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99화 (799/1,303)

799화 김성진 (4)

‘뭘 해야 하나……?’

수혁의 기다림과는 별개로 김성진은 마른침만 꼴딱꼴딱 삼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영상을 찍어서 아까 그 소견이라고 치자.

그럼 뭘 해야 하나?

‘어……. 기도……?’

뇌종양.

위치도 중뇌 다리 근처.

영상 소견도 양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역시…… 기도……?’

현대 의학의 한계니 어쩌니 하는 말도 필요 없었다.

벌써 이만큼의 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뇌종양은 아마 한동안 정복하기 어려울 테니까.

아니, 나중에라도 정복이 가능하려나.

뇌는 뇌인데.

‘아니, 아니야. 아까……. 분명 혀에 궤양이 있었어. 그리고…… 우리를 나가라고 했고. 그다음 보호자분 얼굴이 좋아졌어. 혀에 궤양이라…….’

수혁이 환자 보는 것을 미리 보지 않았다면 그저 기도나 하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김성진은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살핀 참이었다.

그 덕에 평소 그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추론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환자는 기저 질환이 없다고 했지만, 혀에 궤양이 있었습니다. 단순 아프타성 궤양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3개나…… 생겨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말한 대로 단순 아프타성 궤양일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후자를 의심했다면, 무엇을 해야 하죠?”

“후자…… 후자…….”

머리가 후져서 그런가?

후자를 되뇌어 봐도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간의 수련과 공부가 완전히 헛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또 수혁이 애초에 어느 정도 유도 질문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입안의 궤양……. 그리고 40대 남자. 어…… 안경. 환자 안경인가?’

게다가 김성진은 아까 수혁이 어디를 살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보통의 의사라면 그저 환자를 살필 뿐이었다.

그렇지 않나?

그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하지만 수혁은 분명 혀를 보고 나서, 환자 주변을 훑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환자 바로 옆에 놓인 탁자 근처에서 시선을 고정했다.

그 위에 놓인 것 중에 특이한 것이라고는 안경뿐이었다.

아주 도수가 높은 안경.

‘보호자 안경은 아냐. 와……. 뺑뺑이 도는 거 보면 시력 엄청 나쁜 거 같은데.’

김성진은 입안의 궤양과 시력 저하 두 가지 증상을 환자의 나이와 성별에 대입해 돌려 보기 시작했다.

‘돌아라, 머리머리!’

효과는 있었다.

‘베체트……?’

대표적인 질환이 하나 있었으니까.

남성에서 주로 발병하는 자가 면역 질환으로, 증상 범위는 무척 다양했다.

그중에서 제일 대표적인 증상 몇 가지를 뽑아 보라고 한다면 구강 궤양을 포함하는 소화기 기관 궤양, 성기 근처의 궤양, 그리고 포도막염 등으로 인한 시력 저하가 있었다.

‘소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환이었다.

어떻게 보면 생각지 못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뇌종양이라는 거대한 질환이 있는데 혀에 난 궤양이 뭐가 중요할까.

설령 확인했다 해도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었을까?

못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의 의심과 성실성은 아예 궤가 다른 질환 하나를 끌고 나왔다.

“전신을 살핍니다. 40대 남자에서 이런 식의 궤양은 드무니까요. 베체트병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좋아요. 어떤 소견이 지금 당장 눈에 띄죠?”

“안경……. 저거 보호자분 안경은 아닌 거 같은데, 맞을까요?”

김성진의 말에 급작스럽게 소환된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황은 없어 보였지만 하여간에 대화를 듣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표정도 아까보다는 확실히 풀려 있었다.

베체트가 뭔지는 몰라도, 뇌종양보다는 나아 보였으니까.

“네, 남편 거예요. 눈이…… 나이가 들어서 갑자기 확 나빠져 가지고요.”

“그때 혹시 안과는 가 보셨나요?”

“아……. 저랑 남편이 해외에 있었어 가지고요.”

“해외라고 하시면……?”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그때 디지털 노마드라고 한창. 하하. 저희가 1세대……거든요. 그때 진짜 좋았는데.”

“아……. 그렇군요.”

김성진은 하마터면 ‘디지털 노마드요?’라고 물을 뻔했다.

평생 병원에서만 산 사람이 그런 말을 어찌 안단 말인가.

하지만 대강 어떤 일인지 알아듣기는 했다.

노마드.

유목민 아닌가.

‘우리나라였다면…… 바로 안과 전문의를 찾았겠지. 그럼 진단도 됐겠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떠도는 상황이었다면 어렵지.’

그래, 그렇다면 확실히 기저 질환이 없었다고 여길 수 있을 터였다.

시력 저하를 제외한 나머지는 글쎄, 그렇게까지 두드러지는 증상은 아니니까.

성기의 궤양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이수혁 교수님 얼굴을 보니, 왠지 알 거 같아. 그리 심하지 않았던 거 같아.’

통증이 거의 없다면, 발견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솔직히 그렇게 본인 눈에 띄는 부위는 아니니까.

물론 특이한 취미가 있어 밤낮으로 살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을 거 같았다.

“해외에서 오래 살았던 점과 안경을 봐서 유추해 보면, 미스된 포도막염 등의 증상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네, 가능성이 아까보다 높아졌습니다. 다음 소견은 뭐, 아시겠지만 성기를 봐야 합니다. 그건 제가 아까 봤는데 자잘한 흉터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리 심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이 세 가지 증상을 종합해 보면 확실히 베체트 가능성이 있죠. 잘했습니다.”

“네, 네!”

해서 질렀더니 칭찬이 돌아왔다.

‘와우. 나 붙는 건가!’

가명까지 써서 온 보람이 있다 싶었다.

그래, 이래야지.

언제까지 안국태 밑에 있겠나.

‘그 개새끼, 그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진짜 못 할 짓 많이도 시킨 놈이었다.

공항 픽업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골프장 가서 대기 탄 적도 있었다.

“자, 그럼……. 베체트와 지금 환자의 증상은 상관이 있을까요?”

장밋빛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으려니 수혁이 질문을 던졌다.

뜨거워져 가던 머리가 짜게 식는 느낌이었다.

‘어…….’

베체트와 지금 환자?

김성진은 일단 환자를 돌아보았다.

억제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단언컨대 김성진은 이런 몰골의 베체트 환자를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래도 꽤 봤단 말이지? 근데…….’

큰 병원 수련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돈도 많이 받고, 크고 좋은 병원에서 일하니 장점만 있어 보이겠지만.

너무 사람이 많고, 특히 위에도 사람이 많다 보니 술기를 많이 못 해 본다는 단점이 있었다.

특히 로컬에 나올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꽤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인데, 그 단점을 아득히 뛰어넘는 장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다양하고 희귀한 케이스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칠성도 예외는 아닌 데다 김성진은 그중에서도 성실했던 편이다 보니 당연히 베체트도 많이 봤다.

“베체트병이 신경학적인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그…… 음. 잠시만요.”

그중에서는 신경학적인 증상을 보이던 케이스도 있었다.

‘예후가 안 좋았던 거 같은데. 왜 그랬지. 아, 그래.’

베체트는 어찌 되었건 간에 자가면역질환이지 않나.

염증을 일으킨다는 얘긴데, 뇌에서는 주로 혈관염을 일으켰다.

그 말은 곧 경색이나 출혈 등의 양상을 띤다는 뜻이었다.

‘증상 자체는…… 뭐, 그럴 수 있어.’

엄청나게 다양한 증상을 보일 수 있었다.

마비가 된다든지, 착란을 일으킨다든지 하는.

하지만 대개는 큰 혈관이 아니라 작은 혈관에 영향을 미치는 편이다 보니 이렇게까지 전격적인 마비는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아니야. 없을 거 같아…….’

작은 혈관의 국소 혈관염으로 이렇게 된다고?

대개 미만성으로 올 텐데?

백번 양보해서 될 수도 있긴 할 테지만.

그렇게까지 진행하려면 1주일이 아니라 몇 개월 혹은 수년이 걸릴 거 같았다.

대한민국처럼 의료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에서 그렇게 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어요.”

수혁은 고민에 빠진 김성진을 보며 말했다.

잘 보니 혀로 똑딱똑딱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가 적나라하게 나지는 않은 상황인데, 의사로서 장담하건대 혀를 저렇게 움직이면 똑딱똑딱 소리가 나야 했다.

‘살려 줘.’

김성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렸다.

일단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키는 베체트 쪽이었다.

“그…… 혈관염을 일으킬 수 있지 않습니까, 베체트가?”

“그렇죠.”

말하면서 수혁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아닌 것 같으면 바로 꼬리를 말려고.

하나 김성진의 관찰력 따위에 밀릴 수혁의 연기력이 아니지 않나.

완전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망할.’

덕분에 김성진은 쌩으로 내던져진 존재가 된 채, 말을 이어야 했다.

“그…… 작은 혈관이고 국소적인 병변이지만 그게 이렇게…… 우연히 어…… 큰 데 생기면…….”

“영상 소견을 기억하고 있나요?”

“아, 네.”

“영상에서 경색이나 출혈이 보였나요?”

아, 아뇨.

김성진은 차마 입 밖에 소리 내어 답하지 못했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아주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다.

환자의 영상은 혈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뇌종양만 보이고 있었다.

‘이런 시벌……. 설마 아무 상관 없습니다. 베체트도 있는 거예요, 하하하 엔딩은 아니겠지?’

잠깐 정신줄을 놓을 뻔했지만.

김성진은 환자 보호자의 반응을 간신히 떠올렸다.

‘아냐……. 아냐. 뭔가 긍정적인 말을 들은 거야. 베체트야. 답은 베체트. 아무래도 이게 뇌종양보다는 나으니까. 아닌데? 뇌종양인데?’

아니, 정신줄을 놓고 있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꾸 뭐가 충돌하지 않나.

간절한데, 답은 모르겠고.

추론은 서로 부딪치고.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어……. 이 친구 이거 괜찮은 건가? 어유, 심장 박동이 이거.”

어……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곤 동맥을 짚어 박동을 쟀다.

“얘 이러다 죽겠는데?”

무서운 얘기도 했다.

보호자가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을 지경이었다.

나이도 이수혁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데, 앞에서 갈굼당하다가 죽다니.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인가.

“아니, 아니. 죽지는…… 않습니다.”

김성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김성진에게 이현종이 물었다.

“더 하면 죽을 거 같은데. 아냐?”

그런 이현종을 마주하고 나서야 김성진은 알 수 있었다.

‘지루한데? 이 양반……. 이거 지루해.’

성질 급한 사람이다 보니 이제 그만 답 듣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을 뿐이라는 걸.

“그…… 네.”

어쩌겠나.

그렇다고 해야지.

이 사람이 센터장인데.

“그렇군요. 뭐, 드문 소견이긴 합니다. 베체트병에서 뇌종양을 모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죠.”

“어……. 그럼?”

“있기는 있어요. 이런 식으로 나타나죠. 치료 계획은 우선 생검, 동시에 스테로이드 치료입니다. 반응은 꽤 좋은 편이에요. 죽을병은 절대 아닙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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