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화 김성진 (3)
“아…….”
환자는 분명 정신착란이 있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신착란은 난폭해짐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전두엽의 기능 중 상당수가 ‘억제’인데 이게 안 되기 시작하면,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약……. 맞았구나.’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억제대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쓰긴 써야죠.]
안정제.
아마 대부분 거부감을 느낄 터였다.
안정제를 내게 또는 가족에게 쓴다고 하면.
하지만 병원에서 괜히 쓰는 약이 있겠나.
‘벌써 손목이 쓸렸네.’
[다행히…… 다른 질환은 없어서 덧나진 않았군요. 하여간, 입안을 들여다보십시오. 물 수도 있으니까 빨리.]
‘오케이.’
화가 난 사람이 난동을 피우는 것과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난동을 피우는 것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분노 조절 장애라고 떠드는 사람치고 상대적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은 또 없지 않던가.
말 그대로 난동을 피울 때조차 자신이 안 다치게끔 조절을 한단 얘기였다.
하나 후자는 그게 안 되었다.
정말로 크게 잘못되는 경우가 있었다.
‘음.’
[궤양이…… 혀에만 있는 게 아니로군요.]
‘그러네. 벌써 보이는 것만 세 개…….’
[영양학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겠습니다.]
‘그렇지.’
구내염이라고 부르는 증세.
즉 입안이 해지는 것은 사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정도로 흔한 증세였다.
하지만 한 번에 여러 군데가 해지는 것도 흔할까?
같은 증세라고 해도 그 위치나 빈도에 따라 해석은 달라져야 하는 법이었다.
더욱이 수혁은 환자의 전신 상태와 국소적인 증상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데 있어, 점점 도가 터 가고 있었다.
‘만성적인 영양 결핍이 있었다고 하기엔…… 환자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
[정신착란 및 마비 증세가 발생하면서, 급성 악화가 있었을 것을 감안하면……. 아마 원래는 더 체격이 좋았을 겁니다.]
‘그렇지.’
체격이 좋다고 해서 입병이 없었을 거라 단언하는 건 좀 섣부른 판단이기는 했다.
누군가는 나 진짜 몸 좋은데 입은 자주 해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나 의학은 기본적으로 통계에 기반한 학문이었다.
뭐든 흔한 것을 우선시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보호자분.”
“아, 네.”
“혹시 남편분이 입이 자주 허는 편이었나요?”
“네? 아…… 네. 근데 그건 꽤 오래됐어요.”
“오래……됐다?”
오래된 입병이라.
수혁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어서 그랬다.
“잠시 나머지 분들 나가 주시겠어요? 특히 면접자.”
수혁은 모로 돌아갔던 고개를 뒤로 돌려 말을 이었다.
이현종 등은 아직 이놈이 뭘 떠올렸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자자, 나가자. 나가.”
뭔가 있을 테니까.
이현종도 저럴 때가 자주 있지 않던가.
특히 심장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이현종이 수혁보다도 우위에 있어서, 남들이 볼 때는 그저 오리무중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저 눈……. 우리 이씨 일가의 눈이지.’
솔직히 말하면 한산이씨가 맞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이현종은 제멋대로 그냥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 네.”
그 말에 김성진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나.
아니, 다른 말이 떠오를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입이 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가라?’
가까이 와서 본 환자의 몰골은 그야말로 뇌종양 환자 그 자체였다.
사지가 결박되어 있었고, 불수의적인 떨림이 관찰되었다.
무엇보다 좌측은 상하지가 마비되어 잘 움직이지 못했다.
‘뭐지……?’
오리무중이었다.
“네, 아버님.”
안대훈이야 당연히 군말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절도 있게 따랐다.
문제가 있다면 단어 선택이 좀 그랬다.
“누가 네 아버님이야!”
“교수님의 아버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너랑 수혁이가 인마 아무 사이가 아닌데.”
“아무 사이가 아니라뇨. 가족인데. 가족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새끼야……. 네가 말하는 가족이랑 내가 말하는 가족이 좀 다르잖아! 넌 무섭다고, 이럴 때.”
“자중하겠습니다. 아…… 교수님.”
“그래……. 그러자고. 돌림판 잘 만들었잖아. 내가 너 책임지고 교수 만들어 준다고 했어, 안 했어.”
“했습니다.”
“그러니까 잘하자? 응?”
둘은 급발진하다가 그만큼 또 급하게 식어 도닥거리면서 복도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성진은 그만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돌림판 만들어서 교수가 된다고?’
그게 맞는 건가?
지연, 학연이 아니라 돌림판?
혹시 여긴 그가 있던 세계관이 아닌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분. 잠시 커튼 좀 쳐 주세요.”
“네네.”
그사이 수혁은 환자가 있는 자리에 커튼을 치고, 환자의 바지를 내렸다.
착란 상태에 있던 환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혁을 바라보았을 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지금……?”
보호자도 눈을 깜빡였다.
하나 수혁을 감히 제지하지는 못했다.
‘있군.’
[네. 흉터가…… 꽤 많습니다.]
수혁이 워낙에 자기 남편의 성기를 보고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수혁은 그러고 있었다.
‘입안의 구내염과 성기의 염증……. 심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증상은 있었어.’
[네, 원래 이쪽 계통 질환이 왔다 갔다 하죠. 뭐가 악화시키는지도 사실상 불명확한 부분이 있고요.]
‘그렇지. 그래.’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며, 다시 바지를 올렸다.
환자복이라는 것이 원래 벗겼다가 입혔다 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지 않나.
놀라움은 컸어도 시간 자체가 오래 걸리진 않았다.
“대강 원인을 알 거 같군요. 뇌종양도 여전히 가능성은 있지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네에……? 정말요? 그럼…….”
“근데 잠시만 조용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부탁입니다.”
“아……. 네.”
수혁은 그렇게 관찰을 끝내고 보호자를 바라보았다.
보호자로서는 영 뚱딴지같은 소리일 뿐이었다.
조용히 하라니.
시끄럽게 한 적도 없는데.
하지만 수혁의 천재성을 편린으로나마 보았고, 또 뇌종양이 아닐 수 있다는 말까지 들어서 우선 입을 다물기로 했다.
드르륵.
수혁은 그렇게 환자와 보호자를 뒤로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잠시, 영상을 다시 볼까요?”
그러곤 김성진에게 말했다.
수혁 특유의 그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 이거…….’
김성진도 이제 이 얼굴이 익숙했다.
유튜브를 봐서 그렇기도 했지만, 프락치로 의심받은 날 환자를 대체 몇이나 봤던가.
무슨 2차, 3차, 4차로 술자리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진료가 끝없이 쭉쭉 들어가는데…….
아직도 생각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드륵.
수혁은 김성진이 그러거나 말거나 영상을 띄웠다.
정확히 아까와 같은 영상이 떴다.
그러니까, MRI가 떴다.
‘뇌종양…….’
여전히 이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이 양반 생각은 다를 터였다.
해서 김성진은 수혁이 입 열기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보면 그냥 어린 친구였지만, 어찌 되었건 이 사람은 세기의 천재니까.
“보고 있어요?”
“아, 네.”
설명을 해 줄 줄 알았는데.
그냥 보고 있냐고?
어리둥절한 느낌이 일었지만, 김성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건 간에 보고 있던 건 맞으니까.
“소견 외웠어요? 그림 말이에요.”
“아……. 음.”
네?
그러니까 그림을 외웠냐고요?
‘이게…… 이게 말이야?’
아니, MRI 영상이라는 게 컷이 몇 개인데 그걸 외웠냐고?
이런 걸 요구하는 걸 우리는 갑질이라고 합니다, 교수님…….
‘아니지. 아니지. 근데 저 양반은…… 외웠을 거 아냐.’
이런 제기랄.
뒤를 돌아보니 이현종 또한 뭐가 문제냐는 얼굴이었다.
빌어먹을 천재 놈들.
다 죽었으면 좋겠다.
“자, 기억하셨으면……. 다시 환자에게로 가죠.”
“어……. 네.”
머릿속으로 화를 엄청 내기는 했지만.
하여간에 김성진도 우수한 사람이고 또 시키는 걸 안 하면 찝찝해지는 전형적인 의사이기도 해서, 최대한 기억하기는 했더랬다.
해서 수혁을 따라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분위기는 아까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적어도 환자만 보면 그랬다.
‘보호자…… 얼굴이 밝아졌어.’
하나 보호자는 달라진 상황이었다.
완전히.
내과 의사로 오래 살아온 김성진은 딱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뭔가……. 더 좋은 말을 들은 거야.’
최소한 악성은 아닐 거라고 들었거나.
혹은 뇌종양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근데…… 음. 말이…… 말이 되나?’
방금 영상을 보고 와서 더 확신이 들고 있었다.
아, 이건 뇌종양이다.
아닐 수가 없다.
뭐 이런 생각만 들었다.
“자, 김성진 선생님.”
“네.”
그때 수혁이 불렀다.
김성진은 더없이 절박한 얼굴로 답했다.
제발 쉬운 질문이어라.
제발.
이렇게 빌고 있었다.
‘프락치 놈…….’
그 뒤엔 정반대의 얼굴을 한 안대훈이 있었는데, 수혁은 그를 확인하지 못했다.
해서 그냥 하고자 했던 질문을 던졌다.
“자. 40대 남자 환자가 정신착란 및 좌측 상하지 마비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기저 질환은 없고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무난한 질문이었다.
내과 의사로 직접 볼 일은 없어도, 옆에서 지켜본 적이 많은 케이스이기도 했고.
아니, 사실 실제로 보기도 많이 봤다.
감염내과로 일하다 보면 정말이지 별의별 환자를 다 보기 마련이니까.
“일단 CT와 MRI를 찍습니다. 당연히 기본적인 혈액 검사와 심전도 등을 시행하고요.”
“네. 그렇죠. 심전도는 왜 찍습니까?”
답은 즉각 나왔다.
그리고 질문도 거의 동시에 들어갔다.
사실 저 답이라는 게 루틴이지 않나.
누누이 말하지만 현대 의학은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고, 그 때문에 이러한 루틴이 아주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정도 처방은 기계적으로 시행하는 인턴도 많았다.
하나 이유도 분명하게 알고 있을까?
‘알고 있어야지.’
[그렇죠. 더욱이 김성진은 교수잖아요.]
수혁의 날카로운 눈을 받은 김성진은 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우선 심근경색…… 그중에서도 우심실의 경색이 있으면 통증이 아니라 저혈압과 심박 박출량의 감소로 주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경색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좋아요, 또?”
“심내막염 등이 있어 엠볼라이(Emboli)가 날아가는 경우……. 또 비슷한 소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감별해야 할 질환들입니다.”
“좋아. 좋습니다. 심전도는 빈맥 이외에 다른 이상 소견을 보이진 않았어요. 영상 소견은 아까와 같고요. 자, 그럼 뭘 하시겠습니까.”
답은 아주 잘 했다.
수혁의 말처럼, 또 안대훈의 표정이 말해 주듯 거의 완벽했다.
그러나 질문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리고 수혁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