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화 김인수 (2)
‘얘는 왜 이렇게 간절하지? 수혁이가 말해 줬을 텐데?’
이현종은 그런 김인수를 보며 생각했다.
‘아빠가 확실하게 말해 줬을 텐데?’
수혁도 생각했다.
왜 이럴까 싶어서 그랬다.
그렇지 않나.
다분히 형식적인 시험이라 그냥 돌림판 자랑할 겸 꺼낸 건데.
"어디냐, 어디야!"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바늘을 따라 달리고 있단 말인가.
흡사 어릴 때 수건돌리기 할 때 봤던 친구 느낌마저 날 지경이었다.
"어. 어……."
이현종과 수혁은 긴장감 하나 없는 눈으로 돌림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안대훈은 언제나 진심으로 돌리기 때문에 김인수에게 질 수 없단 기세로 같이 달리고 있었다.
저런다고 원하는 곳에 바늘이 멈추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나 하는 의문은 이미 옅어진 지 오래였다.
바루다마저 분석을 포기해 버린 사내가 바로 우리 안대훈이었으니.
"이거, 여기!"
놀라운 건 그저 김인수가 안대훈과 죽이 딱딱 맞아 돌아가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그 내면을 잘 파고들어 보면, 머리 잘 돌아가라고 마신 쓰리 샷 추가한 스타벅스 커피와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에 마셔 버린 몬스터가 있었으나 그냥 보면 알 길이 없지 않나.
‘이 새끼……. 그냥 뽑은 건데……. 생각보다 엄청 잘 맞을지도……?’
이현종은 안대훈과 형제 같아 보이는 김인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괜히 치루는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최선을 다할 줄이야.
조태진이 좋게 말해 주기는 했지만, 조태진이라 오히려 반감을 사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역시 태화 녀석들은 싹수가 달랐다.
"선생님, 입김 불면 반칙입니다."
"이게 그렇게 엄격한 규칙이 있어?"
"어차피…… 쇠로 만들어서 바람 따위엔 영향을 안 받긴 하지만요."
"허……. 어쩐지 묵직하게 돌더라니……."
하여간 김인수가 입김마저 불어 재낀 덕일까?
바늘은 혈액종양내과에 머물렀다.
애초에 둘 다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안대훈과 김인수 모두 혈액종양내과 쪽에 서 있었다.
"안 그래도……. 조태진 교수님 어려워하는 거 같던데, 갈까?"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네, 교수님!"
안대훈은 그런 수혁의 뒤를 돌림판을 멘 채 따랐다.
번뜩이는 돌림판이 시선을 확 끌었다.
그제야 김인수는 살짝 부끄러워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가는 사람 모두 김인수가 뛰는 걸 봤고, 심지어 영상이 단톡방에 돌고 있었다.
"와……. 김인수 선생님 군대 가시더니 잘 뛰네."
"이렇게 보니까 안대훈이랑 엄청 닮지 않았냐?"
"어? 에이. 머리 찰랑거리시는데."
"머리를 지워 봐."
"그게 잘 안 되는데……."
"난 되는데. 지우니까 닮았어."
"헐."
물론 김인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깨를 펴고 넷이서 같이 걸을 수 있었다.
걷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안대훈이 돌림판을 메고 돌아다닌 탓에 환자나 보호자들도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아서 그랬다.
아니, 웅성거림이 있기는 했다.
"저 팀이 통합진료센터래."
"아, 진짜? 대한민국 최고의 팀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 방송에서 봤지? 하도 바빠서 인터뷰도 거의 못 따고 자료 화면으로 대체하던데."
"근데 그 자료 화면 지리더라. 누가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찍는 거 같어."
"그러니까. 하여간……. 범상치 않다, 그치?"
"어. 나도 의사 했으면 저기 들어가고 싶었을 듯."
방향이 엇나가 있어서 그렇지.
‘음……. 그래, 자꾸 보니까 멋지기도 하고? 약간 우리 부대 사령관님 오실 때 이렇게 하지 않았나?’
김인수 또한 군대에 있다 보니 감각이 이상해져서 자연스레 뿌듯해하고 있었다.
띵.
어쩐지 넷이 타니까 의사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도망치듯 내리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무척 서두르는 느낌도 들었고.
하지만 김인수에게는 딱히 감흥을 주진 못했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시험뿐이었으니까.
"어……?"
그렇게 혈액종양내과 병동에 가자 조태진이 보였다.
"야, 인수야!"
조태진은 김인수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원래 김인수와 조태진은 사이가 무척 껄끄러워야 정상이었다.
혈종 하겠다고 내내 떠들어 대다가 갑자기 센터로 틀었으니까.
하지만 조태진은 언제부터인가 과의 미래보다는 수혁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여기는 웬……. 아. 여기야? 여기가 시험장?"
조태진은 김인수가 민망해서 왔나 하다가 번쩍이는 돌림판과 머리통을 확인하고는 무슨 일인지 즉시 알아차렸다.
"네, 교수님."
"그, 그래. 대훈아. 수혁이는?"
"이현종 교수님하고 잠시 화장실요."
"아, 그래. 음. 케이스 찾아온 거지?"
"네, 교수님."
조태진은 안대훈의 말에 흐음 소리를 냈다.
약간 미안하단 얼굴이었다.
‘지금 어려운 케이스가 없는데…….’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싹 다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병동들처럼 정리가 완치를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긴 했지만.
‘뭐……. 혈종에 나만 있는 건 아니지.’
해서 조태진은 다른 교수들 환자를 쭉 띄워 보았다.
"어우."
길게 늘어지는 환자 명단을 보고 있자니, 잠시 현기증이 돌았다.
잠시 잊고 있지 않았나.
태화 의료원이 얼마나 거대한 병원인지를.
혈종 교수만 여럿이었다.
아니, 많았다.
"여긴 있겠지?"
"아……. 교수님 환자들은 다 괜찮으시군요?"
"어. 뭐……. 그렇지?"
"잘된 일이죠."
"어, 응."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워하는 얼굴인데.
조태진은 그런 얼굴로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원래 윗사람들보다 아랫사람들이 더 난리라더니.
이놈이 딱 그 짝이었다.
"어, 수혁아."
"오, 형. 계셨네요?"
"나야 여기가 우리 병동이니까. 외래, 연구 아니면 여기 있지."
다시 말하면 있을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뜻인데, 하여간 조태진은 오늘 연구는 제낄 생각이었다.
회진도 다 돌았겠다.
어떤 식으로 면접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하지 않나.
‘게다가 우리 인수……. 잘하는지도 좀.’
혈종에 오면 딱인 인재라고 여겼더랬다.
성실하기도 하고 신중하기도 하고.
또 환자들과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안대훈이나 수혁하고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의지가 된다고 해야 할까?
"아, 그렇다고. 음……. 그럼 일단 무턱대고 돌아볼까요?"
"그럴까? 아들?"
하여간 수혁과 이현종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정말로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나머지 셋, 그러니까 엉겁결에 끼어든 조태진까지 해서 셋은 그 뒤를 따랐다.
환자를 보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개입할 여지가 있겠지만, 환자를 고르는 건 오로지 이 둘에게 달려 있어서 그랬다.
"흐음……."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역시 수혁이었다.
딱히 실력이 이현종보다 훨씬 월등하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어떠냐?’
[본인이 살피는 것처럼 연기해 놓고……. 바로 물어봐요?]
‘뭐 안 알려 줄 거야?’
[아뇨, 알려 주긴 해야지. 대신 오늘 한우?]
‘어차피 먹으러 갈걸? 김인수 샘도 왔는데.’
[아, 그럼 뭐…….]
바루다가 있어서 그랬다.
식충이이다 보니 먹을 거로 꼬시면 상황이 별로여도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저기.]
‘저기?’
[네, 저기.]
바루다는 수혁의 후각, 시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병동을 살피고 있었다.
‘고형암……. 병동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혈액암 병동은 빠져나온 후였다.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온통 환자에 빠져 있다 보니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혁아, 여기냐?"
"네?"
"여기지?"
"그……."
뒤를 돌아보니 다들 따라오고 있었다.
여기 뭐라도 없으면 좀 곤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나.
다들 자기만 보고 따라오고 있는데.
‘뭐 있어?’
[아뇨? 저기 없어서 온 건데요?]
‘이 새끼…….’
[그래도 한우 콜?]
‘지금 분위기면 돼지도 감지덕지인데?’
[안 되지, 그건.]
그나마 의지가 되는 건.
먹을 거에 진심이 된 바루다는 꽤나 유능하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수혁은 유능한 연기자다 보니 아주 자연스레 고형암 병동 컴퓨터 앞에 털썩 앉았다.
"슥 보니 혈액암 병동은 뭐가 없는 거 같아서요."
[솔직히 말하면 혈액암 교수 조태진뿐이라고 잠시 착각한 건데.]
"워낙 훌륭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조태진 말고 나이 좀 많으신 분은 옛날 프로토콜 쓰다가 회의 때 뒤지게 혼난 적도 있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환자 수가 많고, 최근 넘어온 환자도 많은 이쪽 병동에 있을 거 같아서 왔습니다."
[진짜 이건 타고났네. 얼굴 하나 안 흔들리는 거 보소.]
아주 그럴싸한 말을 하면서였다.
물론 수혁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 또한 우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는 그냥 그런갑다 하면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수혁이나 이현종이 뭐라도 찾겠지 하는 얼굴로였다.
‘빨리, 빨리.’
[초조한 거 티 내진 말고요.]
‘여기 아무것도 없으면 좀 그래.’
드르륵.
수혁은 급하게 환자 명단을 뒤졌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는 아니었다.
태화 의료원 수준을 고려했을 때, 입원한 지 얼마 이상 된 경우라면 딱히 뭐 할 게 없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아무리 수혁이나 이현종의 실력이 압도적이라 해도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에 있어 차이가 날 수 있는 건 불과 며칠 정도였다.
‘이 환자……. 어제 입원했네.’
[내원 1주일 전부터 시작된 왼쪽 옆구리 통증이 주소군요.]
1주일 전부터 시작된 증상으로 입원했다.
그것도 어제.
이 환자라면 뭐가 있지 않을까?
수혁은 홀린 듯 클릭해서 딱 치고 환자 기록에 들어갔다.
‘여자 50세……. 1주일 전부터 시작된 왼쪽 옆구리 불편감. 통증은 아니네? 안검 부종도 있고…….’
[이미 로컬 병원에서 CT를 찍었군요.]
‘열어 보자.’
[네.]
수혁이 그러고 있으니까 이현종도 하던 일을 멈추고 뒤로 따라붙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신장암 아닌가?’
조태진도, 이현종도 다른 모두도 이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서 보니 좌측 신장의 수신증과 함께 신장 내에 저밀도 신호를 보이는 종양이 보여서 그랬다.
환자 나이도 중년.
여기서 암 말고 다른 걸 떠올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상황이었다.
‘그래도 수혁이잖아.’
‘얘라면……. 뭔가 다른 걸…….’
허나 수혁이 지금껏 쌓아 온 명성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특히 태화 의료원 내부, 그중에서도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의 명성은 미친 수준이었다.
해서 모두 입을 다물고 수혁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수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장암인데……?’
[아니, 잠깐만. 더 봐 봐요. 주된 호소 증상 기간이 너무 짧잖아.]
‘반말을 해?’
[나도 마음이 급해. 아닐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