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81화 (781/1,303)

781화 이력서가 소용이 있을까? (2)

“하윤아.”

“네, 선배.”

안대훈은 그렇게 아이디어를 늘어놓고 나서, 자신의 부관 우하윤을 불렀다.

사실 3년 차가 2년 차를 부르면, 2년 차 입장에서는 살짝 긴장도 되고 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우하윤은 그저 편안하게 느껴졌다.

안대훈이 이렇게 부르는 게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라 그랬다.

‘오늘은 또 이수혁 교수님이 어떤 이적을 행사하셨길래 이러실까.’

하여간 수혁이 무슨 환자만 봤다 하면 불러다가 이 난리를 피웠다.

그렇다고 짜증이 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우하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수혁의 신도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는 되었으니까.

“이거 봐.”

한데 오늘의 안대훈은 평소와는 좀 달랐다.

덮어 놓고 오늘 이수혁 교주님이 가라사대를 하는 대신, 핸드폰을 내밀었다.

물론 핸드폰에는 이수혁 얼굴이 떡하니 떠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왜 수혁이 안대훈이라고 하면 질색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왜 같이 일하는 동료의 얼굴을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해서 박아 놓고 다닌단 말인가.

“이거…… 뭐요?”

“이거. 아이구, 이게 뭐야. 이거 말고.”

안대훈은 갤러리에서 빠져나갔다.

그 잠깐 사이에 하윤은 갤러리에 빼곡히 들이박혀 있는 수혁 사진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일단 찍는 것도 이상한데…….’

그걸 보정은 왜 하냐는 말이다.

아이돌도 아니고.

‘홈마라는 사람도 이상하지.’

이름만 들었을 뿐, 정체는 불명이었다.

비밀이 없어 보이는 안대훈이지만 의외로 또 입이 무겁지 않은가.

홈마가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고 하더니 여태껏 말을 안 해 주고 있었다.

이 새끼 이거, 혹시 홈마가 본인인 건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카메라가 보이질 않았다.

사진 퀄리티를 보면 폰으로 찍은 건 아니라, 안대훈은 아닐 거라고 우하윤은 추정하고 있었다.

“이거. 혀기후니.”

“아……. 이거요. 저도 매일 보고는 있어요. 근데 이거 뭔 돈으로 편집하시는 거예요?”

“내 돈.”

“그럴 거면 헌금…… 아니, 후원금이라도 받아요.”

“어찌 성스러운 의업에 있어 돈을 받겠나.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안대훈이 다시 내민 핸드폰에는 ‘혀기후니’라는 이름의 채널이 떠 있었다.

이름만 보면 커플 채널인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케이스 스터디 채널이었다.

재생 목록 대부분은 이수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부는 안대훈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두 개의 성격은 아주 달랐다.

수혁에 대한 것은 거의 브이로그 형식을 띠고 있었고, 안대훈이 나오는 것은 수혁이 언급한 질환에 대한 강해(풀이) 또는 다른 케이스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여간, 퀄리티는 감히 최강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건 진짜 누가 돈 준다고 해도 못 하는 거지…….’

유튜브에 의학 채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의사 셋이 나와서 떠들어 대는 채널을 시작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채널이 생겼나.

하지만 그중에 이렇게까지 깊게 의학을 다루는 채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채널의 타겟은 오로지 내과 의사,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었으니까.

돈이 될 일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영영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오직 미친놈만 만들 수 있는 채널이지…….’

하윤은 ‘성스러운’ 운운하면서 눈을 빛내고 있는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사실 찬찬히 뜯어보면 아주 막 이상하게 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얼굴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얼굴도 결코 아니긴 했는데.

지금처럼 대다수의 이성에게 얼굴에서 컷 당할 느낌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머리가 없다는 걸 상정하고서도 그랬다.

‘이분은 진짜 미쳐 버려 가지고…….’

눈알이 문제였다.

광기가 감도는 눈알이.

“하여간……. 내가 이제 드디어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가게 됐잖아?”

“아, 네. 축하드려요, 선배.”

“뭘. 너도 들어올 텐데.”

“뽑아 주시겠죠?”

“너 정도로 열심히 하면 뭐……. 아무튼. 광영스럽게도 나한테 기회를 주셨어. 동료 사제들을 뽑을.”

“네?”

사제?

이 양반이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물론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수혁교, 수혁교 하는 게 남들에게는 다 드립인데 안대훈에게는 찐이지 않나.

‘아……. 펠로우…… 말하는 건가.’

안대훈이 지금껏 말해 왔던 단어들을 잘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해석 가능했다.

“아……. 네. 이해했어요.”

“어. 그 사제들 시험 방식을 내가 정하게 해 주셨어.”

“면접 보는 거 아니에요?”

“면접이지. 신께서 직접 보시는.”

“네네.”

또한 이상한 소리를 해도 대강 넘어가는 것도 가능해진 마당이었다.

하윤은 놀라울 만큼 대단한 이해심의 소유자라 그랬다.

동기들은 넌 그 선배 무섭지도 않냐고들 하는데.

솔직히 하윤이 볼 때 안대훈은 진짜 순수한 사람이었다.

겉과 속이 똑같이 돌아 버린, 그런 사람이랄까.

“하루 종일 볼 거야.”

“네? 하루 종일? 아……. 그, 돌려돌려 돌림판을…… 설마 면접에?”

“그래! 역시 넌 대 지음과 같은 사람이다.”

“그…….”

지음이라.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를 뜻하는 말일 텐데.

‘그래……. 연인이 아닌 게 어디냐.’

안대훈과는 친구로 족하면 될 터였다.

그리해서 하윤은 껄껄 웃었다.

원래도 좀 호탕했던 성격인데, 레지던트 하면서 호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지간한 이해심으로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불같이 화를 안 내고는 넘어갈 수 없는 나날이지 않나.

대개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성격이 개가 되거나 또는 보살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행히 하윤은 후자였다.

“하여간 그렇게 되면……. 상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좋은 거 아니에요?”

“문제가 있어.”

“문제요?”

무슨 문제가 있을까?

동료 사제.

아니, 펠로우 뽑는 데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다고.

자칫 잘못하면 갑질한다는 식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이러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윤아. 내가 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네에.”

댁이 저한테 미안해할 일은 없습니다.

머리를 앗아 간 신이 댁한테 미안해할 일이죠.

대훈은 하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나는 교주님의 수제자이고 싶어. 베드로가 되고 싶다.”

“네에……?”

이제는 하윤도 대훈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간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베드로?

‘이제부터라도 교회를 다닐까?’

대부분의 사이비가 교회에서 파생되어서 나온다더니.

안대훈도 그 갈래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안대훈은 질질 끌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근데 남들 중에 우수한 놈이 있으면 어쩌지?”

“네?”

“나보다 잘하는 놈이 없겠어? 나는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평범한 사람이잖아.”

안대훈은 흥분한 나머지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머리끝까지 뻘겠다.

절대로 평범한 인상은 아니었다.

아니, 외모까지 올 것도 없이 성적만 봐도 그랬다.

‘선배……. 선배가 이수혁 교수님 다음으로 성적 좋거든요……?’

논문 쓰는 능력은 확실히 좀 모자랐다.

아니, 쓸 시간이 없었다고 봐야 했다.

임상 열심히 하랴, 공부하랴, 이수혁 팬클럽 관리하랴.

지금도 몸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분명히 이 유튜브도 다 외운 놈이 있을 거야.”

“네? 영상이 지금 수백 개인데……. 이걸 어떻게 외워요.”

“나는 거의 외웠어.”

그러니까 당신이 괴물이라는 건데…….

‘나도 열심히 하는데……. 반도 못 외웠다고……. 아니, 매일 올라오는 거 보는 것도 벅차……. 이 사람아…….’

이걸 거의 다 외웠다고?

수혁의 설명이나 추론이 지극히 깔끔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붕 뜨는 말이 거의 없었다.

모두 필요한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은 조금이나마 편집을 거친 것들이지 않나.

다시 말하면 이 영상들은 다 외워야 공부가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걱정이 돼……. 내 부족함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까 봐…….”

“그럴 리가 없어요, 선배. 선배처럼 집요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강해(講解)도 직접 만들어서 올리시잖아요.”

“그건 공부가 아니라 노는 거야.”

“아니…….”

이 미친 새끼야.

공부를 노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미 네가 남들한테 질 이유가 없다고.

‘뭐……. 다른 병원에 이수혁 교수님 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있을까?

-너 어디 남을 거야? 아선 올 거야?

하윤은 언젠가 아버지, 그러니까 아선 병원의 기조실장 우창윤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분비 할 거면…… 우리 쪽으로 와. 내가 있으니까…… 잠깐 얘기는 돌 텐데, 그래도 뭐. 너 1등 졸업인데 다 들어가겠지. 근데 통합진료센터에서 너한테 관심 있다고 하면 그냥 거기 남아. 이현종도 이현종인데…… 이수혁은, 이수혁은…….

아버지는 일종의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냥 자기애가 충만하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자기가 최고 천재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수혁은…… 진짜 따라갈 엄두조차 안 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수혁을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아무리 합리화를 해 봐도, 이게 안 되니까 그랬다.

하윤이 보기에도 그랬다.

잘난 사람인 것은 맞는데, 수혁에게 비하면 뒤처진다는 말도 모자랐다.

“선배, 걱정 마요. 선배가 짱이야.”

“그럴까?”

“그렇다니까요. 이거…… 내가 장담하는데 다 본 사람도 없을걸요.”

“뭐?”

“왜, 또.”

왜 위로하는데 화를 내, 미친놈아.

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감히 이수혁 교수님 영상도 다 안 본 놈이 우리 센터에 온다고? 사제를 꿈꾼다고?”

“아니…….”

그럼 어쩌라는 거야.

하윤은 허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부우웅.

그런 하윤을 구원한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대훈의 가운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혈종을 돌고 있으니 그쪽 병동이거나 아니면 같이 도는 애들이어야 정상일 텐데.

수혁이었다.

“엇 잠시.”

대훈은 우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번뇌를 가라앉히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하윤은 그런 대훈을 보면서 수혁을 생각했다.

‘교수님……. 알고 계세요? 여기 교수님의…… 뭐라고 해야 할까……. 광전사가 있습니다…….’

복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존경할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나.

“아……. 네! 그럼 지금 바로…… 돌림판 들고 가겠습니다!”

안대훈은 준비 동작도 없이 용수철처럼 딱 튀어 오르더니, 우선 당직실로 달려갔다.

하윤은 이미 보이지도 않는지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안대훈에게 수혁은 그런 존재니까.

‘그래…….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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