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화 돌림판 면접 (1)
안대훈은 하윤의 응원을 뒤로한 채 달렸다.
당직실에 들러, 거북이 등껍질같이 돌림판을 짊어진 채였다.
“뭐야…… 저거?”
“에비. 보지 마. 보지 마.”
“의사 선생님 아냐?”
“아닌 거 같은데……. 아니지 않을까?”
태화 의료원은 큰 병원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만큼, 거대한 병원이지 않나.
레지던트 당직실에서 센터까지 가려면 꽤 먼 거리를 달려야만 했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쳐야만 했다.
대학 병원은 생각보다도 더 북적거리는 곳이니까.
‘무엄한지고!’
안대훈은 감히 이 신성한 도구를 몰라보고 숙덕대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엔 화도 났다.
본인이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와, 대훈아. 이건 진짜 세기의 발명품이다.
수혁이 좋아하는 물품이라서 그랬다.
무려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하지 않았나.
하지만 안대훈은 곧 저들이 무엄한 게 아니라 무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여,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수멘.’
해서 안대훈은 다시 대자대비한 얼굴로 돌아와 달릴 수 있었다.
그런 안대훈의 모습엔 얼핏 신령한 기운마저 깃들어 있어, 오히려 수군거림이 줄었다.
의사 가운도 입고 있긴 한 데다 얼굴이 너무 신비롭다 보니 필시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비, 비켜 드리자.”
“어, 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환자와 보호자들이 비켜서고, 안대훈은 그사이를 나는 듯이 달려 센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 왔어?”
“네. 불초소생, 도착했습니다.”
“아니, 그런 말투는 쓰지 말라니까…….”
수혁은 그런 안대훈을 향해 인사하다가, 옆에 선 사람 눈치를 보았다.
아선에서 온 친구였다.
우창윤은 별말을 더 하진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심어 둔 프락치 우하윤의 말에 따르면 우창윤이 아주 열심히 키우고 있던 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현재 아선의 에이스였다.
‘군의관 3년 동안 논문도 뒤지게 썼다고 하던데?’
심지어 첫 1년을 제외하면 군 병원에서 복무했다고 했다.
물론 이것이 우수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었다.
그저 운이니까.
‘안대훈은 운도 실력이라고 했지.’
그러나 운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했다.
실제로 군 병원에 있었냐, 야전에 있었냐는 의사 개인에 있어서 꽤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 않나.
군 병원에서는 야전 병원과는 달리 그나마 밖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진료를 이어 나갈 수 있으니까.
“인사해. 여기는 아선 병원에서 수련받으시고…… 지금은 항공우주의료원에서 내과 과장으로 계시는 장종우 선생님. 이쪽은 저희 병원…….”
하여간 수혁은 소개를 해 주었다.
장종우 쪽은 쉬웠다.
그냥 내과 의사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의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대학 병원 내과에는 하나쯤 있어야 할 거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애는 왜 이럴까.’
그에 반해 안대훈은 우선 의사인지부터 검증이 좀 필요한 몰골이었다.
처음에 봤을 땐,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해도 어찌 되었건 멀쩡한 얼굴이었는데.
어째 애가 점점 광기에 물들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협으로 치면 광마가 아닌가 싶을 지경.
“그…… 우리 에이스. 안대훈 선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놀랍게도 안대훈은 에이스이지 않나.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장종우는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에이스……?’
같은 연차였다면 아마 반응이 달랐을 터였다.
안대훈의 위명은 태화뿐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우렁차게 퍼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대개는 ‘사이비 교주다’, ‘미친놈이다’라는 식이긴 했으나 그 와중에도 안대훈의 우수성은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종우는 3년 위.
안대훈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뿐이었다.
‘이게……?’
그에 반해 안대훈은 장종우에 대해 빠삭했다.
‘프락치에 따르면, 성실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지.’
그의 발은 가늘지만 넓게 뻗어 있어서 이제는 무려 군 병원 소식들도 어지간히 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선배들마저도 하나둘 포섭되어서 그랬다.
그중에는 김인수도 끼어 있었다.
-어, 공군이라 같이 훈련받았지. 사천 비행장에 있다가 올라갔어. 나도 올라가고 싶었는데……. 나는 고향이 이쪽이기도 하고, 훈련소 성적이 너무 밀려서 여기 남았어. 와……. 진짜 악바리야. 훈련소에서도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신도급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진주에서 환자 데리고 올라왔을 때, 안대훈은 그에게 다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시죠? 제가 군 펠로우로 2년간 센터에 남을 거. 저랑 친하게 지내시면 어느 과에 가시더라도 좋을 겁니다.
김인수 입장에서는 새까만 후배가 감히 와서 얼쩡거린단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인수는 버럭 화를 내는 대신 안대훈을 받아들였다.
-실세예요. 조태진 교수님도 안대훈 선생님은 예외로 치세요.
우하윤을 비롯한 다른 후배들의 조언 덕이었다.
하여간 이런저런 루트로 안대훈은 장종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요주의 인물이지.’
해서 안대훈은 경계의 눈빛을 팍팍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그의 등에 걸려 있던 돌림판을 받았다.
“자, 그럼 면접을 시작하지.”
이현종은 그 돌림판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장종우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빠르게 돌림판 목록을 훑었다.
‘진짜 모든 과를 다 보는구나……!’
현대 의학의 흐름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센터란 얘기였다.
분과로, 그 분과에서 또 세부 분과로 끝없이 나누어지기만 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모든 과를 다 보겠다고?
일견 광오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의 특장점을, 적어도 여기 있는 이수혁과 이현종은 증명해 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종합해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이건 추후 어떤 과에 가더라도 키워야 할 덕목이었다.
“두구두구두구.”
이현종이 화살표를 돌리자, 안대훈은 기선 제압을 목적으로 머리통을 두드렸다.
‘와……. 암살인가.’
장종우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면접 보러 와서 박장대소했다간 나가리 아니겠나.
차라리 다 웃는 분위기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수혁과 이현종은 돌림판에 집중하고 있을 뿐 안대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도 시험이구나.’
그걸 보면서 장종우는 깨달았다.
하긴 당연한 얘기였다.
환자를 봐야 하는데 딴청을 피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안대훈…… 이 친구 진짜 대단한데.’
암만 존경하는 교수의 명이라지만 저 머리통을 두드릴 수 있다니.
그야말로 충신의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이 교수들도 진짜 무도한 사람들이구나.’
그에 반해 저런 명을 내린 이놈들은 참 나쁜 놈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람도 아니었다.
“내과 중환자실…….”
장종우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오해로 자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는 것도 모르고, 수혁과 이현종은 그저 돌림판을 보고 있었다.
바늘이 멈춘 곳은 내과 중환자실이었다.
어려운가 아닌가를 떠나서 좀 애매한 곳이었다.
‘장종우……. 운이 어떤지는 가서 봐야겠군.’
이현종은 흠 하고는 장종우를 돌아보았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에 있는 환자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다들 중환자였다.
애매한 병원이라면 애매한 환자들이 내려와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곳은 태화 의료원이라서 더 그랬다.
어중간한 환자들이 있을 틈이 없었다.
오히려 자리가 부족해서 내려와야 할 환자가 병실에 남는 경우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는 건 어려운 환자들만 있다는 얘기였다.
‘엔드 포인트로 오는 곳이라…….’
그러나 할 거 다 하고 오는 곳이긴 했다.
최종 진단은 끝난 사람이 대부분이란 얘기였다.
다시 말하면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라 통합진료센터에서는 달리 할 게 없는 환자들만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드르륵.
어쨌거나 저쨌거나 수혁과 이현종은 안대훈의 정신 나간 의견, 즉 운도 실력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을 해 버린 상태였기에 중환자실로 향했다.
장종우도 미리 안내를 받아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뒤를 따랐다.
“어, 안녕하세요.”
미리 연락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중환자실에 있던 이들은 좀 당황한 얼굴로 이들을 맞이했다.
우리는 부른 적이 없는데…… 하면서였다.
‘아, 저거.’
하지만 안대훈이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있는 돌림판을 보자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병원을 돈다는 건, 이제 유명한 일을 넘어 상식이 되어서 그랬다.
누구 하나 나무라거나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와서 문제가 있는지도 몰랐던 환자가 해결이 되니까.
기적의 돌림판이라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것이 아니었다.
‘아……. 부담인데.’
물론 껄끄러워지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중환자실의 책임자인 중환자 의학과의 펠로우였다.
그렇다고 짬 처리할 수도 없었다.
하나는 전임 원장이자 센터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아들에 부센터장이면서 동시에 김다현 회장이 신임하는 사람이었으니.
“아……. 어서 오세요.”
해서 달려 나갔다.
수혁은 그런 펠로우를 향해 물었다.
“어려운 환자 없어요?”
마치 전방 부대를 찾은 사단장과 같은 말투였다.
펠로우는 고민했다.
‘음……. 잘 모르겠는…… 잘 모르겠는데.’
어려운 환자야 있었다.
하지만 진단이 안 된 환자는 없는 것 같았다.
‘근데 또…… 이 사람들이 붙으면 달라질 수도 있단 말이야?’
격이 다른 천재라고는 들었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그러하듯 이 펠로우도 자신이 퍽 우수하다고 믿었다.
실제로 우수한 것도 맞았다.
그래서 망신당하기가 싫었다.
“그…… 일단 다 보고는 있는데, 음.”
수혁은 바루다 덕에 펠로우가 뭔 생각으로 이런 답을 하는지 훤히 꿰뚫어 보고는 혀를 츠츠 찼다.
어차피 제대로 된 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어서 괜찮았다.
시방부터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센터장님. 센터장님이 저쪽. 제가 이쪽 보죠. 장종우 선생은 일단 기다려요. 케이스 있으면 부를 테니까.”
“아, 네.”
곧 희대의 천재 둘이 매의 눈으로 중환자실을 훑었다.
환자 목록부터 기록 그리고 실제 환자들이 누운 병상까지.
‘으……. 너무 괴로워.’
펠로우는 그야말로 산 채로 말라 죽는 기분이었다.
목적이 시험에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하급자 입장에서 까마득한 윗사람이 자기 일하는 곳을 이렇게까지 살피고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
게다가 중간에 ‘어?’를 해?
펠로우는 기절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물론 중환자 의학은 아직 과도기이고 지정의와 주치의는 따로 있었다.
그렇다고 책임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진료에 일조해야만 했다.
“잠시 이쪽으로.”
물론 수혁은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어려운 케이스를 발견했다는 생각, 그리고 그 덕에 사람이 살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레카.]
바루다는 순순하게 기뻐하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