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95화 (795/1,303)

795화 김인수 (4)

[치킨 30마리는 사 줬죠, 아마?]

‘갑자기 뭔 개소리야.’

[아니,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김인수 얼굴 보고 있으니까 치킨 생각이 나네요.]

‘뭐……. 틀린 소리는 아니긴 해.’

그래.

수혁은 김인수에게 치킨을 무지막지하게 얻어먹었다.

수혁이 1년 차일 때 김인수가 3년 차였고, 고작해야 1년 만에 그만한 양을 얻어먹었다는 것이었으니 어마어마하단 말을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좋은 사람이네, 김인수 선배…….’

[은인이죠.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치킨 하나에 너무 평가가 막 휙휙 변하는 건 아닐까?’

[그깟 치킨 하나? 염지해서 노란 기름에 갓 튀어나온 후 붉은 양념으로 무친 치킨을 ‘하나’라고 폄훼합니까?]

‘그깟이라고는 안 했어……. 그리고 눈이…… 너 눈이 좀 돌아간다…….’

[잘하라고요, 그러니까. 치킨 사 주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입니다.]

‘그, 뭐. 알았어.’

수혁은 얼떨떨한 얼굴로 김인수를 돌아보았다.

김인수는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암……. 치킨 30마리…….’

아직 단서가 너무 부족해서 그랬다.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그랬다.

다행한 것은 수혁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암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의심하고 매달린다면, 그게 오히려 더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란 모름지기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한 것을 먼저 배제해야 하는 법이니.

“암. 네. 그걸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확실히 초음파상 이런 식의 종괴가 보인다면……. 게다가 해당 신장에 수신증까지 있다면 암을 의심해야 하죠. 저라도 그럴 겁니다.”

“오.”

“오?”

“아니, 뭐……. 네. 그렇죠.”

김인수는 치킨 30마리가 설마 텔레파시를 통해 전달이 됐나 싶었다.

살짝 오해이긴 한데, 김인수는 김진용이 수혁에게 어떻게 털렸는지 전해 들어서 수혁이 얄짤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다.

싸가지없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아니라면 윗사람이었건 뭐가 되었건 깔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진짜 아주 그냥 가루가 됐더만…….’

뭐, 김인수도 김진용이 까인 것에 대해서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래 동기라서 더 잘아서 그랬다.

그놈은 인간이 덜된 놈이었다.

보통 레지던트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군의관 때마저 개차반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슬쩍 연락을 줄이기까지 했다.

‘무섭다……. 수혁아……. 나는 무서워…….’

그놈이 나쁜 놈인 것과 수혁이 무서운 사람인 것은 별개이지 않겠나.

그 김진용이 한동안 풀이 팍 죽어서 다녔다는 걸 듣고는 괜히 김인수도 오금이 저렸더랬다.

하필이면 같은 날 환자를 데리고 갔었으니.

“자, 그럼. 암이 의심됩니다. 어떤 검사를 하실 건가요.”

김인수가 과거를 떠올리며 떨고 있을 때, 수혁이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반짝이는 눈동자가 김인수를 마주하고 있었다.

“음.”

그 눈을 김인수도 하고 싶었다.

저 티 없이 맑은 눈이 너무도 부럽지 않나.

내재한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

그러자면 실력을 키워야 했고, 실력을 키우려면 여기에 들어와야 했다.

‘돌아라, 머리 머리!’

김인수는 그간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과 보아 온 여러 환자들을 떠올렸다.

소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충실한 시간이었으니까.

심지어 군의관이 되고 나서도 김인수는 열심히 살았다.

그가 진단한 암 환자만 벌써 몇이던가.

그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진단이 안 되었을 테니, 그 숫자 고대로 김인수가 살린 목숨 수라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일단…… CT와 MRI, PET CT를 찍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헌데 잠시만…… 환자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환자……요?”

“네, 환자. 우리는 데이터를 보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까도 보셨다시피, 이 환자는 여기 입원한 사람이에요.”

“그…… 네.”

무슨 소린가 싶었다.

환자가 사람인 거야 당연한 소리 아닌가?

김인수는 어리둥절했다.

하나 뒤에 서 있던 이현종과 조태진, 거기에 더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인수보다 더 어리고 경력도 적은 안대훈은 슬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 현대 의학에서 종종 사람이 배제되곤 하지.’

그중에서도 이현종은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와 조태진 사이의 간극은 기껏해야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현대 의학은 너무도 빨리 발전해 버려서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그중 제일 극명한 것이 바로 검사였다.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특성을 찾아가야 되는데 말이야……. 떼잉.’

‘요즘 것들’이라는 말과 ‘라떼는’이라는 말은 하면 안 된다던데.

신현태가 이현종에게 맨날 하는 소리가 그거 아닌가.

하지만 하는 것 보면 도저히 입에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보신 환자. 그 환자의 전신 상태는 어땠어요?”

“어…….”

전신 상태라.

차트에 분명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목록이었다.

동시에 그냥 여상하게 넘어가는 목록이기도 했고.

수혁이 물어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았다.

“전신 상태가 어땠어요?”

“그……그렇게 아파 보이진 않았습니다. 어?”

물어보길래 생각해 봤더니 좀 이상했다.

암 환자, 그것도 전이가 사방에 있는 환자가 너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나.

물론 암은 어느 임계점을 넘기 전까지는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기는 했다.

하나 환자는 분명 통증 또는 불편감을 호소했던 상황이었다.

‘통증이 있다는 건…… 그 주변부 조직을 파괴하고 있다는 건데……. 그만큼 진행한 암을 지닌 환자가…….’

어라 싶었다.

수혁은 그런 김인수의 얼굴을 확인한 채 물었다.

“환자를 검진한 결과, 입 마름 증세가 수년간 지속되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선배도 보셨죠?”

“아, 네. 봤습니다. 혀가……. 그리고 눈물도.”

“뭘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쇼그렌……. 쇼그렌 증후군입니다.”

“네, 그래요. 쇼그렌.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죠. 이 환자는 기저 질환이 없다고 보고했지만, 알고 보니 자가면역질환이 있었습니다. 그걸 일단 전제에 깔죠.”

“네.”

김인수는 수혁의 말을 들으며, 그의 말을 정말로 따르려고 애썼다.

다시 말해 쇼그렌이라 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있다는 걸 전제에 깔았다.

그런다고 뭐가 막 달라지지는 않았다.

암과 자가면역질환.

깜깜이로 보이진 않았다.

암에 면역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요새 암 의학에 있어 완전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니까.

‘그런데…… 음. 더 잘 걸릴 수 있으려나? 그 생각 말고는……. 이게…….’

분명 뭐가 있기는 할 터였다.

수혁이 아무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나올 이유는 없으니까.

이 녀석은, 1년 차 때 이미 3년 차였던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린 천재 아니었나.

“그걸 전제에 깔고 CT를 볼게요.”

“아, 네.”

수혁이 CT를 띄우자, 뒤에 있던 이들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수혁이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뭔가 있겠구나 싶을 뿐이었다.

“자, 여기 보세요.”

“음.”

해서 열심히 봤다.

특히 면접자인 김인수는 뚫어져라 봤다.

눈도 깜빡이지 않아서 안구 건조감이 확 올라올 지경이었다.

나 혹시 쇼그렌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여기를 잘 보세요.”

“음.”

보라는 데를 봤다.

‘암……이지 않아?’

아무리 봐도 암처럼만 보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가면역질환이 있다는 걸 전제에 까세요.”

“음…….”

전제에 깐다는 게 뭔 소릴까.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못 들어오겠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수혁의 목소리며 표정이며 말투까지 모두 너무 친절해서 그랬다.

시벌…….

이렇게 다 떠먹여 주는데 나란 새끼는 왜…….

“잘 보면 이 덩이 말이에요. 피질에 있죠?”

“어, 네. 피질에 있습니다.”

그러다 뭔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가 나와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아니면 아는 얘기가 더 안 나올 것 같아서였다.

“결절성 피질 병변이죠.”

“아, 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잘 보면…… 조영 증강 이미지에서…… 초기 이미지를 보면 강도가 엄청 약하죠.”

“아, 네.”

“후기로 넘어가면 강도는 올라가는데, 보이세요? 이미지 해상도가 좀 덜 뚜렷해 보이지 않습니까?”

“어……. 네.”

듣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신장암은 이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그랬다.

특히 조영 증강 후기 페이즈에서는 완전히 뚜렷해야 정상이었다.

이건 그렇지 않았다.

그래 봐야 그리 중요한 소견은 아니었지만.

“MRI에서도 조영제 페이즈에 따라 CT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T2에서 저강도를 보이죠. 이것만 뚝 떼어 놓고 보면 신장암과 같은 소견입니다만……. 조영제 페이즈에 따라 강도와 해상도가 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소견이죠.”

“음…….”

그렇구나 싶었다.

김인수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영상 의학까지 막 다 들이파지는 못했다.

이쪽은 또 이쪽대로 범위가 워낙에 광범위해서 그랬다.

전문의 시험 볼 때 내과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라고들 하지 않나.

이 둘을 빼고 전문의 시험이 힘들다고 하면, 특히 이비인후과 같은 애들이 깝치면 대가리 부숴도 무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아까 전제로 깔았던 자가 면역 질환을 들고 와 봅시다.”

“어, 네.”

못 들고 오겠는데…….

뭐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분위기를 살폈다.

‘나만 모르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현종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조태진과 안대훈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는데 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류머티즘 질환이 있는 경우, 이런 병변이 나타날 수 있는 질환 중에 IgG4-RD이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면역글로불린 G4 관련 질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

“생소할 수도 있어요. 드문 질환이긴 하니까. 그중에서도 신장에 이런 식으로 침윤하는 경우는 더 드물고요. 하지만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아……. 그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혈청 검사에서 IgG4가 증가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있을 겁니다.”

“아…….”

수혁은 후후 웃고는, 병동 간호사를 불렀다.

“여기 주치의 선생님한테 제가 낸 처방 확인하라고 해 주시고요, 확인 전에 검사는 그냥 해 주세요.”

“아, 네.”

간호사는 수혁을 당연히 알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알았고.

‘괴짜 천재들…….’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남의 병동 와서 막 진료 본다고.

하지만 그 진료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나.

그걸 모르지 않아서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솔직히 좀 너무 어려워서, 시험 문제로는 적절하지 않았던 거 같네요. 대훈아?”

“네, 또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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