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01화 (801/1,303)

801화 2차 (2)

‘아……. X 됐네?’

같은 시각, 김성진은 같은 환자를 보면서 절망했다.

‘Priapism(지속발기증)……?’

하늘에 맹세코 처음 들어 봤다.

시벌.

듣고 보니 신이 참 얄궂은 존재란 생각도 들었다.

누구는 안 서서 약도 먹어야 한다는데, 누구는 저게 안 가라앉아서 병원에 와야 한다니.

“이거…… 벌써 10시간 이상 지속된 상황입니다. 더 지속되면…… 썩습니다.”

“그렇겠죠? 음.”

듣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썩는다니.

여기서 뭐 전혀 엉뚱한 곳이 썩는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않겠나.

‘아이고……. 이제 겨우 만 14살인데?’

저 나이에 저기가 썩어?

그건 안 될 일이었다.

김성진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수혁이 하는 양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의 행동, 문답 하나하나에 힌트가 숨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였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이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닐 거 같은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크나큰 문제긴 했지만.

“검사는 한 게 있나요?”

“네? 아, 네. 그냥 뭐……. 국소마취하에 수술해야 할 수도 있으니…….”

“국소마취로 수술을 해요?”

“네. 이거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서요.”

“아, 그렇군요. 음. 근데…… 원인은 뭡니까?”

“지금 그걸 몰라서요.”

“그렇군. 흠.”

그사이 수혁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처음부터 환자와 대화를 하진 않았다.

우선은 지금까지 환자를 본 주치의들에게 정보를 취합했다.

[뭐……. 생각보다 많은 정보는 없는데요?]

‘그러게. 그래도 종합해 보면, 뭐라도 나오긴 할 거야.’

[정리해 보죠. 만 14세. 지속발기증 발생한 지는 10시간째. 기저질환은 없음. 이게 다인데요?]

‘그래. 그게 다지. 지금은.’

바루다의 말대로 입수한 정보는 그리 많지 못했다.

하지만 검사는 나갔다고 하지 않았나?

“검사 결과는요?”

“아, 그게. 방금 외래로 온 거라서요.”

“외래……?”

“네. 근데 교수님이 일단 이상하니까 검사하고 수술방 잡을 수 있으면 잡고 하라고 올리셨습니다. 진통제도 주고요.”

“교수님이 누군데요?”

“한석준 교수님입니다.”

아, 그 사람.

신도라고 했던가.

수혁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안대훈을 돌아보았다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확인하고는 확신했다.

‘신도 환자네?’

[수혁도 이제 신도를 인정하는 겁니까?]

‘달리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어. 팬이라고 하기도 좀…….’

[하긴, 일반적인 팬은 아니죠.]

딱히 신도의 환자라서가 아니라, 이제는 슬슬 환자를 봐야 할 시점이었다.

뭐가 되었건 자신이 관여한 이상 환자를 해결하긴 해야 하지 않겠나.

‘일단 지속발기증의 정의에는 부합해.’

[네. 지속발기는 성적 자극과 오르가즘 이후 4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성적 자극과 무관한 전체 또는 부분 발기를 뜻하죠.]

‘소아에서는 극히 드문 증상인데…….’

[맞습니다.]

원인에는 외상 또는 약 등이 있었다.

물론 더 다양하기는 한데, 보통은 저 두 개 선에서 정리된다고 보면 되었다.

그러나 소아는 저 둘 다 겪을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외상은 잘 다치지 않아요? 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발기된 상황에서의 부상이 지속발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아에서는 거의 없었다.

“친구 이름이…… 아, 박보람. 보람 학생. 제 말 들려요?”

수혁은 뭐가 되었건 환자와의 문진을 위해 환자를 불렀다.

그러자 환자 대신 아버지가 나섰다.

“아니, 애가 지금! 어? 이러고 있는데! 말만 해서 됩니까?”

“여, 여보. 이분 유명한 분이야.”

해서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를 급히 말렸다.

“응?”

“이수혁 교수님…… 맞죠? 통합진료센터.”

“아, 네.”

“으이구, 이 화상아! 명의가 오셨으면 얼른 비키기나 할 일이지. 뭐 하러 성질을 부려!”

“어, 어어.”

보통의 가정에서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것은 기정사실 아닌가.

이 집안도 그리 다르진 않은지,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러나 착실하게 끌려 나갔다.

‘약간 우리 아빠 같네.’

[어……. 그렇죠. 이기자한테 꼼짝도 못 하지.]

‘이름부터가 이기자잖아. 질 수가 없지.’

[어디 가서 그런 드립은 치지 마시고요.]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환자를 들여다보았다.

“네, 네네.”

환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아빠를 갈구기 위해 떠들었지만, 환자도 다 들은 참이지 않나.

명의라는 말에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눈은 이미 돌아갔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잠깐 얼굴 좀 보여 줄래요?”

“아, 네네.”

이제 보니 고개도 돌아가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렇게나 자세를 바꾸고 있던 참이긴 했다.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가 있을까 싶어서.

물론 다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하여간, 수혁은 그제야 겨우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핏기가 좀 없어 보이는데……?’

[네. 그러네요.]

‘피가 저기 몰려서일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통증 때문에……? 이게 괴사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있잖아?’

[그렇죠. 통증이 있기는 하겠지만 죽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렇다, 이 말이지.’

[기저질환이 없었던 게 아닌 거 같군요.]

‘그러니까.’

안색은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지표이지 않나.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하지만, 병원에서도 당연히 그랬다.

“잠깐…… 눈 좀 볼게요.”

“어……. 네.”

갑자기?

눈?

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환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건 여기 와서 진통제 하나 맞은 것 말고는 딱히 뭘 안 하지 않았나.

그 와중에 눈이라도 봐주면 된 거 아닐까?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창백하군.’

[이건…… 빈혈 소견인데요. 영양이 나빴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 학대의 소견도 없고. 피부결도 괜찮고…… 무엇보다 우리 병원 외래를 바로 올 수 있었다는 건…….’

[잘사는 집임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한민국만큼 의료에 있어서 평등한 곳도 없다지만, 그럼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동네 병원 오듯 여길 왔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태화 의료원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집값이 비싼 곳 중 한 곳에 있었으니.

‘뭔가 있겠군.’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이건 병 때문일 터였다.

혈액에 관련한 병.

수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안 좋겠는데…….’

나이가 좀 있다면 괜찮을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20대 여자라면, 다이어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의외로 꽤 있지 않나.

다이어트를 너무 지독하게 하는 바람에 빈혈이 오고, 심지어 쓰러지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하지만 소아는 그렇지가 않았다.

“잠깐…… 배 좀 볼게요?”

“아, 네.”

“제가 손이 좀 차가워서 놀랄 수도 있어요.”

“네. 읏.”

수혁은 아이의 배를 들추어내고는 복부 장기를 촉진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어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음.’

[비장은 좌측 늑연 아래 6cm에서 촉지됩니다.]

‘크군…….’

[네, 큽니다. 같은 체격을 가진 소아를 상정했을 시…… 비정상에 해당합니다.]

비장.

혈액 세포와 연관이 있는 장기가 커졌다.

이게 커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일을 많이 했다고 보면 되었다.

근육도 그 본연의 일, 즉 운동을 하면 커지지 않나.

신체는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고 보면 무방했다.

‘비장은…… 수명이 다한 혈구 세포 또는…….’

[비정상 세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죠.]

‘그렇다는 건…… 얘 혈관에 비정상 혈구가 많다는 거야.’

[백혈병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래, 백혈병…….’

수혁은 아이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제 막 2차 성징이 시작되어 수염이 나기 시작한, 여드름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얼굴이었다.

난 저 나이 때 뭘 했나.

가끔은 보육원 친구들과 놀기도 했고.

주로는 공부를 해야 했다.

딱히 아주 즐거웠던 시기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항암제를 맞고, 고생을 하진 않았다.

‘거참…….’

이런 경우를 볼 때마다 하늘을 보게 되었다.

얘가 뭘 했다고 이런 병이 걸린단 말인가.

의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발병이라는 것은 결국, 우연일진대.

왜 하필 이런 악연이 발생한단 말인가.

[수혁?]

‘아, 그래.’

수혁은 잠시 상념에 젖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저유량 지속발기이니, 수술 검사 나오는 대로 바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네? 어……. 그걸…… 그건 어찌…….”

“우선은 제 조언에 따르세요. 한 교수님에게 전달하면 알아서 할 겁니다.”

“아, 네. 교수님.”

적어도 의사는 환자를 진단하고 또 치료하는 사람이지 않나.

눈 앞에서 같이 울 수도 있겠지만.

수혁은 그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또한 그런 의사들로 통합진료센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야, 그가 없거나 다른 환자를 보고 있을 때조차 센터는 환자를 살리고 있을 테니.

김다현 회장이 이 둘을 통해 그리고 있는 센터의 청사진도 그러하지 않던가.

그 이면에는 돈이 있겠지만.

뭐가 되었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면에서 수혁은 그 청사진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작정했다.

“김성진 선생님.”

해서 수혁은 애써 침착한 낯으로 김성진을 돌아보았다.

‘아까…… 얼굴을 찌푸렸어. 분명…… 그랬어.’

적어도 위장은 별 소용이 없었다.

김성진이 안대훈처럼 수혁에게 특화되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안국태라는 희대의 또라이랑 같이 병원 생활을 했다 보니 유독 윗사람 심기를 파악하는 데 있어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을 뿐이었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안국태를 보고 아, 오늘 저 사람 기분이 별로구나 싶은 걸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회의감에 젖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 말은 곧 별로 좋지 않단 뜻……. 저기엔 비장이 있지. 게다가 누른 지점이 일반적인 비장 위치보다 하단에 있어. 그 말은…… 커졌다. 비장이 커졌고, 좋지 않은 결과를 예상했어.’

내가 그래도 의산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눈치를 봐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그렇다면…… 혈액암.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애가 허얘. 게다가 저혈류라고 했지? 보통의 발기랑 다르게…… 피가 적게 들어간다, 이 말이겠지?’

적게 들어가는데 발기는 되어 있다?

막힌다는 거 아닐까?

왜 막혀?

미숙한 혈구들이 있으니까.

‘그래……. 그렇군. 시발 오늘만은 안국태 만세다.’

김성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응? 아나?’

[그런가…… 본데요? 이거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닌데?]

‘역시 이 사람도 꽤 괜찮은 인재야.’

김성진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수혁으로서는 그의 우수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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