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88화 (788/1,303)

788화 다음 타자? (2)

‘이걸 메고 가는구나…….’

이태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등에 번쩍이는 돌림판을 짊어진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옆에는 수혁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암만 봐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드문드문 돌림판을 보는 수혁의 얼굴엔 뿌듯함만 느껴졌다.

‘이것도 시험인가? 그런 거겠지?’

무슨 시험일까.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먼저 시험을 본 장종우는 이런 얘기까진 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냥 돌림판이 있다고 했을 뿐, 어떤 돌림판이 있다고 하진 않았다.

‘나쁜 놈……. 이런 거라고 얘기를 했었어야지.’

생각을 못 한 것 같진 않았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눈앞에서 번쩍이는 돌림판에 대해 그게 어떻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머, 저게 뭐야?"

"어디 행사하나 보다."

"의사 아니고?"

"의사겠냐? 개그맨이 분장한 거 아니야? 행사 진행하려고."

"아……. 하긴. 그럼 저것도 분장인가?"

"당연하지. 저렇게 빛나는 머리가 어딨어."

말 그대로 번쩍이는 행렬이었다.

센터에서 본관 1층 응급실까지 가는 동안 마주친 모두가 수군댈 정도였다.

예전과는 달리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혁이 아니라, 안대훈을.

"아냐, 나 명의 인사이드에서 봤는데. 저 사람 의사야."

"뭐? 진짜로?"

"어. 인터뷰도 하던데……?"

"착각한 거 아니냐? 못 알아본 거 아닐까?"

"저 얼굴을 착각한다고?"

"아니, 내가 미안하다. 그럴 리가 없겠네."

김다현은 공사가 다망한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태화의 미래 먹거리 바이오 그룹의 회장이니.

그런 만큼, 병원장인 신현태조차 주간 회의 때나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병원에도 분명 신경을 쏟아 주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를 통해 태화 의료원이 독주를 하게 된 상황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통합…… 뭐래더라. 하여간 그 센터 있잖아."

"어어. 나도 봤어. 어려운 환자 다 볼 수 있다고. 유튜브에서 본 거 같다."

"말이 되나 싶기는 한데……. 공식 채널 말고 팬 채널도 있더라. 댓글 반응이 거기가 더 좋아."

"뭔데?"

"혀기후니?"

"이름은…… 진짜 이상하네……."

때문에 홍보 면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아마 이현종이나 수혁이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지금보다 조금만 더 좋아했다면 날마다 나갈 수도 있었겠다 싶을 지경이었다.

그 핵심 멤버가 되어야 할 안대훈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수혁은 딱히, 보았을 때 독자적인 색깔이 그리 뚜렷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안대훈은…….

드르륵.

안대훈은 응급실 출입문에 카드를 댄 후 안으로 들어섰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니만큼 병원 사람들은 이제 안대훈을 다 알아보았다.

아니, 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 뭔 상황인지도 다 알았다.

‘돌림판…….’

‘센터에서 왔구나.’

‘제발 내 환자! 내 환자를 봐 줘요!’

왜 또 왔대, 이런 반응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뭔가를 바라는 눈길로 안대훈을 바라보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저 눈에 띄는 독보적 외모 때문에, 어쩐지 환자 고르는 데 있어 안대훈이 영향을 미친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불경한 것들.’

물론 안대훈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케이스 선정은 신성한 일이니까.

감히 거기에 자신이 개입을 해?

만약 그런 일이 터럭만큼이라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생긴다면.

그 날로 안대훈은 옷을 찢고, 몸에 채찍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새끼, 또 눈 이상해지는데.’

[그런가요?]

‘분석을 좀 해 봐.’

[안대훈 데이터는 다 지웠는데요?]

‘왜? 왜 이놈아.’

[너무 이상해서, 다른 사람 데이터 분석하는 데 방해됩니다.]

‘아……. 그래, 잘했다. 그러면 안 되지.’

그래.

안대훈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이상하게 보이면 안 되지.

무슨 생각을 할지 도통 모르겠는 놈은, 그냥 그렇게 두는 것도 한 가지 방편이지 않겠나.

게다가 응급실에 들어온 수혁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설레고 있었다.

"어디……."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현종도 그랬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요새 노인들이 그러하듯 젊어 보이긴 했지만.

이 나이까지 이만한 열정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음."

지금도 보라.

수혁도 수혁이지만.

누구보다 펄펄 나는 사람은 이현종이었다.

평생 심장 질환을, 그중에서도 가장 급하다는 관상동맥 질환을 들이팠던 사람이지 않나.

응급실이라는 곳은 이현종에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네……. 정말 별거 없었다고요?"

"네. 이상 소견은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저희 CT 해상도가 좀 떨어질 수는 있지만요."

"으음. 근데 왜 CT를 찍었어요?"

"환자가…… 제 친구인데요. 그…… 침습적인 검사에 대해 극도로 불안감을 표하고 있어서요."

"아."

이현종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방금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에게로 향했다.

특이하게 혼자 온 게 아니라 로컬 의사로 보이는 사람과 같이 온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당연한 일 아니겠나.

중한 환자라고 바로 응급실로만 오라는 법은 없었다.

그중 상당수는 동네 병원에 먼저 가게 되어 있었고, 거기서 이상을 감지한 의사가 데리고 오는 케이스가 상당했다.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센터장 이현종입니다."

이현종은 그런 보호자 혹은 의사에게 인사부터 건넸다.

"엇.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러자 상대가 90도로 허리를 숙여 왔다.

‘잉. 제자 놈인가?’

해서 이현종은 다시 한번 상대를 면밀하게 살폈다.

‘아. 기억 안 나는데.’

제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니, 사실 제자라 해도 펠로우까지 한 게 아니면 기억에 없긴 할 터였다.

일 년에 수십 명씩 들어오는 데다가, 이현종은 가르치는 데나 관심이 있지, 특출난 사람이 아닌데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한 사람은 또 아니라 그랬다.

"아, 모르실 겁니다. 저 그냥 학회에서 뵌 적이 있어서."

"아아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환자를 돌아보았다.

같이 온 의사만큼이나 젊어 보였다.

그 눈길에 보호자로 온 의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남자 41세고, 4년 전부터 반복된 흉통을 주소로 제 병원에 왔습니다. 아, 저는 대학에 있는 건 아니고……. 아선에서 수련받고 지금은 공덕에서 개원해 있습니다. 나름 검진용 조영술하고…… CT, 초음파에 트레드밀도 있긴 해서 검사를 해 봤는데……. 결과가 좀 이상해서요."

"아선에서 심장 전공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교수님. 펠로우도 안 하고 조영술 할 수는 없지요."

"하긴, 그렇지."

아선이라.

이현종은 아선 교수들을 떠올려 보았다.

‘뭐……. 나름 괜찮지?’

대놓고 자랑인데, 사실 그놈들도 따지고 보면 이현종 제자였다.

어차피 대한민국에서 관상동맥 조영술에 중재 시술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게 이현종이었으니.

지금 필드에 나와 사람 살리고 있는 사람들은 다 제자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실제로 아선에 있는 교수들이 찾아와 배운 적도 있고.

어려운 케이스가 있으면 많이 보내기도 했더랬다.

지금이야 지들이 알아서 하지만, 하여간.

‘근데 이상하다 이거지.’

뭘까.

제대로 수련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관상동맥 조영술에서 실수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굉장히 직관적인 검사 중 하나이니까.

해서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케이스 문제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여간 시간도 많지 않나.

"일단 다 와 봐라. 다 와서 들어."

해서 이현종은 수혁과 안대훈 그리고 이름 특이한 이태원을 불렀다.

의사는 좀 당황했다.

"교수님?"

"어어.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봐요. 뭐가 이상한지."

"그……."

이게 혹시 공개 처형 뭐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오해는 아니었다.

학회에서 이현종의 악명은 유명한 것이었으니.

딱히 나쁜 의도가 있는 거 같지는 않은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지 않았나.

그런 걸 볼 때면, 차라리 교수 못 되고 개원해서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래도 발표할 일보다는 앉아 들을 일이 더 많았으니.

"긴장하지 말고. 혹시 뭐 실수했어요?"

"네? 아, 아뇨. 아닙니다."

해서 망설이고 있었더니 큰일 날 소리를 해 댔다.

뒤를 돌아보니 친구가 ‘너 설마……’ 하는 얼굴로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냐, 아니야! 이놈아!’

친구라고 얼마나 성심성의껏 봐 주었나.

아니, 여기까지 온 것부터가 벌써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개원의가 저만한 장비 들여놓는 게 어디 쉬운가.

밑에 페이 닥터만 여럿이었다.

병원 비우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날아간다, 이 말이었다.

"일단……. 환자가 흉통을 호소하지 않습니까? 41세고요."

"그렇죠."

"근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체격이 나쁘지 않아요. 다른 지병도 전혀 없습니다."

"으음. 술이나 담배는?"

이현종이 보기에도 환자는 늘씬했다.

41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른 지병이 없을 만도 했다.

하지만 술 담배를 한다면?

말짱 꽝이었다.

그만큼 이 둘은 건강에 악영향을 제대로 미치는 것이었으니.

"한 번도요. 술은 뭐…… 어쩌다 한두 잔? 담배는 피운 적 없습니다."

"아, 친구니까 알겠구나."

"네."

"그럼 위험 요소가 없긴 한데……. 그것만으로 이상하다 할 수는 없을 거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근데 이게…… 트레드밀에서 딱히 뭐가 안 나옵니다. 근데 딱 한 번…… 이 친구가 직장이 옆이라 되게 자주 오거든요? 한번 증상이 있을 때 와서 한 심전도에서 하강이 있었어요."

"ST 분절 하강이?"

"네. 그러다 사라지긴 했습니다."

"으음……."

왜 이상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증상이 있을 때 하강이 있다는 건 관상동맥 질환이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트레드밀, 즉 운동부하 검사에서는 나오는 게 없어?

‘비전형 협심증……? 그 가능성이 제일 커 보이는데.’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사에 관해 물었다.

"그럼 조영술을 해야 했을 거 같은데."

"네. 근데 이 친구가 겁이 많아서요. 담배도 겁 많아서 안 피우는 겁니다. 암 걸릴까 봐."

"아……. 그럼 검사를 뭘 하나. CT?"

"네. 관상동맥 CT를 찍었습니다. 근데……."

"혈관에 이상이 없게 나왔겠군그래."

"네."

"그래, 그렇군."

"그래서 비…… 읍?"

고개를 끄덕이는 이현종을 향해 의사는 자신의 임프레션을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현종이 입을 틀어막아서 그러진 못하게 되었다.

‘이게 뭔……?’

해명을 해 주겠지 싶었으나, 이현종은 이미 이태원을 보고 있었다.

‘비전형은 오답일 수도 있어. 가능성 있는 질환은 두 개. 만약에 다른 거면 난이도가 좀 있겠는데.’

문제를 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진단도 하고, 치료도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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