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91화 (791/1,303)

791화 다음 타자? (5)

천재 이현종은 턱을 치켜들고, 마치 제갈량이라도 된 것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좀 재수 없어 보이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역시……. 이현종은 이현종이구나…….’

일단 환자를 데려왔던 의사는 이미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이현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진단명이었으니까.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공부하시는 거지……?’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할 수 없는 질환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의 병원에서 시행했던 검사만 놓고 보면 그랬다.

어떻게 봐도 아티팩트로만 보였으니.

저기서 저 방향으로 뭐가 뻗어 나간다는 건, 정말이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관상동맥-폐동맥 누공. 드문 질환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보고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질환이지. 그렇다고 몰라도 될까?"

이현종의 말을 들으면서, 안대훈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되죠……. 의사가 의심할 수 있는 질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커진다…….’

수혁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였다.

사실 수혁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대개 이현종이 말했던 것의 변주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안대훈은 수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 수혁의 가르침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희귀 질환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보고되는 것만큼 드물다고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야. 세상엔 우리가 놓치는 질환들이 너무 많거든.

그중엔 이런 말도 있었다.

‘흐…….’

꽤 오래전에 들은 말인데, 그때 어찌나 세게 무릎을 탁 쳤는지 지금도 그 근처가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얼마나 맞는 말인가.

그리고 또 얼마나 섬찟한 말인가.

드문 게 아니라, 그만큼 놓쳤을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이 환자만 봐도 그랬다.

이현종이 대놓고 여기 뭐 있다는 투로 묻지 않았다면 진단하는 데 애 꽤나 먹었을 터였다.

"관상동맥-폐동맥 누공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썰이 있어. 그중에는 폐 질환도 있지. 산소 공급이 잘 안 되면서 신생 혈관이 생성되는 과정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생긴다든지, 뭐 이런 것들 말이야. 실제로 폐 질환 병력이 있고 증상이 발생하는 환자들이 있기도 해."

면접자 이태원도 말없이 듣고 있었다.

‘요행……. 요행으로 맞혔다, 진짜.’

차이가 있다면 이현종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는 안대훈도 연신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아니었으면……. 아니, 근데 레지던트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진짜…… 여기 뭐 있긴 있다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합진료센터에 붙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이현종의 눈 또한 이채를 띄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이상을 느꼈다는 건 공부를 한다는 거지.’

안대훈이 힌트를 줬으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을 못 해서 그랬다.

‘어쩌지……. 전에 그놈도 싹수가 아주 노랗지는 않았는데.’

장종우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어째 지원하는 놈들의 열의가 다들 대단했다.

천하의 이현종이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현종은 당장 해야 할 일을 잊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여간, 치료를 해야지."

그는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벌써 수혁은 그 옆에 서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다.

"이현종 교수님이 워낙에 대가셔서요. 괜찮을 겁니다."

"네? 뭐가요……?"

한창 진단에 대해 듣고 있던 참이라 마음의 준비는커녕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도 파악을 못 한 상태인 환자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대체 이 젊은 의사는 왜 갑자기 와서 이러나 싶었다.

"환자분."

"아, 네."

이현종의 부름엔 무게가 있었다.

친구가 몇 개월을 헤매던 문제를 바로 진단해 낸 사람이지 않나.

보통 친구 사이라고 하면 무시하게 되는 게 일상이라지만, 환자 보기에 친구는 주치의로서 몸을 맡겨도 되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사는 놈이었다.

대학 병원에 남아 교수가 못 된 것도 실력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그냥 자리가 없어서였고.

그럼 이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가.

"아픈 거 이번엔 한번 참아 주셔야겠는데."

"네?"

그런 사람이 겁을 주기 시작했다.

"검사는 그래. 침습적인 검사가 저도 뭐 마음에 늘 드는 건 아닙니다. 단지 검사만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

"하지만 환자분의 경우에는 바로 치료까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거 안 하면 언제라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 라는 게 어떤……."

환자는 친구 덕에 심장 조영술이라는 게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다른 환자의 양해를 구하고 안에 들어가서 참관까지 했던 덕이었다.

친구의 의도는 야, 이거 봐라 별거 아니다.

노인들도 다 한다, 너도 해라. 할 수 있다.

뭐 이런 데 있었겠지만.

‘아 존나 무서운데…….’

허벅지 동맥을 뚫고 들어가 심장 혈관까지 기구가 들어간다는 것을 이해하니까 어쩐지 더 무서워졌다.

"죽어요."

"네?"

"죽는다고. 급사. 40대 급사 많이 하잖아요. 갑자기 간다니까?"

"어……."

그 두려움을 이현종이 못 읽어 낼 리는 없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어서 그랬다.

덕분에 설득하는 법도 익혔다.

뭐 좀 더 부드럽게 할 수도 있겠지만.

한시가 급한 것이 심장 질환인데 어느 세월에 부드럽게 대해 준단 말인가.

"이수혁 교수. 얼마 전에 실려 오신 분……. 그분도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가 그렇게 된 거지?"

"아, 네. 아내분이 CPR 훈련받고 가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날 가셨죠."

"그렇다니까."

실제로 설득이 안 돼서 죽을 뻔한 환자들도 있었다.

아니, 죽을 뻔만 하면 다행이었다.

심장은 진짜로 죽었다.

"그러니까 갑시다."

"어, 어. 침대 왜."

마침 또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던 참이기도 했다.

이렇게 젊은 환자를 고작 겁먹었다는 이유로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네도 돕게. 수혁아, 너도. 다 붙어."

"네!"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친구도 그랬다.

수혁이도 그랬고.

안대훈과 이태원도 비슷한 생각과 동시에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러붙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아, 심장."

"거봐. 아프잖아요."

"놀라게 하니까 그렇죠."

"이제 놀라도 안 아프게 해 드릴게."

"아니……."

이송 요원도 없이 환자가 누워 있던 침대는 곧 심혈관 중재시술실로 향했다.

"어떻게 오셨…… 어."

당연하지만, 병원 내 시설들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가지 못하게끔 되어 있는 곳들이 태반이었다.

"비켜! 환자 죽는다!"

"아, 네."

"저 죽어요?"

하지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심혈관 중재시술실에서 이현종이 어떤 위치에 있나.

황제?

아니, 그보다 더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여기 있는 소품 하나하나까지 이현종의 손길이 닿아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거기 속한 사람들 또한 대부분 이현종이 손수 뽑아 이 자리까지 키워 놓은 사람들이었다.

"여기……. 빈방 있습니다!"

"아직 사람 있잖아요!"

"비우면 되죠."

"아니, 이 사람들이……. 나 동의서도 안 썼어!"

"소독하면서 받으세요!"

"당신은 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현종이 손수 뽑아 키웠다는 데 있었다.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모든 인력이 이현종화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뭔…….’

환자는 이제 시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어?"

"아, 바지 내렸어요."

"그러니까, 이걸 왜."

"일어나진 마시고. 설명 들어요, 설명."

바지가 벗겨진 채였다.

"어, 차거!"

"소독 소독. 급해요. 심장 아프단 사람 맞아요? 왜 이렇게 쌩쌩해?"

"쌩쌩해서 서운하신 거 같은데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어어 하다 보니 바지에 갈색 소독약, 그러니까 베타딘이 치덕치덕 들러붙었다.

뭐라고 할 새는 없었다.

"환자분. 이제부터 심혈관 중재술을 할 겁니다. 일단 허벅 동맥을 찌르고 카테터를 넣을 거예요."

"원래 이렇게 누워서 들어요?"

"보통은 못 듣죠."

"어……."

"심근경색으로 왔는데 뭘 들어요. 사정이 훨씬 나은 겁니다."

"그, 그런가."

수혁이 코앞에 동의서를 들이밀고는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어서 그랬다.

사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다.

친구에게 하도 들어서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동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일까?

그냥 이렇게 넘어가기엔 어쩐지 커다란 차이 같기는 한데 정신을 차려 보니 사인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죽어요.

자꾸 이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분명 의사니까 좋은 뜻으로 한 말이기는 할 텐데.

협박처럼 들렸다.

‘협박 맞지? 이 새끼들?"

아니, 협박 맞는 거 같았다.

‘어……. 왜 눈이.’

뭐라 하려고 했으나, 이젠 늦었다.

무언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 묵직한 모니터가 그 너머에 있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잘 자요."

"응?"

마지막으로 들려온 것은 ‘잘 자’라는 인사였다.

뭔 소리야 하고 있으려니 수액 라인이 꽂혀 있던 팔뚝 부근이 시원해졌다.

물이 뿌려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자?"

"네."

"겁이 진짜 많네."

"겁이 날 만도 하죠. 심장인데요?"

"안 하면 죽는데 극복해야지. 하여간."

이현종은 그렇게 잠이 든 환자를 내려다보면서 주섬주섬 카테터를 집어 들었다.

폭.

허벅 동맥을 찌르고 심혈관으로 향했다.

"자, 여기 보면……. 영상에서 희뿌옇게 부르던 부분이야. 여기 혈관 보여? 이게 이제…… 저기로 가는 거지. 폐동맥으로."

"아, 그렇네요."

"와, 진짜."

"진짜지 그럼 가짜냐?"

이현종은 이상한 소리 하는 이태원을 뒤로하고, 폐동맥까지 이어지는 혈관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이것이 누공이었다.

지금도 피가 소량이긴 해도 돌고 있었다.

"이런 게 있으면 심장으로 가는 피가 확 줄어 버릴 때가 있을 수밖에 없지. 코일 줘 봐."

"아, 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막는다."

막으면 될 일이었다.

심혈관에서 뭘 막는다는 게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현종은 그야말로 숨 쉬듯 코일링을 진행했다.

어느덧 혈관이 툭 하고 막혔다.

"좋아. 이제 끝."

"끝이요?"

제일 놀란 것은 로컬 원장이었다.

이게 쉬울 리가 없는데.

이렇게 끝날 리가 없는데.

뭐 이런 생각만 들었다.

"왜, 뭐. 친구 죽었으면 해?"

"아니, 아뇨! 그럴 리가 있나요."

"근데 뭘 그리 아쉬워해?"

"그냥 이게 너무…… 후라닥닥 되는 느낌이라……."

"질질 끌어 좋을 게 뭐 있나. 가뜩이나 겁도 많은 양반인데. 하여간 오늘 하루 입원해서 보시라고 하고……. 이따 회진 때나 보지. 이태원 선생은 돌림판 다시 돌려 봐. 아직 시간 얼마 지나지도 않았네."

와…….

‘진짜 미쳤네…….’

이태원은 그런 이현종이 너무 되고 싶었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완벽을 넘어 예술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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