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화 이제 뽑아야지? (2)
“일단 대훈이는 장종우.”
“아니, 아니! 저는 그런 게 아니라!”
“본능을 억누르려고 하지 마.”
“아니…….”
안대훈은 단순히 장종우를 이태원보다 더 먼저 봐서, 먼저 이름을 말한 것뿐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이현종은 이미 고개를 돌려 수혁을 보고 있었다.
“수혁아, 너는?”
보아하니 이현종은 어느 정도 마음속에 윤곽을 잡아 둔 모양이었다.
‘뭐지……. 기준이 있으신 건가……?’
이게 뽑을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안대훈도 고민이 덜 될 터였다.
펠로우는 기껏해야 둘밖에 못 뽑지 않나.
그나마 안대훈이 군 펠로우로 빠져서 둘인 것이지, 아니었으면 하나였다.
물론 김인수가 한자리 꿰차면서 하나만 남긴 했지만.
‘김성진은…… 그래, 임상 조교수로 뽑을 거니까……. 펠로우가 아니지.’
김성진도 펠로우 티오로 뽑은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아마 프락치 누명을 벗었으니 백 퍼센트 되지 않을까?
하여간 남은 건 단 한 자리였다.
단 하나.
‘시벌…….’
안대훈은 돌림판 담당을 자처하면서, 또 조태진의 윤허를 받아 모든 면접에 참석하지 않았나.
처음엔 어떤 새끼들이 감히 통합진료센터를 탐하나 싶어서 그랬긴 했더랬다.
하지만 보다 보니 이 새끼들이 이거 꽤 우수한 놈들이 많았다.
‘하긴……. 에이스들만 모았는데 당연한가.’
얼토당토않은 놈들도 있기는 했다.
잘 보면 이현종이나 수혁이나 그리 예의 바른 사람은 아니라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썩 괜찮은 놈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종우, 이태원은 발군이었다.
어찌 되었건 힌트를 받아먹을 줄 알았으니까.
그 말은 곧 추론이란 것을 할 줄 아는 놈들이라는 얘기였다.
‘거기서…… 어떤 기준으로 뽑는 거지?’
안대훈은 어쩐지 그 기준을 배우는 것도 하나의 성장의 기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이현종과 수혁을 돌아보았다.
마침 수혁이 이제 막 입을 열려 하고 있었다.
햄버거를 무슨 푸드 파이터처럼 해치우시더니만, 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단 김성진 선생님은 임상 조교수 티오에 맞춰서 지원한 사람이 그분 하나니 뽑고요.”
“이유가 그뿐이라면 사실 안 뽑아도 될 텐데.”
“아뇨, 괜찮은 사람 같아요. 추론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해서요. 우리도 마음은 지지 않는데 표현하는 법이 좀 서투르잖아요. 도움이 될 겁니다.”
“음. 그래. 이상하게 내가 말하면 환자가 좀 우는 경우가 있더라고.”
“저도 그래요. 거참. 알기 쉽게 말한다고 하는데…….”
일단 김성진은 합격인 듯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당연한 일이었고.
안대훈이 보기에도 김성진은 충심 가득한 위인이었다.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놈은 수혁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어떻게 봐도 안국태 같은 인간 말종과 수혁은 아예 차원을 달리하는 인물 아닌가.
안국태 같은 놈에게도 충성을 다했다면 수혁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 줄 놈이 될 거란 얘기였다.
‘그래……. 게다가 칠성 놈이라는 것도 장점이지.’
박국진이 전향하고 어느 정도 정보를 물어 오기는 했더랬다.
하지만 박국진은 칠성 내에서 선비라 불렸을 만큼이나 이질적인 인물이었다 보니, 아는 게 제한적이었다.
김성진은 어떤가?
이놈은 안국태의 개였다.
안국태의 치부를 단 몇이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 후후. 이참에 안씨의 수치인 안국태를 묻어 버리자.’
시선이 심히 왜곡되어 있는 안대훈에게 김성진의 장점이란 대개 이러한 것이었다.
“하여간 제일 중요한 거. 펠로우는?”
“저도 안대훈 선생 말처럼 그 둘이 마음에 들긴 합니다. 나머지도 꽤 괜찮은 사람들이 있기는 했어요. 근데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해. 솔직히 말하면 그 둘도 안대훈에 비하면 인상적이진 않지만……. 뭐 우리가 가릴 처지는 아니지. 아직은.”
“네, 그렇죠.”
안대훈은 하마터면 울 뻔했다.
역시 이 둘에게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제로도 그렇긴 한데,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안대훈보다 인상적인 사람이 있기는 어렵겠다 싶긴 할 터였다.
번쩍이는 돌림판을 옆에 두고, 반들거리는 머리에 윙 기름을 잔뜩 묻힌 채 앉아 있는 안대훈 같은 사람이 어디겠나.
특히 보수적인 의사 사회에서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여간 장종우 선생은…….”
수혁은 장종우를 떠올렸다.
진짜 ‘저 내과 의사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들어오는 줄 알았다.
얼굴부터 해서 그 묘하게 펑퍼짐한 정장에 더해 철 지난 넥타이, 그리고 잔뜩 주름이 간 구두까지.
‘저 진짜 개고생하면서 사는 내과 의사입니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물론 고생으로만 따지자면야 안대훈이 더 힘들어 보이는 몰골이지만.
이쪽은 좀 병원 말고 다른 데서 고생하는 느낌이 있다면, 장종우는 병원에서 찌든 느낌이었다.
“면역 반응으로 인한 뇌하수체 비대를 아주 정확하게 추론했어요.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어, 그렇지. 맞아.”
“물론 내분비내과를 지망했다고는 들었어요. 우창윤 교수님 밑으로 들어갈 거라고도 했고……. 근데 우창윤 교수님 본인은 몰라도, 제자들한테 그런 걸 가르칠 수 있었을까 싶어서요.”
“그래, 그렇지. 우창윤이 그 인간……. 솔직히 이제 잿밥에 더 관심 많은 놈이잖아. 의학보다는 자리가 더 중할걸. 근본은 학자지만…… 하여간 뭐, 제자들 티칭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싶어.”
“네네.”
대화는 아주 자연스레 뒷담화가 되었다.
아마 아선 병원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 새끼들이 하고 자리를 뒤집어엎었을 텐데.
아쉽게도 이 자리에는 오직 대화 당사자와 안대훈뿐이었다.
셋 다 이상하게 우창윤을 저평가하는 인간들이기도 했다.
어째 자꾸 우창윤 교수가 해결하지 못한 케이스를 들여다보게 되어서 그랬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새끼 그거 공부 좀 해야 돼.”
“그러니까요. 명색이 아선 병원 교수인데……. 아직 사람들이 거기도 많이 가잖아요.”
“내 말이. 하여간. 그래, 장종우 선생 고유의 실력일 거다……. 이 말이지?”
“네. 제 생각은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그래……. 장종우 선생……. 흠. 그럼 이태원은?”
이현종은 이태원 또한 높이 치고 있었다.
그의 추론도 대단하지 않았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추론이라기보다는 안대훈의 눈알에 대한 관찰 덕이었지만.
이현종이나 수혁이나 그렇게 내밀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태원……. 관상동맥과 폐동맥 교통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유추해 냈죠.”
“그래. 뭐, 내가 여기 뭐 있을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는 했는데……. 그래도 그걸 생각한 건 대단하지.”
“네. 인상적이었습니다. 흐음.”
“왜?”
대화를 하다 말고 수혁은 인상을 썼다.
얘기하다 보니까 좀 헷갈려서 그랬다.
‘아니……. 둘 중에 누굴 뽑아야 되지?’
[그러게요. 하나만 뽑아야 된다니……. 흠. 제 판단으로는 이태원이 더 나을 것 같긴 합니다만.]
‘어떤 연유로?’
바루다가 의학적인 것 외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건 퍽 드문 일이었다.
적어도 먹을 것에 대한 것을 배제하고 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해서 수혁은 귀를 기울였다.
어차피 개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란 생각에서였다.
[장종우는 아선 병원 출신입니다. 이태원은 비메이저 병원 출신이고요.]
‘출신 성분으로 가르자고? 조선 시대냐? 공산당이야?’
[그 반대입니다. 아선 병원은 큰 병원이죠. 케이스를 다양하게 접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태원은 그랬을 가능성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될 만큼 비슷한 수준의 추론을 해냈습니다. 이건 재능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당시 바루다 또한 딱히 장종우를 보고 있지 않았더랬다.
오히려 안대훈이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가 더 궁금해서 그랬다.
때문에 안대훈의 눈알이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음은 모르고 있었다.
‘오……. 그렇게 되나.’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현시점에서 비슷하다면 과거를 돌아봐야죠. 나이가 어리거나, 기회가 적었거나. 이러한 것들이 판단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래.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럴싸하지 않나.
해서 수혁은 그 말을 그대로 읊었다.
“둘이 고민이 된다는 건……. 제가 정신과 선생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결국, 비슷해 보여서라고 합니다.”
“그거야 그렇지.”
“현시점에서 비슷하다면 과거를 돌아봐야 해요. 나이가 어리거나, 기회가 적었거나. 이러한 것들이 판단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오.”
이현종은 네 말도 일리가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딱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 바뀐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현종이 묘하게 고집이 센 모멘트가 있는데, 그게 지금이었다.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으려나. 보니까 이미 정한 거 같은데.’
[아,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이현종의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해서 수혁은 더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침묵의 의미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다 좋은 의견이야. 종합해서 보면 대훈이는 장종우, 수혁이는 이태원. 둘이 다르네.”
“아니, 소인이 어찌!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옵니다!”
“사극 말투 쓰지 말고.”
“영명하신 태사부께오서 판단하시겠지만 저는 진짜!”
“지랄 말고. 내가 해결할 테니까, 따라와.”
“네?”
누굴 뽑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따라오라고?
이게 뭔 소리야.
안대훈과 수혁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둘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만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전에 얘기가 된 게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 일단 가시죠.”
“어, 어어. 그래.”
그사이에 이현종은 성큼성큼 회의실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하릴없이 이현종을 따라나서야만 했다.
띵.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다가 곧 멈춰섰다.
교수 연구실이 몰려 있는 층이었다.
그래 봐야 태화는 병동과 연구실이 맞물려 있어서 병동을 온 건지, 아니면 연구실을 온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따라가 보니 역시나 연구실 쪽이었다.
그중에서도 현 내과 과장인 김문재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벌커덕.
비서가 몸을 일으키고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현종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제꼈다.
“어어, 어어어!”
김문재는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끽연을 즐기고 있다가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졌다.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이 새끼. 내과 교수란 놈이 담배를 피워?”
“아아아아아니. 약속도 없이 그냥 이렇게.”
“뭐, 우리 사이가 꼭 뭐 그래야 해?”
“그…….”
아니에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김문재는 이미 꼬리를 만 지 오래 아닌가.
그 덕에 과장이라는 콩고물도 받았고.
지금은 반 수혁파를 진압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참이었다.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김문재를 보며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우리 센터 면접 소식 들었지?”
“아……. 네. 듣기야 했죠. 어마어마하던데요?”
“하나 더 뽑아야겠어.”
“네?”
“하나 더 뽑아야겠다고.”
“아니……. 그게 회의를.”
“몰라. 나 고민하기 싫어. 둘 다 괜찮아. 뽑아야겠어.”