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94화 (794/1,303)

794화 김인수 (3)

‘이 새끼……?’

아닐 수도 있다?

이게 지금 사람 줄줄 끌고 다니다가 할 말인가?

수혁이 어이가 없어서 끼릭거리고 있는 동안 바루다는 머리를 맹렬히 굴렸다.

그래 봐야 수혁 머리를 굴리는 거다 보니, 화도 좀 가라앉았다.

화내는 데 써야 할 머리까지 죄다 끌어가서 그랬다.

[일단 여기 와서 검사한 것도 봐야죠. CT만 보면 되나, 이게.]

‘음……. 그래. 그러지.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반강제적으로 침착함을 되찾게 된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쫓아 환자의 검사 결과를 찾아 들어갔다.

확실히 태화 입원 검사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그런지, 벌써 MRI, PET CT까지 다 시행되어 있었다.

아니, 너무 빨랐다.

‘응? 뭐 VIP인가? PET CT를 벌써 찍었어?’

[어……. 그렇네요. 근데 뭐 잘됐죠. 암에선 PET CT가 확실하지.]

‘눌러 보기가 겁난다…….’

눌렀는데 너무 암 같으면 어쩌나.

해서 일단 MRI부터 눌렀다.

‘음……. 아까 봤던 그거……. 여기서, T2 강조 영상에서 저강도로 보이는데……?’

[뒤로 후복만 림프절도 꽤 많네요?]

‘암이잖아?’

[이렇게만 보면 그렇죠.]

‘이거 이상 볼 수 있는 게…… 있냐?’

[음. 그 잘하시는 거 해야 할 타이밍 같은데?]

‘뭐.’

[둘러대는 거. 그런 거 천재잖아요.]

하.

수혁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어려운 케이스가 매일매일 튀어나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게다가 암 쪽은 의사들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뛰어들고 있는 분야기 때문에 실수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상하고.

‘음.’

[음.]

하여간 PET CT를 눌렀다.

어떻게 봐도 암이었다.

포도당을 어찌나 야무지게 빨아 먹고 있는지.

이게 악성 종양이 아니면 대체 무엇을 악성이라 해야 할까 고민이 될 지경이었다.

‘림프절도 엄청 많네…….’

[요약하면 다수의 림프절에 전이 소견이 있는 신장암이군요.]

‘이 새꺄……. 잔뜩 폼 잡으면서 앉았는데.’

[일단 환자를 좀 볼까요?]

‘암 맞는 거 같은데……?’

[그래도요. 어차피 환자는 좋아할걸요. 의사가 이렇게 우르르 가는데?]

‘그건…… 그건 뭐, 그렇긴 하지.’

인턴, 레지던트도 아니지 않나.

아, 안대훈은 레지던트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받아들이질 못하기 때문에 괜찮았다.

하여간 아직 밑천이 드러난 상황은 아니라, 수혁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남들에게 하여금 더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워……. 어떻게 봐도 암인데……. 설마 아닌가?’

이현종이나 김인수 등은 그나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역시…… 교주님……. 오늘은 또 어떤 이적(異跡)이 임하실까.’

안대훈과 조태진은 자꾸 저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신성한 무언가의 길로.

"계십니까."

수혁은 그렇게 뒤에 혹을 주렁주렁 매달고 병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환자가 조금 놀란 얼굴로 일행을 맞이했다.

"어, 네. 안녕하세요."

예전 같으면 수혁만 봤을 땐, 이 어린아이는 누굴까 했을 터였다.

지금이라고 해서 얼굴에서 나이가 막 드러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관록이 붙었다.

교수로 지낸 지난 몇 달간, 수혁이 저도 모르게 높은 사람이 짓는 표정을 배우게 된 덕이었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아…… 네."

게다가 직함도 먹어 주지 않나.

심지어 통합진료센터는 요새 주구장창 TV나 유튜브에서 밀어주고 있는 센터다 보니, 이렇게 자기소개까지 하고 난 후에는 대개 얼굴을 알아보기 마련이었다.

‘음…….’

[암…… 전이까지 있는 환자의 얼굴 같지는 않군요.]

그사이 수혁은 환자를 살폈다.

정확히 말하면 관찰했다.

그 결과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환자…….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한 시점하고 발병 시점이 비슷해 보이는데?’

[네. 나이가 젊기도 하긴 하지만……. 아까 봤던 그 정도 소견이 전부 암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의 수행 능력을 보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특히 살집이나 혈색 등이 만성 질환자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병이 있어 보이는데.’

[네, 혀가 마른 논처럼 갈라져 있군요.]

하여간 환자는 역시 기록만으로 보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 봐야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있지 않나.

다른 의료진들도 다 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이건 수혁도 바루다가 없이는 불가한 일이다 보니, 기대하는 건 과욕이었다.

"환자분, 죄송하지만…… 잠시 혀 좀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어…… 네?"

"혀요."

"어, 네."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은 천금과도 같은 무게를 지니지 않는가.

사회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된 바 있는 일인데, 병원에서 의사가 아무리 비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는 일을 시켜도 대부분의 환자는 일단 한다는 것이었다.

혀 내미는 거야 별것도 아니었다.

‘역시…….’

[확실히 이쪽 계통으로 병이 있어 보입니다.]

‘갱년기로 인한 증상이라기엔…… 너무 심해 보이지?’

[네. 그리고 눈도 보십쇼. 자세히 보니 충혈되어 있고, 또 건조해 보입니다. 눈 주변으로 짓무른 흔적도 있고요.]

‘아……. 그렇네. 좋아.’

수혁만 혀에서 이상 소견을 뽑아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현종과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둘도 통합진료센터의 일원 아닌가.

그간 수혁의 진료를 수없이 봐 온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그 결과 딱 보고 이상을 잡아내지 못한 상황이라 해도, 수혁의 반응에서 힌트를 얻어 낼 수 있었다.

‘건조하다……. 이거 진짜 암이 아닌 거야?’

암 환자에서도 건조해질 수는 있었다.

기본적으로 진행 암은 식욕을 망가뜨리고 또 탈수 증세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환자의 안색을 보면, 이 환자를 진행 암이라고 하는 건 좀 어려운 일이었다.

"환자분, 인공 눈물 쓰세요?"

"네? 어? 어떻게……."

입 마름 증세는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증세지만, 동시에 으레 그럴 수 있다는 말로 무시되기도 하는 증세였다.

중년 여성에서 입 마름이란 호르몬 분비의 저하와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증상이라서 그랬다.

다들 그래요.

그냥 참다 보면, 좋아져요.

이따위 말을 주변에서 또 병원에서도 듣다 보면 불편한데, 불편하다고 하면 유별나단 소리를 들을까 봐 넘어가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안구 건조는 그것과는 또 좀 궤를 달리하는 면이 있었다.

"안구 건조증, 진단받은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것 또한 나이 듦과 연관이 있긴 했지만, 그냥 그런갑다 하기엔 너무 불편해서 그랬다.

"어……. 한 3년 정도요?"

"증상이 있던 건 얼마나 됐고요?"

"가서 들어 보니까 눈물이 많아지는 게 증상 시작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제가 갱년기가 있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흐음…….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안 선…… 오."

아마 제대로 검사를 시행하진 않았을 터였다.

안구 건조증이라 해도 신경 써서 봤다면 구강 건조증과 반드시 연결되었을 테니.

해서 뭔가 해 보려고 했는데, 눈치 빠른 안대훈이 벌써 리트머스지를 들고 온 참이었다.

"헉, 헉. 여기……."

"너 그거 짊어지고 뛴 거야?"

"네, 놓으면…… 놓으면 훔쳐 갈까 봐요."

"하긴 그게 좀 이쁘긴 해?"

"네, 네."

"아무튼, 잘했어."

"네!"

해서 수혁은 칭찬을 건넨 후, 리트머스지로 눈물이 흘러나오는 양을 계산해 보았다.

"살짝 불편합니다."

"네……."

그 결과는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볼 만큼이나 자명했다.

환자의 안구 건조증은 단순한 건조증이 아니었다.

눈물샘이 말라 가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극명하게 말라 버리려면 공격 체계가 필요했다.

"자가면역질환…… 검사해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네? 뭔…… 질환이요?"

수혁의 말에 환자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암 병동에 입원한 것도 무서워 죽겠는데,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의사가 어쩐지 미안한 눈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하지 않았나.

얘기는 조직 검사 후에 해 주겠다고 했지만, 속으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아, 나는 암 환자구나.

‘근데 또 뭐? 또 뭐가 있다고?’

어떻게 사나.

이렇게 죽는 건가.

아직 애들 대학도 안 갔는데.

메마른 눈물샘에서조차 눈물이 한두 방울 맺혀 왔다.

"아,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이게 다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 여기도 암이에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하여간 잠시만 계셔 보세요."

"아이고……. 나 어떡해……."

수혁은 잠시 당황했으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기분을 역전시켜 줄 수 있을 거란 계산에 후다닥 병실을 빠져나왔다.

"저, 환자분. 교수님이 저러시는 거 보면……. 아마 아예 다른 질환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일단은 계셔 보세요."

나머지는 그런 수혁을 따랐다.

딱 한 명, 김인수를 제외하고서였다.

군의관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에게 존경받는 의사가 된 그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눈물 흘리는 환자를, 제아무리 치료가 급하다고는 해도 그냥 두고 떠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얘기였다.

‘그래……. 네가 가면…… 통합진료센터에서 부족한 면을 채워 줄 수 있을 거 같다.’

조태진은 그런 김인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이현종, 수혁 그리고 안대훈을 좋아하지만.

저렇게만 있으면 살짝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서 그랬다.

"김인수 선생님."

그렇게 위로를 마치고 돌아간 김인수는 수혁을 마주해야만 했다.

어쩐지 아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시험이구나.’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존대를 해 주고 있고, 실제로 수혁 윗사람으로 지낸 적도 있긴 했지만.

수혁이 지니고 있는 명성과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여러 모습 때문에 대하기가 어려웠다.

"네, 네."

저도 모르게 극존대가 나갈 지경이었다.

수혁은 그러지 말라고 하려다가, 어차피 들어오면 나는 교수고 넌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센터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위계를 세워야 한다는 이현종의 말이 있기도 했고.

"50세 여자 환자가 좌측 옆구리 통증을 주소로 왔습니다. 1주일이 되었고, 증상 양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걸 의심해야 할까요?"

그저 질문을 이어 나갔다.

김인수는 차분히, 넘치는 카페인의 힘을 빌려 답변했다.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신우신염 등의 요로 감염입니다."

"네, 그렇죠."

여성에서 남성보다 요로감염 유병률이 높지 않나.

게다가 1주일이란 기간은 급성 질환을 뜻하는 법이었다.

"어떤 검사를 해 보실 건가요?"

"우선 혈액, 소변 검사하고……. 할 수 있으면 초음파를 합니다."

"네, 좋습니다. 혈액 검사에서는 CRP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고, 소변 검사는 딱히 염증 소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음파에서 수신증이 보였으나, 덩이도 같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럼 뭘 의심해야 할까요?"

"음. 역시 암을……?"

그러나 질문이 이어질수록 김인수의 머릿속에는 암만 떠올랐다.

실제 이 환자를 기반으로 한 질문이라서 그랬다.

‘아닌 거 같은데…….’

하지만 수혁의 표정이 묘해서 쉬이 답하기가 어려웠다.

‘수혁아……. 내가 너한테 사 준 치킨이…… 30마리는 된다…….’

이렇게 된 거 인정에 호소할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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