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4화 돌림판 면접 (3)
교회에 다니는 건지, 하나님 운운하던 장종우는 삽시간에 얼어 버렸다.
이제 막 원인을 알아냈는데.
그것도 사실상 힌트로 다 떠먹여 주다시피 해서 알아냈는데.
여기서 갑자기 치료법을 물어?
‘음…….’
수혁은 그런 장종우를 보며 바루다와 토의에 들어갔다.
‘아까 힌트 주고 얼마나 걸렸지?’
[32초입니다.]
‘안대훈 표정 변화는?’
[안대훈은 그전부터 알고 있던 눈치였습니다.]
‘우리 대머리가 우수하긴 하구나…….’
[네, 비교 불허입니다.]
안대훈이 대단한 놈이라는 걸 이번에 또 깨달았다.
바루다가 없었다면, 안대훈을 이길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마 저 때문에 트리거가 되기는 했을 테니, 불필요한 가정입니다.]
바루다는 이렇게 말해도 평가가 흔들리거나 하진 않았다.
하여간에 안대훈과 장종우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지금은 얼마나 지났지?’
[15초, 16초.]
바루다는 째깍째깍 시간을 쟀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그에 맞춰서 속으로 똑딱똑딱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입이 살짝 벌어져서 가까이 있던 이들은 대강 알아들을 만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젠장.’
장종우는 그걸 듣자마자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망할.
이걸 물어봐 놓고 초를 세다니.
이건 너무 악랄하지 않나.
‘흐음…….’
‘으음…….’
물론 그건 오로지 장종우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안대훈도 이현종도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진료만 하자고 모인 게 아니니까.
상대의 실력을 더 정확히 검증해야 하지 않겠나.
둘 다 수혁에 대한 마음이 거의 광신적이다 보니 오히려 더 철저한 면도 있었다.
‘이 새낀 안 되겠는데…….’
‘하나 완전히 제꼈네.’
이현종은 안타까워하고, 안대훈은 미소 짓는 가운데 수혁이 입을 열었다.
“좀 어려운 질문이었나?”
말과는 달리 그걸 모르면 안 되지, 뭐 이런 얼굴을 하고서였다.
장종우는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 아니겠나.
여기서 매달려 봐야 추해지기만 할 것 같았다.
“그……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음.”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장종우가 아니라, 중환자 의학과의 펠로우를 보고 있었다.
‘어, 왜 나야.’
펠로우는 움찔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환자 증상이 왜 다시 안 좋아지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어서 그랬다.
누차 말하지만, 아직 중환자의학과의 롤은 중환자실에 입실한 환자들의 급성 증상 해결에 있지, 환자 진료 전반에 걸친 책임은 해당 과에 있는 것이 맞았다.
다시 말해, 이 환자는 소화기내과가 책임지고 있었다.
‘와……. 무슨 눈이…….’
그러나 수혁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가 되었건 손이 탔으면 그 환자를 본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 않겠나?
적어도 이현종은 그렇게 가르쳤고, 수혁은 그의 정신적 아들이었다.
“들었다시피…… 이 환자는 사카로마이세스……. 균주에 의한 감염이 아주 강력히 의심됩니다. 좀 안타까운 건, 이 환자에게 면역 저하가 있다는 걸 담당 의료진들이 모르지 않았을 거란 거죠.”
“음.”
그때까지도 펠로우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카로마이세스는 정말 흔하게 쓰이는 유산균이어서 그랬다.
특히 항생제의 장기간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C.difficile 감염, 즉 위막성 대장염에서는 이거 말고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해서 펠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면역 저하가 있을 때 유산균 사용을 주의해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균은 균이니까요.”
하여간 수혁은 말을 이었다.
펠로우는 맞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이게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위막성 대장염 또한 그것만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니까.
면역 저하가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이때 락토바실러스 기반의 프로바이오틱스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모르고 계셨나요?”
수혁은 펠로우, 그리고 나머지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이현종과 안대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이런 환자를 아빠랑 같이 봤지. 근데 저놈은 왜 알지?’
이현종은 아는 게 당연했다.
근데 쟤는 왜.
[모르겠습니다. 진짜 열심히 공부하나 본데요? 관련 문헌이 아직 많지 않던데.]
‘거참. 대단하네.’
수혁이 괜히 질문하고 30초도 채 기다리지 않고 나섰겠나.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겠지만, 모를 만하다고 여겨서였다.
“아……. 그런…….”
“물론 락토바실러스 계통이라고 해서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좀 낫겠죠, 아무래도. 아직 많은 케이스가 쌓인 것은 아니더라도…… 그 케이스들에서는 보다 양호한 결과를 보이고 있으니까요.”
“아.”
펠로우는 전혀 몰랐단 얼굴이었다.
사실상 중환자 의학에서 주로 다뤄야 하는 질환임에도 그랬다.
딱히 이 펠로우가 게을러서는 아니었다.
그저 수혁이 너무 많이 아는 것이었다.
“하여간…… 지금 사카로마이세스에 의한 패혈증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우선 중심정맥관 제거하시고 바로 컬쳐 나가세요.”
“아, 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펠로우는 좀 불만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괜히 남 일하는 데 와서 얼쩡거리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수혁이 아니었으면 이거 왜 이러는지 원인 파악하는 데만 며칠이 소요되었을 터였다.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을 테니까.
이걸 추론하기에는 펠로우도 소화기내과 쪽도 지식이 모자랐으니.
“약은 암포테리신 B 정주하세요. 그리고 아주 잘 보셔야 합니다. 바이털…… 잘 봐요. 환자…… 잃게 될 수도 있어요.”
“아,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혹시 막히면 전화 주시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애초에 이런 일 하라고 만든 센터입니다.”
수혁은 치료 방침까지 싹 알려 주고 나서야 중환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를 따라 나온 장종우는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 질문이 시작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케이스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다 끝나고 보니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걸 알아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근데…… 진단에 치료까지……. 게다가 어떻게 해야 했었는지까지도……. 이 사람…… 아, 진짜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
중간중간 많이 힘들기는 했다.
질문이 계속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문의를 딴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있겠나.
게다가 이것 숫제 추궁당하는 듯한 가르침이었다.
하나 그 결과, 장종우는 모르던 지식을 확실하게 습득했다.
“더 하실래요?”
“네? 아, 네네! 부디…… 부탁드립니다!”
수혁의 말에 장종우는 합격이 안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더 하실래요? 라니.
너무 관심 없어 보이지 않나.
아마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없었다면 마음이 상해서라도 돌아서지 않았을까.
내가 그래도 아선에서 제대로 수련받은 에이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는 간절하게 매달렸다.
‘음……. 오면 안대훈처럼 하려나?’
[아뇨. 안대훈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하지만 열심히 할 것 같긴 하네요. 당장 불합격을 주기보단 더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그 모습에 수혁은 좀 감동했다.
하여간 열심이지 않나.
“자, 그럼 또 돌릴까.”
해서 안대훈은 다시 등에 짊어지고 있던 돌림판을 내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장종우에게 저 돌림판은 우스꽝스러운 무언가였다.
세상에 저딴 식으로 환자 보러 가는 사람들이 어딨단 말인가.
집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어디냐……. 어디야! 제발 내분비! 내분비로 가자!’
지금은 어떠냐고?
장종우도 이 광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수혁 뽕맛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한번 맛보면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게 내가 바라던 의사지!
사실 좀 다르긴 했을 텐데.
약간의 다름 정도는 현장감으로 인해 바로 보정되어 버리기 마련이었다.
“내분비네요.”
기도가 통했던 걸까.
안대훈이 돌린 화살은 내분비내과에서 멈추어 섰다.
장종우는 환호했다.
두 손을 위로 쭉 뻗고.
“이얏호!”
이현종은 그런 장종우를 보며 나무랐다.
“아니, 중환자실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아, 아. 죄송합니다.”
잠시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장종우는 다시금 진중한, 그러니까 전형적인 내과 의사의 얼굴로 돌아와 고개를 푹 숙였다.
수혁은 그런 장종우를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멀쩡했다가 또라이가 되어 버린 사람을 하나 알고 있어서 그랬다.
‘데자뷔……?’
[아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안대훈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긴……. 저 정도로 돌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 저렇게 되진 않겠지.
지금도 봐라.
돌림판 메고 달려가는 저 모습을.
“두구두구두구! 이수혁 교수님 가신다, 길 비켜라 이놈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레지던트들을 무르는 저 모습을.
잠시 떨어져 있고 싶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물론 생각처럼 되진 않았다.
“역시 우리 안대훈이가 패기가 있어.”
이현종 때문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흐뭇해했다.
“우리 아들 행차하는데 길 비켜야지. 어차피 가 봐야 진단도 못 할 놈들 아닌가?”
속으로만 생각해도 좀 이상할 만한 말을 큰 소리로 내뱉어 가면서였다.
‘왜 내 주변에는 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주변이 다 이상하단 생각이 들 때면 일단 자신을 돌아봐야 할 타이밍이란 희대의 명언을 모르는 수혁은 에휴 하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장종우는 먼저 타 있었다.
모두의 기행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지금껏 배우고 익힌 내분비내과적 지식을 떠올리느라 바빠서 그랬다.
‘그래……. 우창윤 교수님이 존나…… 존나 시켰잖아.’
다 좋아서 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군대에 가서까지 교수 따까리 짓을 하면서 논문 쓴다는 게 말이나 쉽지,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억울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우창윤 본인은 군대 때 논문은커녕 진료도 거의 안 봤다고 해서 더 화가 났었다.
하지만 강제로 쌓은 지식이건 스스로 쌓은 지식이건 간에 지식은 지식이지 않나.
오늘을 위해 개고생해 온 거라 생각을 하니 억울함이 스르르 사라졌다.
‘호오……. 우리 장종우 선생……. 내분비는 자신이 있나 본데?’
[그러니까요. 얼굴에 자신감이 흘러넘치는데요?]
대신 자신감이 자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자신 있었다.
이쪽은 펠로우들과 겨뤄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물론 제대로 된 생각은 아니었다.
장종우가 겨뤄야 할 상대는 따로 있지 않나.
‘흥. 나보다 잘 알려고?’
같은 엘리베이터에 안대훈이 타고 있음을 유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