해서 못 들었어.”

수혁이 기깔 나는 아이디어를 냈다.

점심시간에 못 먹은 점심을 뒤늦게 챙겨 먹던 자리에서였다.

신현태와 조태진은 일정이 있어서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떠났고, 지금은 안대훈, 이현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서 더 눈이 빛났다.

“그거. 노인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고, 이게 일정 부분 근육 감소에 기여하니까요. 그 섭취를 도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먹기 좋은 단백질 제품을 내는 거죠.”

“이야……. 미쳤다. 이거. 이건 진짜 좋은데. 이건 글로벌한 문제란 말이야, 사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매일같이 고기를 먹지 않나.

그래서 노인들도 많이 먹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 전 세계가 공통으로 식이 행태를 공유하는 건지 뭔지 이쪽도 섭취량이 극적으로 줄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고려해야 될 게 많아요. 일단 신기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지나친 고용량은 안 될 거고요.”

“그렇지.”

“협응력이 떨어져서 사레 걸릴 위험이 있어서…… 너무 물 같아도 그렇고요.”

“그러네.”

“그렇다고 너무 점도 있게 하면 소화가 안 될 거고.”

“너 혹시 원래 이거 만들고 있었어? 왜 이렇게 문제점이 자세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럴싸해요?”

“어, 완전. 더 얘기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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