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화 내분비는 다른가? (1)
띵.
일행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병동을 향해 올라가는 대신 내려가고 있었다.
탓할 일은 아니었다.
안대훈이 남들이 잡아 둔 엘리베이터를 멋대로 뺏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도착이 늦어지게 생긴 상황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1층이었다.
“아, 머리 아파.”
“별거 아니겠지……. 너 상심해서 그런 거 아니니? 일단 동네 병원에서 준 약 먹고 괜찮아졌었다며.”
“아, 엄마. 진통제 먹었을 때만 안 아팠다니까? 이거 진짜 좀 이상해.”
“하여간 큰 병원 왔으니까…….”
엘리베이터 문은 꽤 오래도록 열려 있었다.
병원 엘리베이터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만큼 몸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없지 않겠나.
앞에 기다리고 있던 이들도 많았다.
다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환자나 보호자보다는 대개 의료진이었다.
“왜 안 타요?”
“아니……. 다음 거 타겠습니다.”
그들은 타지 않았다.
조합이 너무 괴상해서 그랬다.
수혁과 이현종은 높은 사람이지 않나.
그 앞에 선 안대훈은 돌림판을 메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멀쩡해 보이는데, 가운은 아선 병원 가운을 입고 있었다.
‘다 미친 사람들이겠지?’
장종우가 들었다면 좀 억울할 만한 생각이 여기저기서 빗발쳤다.
셋이 또라이인데 거기 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미친 사람이겠거니 하는 생각들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문이 열리고, 아무도 왕래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혁은 두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
“하여간……. 유산하고 상심해서 그럴 거야. 나도 그랬어.”
“아,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맨날 말해. 내가 엄마 때문에 속상해.”
두통과 유산.
연관이 있다면 대개 어머니 말대로 심인성일 터였다.
잉태했던 생명이 사라지는 건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일일 테니.
‘아닐 수도 있지.’
[네,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벌써 내렸습니다, 수혁.]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명의 아닌가?
아닐 수도 있는데,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식과 추론 모두가 든든하다면 그럴 수 있을 터였다.
하여간 수혁이 내리는 바람에 같이 타 있던 모두가 내려야만 했다.
안대훈은 수혁에게 무언가 신묘한 뜻이 있으리라 믿고 있어서 별말이 없었고.
이현종은 마침 모녀의 대화를 듣고 난 참이라 입을 열었다.
“저기, 두통 환자?”
“네.”
“음. 뭘 생각하는지는 나도 알 것 같은데.”
“오, 그럼 이번엔 아버지가?”
“잠만. 이 친구, 내분비는 자신 있다고 했잖아.”
이현종은 그렇게 수혁과 말을 하다 말고 장종우를 돌아보았다.
마침 입을 달싹이고 있었다.
왜 내분비내과로 가려다 유턴해서 신경과 외래로 왔냐고.
이러면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말하려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분비는 왜 나와.’
근데 웬 내분비?
뭔 소리야, 이게.
장종우는 급히 두 모녀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유산했고, 머리가 아프다.
약을 먹었고, 약이 들었다.
‘뭔데.’
뭐야.
뭐냐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혀를 찼다.
“모르네? 그럼 가자.”
쯔쯔 하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장종우의 어깨를 붙잡고서였다.
“어, 네.”
영문을 모르고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대충 보니 수혁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사람은 익히 알아 왔듯 천재니까.
‘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대훈도 비슷한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장종우랑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이놈은 수혁이 뭘 하든 간에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 광신도였으니.
그러나 그런 광신도에게도 이해한 믿음과 이해 못 한 믿음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까랑은 확연히 달랐다.
‘저놈도 일단은 몰라.’
그렇다면 원점이다.
장종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그사이 이현종은 두 모녀 앞에 가 인사를 건넸다.
“어……. 네.”
아마 밖에서 이렇게 모르는 아저씨가 아니, 할아버지가 인사를 건넸다면 도망이라도 가지 않았을까?
이현종이 딱히 막 인상이 좋은 편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었고, 이현종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병원에서 흰 가운에 적당히 늙은 얼굴은 그야말로 어마 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는 통합진료센터장 이현종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이현종의 얼굴은 병원 사방에 붙어 있었다.
센터장인 데다가, 월드 스타고 석좌교수라 그랬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근데 어떤…….”
“머리가 아프시다고 하셨죠.”
“네? 아, 네. 근데 별거 아닌…….”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대기가 한참 남은 거 같은데, 저희 센터에서 보시면 금방 됩니다.”
“어…….”
그런 사람이 센터로 오라고 하는데, 따라가야지 별수 있나.
호객 행위인가 싶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센터 안에 있었다.
혼자도 아니고 여러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수혁과 안대훈, 장종우에 더해 레지던트들까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나 혹시 죽을병인가.
이상했다.
검사한 것도 없는데.
“너무 긴장하지는 마세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별거 아닐 가능성이 제일 크니까요.”
이현종은 괴짜긴 해도 좋은 의사이지 않나.
적어도 환자 앞에서는 그랬다.
해서 우선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렇다고 소용이 있지는 않았다.
이렇게 끌고 온 주제에 그런 말을 하면 뭐 하나.
‘별것일 가능성이 있기는 있구나!’
환자에게는 이런 생각만 들었다.
“머리가 언제부터 아프셨습니까?”
“어…….”
그때 이현종이 물었다.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들어 온 질문이기도 했고.
“두 달? 그 정도 됐습니다.”
해서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이현종은 그 두 달이라는 말에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은…… 심인성이라기엔 너무 길지.’
우울증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이에게는 우울증의 증상이 우울감이 아니라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도 했고.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느낌이 달랐다.
‘우울감이 있을 수는 있어. 그건 정상이야. 하지만 우울증하고는 명백히 달라.’
물론 이현종이 정신과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과 의사를 해 온 지 벌써 수십 년이지 않나.
세상에 내과 병동만큼 우울한 병동도 없으니, 서당 개 풍월 읊듯 대강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무슨 이벤트가 있었나요?”
이현종은 무척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유산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랬다.
“음……. 그때는…… 그때는 딱히 뭐가 없었어요. 그냥 아팠어요.”
“그렇군요. 외람되지만, 유산이라는 말을 아까 들었습니다. 그건 언제였나요?”
이번에는 더 조심했다.
아무리 진료를 위한 질문이라고 해도, 어찌 되었건 환자의 아픔을 후벼팔 수 있는 것이기에 그랬다.
그의 태도가 워낙에 진지한 데다가 대가라는 인상이 있었기 때문에 방 안에 모두는 숨죽인 채 들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진짜로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건…… 한 달? 한 달 정도 되었어요.”
“그럼 두통이 있다가 유산이 있었던 건데……. 그 후로 두통은 어땠나요?”
“딱히…….”
“그렇군요.”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와는 달리, 무언가 확신에 차 있는 얼굴이었다.
‘어……. 뭐야?’
그 얼굴 그대로 장종우를 바라보았다.
장종우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직 뭔가 알아내기엔 이른 시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이…… 이 사람은 괴물이구나.’
해서 수혁을 바라봤는데, 정확히 이현종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환자분, 잠시 여기 계신 선생님께 환자분 관련한 질문을 하려 하는데 괜찮을까요? 무례한 과정은 없을 겁니다.”
“아……. 네.”
이현종은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장종우에게 물었다.
“장종우 선생. 임신과 관련한 두통이 뭐가 있지?”
“음.”
어려운 질문이었다.
두통은 신경과에 가깝지 않나.
그래서 별 상관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지금 그가 어디 앉아 있는지 깨달았다.
‘아……. 나 통합진료센터에 면접 온 거지.’
다 보려고 여기 오지 않았나.
덕분에 쓸데없는 고민을 뒤로할 수 있었다.
대신 임신과 두통을 연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추론은 해 보지 못했으니까.
“임신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죠?”
그걸 수혁이 도왔다.
추론은 방향을 어디로 가지 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아.”
장종우는 그제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임신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이 쉬울 리도 없으니.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을 뽑자면, 역시나 호르몬이었다.
‘하지만 호르몬의 변화가 두통으로……? 또 무슨…… 변화가 있지?’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수혁이 헛기침을 했다.
헛기침.
기침.
기침?
‘감염……? 아, 그래. 면역 체계에…….’
면역 체계도 변하게 된다.
태아는 엄밀히 말해서 산모 자신은 아니지 않나.
이물질이라고 하면 좀 너무하다 싶을 수도 있겠으나, 면역 체계 입장에서 놓고 보면 이물이었다.
‘자가 면역 질환이…… 생길 수 있어.’
그에 대한 반응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장종우가 떠올린 것처럼 자가 면역 질환이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면역 질환은 유산과 관계있었다.
그제야 장종우는 이 환자의 유산이 면역 시스템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미친……. 아까 그것만 듣고 이걸 유추했다고?’
동시에 자신이 어떤 괴물들과 같은 방에 있는지 깨달았다.
천재라는 말은 부족했다.
괴물이었다.
나쁜 의미의 괴물이 아니라, 그도 되고 싶은 종류의 괴물.
그러려면 반드시 이 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아까 실패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난이도가 미쳐 날뛰어……. 나만 이런 건 아닐 거야.’
심기일전했다.
장종우는 차분히, 아주 차분히 면역과 두통을 연관 지었다.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 가운데, 우창윤과 관련된 기억이 하나 스르륵 나타났다.
‘그래……. 우 교수님……. 이쪽으로 대가지.’
그는 호르몬에 미친 사람이지 않나.
그쪽 연구만 들들 파서 이제는 거의 월드 스타급이 되어 가고 있을 지경이었다.
너무 지나쳐서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란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고 있긴 하지만.
하여간.
“면역 체계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중에서 일부 자가 면역 질환이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환자의 두통과 면역 질환이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
이현종은 그래, 그렇지라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떤 검사를 해 봐야 할까.”
“음.”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추론의 방향이 바르게 잡힌 이상 답변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