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화 다음 타자? (1)
[이태원 님이 장종우 님을 채팅방에 초대하셨습니다.]
면접 갔다 온 지 불과 1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장종우는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초대자는 이태원.
부모님이 이태원을 아주 좋아하시나, 하여간 이름이 특이한 놈이었다.
덕분에 같은 병원 출신이 아님에도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새끼……. 어지간히 급한가 보지?’
아선 병원이 국내 굴지의 병원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아선 그룹이라는 어마어마한 그룹이 뒷배에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병원은 결코 아니었다.
교수진, 그러니까 실무에 나선 인원은 빠방했고 일반적인 교육도 아주 잘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노하우가 필요한 영영, 즉 국시 대비는 어려웠다.
시험공부라는 건 자고로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여 온 족보와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법.
때문에 아선 병원 치프들은 전문의 시험공부 기간에 다른 병원과 조인해서 시행했다.
이태원은 그중 하나로, 유서 깊은 한영 대학교 출신이었다.
[안녕하세요.]
하여간 장종우로서는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어서 인사를 건넸다.
‘잉. 이게 다 뭐야.’
그러고 나서야 단톡방 인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47명.
이름은 다시 봐도 ‘통합진료센터 가즈아’였다.
그러니까 방에 잘못 들어온 건 아니란 얘긴데.
‘왜 이렇게…… 많지?’
남들도 제대로 들어오긴 한 모양이었다.
인사들이 쭉쭉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인기가 이렇게까지 많다고?’
장종우는 인사의 해일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하나같이 어디 3년 차 아니면 군의관, 공보의들이었다.
그냥 관심이 있어서 태핑해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지원자들이란 뜻이었다.
돌이켜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특히 센터에 갔다 온 입장에서는 이해가 갈 수밖에 없었다.
인적 자원, 물적 자원 모두 완벽했으니까.
딱 하나 불안한 게 있었다면 미래인데, 그마저도 지원 모집하면서 내려온 공문을 보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어땠어요? 하루 종일 면접을 대체 어떻게 본다는 거예요?]
이태원이 물었다.
존대할 사이는 아닌데, 그래도 저런다는 건 총대 메고 나선 느낌이었다.
교수끼리도 아니고 레지던트끼리야 당연한 일이었다.
지리적으로 정말 가까운 병원이 아니고서는 짤막한 교류조차 없었으니.
‘뭐라고 말해 줘야 하지?’
하여간 장종우는 딱히 정보를 제한할 생각이 없었다.
뭘 안다고 해서 대비 가능한 종류의 면접이 아니지 않았나.
게다가 이현종.
프락치의 화신, 의료계의 국정원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그 사람이라면 이쪽으로 해서 인성 평가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 새끼 그거 별것도 아닌 정보도 제한하던 놈이야. 의사로서는 엉망이지.
안 그래도 이현종은 가진 모든 의료 정보를 공유해야 한 사람의 환자라도 더 살게 된다고, 그가 가는 모든 학회에서 떠들던 사람이지 않나.
면접 자리에서 수혁보다는 이현종이 더 눈에 밟혔다.
나이가 더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만만치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가면 돌림판을 돌릴 거예요.]
해서 숨김없이 다 밝히기로 했다.
정말로 솔직하게 다.
그걸 본 이태원은 생각했다.
‘뭔 소리야, 이 새끼?’
돌림판이 뭘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해당 과에 멈추면 안대훈이라는 사람이 돌림판을 짊어지고 앞장섭니다. 머리통도 치는데 웃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저는 일부러 딴 데 봤어요.]
찬찬히 보다 보면 뜻을 알 수 있겠지, 그렇게 믿었다.
다 허사였다.
머리통을 두드려?
이건 또 무슨…….
‘아. 학회 갔던 애들이 뭔가 비슷한 얘기를 했던 거 같기도 하고?’
하필 이태원은 추계 학회 당일 군대에서 당직 서느라 못 가서 더 이해가 안 갔다.
안대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 번이라도 봤으면 느낌이 딱 왔을 텐데.
[하여간 병동이건 어디건 도착하면 이현종, 이수혁 교수님이 병동을 싹 훑어요.]
그의 고민과는 별개로 장종우의 톡은 계속되었다.
답문 없이 숫자만 주르륵 줄어들었다.
모두 장종우의 톡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특이 환자가 있으면 즉석에서 문제가 나옵니다.]
보면 볼수록 참 이상한 방식이었다.
아니, 가능하기는 한가 싶었다.
물론 통합진료센터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센터이긴 했다.
일견 광오해 보이기까지 한 이름이지 않나.
저 둘이 그만한 능력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출범하고 바로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말이 되냐고.’
이태원은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새끼 설마 구라 까는 건 아니겠지……?’
이건 편견일 터였다.
본인도 알기는 하는데,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 편견이기도 했다.
큰 병원 놈들이 왠지 더 뺀질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그런 게 좀 있었다.
[저는 다 끝나고 들은 건데……. 그렇게 해서 특이 환자가 없을 경우 두 번만 더 반복하고, 없으면 면접은 종료라고 들었습니다. 시험이 안 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그 경우에는 그냥 불합격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운이 좋았던 거죠. 진짜 어려운 케이스가 걸려서.]
잉?
특이 케이스가 없으면 종료고, 불합격이라고?
세상에 이런 불합리한 처사가 어디 있느냔 말인가.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불안 정도가 높은 의사들인 만큼 갑자기 채팅장이 폭발했다.
[아니,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설마 면접이 운빨 X망겜이라는 얘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네?]
장종우는 덜컥 억울해졌다.
내가 면접관이냐?
나도 피해자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냐. 이 새끼들 이거 다 감점일 수도……?’
상대는 프락치의 대가라는 걸 유념해야 했다.
주도면밀한 편인 장종우는 일단 톡방에 들어온 사람부터 확인한 덕에 조심할 수 있었다.
‘김인수……. 이 새끼 태화잖아.’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아선과 칠성, 그리고 태화는 나름 한국 의료계의 트로이카로서 교류를 지속해 오고 있었으니까.
최근 들어 칠성이 왠지 모르게 나가리되고부터는 태화-아선 내과 집담회도 열리고 있었다.
‘조태진 계열로 분류되던데……?’
원래부터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진 못했더랬다.
관심이 생기고 나서부터 알아본 것인데, 의외로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놀랍게도 나무위키 문서까지 있어서 그랬다.
이수혁 교수는 거의 무슨 전집으로 내도 될 정도로 세세했고, 이수혁 관련 인물들도 문서화되어 있었다.
거기에 김인수의 이름도 있었다.
딱 한 줄이긴 했지만.
[면접관께서 뜻이 있으시겠죠. 직접 가 보시면, 센터가 진짜 제대로 된 곳이라는 것도 아시게 될 겁니다.]
해서 장종우는 원격 아부를 시행했다.
[무슨 뜻인데요?]
[그걸 왜 안 물어보심?]
[이거 거짓말은 아니죠?]
반응은 대단했다.
장종우는 그들 모두 바로 탈락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점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가 되었건 의료계는 도제식 교육을 추구하는 곳이지 않나.
스승에게 반감을 품는 제자가 설 자리는 아무래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역시…….’
반면, 김인수는 그 톡을 보면서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주라서 그런가, 하늘의 별이 알알이 잘 보였다.
‘여전하시네.’
이현종.
원내에서는 불세출의 기인이라고 부르지만.
정말 순화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결과 찾아낸 호칭일 뿐, 직설적으로 말하면 미친 사람이었다.
이수혁.
그의 아들이었다.
‘나……. 잘하는 거겠지?’
혈종으로 가면 교수 시켜 준다고 그랬었는데.
아마도 될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내린 선택이었다.
후회가 이따금 올라오긴 했지만, 결정을 뒤집어엎지는 못했다.
그러기엔 당시 경험이 너무 어마어마했다.
전화로 진단을 내리던 수혁의 모습.
완비된 센터.
‘그래, 가자. 해 보자.’
오히려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자면 면접부터 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종, 이수혁 모두 뛰어난 의사이지만 행정하고는 아예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라서 그랬다.
둘은 김인수를 합격자로 내정해 놓기만 하고 정작 당사자에게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런 사정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둘은 다음 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면접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 이름이……?”
“이태원입니다.”
“어……. 이태원?”
이현종은 다시 한번 면접자 얼굴을 바라보았다.
‘혼혈 아닌 거 같은데……? 아닌가? 얼굴이 좀 까맣긴 한데……?’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이태원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게 미군밖에 없었다.
“어어, 형.”
잠깐 놀러 와 있던 신현태가 이현종을 말렸다.
아니, 말리려 했다.
이 인간이 뭔 얘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아서 그랬다.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아버지가 흑인이신가?”
이현종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못 참는 사람이니까.
“네?”
이태원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나 얼굴 까맣다고 드립 치신 건가? 웃어야 되나?’
아니, 심히 고민이 되었다.
잘 보여야 할 텐데.
상대의 의중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일상생활 쪽으로는 좀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알면 더 나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현종의 직함과 명성이 그러한 평가를 지나치게 희석시키고 있었다.
“아니, 아니. 하하. 아냐! 아니라고!”
하여간 신현태가 난입해 소리를 질러 댄 덕에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럼 돌려 볼까? 대훈아.”
“네.”
수혁의 말에 대기 타고 있던 안대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째…… 돌림판이 더 화려해진 거 같다?”
눈앞이 번쩍했다.
“네. 아무래도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텐데, 위엄을 보이려고요.”
“아……. 그렇구나. 그래. 음. 좋네.”
아닌 게 아니라 돌림판은 이제 거대한 철판이 되어 있었다.
각 과는 각기 색이 다른 큐빅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걸 둘러메고 있다가 내려놓는 안대훈은 누가 봐도 미친 사람이었다.
아마 예전의 수혁이었다면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이미 돌림판의 마력에 매료된 지 오래였다.
‘번쩍이니까 더 잘 보이네.’
[그…….]
‘왜?’
[아닙니다.]
바루다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부끄러웠지만.
어차피 쪽팔린 건 자신이 아니라 수혁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빨리 돌림판의 바늘이 멈춰서 환자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벌써 센터 환자는 다 봐서 그랬다.
‘진짜 돌리는구나.’
가지각색의 미친놈들 사이에 선 이태원은 초조한 얼굴로 바늘을 바라보았다.
아마 긴장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돌림판 꺼내는 순간, 아 여기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어제 톡방에서 본 말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어려운 환자 없으면 그냥 꽝이라고 했지? 이게 무슨…….’
운이 영향을 미치는 면접이라니.
세상에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단 말인가.
빙그르르.
물론 바늘은 무심하게 돌았다.
그러곤 어느 한 지점에 멈추어 섰다.
안대훈은 후후 웃으며 일어나, 이태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갑시다, 환자 살리러.”
바늘 끝에 걸린 건 붉은 큐빅.
‘응급실’이란 글자가 덤으로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