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화 김인수 (1)
[님들 통합진료센터 진짜 미쳤네요.]
이태원은 돌아가는 길에 벅찬 가슴을 안고 톡을 올렸다.
원래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려고 했다.
근데 그럴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무슨 일 있었어요?]
[악마들이긴 하다던데.]
[악마는 무슨……. 진짜 천재예요. 거기 들어가면 진짜 실력 많이 늘 듯.]
[오, 이런 뜻이었구나.]
이현종의 진단과 치료만 해도 정말 두근두근거려 올 지경이었다.
세상에 코일링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때부터 이미 지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한데 그 후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수혁 교수님……. 진짜 천재이시네요.]
처음엔 무슨 접신이라도 한 줄 알았다.
지나다 갑자기 잠깐만 하더니 환자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가서는 환자분, 여기 아프죠? 라고 할 때는 여기가 병원인지 점집인지 헷갈렸다.
차이가 있다면 무당은 자꾸 반말을 한다면 이쪽은 존댓말을 한다는 것 정도?
‘아, 아니지. 무당은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가 없지. 근데 이쪽은…….’
이쪽은 백발백중이었다.
[진짜 진단 귀신이에요. 와…….]
이태원은 태어나 오늘처럼 설렜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의대에 붙었을 때도, 졸업했을 때도, 내과에 붙었을 때도, 전문의가 됐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
그냥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어 왔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다.
그리고 오늘 하늘 위의 하늘을 봤다.
심지어 그 존재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했다.
[면접은 잘 보셨어요?]
단톡방은 한동안 북적이더니 이 질문을 끝으로 탁 정전이었다.
‘이 새끼들…….’
하여간 의사 놈들.
뼛속까지 어? 경쟁의식으로 가득 차 가지고.
언제나 누굴 이겨야 뭐라도 쟁취할 수 있다는 식의 생을 살아와서 그런가. 정보를 주고 있는 데도 날 선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태원은 자신도 장종우에게 그랬었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분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너 꽤 재능있네.
이현종이 했던 칭찬 때문이었다.
듣기로 이현종만큼 칭찬에 인색한 사람도 없다지 않나.
단순히 성질이 지랄 같아서 그런가 했는데 오늘 봤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태원이라도 저렇게 똑똑하면 어지간한 놈은 눈에 안 찰 것 같았다.
천재.
천재란 무엇인지 표본이 되어 주는 사람이었다.
-괜찮았어요, 오늘.
수혁도 그랬다.
‘이수혁 교수님…….’
아니, 이쪽이야말로 천재였다.
통통 튀는 재기발랄함은 이현종을 압도했으니.
경륜이라면야 당연히 밀리겠지만.
[그냥……. 나쁘게 보진 않은 거 같아요.]
그런 둘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나 아니면 대체 누가 붙겠나.
마음 같아서는 새끼들아, 니네는 안 봐도 된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태원도 어쩔 수 없는 의사였다.
머리에서 자동으로 필터를 걸러 이렇게 말했다.
하나 틀려 놓고, 아 시험 망했다고 하던 혐성이 여기서도 발동했다 이 말이었다.
‘아……. 잘 봤나 본데…….’
문제가 있다면 이 방에 있는 게 죄 의사들이라는 점이었다.
의사들 특유의 화법이 이곳에서만큼은 자동 번역되고 있었다.
진주 독신자 기숙사에 홀로 누워 있던 김인수도 바로 알아들었다.
‘난 어쩌지……. 떨어지면 진짜 개망신인데?’
깜빡깜빡.
땅도 넓은데 쓸데없이 비좁게 설계된 방 현관 불이 발을 움직일 때마다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다 어지럼증 생기겠네.’
김인수는 사정이 이런데 저 등은 대체 왜 단 걸까 하는 딴생각을 잠시 하다가 문자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근데 문제 난이도는……. 진짜 미쳤어요. 처음 들어 보는 질환도 있었고…….]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 두 귀신이 어지간한 케이스 가지고 문제 낼 턱이 없지 않겠나.
이현종도 그렇지만, 수혁은 더더욱 그럴 만한 사람이었다.
‘내가 한때 걔 선배였다는 게 진짜……. 이런 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아래 연차이기는 했는데, 한 번도 아래 연차로 여겨졌던 적이 없었다.
뭘 시킨 적도 없었다.
단지 원장 아들이라는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 시켜도 해 놓지 않았나.
그것도 치프의 명보다 더 세심하게.
처음엔 그게 대단하다 싶었는데, 나중엔 그냥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의 수행 능력을 보였다.
‘난 내일……. 일단 나갈까.’
진주에서 서울까지 버스 타면 걸리는 시간 약 4시간 반.
가뜩이나 쉽지 않을 텐데 바짝 지쳐 있어서야 뭐가 되겠나.
아직도 본인이 내정자라는 걸 모르고 있는 김인수는 긴장한 얼굴로 숙소를 나섰다.
"어, 인수야. 면접 보러 가냐?"
같이 3년을 보냈던 군의관 친구가 인사를 건네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오늘도 게임 하면서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의사 인생에 쉴 수 있는 시간이 딱 이 군의관 3년뿐인데 뭐 그리 고생하냐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시벌……. 난 왜……. 교수가 하고 싶은 걸까.’
다 때려치우고 마냥 놀고 싶었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특히 수혁을 보고 온 다음 날은 정말이지 참기 어려웠더랬다.
교수는 그런 놈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군의관님, 덕분에……. 저 무사히 수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받는 인사들이 그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분명 로컬에서도 이런 인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처럼 오롯이 진료에만 집중할 때와는 다를 터였다.
돈은 못 벌어도, 환자가 보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안 좋은 환자들로.
그래서 혈종을 꿈꿨고, 그러다 통합진료센터로 꿈을 바꿨다.
"어, 봐야지."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고맙다."
"빈말 아니고, 진짜. 세상에 너처럼 골프도 안 치고, 게임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군의관이 어디 있냐?"
그래, 저런 말도 용기를 주었다.
확실히 노력은 해 왔다.
그 노력이 결실도 맺어 줄는지는 의문이기는 한데…….
"음."
김인수는 곧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슬쩍 폰을 내려다보니 여전히 단톡방은 시끄러웠다.
[그래서 이현종 교수님이 코일링을 그 자리에서 하는데……. 와 진짜 이래서 내과 의사 했지! 싶더라고요.]
뽕이 어지간히 찬 모양이었다.
‘하긴.’
그 둘 곁에 있으면 꿈을 꾸게 되는 법이었다.
닿을 수 없는 목표라는 건 알지만, 그 언저리에라도 닿게 되면 뭔가 대단해질 것 같은.
아니, 그들의 여정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의사 일생에 보람이 있겠다 싶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다른 곳에 갔다면 죽었을 환자들이 살아나는 경험을 매일 할 수 있는 곳은 아마 그곳뿐일 테니.
‘긴장하자……. 김인수.’
김인수가 창문에 머리를 찧으며 심기일전하고 있을 때쯤, 수혁은 이현종과 피자를 먹고 있었다.
안대훈도 그랬다.
"내일은 좀 쉬어 가는 날이네."
수혁은 피자를 우적우적 씹다가 말했다.
[맛을 좀 음미하면 안 됩니까?]
‘충분히 느껴지지 않니?’
[아뇨. 이게 어디 보통 피자입니까! 신현태가 직접 청담까지 가서 공수해 온 피자 아닙니까!]
‘먹고 있는데 먹고 싶다는 생각 하지 말라고…….’
식충이 바루다가 태클을 걸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리 중요한 대화 중이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나저나 이 피자 어디 거라고? 나도 시켜 먹고 싶네."
이현종이 하얀 치즈 밑에 묻어 있던 토마토소스 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신현태가, 이미 먹고 온 신현태가 버럭 했다.
"시키긴 뭘 시켜! 여기 미슐랭 맛집이라 배달 안 돼! 내가 어떻게 들고 온 건데."
"갑자기 화를 내? 너 솔직히 수혁이랑 밥 먹고 싶었는데 그게 안 돼서 그러는 거지?"
"내, 내가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는 사람인가?"
"어, 완전. 너 미친놈 다 됐어."
"형이 나한테 그런 말을……."
그러다 충격을 받고 거울을 돌아보았다.
전형적인 내과 의사 대신 약간 돈 것 같은 사내가 보이긴 했다.
"돌림판은 돌리실 거죠?"
안대훈은 먹느라 내려 둔 돌림판을 가리켰다.
김인수가 내정자라는 건 그도 익히 알고 있어서 그랬다.
‘그 선생님 정도면 최고지, 뭐…….’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윗사람으로 둬도 좋겠다 싶을 만큼.
‘어으, 어깨야…….’
다른 속셈도 있었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돌림판을 강철로 만들어서 그랬다.
거기에 이런저런 장식물까지 달아 놓으니 20kg이 넘어가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물론 수혁이 워낙 좋아하다 보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짊어질 생각이었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돌리자."
"아, 네."
하지만 수혁은 얄짤없었고, 안대훈은 남몰래 피눈물을 흘리며 피자를 씹었다.
피자는 맛있어 다행이었다.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보시겠네, 그래도. 오는 사람들 다 잔뜩 긴장하고 있으니까 내가 다 불편하던데."
"불편했어? 나는 너 즐기는 거 같던데……."
"에이, 제가 아빤가요."
"아들 같아 보이긴 해, 충분히."
"제가요?"
"어."
수혁은 내가 이현종 같다고?
뭐 이런 얼굴로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이야 말을 꺼낸 사람이니 당연히 당당해 보였다.
‘어……. 삼촌?’
[저도 동의하는데요, 뭐. 수혁은 더한 악당입니다.]
‘아니, 안대훈 너마저?’
[이건 실드가 안 되나 보네요. 안대훈이 아직 제정신이라는 반증입니다.]
허 하고 한숨을 쉬다 보니 피자 생각이 났다.
‘맛있긴 해?’
[그렇네요. 이제 이런 건 충분히 사 먹을 만큼 돈 벌지 않나요?]
‘벌지.’
[근데 왜 안 사 먹어, 이 새꺄.]
‘급발진을 하네?’
[이 피자 대신 대강 때운 식사들이 생각나니까 그렇죠.]
‘음……. 인정.’
그래, 이제 돈도 적잖이 버는데 먹는 건 좀 신경 써야지.
어차피 내일은 다들 마음 편히 보는 날이니 더 즐겨 보기로 했다.
"윙 시킬까요?"
"콜."
"맥주도?"
"당직 누구지?"
"저희는 콜당 사실 없어요. 그냥 그 시간에 봐주는 거지."
"아, 맞네. 그럼 한 잔씩만 할까."
해서 맥주까지 마신 그들은 아침 일찍 김인수를 맞이했다.
"여, 인수!"
"네, 김인수 왔습니다!"
"훈련소에서 갓 나왔나. 왜 이렇게 군인화가 되어 있어. 군의화는 안 했어?"
"오늘 최선을 다하기 위해 심기일전했습니다!"
"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반갑게 인사했던 이현종은 이 새끼 왜 이래? 하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수혁도, 안대훈도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말도 안 해 준 주제에.
"하여간 돌릴까요?"
"제가 돌려도 되겠습니까?"
"어……. 네."
김인수는 군기 빡 들어간 자세 그대로 안대훈이 둘러메고 있던 돌림판을 돌렸다.
‘어우, 이게 통합진료센터 의사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인가?’
묵직해서 놀랐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대신 절도 있게 바늘을 돌렸다.
‘응급실! 혈액종양내과! 둘 중에 하나만 걸려라!’
간절히 기도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