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89화 (789/1,303)

789화 다음 타자? (3)

심장?

심장이라고?

이태원은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이현종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학회의 악마, 불세출의 기인, 개새끼…… 아니, 교수님한테 개새끼는 좀 그렇고.’

어찌 된 게 의학적인 것보다는 그저 이현종의 별명만 떠오르고 있었다.

그럴수록 암울해져만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현종의 악명은 대단했다.

흉부외과 쪽에서야 개새끼가 일단 제일 양호한 호칭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내과 쪽에서도 학회 어른이다 보니 말이 좀 순하게 나갈 뿐, 내재한 뜻은 대동소이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 이태원 선생."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종은 이태원을 불렀다.

"네."

이태원도 하릴없이 이현종을 마주했다.

뭐 어쩌겠나.

부르는데 답해야지.

병원에서 다른 법도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었다.

"40대 초반, 기저질환 없는 남자가 흉부 통증을 호소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지?"

게다가 이태원은 통합진료센터에 관심이 어마어마한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단톡방이고 어디고, 교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통합진료센터 얘기는 나오니까.

처음엔 그저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던 일을 해내는 것이 신기해서였다면.

지금은 혹시 저기에 의학의 미래가 있는 거 아니냔 얘기도 나왔다.

‘간증……. 아니, 간증이 아니라. 경험 공유도 있었지.’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다.

김인수부터 해서 통합진료센터의 구원을 받은 군의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맨파워부터 설비까지 대학 병원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한 곳이 군 병원 아닌가.

그런 곳일수록 의사 개개인의 역량, 즉 추론이 중요해지는데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에서 추론은 점차 자리를 잃어 가고 있었다.

무시 받아서가 아니라 추론이 해야 할 과정을 검사들이 대체하고 있어서였다.

그럼 그게 안 될 때는 어찌해야 하나.

‘전화만으로…… 압도적인 힌트를 받는다고 했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그들에게 통합진료센터는 일종의 동아줄이었다.

거기에 연락하면 진단이 되니까.

환자가 사니까.

그저 질시의 대상으로 수혁과 이현종을 보게 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저 저 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따름이었다.

이태원도 그랬다.

‘이 질문은……. 함정…….’

기저질환이 있건 없건 간에, 40대 남자가 흉통을 호소한다면 심근경색일 가능성은 늘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가 버리는 병이니까.

하지만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하는 병인가?

그건 또 아니었다.

"우선은 위 식도 역류증이 있습니다. 제일 흔한 병입니다."

"그래. 그렇지."

위 식도 역류라고?

가슴이 아프다는데 왜 위가 나오고 식도가 나오나 싶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식도가 어디를 지나는지 잘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식도는 우리 목구멍에서부터 위까지 도달하는 길이니만큼, 목과 가슴에 걸쳐 있지 않던가.

‘좋아.’

이태원은 고개를 끄덕이는 이현종을 보면서 한 발 더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단순 진료라고 생각했다면 가만히 있었겠지만, 진료를 가장한 면접이지 않나.

게다가 소문에 따르면 이 둘 모두 잘난 척하기를 좋아한다 했다.

아는 것이 있다면 다 쏟아 내는 사람들이란 건데…….

이런 이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똑같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넘어온 산은 상대적으로 약한 식도 점막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코 뒤에 닿아서 후비루를 일으키기도 하고, 성대 질환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일 흔한 증상은 하트 번, 즉 가슴의 작열감입니다. 종종 심장 질환과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래, 맞아. 특히 요새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 이 나이대 직장인이라면…… 뭐 100%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커피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 된 지 오래인데.

문제는 이 커피가 건강에 긍정적인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위산의 과다 분비였다.

그것은 곧 역류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건 아닐 거야. 설마 그걸 놓치진 않았겠지."

내내 고개를 끄덕이던 이현종이 돌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환자와 함께 온 의사를 돌아보았다.

그렇지? 라고 묻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어……. 딱히 검사를 한 건 아닌데.’

의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위 식도 역류인가?’

뒤를 돌아보니 환자, 그러니까 친구가 설마 하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냐, 이 새끼야.’

우습게도 그 얼굴을 보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통증 양상이 위 식도 역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방사통이 있었어요. 그리고 화끈거리는 것이 아니라, 욱신거리는 통증…….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라고 했습니다. 증상 자체는 허혈 증상과 같습니다."

네가 그랬잖아!

이렇게 아프다고!

의사는 항변하듯 이현종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면접 또는 시험 중인 것 같은데, 어쩐지 본인도 시험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그랬다.

물론 이현종은 딱히 이쪽을 공격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저 습관대로 눈을 세모나게 떴을 뿐이었다.

"그래. 두 질환은 일단 양상이 너무 달라. 게다가 위 식도 역류는…… 사실 놓친다고 해서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병은 아니지."

이현종의 말대로 위 식도 역류는 엄밀히 말해 불편한 질환이었다.

위험한 질환은 아니란 얘기였다.

오래 방치한다면야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겠지만.

일단 병원에 다니기로 한 이상 그럴 리는 없지 않겠나.

대한민국 전문의들이 자격증을 어디 야바위해서 따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심장 쪽은 놓쳐서는 안 돼. 그걸 아니까 오늘 응급실까지 온 거겠지."

"네네. 그렇습니다."

"헌데 심장 조영술……. 아니지. CT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어. 영상을 보니, 관상동맥에 좁아진 곳이 없는 것도 맞아. 그럼 뭘 의심해야 하지?"

이현종은 다시 의사가 아니라 이태원을 바라보았다.

같이 온 의사야 이걸 몰라서 온 거 아니겠나.

다시 말하면, 통합진료센터에 있을 사람이라면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야 이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해 줄 수 있을 테니.

"비, 비전형 협심증입니다."

"그래. 비전형 협심증. 또는 변이형이라고 하지."

심장 질환이 골 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딱히 관상동맥이 좁아지지도 않았는데 협심증이 오는 경우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되나?

어쩌겠나.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데.

해서 의사들은 연구를 진행한 바 있었다.

"특징은 뭐가 있지?"

처음엔 그저 전형적이지 않다 해서 비전형이라고 불렀더랬다.

하지만 연구를 하다 보니, 이 질환 또한 이 질환만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안정 시에도 아플 수 있습니다."

"또?"

"음……. 아. 수면 시에…… 새벽에 아파서 깰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바로 이 때문에 혹 비전형 협심증이 수면 무호흡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도 세워지고 있었다.

아직 이쪽으로는 입증된 것이 적지만.

하여간에 확실한 건, 새벽에 통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 저요?"

"네, 환자분. 방금 대화 들었죠?"

"아, 네"

"어때요. 그랬습니까?"

이현종은 환자에게 고대로 물었다.

환자는 어쩐지 그렇다고 해야 하나 싶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현종 정도 되는 연배의 의사에게는 그런 힘이 있지 않던가.

‘근데…… 아니었는데…….’

환자는 어렵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럼 증상이 정확히 어떻습니까?"

"그게…… 그냥 이게 대중없이 아팠다가…… 괜찮았다가……."

"새벽에는 그런 적이 없다는 거죠?"

"네."

"술 먹고 잠든 날 다음 날에는요?"

"아뇨,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환자는 이 노의사가 실망할까 봐 괜히 눈치가 보였다.

친구 반응을 보고 있자니, 소위 말하는 대가 같지 않나.

분야는 다르지만 환자 또한 전문가 집단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사람이 갖는 힘이 어떠한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랬다.

‘잉…….’

하나 이현종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었다.

‘역시 아빠는…….’

[아까 그 영상에서 본 거 같군요.]

‘되게 모호하게 찍혀 있던데…….’

[기계가 후져서 그럴 겁니다.]

‘같은 CT인데 왜 그러지?’

[같은 CT요? 가격이 몇 배는 차이 날걸요?]

그 누구도 이현종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수혁과 바루다를 제외하면 그랬다.

당연히 이태원은 영문을 몰랐다.

"비전형 같아?"

이현종은 자기 대신 실망한 이태원을 향해 물었다.

‘아니라는 거지, 지금?’

이태원은 의사이지 않나.

아니, 전문의였다.

그 말은 지금 이 자리에 설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시험을 겪어 왔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은 찍는 것도 어느 정도 잘하게 되는 법이었다.

"아니요."

"그래. 그럼 뭐 같아?"

"네?"

"뭐 같냐고."

"아니. 그……."

그렇다고 주관식 답도 맞힐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다행한 일은 이현종도 이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절대 모를 만한 질환이긴 한데.’

절대.

이현종이 ‘절대’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어려운 질환이었다.

이미 필드에 나가 수년을 구른 전문의조차 감도 못 잡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였다.

해서 이현종은 질문만 이어 나가는 대신, 영상을 띄웠다.

의사가 들고 온 영상이었다.

"이거 봐 봐. 해상도가 좀 낮은데. 아니, 이거 좋은 것 좀 쓰지."

"네? 아니, 이게. 로컬에서 이것보다 좋은 걸 어떻게……."

"그래도 그렇지. 진단할 것도 놓치겠네."

"그……."

의사는 다시금 친구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친구는 이제 이현종의 얘기에 빠져 있었다.

분명 아는 것도 없는데, 듣다 보니 뭔가 재미있어서 그랬다.

"하여간……. 이거 봐 봐."

이현종은 이태원을 잡아끌어다 모니터 앞에 앉혔다.

보라는 얘기가 없었어도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던 이태원은 곧 눈에 불을 켜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일단 관상동맥부터였다.

시작하는 부분부터 끝나는 부분까지.

‘아 씨……. 진짜 해상도가 이게 뭐야.’

이현종이 왜 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특히 중간에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혈관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하지만 잘 보면 그냥 그렇게 보일 뿐, 일종의 아티팩트 같았다.

아티팩트란 곧 오류란 말이니, 신경 쓸 거 없을 거란 얘기였다.

‘음.’

분명 예전엔 조영술 사진을 보고도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동맥 세 개가 다 막혀서 수술 들어가야 되는데, 혼자 ‘오 괜찮네’ 하고 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보면 알았다.

‘알아야 하는데…….’

영상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하여간에 좁아진 부분이 없다는 건 알겠으니까.

‘근데 그걸 기대하는 눈치가 아닌데……?’

이현종 얼굴이, 자 여기 뭔가 있다! 이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게 뭔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이태원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힌트를 얻었다.

‘저 대머리…… 눈알이……?’

안대훈에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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