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02화 (802/1,303)

802화 2차 (3)

“네, 이수혁 교수님.”

김성진은 어깨를 당당히 펴고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거지 죽상이더니만.

지금은 숫제 얼굴이 번쩍번쩍하는 느낌이 일었다.

‘안다.’

[네, 아는데요?]

비단 수혁이나 바루다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도 아니었다.

‘안다……. 이 프락치 놈이.’

안대훈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허어…….’

이현종도 그랬다.

그만큼 극명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 제일 강하다…….’

김성진은 통합진료센터 일당을 돌아보다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태화 의료원의 낯선 천장뿐이었지만.

김성진은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답을 해야 하니까.

“환자의 얼굴을 보시면…… 창백합니다. 또 눈꺼풀을 뒤집어 봤을 때도 창백한 소견을 보였습니다. 얼굴만이면 몰라도 눈꺼풀까지 그렇다면 역시 빈혈 소견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빈혈을 의심할 수 있죠. 빈혈의 원인은 뭐가 있겠습니까?”

해서 부리나케 정답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는데, 수혁이 질문을 던졌다.

‘아. 그렇네.’

듣고 보니까 확실히 이 생각부터 하는 게 맞았다.

모자란 추론을 수혁의 반응과 행동을 토대로 뛰어넘었다 보니 이걸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야.’

물론 생각을 못 했을 뿐.

질문을 듣고 답하지 못할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다.

“우선 출혈을 생각해야 합니다. 드물지만 청소년에서도 멜레나 등의 소견을 보였다면 위궤양 등의 상부 위장관 출혈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감별해야 할 질환이기도 하죠.”

대한민국.

아무 자원도 없는 나라이면서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지 않았나.

그 이면에는 치열한 교육열과 그 교육열이라는 이름 하에 경쟁에 내몰리는 이들이 있었다.

딱히 청소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요즘 말하는 조기 교육은 그 대상이 유치원생까지 내려와 버렸다.

다시 말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너무 어릴 때부터 주어진단 얘기였다.

그 덕택이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에서는 10대에서도 위장관 출혈이 아주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네. 하지만 출혈로 혈류의 감소가 발생했다면, 지금 환자의 주소와 상충합니다.”

“그렇죠. 가능한 질환이지만 환자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요?”

“영양 부족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꽤 고르게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스트레스는 비단 학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미디어의 발달과 이른 노출로 인해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았다.

하나 지금 눈 앞의 환자는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축구를 좋아하는지 장딴지 근육이 꽤 탄탄해 보였다.

김성진은 그렇게 판단했고, 수혁도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혈액 생성과 관련한 질환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네, 그럼…… 다음은 뭘 봐야 하죠?”

“여러 가지 검사가 있겠지만…… 비장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혈액 검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은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네. 그렇죠.”

이런 말을 들어 본 적 있었을 터였다.

좀 피곤해서, 아니면 안색이 오늘 좀 안 좋단 말을 듣고 병원 갔다가 바로 무균실로 갔다는 얘기.

백혈병은 심각한 병이면서 동시에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한 질환이라 그랬다.

물론 아직 검사가 안 나온 상황이라면 이런저런 신체 검진 또한 도움이 되었다.

“비장이 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의 질환은 확실히 골수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은 수술해서 성기의 관류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저에 있을 질환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치료를 서둘러 치료해야 합니다.”

김성진은 뿌듯한 얼굴로 말하다, 기저에 있는 질환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표정이 좀 어두워졌다.

‘너……. 어쩌냐, 이제.’

아직 아이는 자신의 질환명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너머에 있는 아이의 부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성진은 그렇지 않았다.

진단명은 물론이거니와 이 아이가 겪어야 할 고초가 눈앞에 선했다.

지금이야 감염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지만, 내과 의사는 모두 전공의 시절에 혈액종양내과 병동에서 밤을 지새운 경험이 있지 않나.

이렇게만 말하면 정적인 밤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바로 어제까지 멀쩡했던 환자가 죽어 나가던 밤.

완치된 줄 알고 퇴원했던 환자가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던 밤.

일상을 보내다 한순간에 암 환자가 된 신환을 봐야 했던 밤.

그야말로 끔찍한 밤들의 연속이었다.

“맞습니다. 아직 정확한 진단명을 언급하기엔…… 좀 이른 시간입니다만. 혹 유추해 볼 수 있을까요?”

“네?”

김성진을 상념에서 깨운 건 당연하게도 수혁이었다.

그의 질문에 김성진은 좀 멍해졌다.

‘여기서…… 더 뭘 알 수가 있나……? 아, 혹시…… 골수 관련 질환 중에…… 백혈병 중에 아까 뭐랬더라. 그래, 지속발기증하고 연관이 있는 병이 있나?’

그래, 여기까지는 추론이 가능했다.

하지만 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건 추론의 영역이 아닌, 완전한 지식의 영역이어서 그랬다.

“뭐, 알기를 기대한 건 아닙니다.”

수혁은 당연한 거라고 말해 준 후, 아이가 듣지 못하게 고개를 돌린 후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겸상 적혈구 빈혈 또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일 겁니다. 전 세계적인 통계를 보면 겸상 적혈구 빈혈이 소아의 지속발기증에서 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겸상 적혈구 빈혈의 빈도가 매우 적기 때문에, 아마도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겠죠.”

“아……. 이게…… 이게 통계로 잡히는군요.”

“네. 드물긴 해도 아예 없는 증상은 아니니까요. 아마 이 점에 대해서는 비뇨기과 선생님들이 더 잘 알 거 같은데요? Priapism에 대해서는.”

수혁의 말에 비뇨기과 레지던트들은 왜인지 모르게 눈을 살살 피했다.

그래, 알긴 알았다.

이 증상이 뭔지는.

하지만 저런 통계까지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드문 증상인 데다가, 이 환자는 소아이지 않나.

거의 볼 일이 없다는 얘기였다.

하필 대한민국에서는 아까 수혁이 말한 것처럼 겸상 적혈구 빈혈이 적어서 더 볼 일이 없었다.

“아, 모르시나. 하여간 빨리 수술하고, 조태진 교수님……. 아니지. 소아구나. 소아과에 연락하셔서 되도록 빨리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제가 협진 노트 남겨 놓을 테니,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교수님!”

“그럼…… 우리는 일단 자리를 피하죠.”

수혁은 아이의 진단명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95% 이상의 확률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그래. 대한민국이라는 것과 증상 등을 고려하면…… 사실 95% 아니라 99%라 해도 과언은 아니야.’

[그럼 가서 설명하죠?]

‘아니, 부모 마음은 그게 아니지.’

하지만 골수 검사가 나오기 전에는 아마 소아과에서도 얘기를 삼갈 것이 분명했다.

이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니까.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가정의 미래를 송두리째 구렁텅이에 처박아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나마 소아의 생존율이 성인보다 높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백혈병의 치료에 있어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골수이식 또는 조혈 모세포 이식률이 낮았다.

‘난…… 내 실력으로는 그런 얘기를 잘 전달할 수가 없어.’

[그게 실력의 범주에 들어갑니까? 의사의 실력은 모름지기 진단과 치료에 있는 거 아닙니까?]

‘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수혁은 이비인후과 김보영을 떠올렸다.

혈액종양내과의 조태진과 소아과의 이기자도.

그들 모두 아직까지 이길 수 없는 질환과 싸우는 의사들이었다.

진단과 치료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질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럼에도 싸우고 있었다.

환자를 독려해 가면서.

어떻게든 버텨서 혹시 모를 희망을 기다리면서.

‘요새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걸.’

[흐음……. 저는 모르겠군요.]

‘깡통은 모를 수 있는 일이지.’

[저보다 수혁이 요즘은 깡통 같다는 거 모르고 계십니까.]

‘시끄러워, 인마.’

수혁은 이런 생각을 하느라, 또 바루다와 대화를 하느라 처치실에서 빠져나와 병동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이수혁 교수님……. 되게 인간적이시구나…….’

그걸 보면서 김성진은 존경심에 부풀어 올랐다.

사실 그간의 이수혁의 모습만 놓고 보면, 이 사람은 뛰어난 의사긴 하지만 좋은 의사는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뛰어난 의사가 좋은 의사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김성진은 뭐가 되었건 의사라면 환자에게 공감해야 한다고 믿었다.

안국태라는 희대의 쓰레기를 모시고 있어서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점점 더 강화된 생각이기도 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계시네……. 하긴……. 소아암이…… 이게 말이 쉽지…….’

수혁이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맞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바루다와 티격태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알 게 뭐란 말인가.

남들은 바루다의 존재조차 모르는데.

‘교주님……. 불초……. 환자에 대한 공감 능력도 키우겠습니다…….’

‘우리 아들……. 네가 나보다 낫다. 더 빨라.’

김성진뿐만 아니라, 안대훈, 이현종도 홀랑 넘어간 상황이었다.

“하여간 갈까요?”

“아, 그래. 우리 아들.”

“왜 눈가가 촉촉해요?”

“아니, 아냐. 눈에 뭐가 들어갔네. 하하.”

수혁은 딱히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저 발걸음을 옮겼다.

안대훈은 그런 수혁에게, 제정신을 차린 후에 부리나케 다가갔다.

“교수님. 근데 한 번 더 돌릴깝쇼?”

본문을 잊지 않았다, 이 말이었다.

뭐가 되었건 이 파티에서 안대훈이 맡은 임무는 돌림판이지 않나.

어떤 의미에서는 참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수혁은 그런 안대훈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때가 애매하긴 한데 그렇다고 이대로 그만두기도 싫어서 그랬다.

“한 번 더 가자.”

“네.”

김성진만 빼고는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밥…… 안 먹습니까…….’

면접도 좋지만 밥은 먹고 봐야 하지 않습니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모두들 이미 돌림판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김성진은 방금도 수혁의 위력을 보지 않았나.

‘쟤……. 이수혁 교수님 아니었으면 검사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협진 보고 했겠지?’

물론 그렇다고 환자의 전체적인 예후가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의사 결정 과정이 확연히 빨라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만약 질환의 종류가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어떨까.

‘죽을 사람이 살 수도 있는 일이지.’

그래, 이게 이수혁이었다.

거기에 이현종까지 더한 것이 통합진료센터였고.

‘어디……. 다음은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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